🌾 6일 연휴가 우리에게 남긴 것, 추석을 리-사이클하다

추석의 한가운데, 보름달의 둥근 원을 완성하라고 전후 +1일씩의 휴일이 주어진 걸까요. 근래 둥근 달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은근히 잦아지고 있는 것도 같은데요, 반가운 마음이 들다가도 좋은 것도 너무 흔해지면 곧 쉬워지면 다소 빛을 바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였을까요. 저는 강화도 해변 어느 객실에서 새벽녘 좀 은근한 달맞이를 했나봐요. 피곤한 기분에 일찌감치 잠에 들었다 밖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에 엄마 방으로 가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러다 창밖에 짙게 그을린 검은 구름 속 새어 나오는 달빛을 만났거든요. 처음엔 긴가민가 불확실했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바라보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동그란 달이 얼굴을 살짝 내밀고 다시 숨어버리더라고요. 일찍 잠든 탓에 보름달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뜻밖에 찾아온 우연한 달빛에 보름달의 진가를 새삼 체감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흔히 달밤엔 소원을 빈다고 하지만, 이런 순간 딱히 그런 건 생각나지도 않고 그저 넋놓고 바라보게만 되는 시간. 구독자님, 연휴의 마지막 날 달빛은 얼추 가득 채워지고 있나요.

저는 본의 아니게 대보름 첫날부터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요, 실은 연후 두 번째 날부터 발행 시기를 속으로 재고있다 정작 몸이 따라주지 못해 플러스 한번 놓친 시기가 좀처럼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해서 이렇게나 늦어져 버렸어요. 최장 6연휴를 맞이해 조금은 특별한 레터를 발송하겠다고 선언까지 했는데 말이에요. 기다려주신 분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달밝은 날에 사과의 말씀 드려요. 때문에 저의 이번 추석 연휴는 줄곧 지키지 못한 약속과의 '동거'이기도 했는데요. 언제가 좋을까, 혹은 어떤 내용이 더 나을까를 고심하면서, 구독자님, 하지 못한 일의 다시 할 수 있는 타이밍이란, 과연 무엇에 의해 완성되는 걸까요. 최근 일본의 문구 잡화 가구까지 만드는 '코쿠요(コクヨ)'는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는'을 모티브로 학교를 열었어요. 하나의 못다함은 아마, 또 하나의 다짐으로 피어나는 걸까요. 보름달을 보지 못했더라도, 추석 당일이 아닌 하루, 이틀 지나 보았더라도 그건 별로 실망할 일이 아닐 거에요. 보름 맞이 달밝은 밤이 준비하고 있는 건 그렇게 내게 그려진 우리 각자의 밤일테니까요.

단 하루 남은 연휴,  구독자님은 무슨 생각을 하나요. 송편 몇 개 먹고 영화 몇 편 봤더니, 어느새 10월이 흘러가고 있어요.

 🌔 도쿄의 가을, 구순 맞은 ’백화점의 달’ 

구독자님 지금 쯤이면 고향집에서 오순도순 송편도 나눠 먹고 이야기도 듬뿍 나누고 한차례 폭풍같은 재회의 순간이 지나고, 소파, 혹은 침대에 '기거'하고 있을까요. 사실은 이번 레터를 28일 아침,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아침에 발송하려고 했거든요, 하지만 제 계획이 너무 물렀던 탓인지 이사 준비, 귀성길 채비, 와중에 컨디션도 별로라 이제야 겨우 레터를 긁적여봐요. 아무튼, 추석이란 그간의 애씀, 노력을 잠시 쉬게하는 날인 것을, 무엇이든 순리에 역행하면 좋지 않겠죠. 아무튼, 오늘은 (거의) 모두가 자의든 타이든 나의 고향에 돌아온 때이기도 한데요, 하지만 고향이란 게 시대가 변화하며 예전같은 의미로 남아있지는 또 않은 것 같아요. 사실 태어나기만 OO,  △△에서 더 오래 살았다면, △△가 당연히 더 친숙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제는 좀 더 프라이빗한, 같은 지역에 태어났어도 각자의 고향을 생각할 떄가 아닐까도 싶어요. 근래 자주 이야기되는 로컬의 봄(붐)이란, 아마도 그런 푸근함의 귀향길같은 거기도 할 테니까요.

그리고 고향의 최소 성립 조건은 함께한 시간이던요. 지난 9월 20일부터 도쿄 신쥬쿠의 '이세탄 백화점 본점'은 신쥬큐3쵸메 이전 후 90주년을 맞아 대대적 행사를 하고있어요. 그 중에서도 각자의 신쥬큐를 포착한 '신쥬쿠 90스냅'이 히가시 신쥬쿠를 중심으로 전시되는데요, 신쥬쿠에 사는 사람, 살았던 사람, 일하는 사람, 일했던 사람, 혹은 놀러오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그렇게 나도 몰랐던 신쥬쿠가 새삼 발견되게 기획됐어요. 일단은 90+년된 백화점이란 게 놀랍기도 하지만, 그를 지역에 덕으로 돌리는 듯한 이 이벤트, 어딘가 '고향에의 보은'같지 않나요. 저는 사실 도쿄에 갈 때면 신쥬쿠 이세탄 멘즈관을 들리지 않았던 적이 없어 그곳만의 향수같은 게  있기도 하거든요. 마치 도쿄의 고향이 그곳인 것처럼 말이에요. 도쿄도, 신쥬쿠도 아닌 일개 백화점이 고향을 이야기해요. 계절은 바야흐로 가을, 구독자님의 마음 속 고향, 로컬은 어디인가요. 그래서 🌾오늘의 주제 '우리 각자의 로컬을 이야기하다'로 해보았어요. 고향이든 로컬한 오리지널리티이든, 그게 꼭 장소일 필요도 없거든요. 요즘 명절엔 여행을 가는 귀성객도 많다고 하던가요. 그리고 9월은 아직, 파도가 여름 냄새를 내요.

 🏄‍♂️ 어느 편집숍의 미국 서부 해안을 계승하는 '노스탤지아 비즈니스' 

내 마음의 로컬, 고향에 가지 않아도 고향을 느끼는 그래서 첫 번째 토픽, 일본의 40년 편집숍 'UNITED ARROWS'의 쇼난 해변가의 셔핑숍을 왜 계승하다'에요.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UA는 1989년 전  BEAMS 시게마츠 오사무 씨가 바이어 30명과 함께 어패럴 업체 '월드'의 투자를 받고 설립한 또 하나의 편집숍인데요. 캐쥬얼이 메인이었던 '빔즈와 달리 멘즈 비즈니스 패션을 중심으로 시작했고, 이후엔 드레스 캐쥬얼 여성복, 그리고 생활 잡화까지 확장하며 편집형 SPA 사업도 시작,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GREEN RABEL RELAXING'를 축으로 타깃, 목적별 서로 다른 UN를 만들게 되는데요. 그 후에는 브랜드 비즈니스의 확정 선에서 '크롬하츠'나 '스티브 알란'을, SPA 형태의 '코엔,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는 미래적 패션을 지향하며 ～FUTURE ESSENTIALS'을 모토로 CITEN을 런칭했고, 현재 운영중인 브랜드를 모두 더하면 30년 누계 열 여덟 개나 돼요. 시작은 옷 한 벌이었지만, 갈래 쳐온 역사의 버라이어티가 상당하죠. 그런데, 최근 UA에는 좀 독특한 사건이 있었어요. 바로 카나가와현 서핑의 성지라 불리는 쿠게누마(鵠沼) 해안의 대표적 서프 숍 '캘리포니아'를 물려받은 거에요.

말하자면 개인이 운영하던 서핑 전문숍을 UA가 나서서 인수한 셈인데요. 자사 브랜드만 십 수개가 넘는데 굳이 왜였을까요. 특히나 셀렉숍이라는 건, 늘 매장 안에 상품(브랜드)을 들이는 일인지라 굳이 새로운 사업으로서 브랜드가 필요하지는 않잖아요. 특히나 '캘리포니아'는 그야말로 바닷가 한복판, 도심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입지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에 대해 당시 UA의 또 하나의 서브 브랜드 '뷰티 & 유스' 본부장 시미즈 마나부 씨는 '서핑의 전설을 계승한다'고 말했어요. '가게, 브랜드가 이야기해온 모든 것을 계승해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가게 하나의 인수가 아닌, 그 브랜드가 살아온 세월, 역사, 그리고 서핑이라는 문화와 전통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확연히 계열 브랜드 확장과는 또 다른 어감이 느껴져요. 그러니까 브랜딩 전략상에서의 M&A같은 게 아니라, 기업으로서 실천해야 할 가치의 계승, 즉 전과 다른 사업 방향, 당장의 수익보다는 먼 미래의 비전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어요.

1997년 오픈해 30년 넘게 서핑 매니아들의 성지였던 곳을 무작정 물려받는다는 건, 아무리 편집숍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이는 매년 철이 되면 서퍼들로 북적이는 바로 쇼난 해안 컬쳐와고도 연결이 되거든요. 달리 말하면 서퍼들의 아지트, 서핑 문화의 거점이자 시작이었던 장소를 없애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90년대부터 이후 지금까지 '캘리포니아'는 일본의 서핑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 해안의 중심 스폿이었거든요. 특히나 당시 대부분의 서핑 신이 쇼트 보드 중심의, 대회에서 빛을 발할 컴페티션 중시로 흘러가는 가운데, '캘리포니아'는 단순한 경기, 승부가 아닌 문화로서 서핑에 접근했고, 창업자이자 실제 서퍼이기도 했던 이시다 미치아키 씨는 미국에서서핑 문화를 이끌어낸 샌디에고의 대표적 서퍼 죠엘 츄다 씨와 친분을 가지며 일본의 공식적으로(?) 인증받은 미국 서부 해안 스타일의 서퍼 숍이었어요. 그래서 시미즈 씨는 '죠엘 씨가 당시 서퍼 문화를 바꾸었다면, '캘리포니아'는 서핑의 새로운 문화를 리얼 타임으로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고 말해요.

말하자면 스포츠를 문화로써 즐기고 동시에 컬쳐의 장으로 확장시킨 사건, 사람, 그리고 가게였던 셈이에요. 그래서 UA의 서핑숍이 된 CGS(캘리포니아 제너럴 스토어)는 그렇게 '그린 레이블'이랄지, '뷰티 앤 유스' 등과 같은 여타 UA's들과 다르고 독립적이에요. 다만, 기존의 '캘리포니아'가 운영권을 넘길 수 없었던 건, 또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을 거잖아요. 물론 2017년 경 이시다 씨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기는 했지만, 많은 아이템들이 인터넷으로 특히나 해외 직구가 가능해지면서 '캘리포니아' 만의 강점이 바랜 것도 있거든요. 그래서 UA는 이 '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몇 가지 포지셔닝의 편집'이 필요했어요. 첫 번쨰는 UA 내에서 비교적 취약했던 서스태너블리티의 강화인데요. 리사이클 소재로 제작된 오리지널 아이템을 제작하고, 서핑 뿐 아니라 요가나 다른 액티비티로 아이템을 확장해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고, 더불어 서핑의 기초 운동이라 할 수 있는 요소까지 라인업에포함시키며 좀 더 대중화된 서핑숍, 혹은 건강을 본격적으로 챙기는 편집숍으로 이미지를 다시 쓰게돼요. '지금이란 시대성에 발맞춰 웰니스, 서스태너빌리티의 요소를 적극 실천하면서 '현대적인 서프 숍'으로 탈바꿈했습니다.'(시미즈 마나부)

구독자님, 편하고 싸고 간단한 거 접어두고 굳이 발품팔아 사게되는 것들 있지 않나요. 세상은 점점 편리, 간편, 가성비로 흘러가는 듯 싶어도, 똑같은 무지 T도 고집하는 브랜드가 있고, 커피나 서핑이나 컬쳐와 같이 사람 색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들이라면 여지없이 개인의 취향, '페이보릿'이 가장 유효해져요. 그리고 UA의 '캘리포니아' 인수는 사실 중학교 때부터 서핑을 즐겼던 시미즈 씨의 개인적 동기에서 비롯되었거든요. 평소 고객으로 숍을 즐기다 이시다 씨의 부고를 알고, 가게의 사정을 들은 뒤 계승 작업이 착착 이뤄졌어요. 사실 서핑 관련 아이템을 기존 UA 매장에서 아주 살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도쿄라면 그를 대신할 스폿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럼에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이름, 브랜드란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근래 많이 이야기하는 경험, 가치 소비를 비롯해, '나의 최애하는 브랜드', 그리고 우리의 어찌하지 못하는 고향같은 것처럼 말이에요. 사업적 전략이나 가성비의 기대치, 그리고 우리의 예상을 비껴가는 것들의 가치, 그리고 아마 명절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세상에 어떤 것들은 아마, 쓸모가 없어서 가장 큰 쓸모를 갖기도 할 거에요. 

 🏇🏻 인생은 나와 私의 2인극, '내가 나를 구원하는' 고향 서부극 

고향에 돌아가, 구독자님 무엇 하나요? 물론 오랜만에 친지를 만나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지만, 그렇게 다시 함께가 되었을 때 불현 떠오르는 '나'란 한 사람을 생각할 때가 있어요. 시끄럽게 한바탕 떠들다가 묘하게 정적이 찾아올 때처럼, 명절이란 늘 본의 아니게 나와 재회하는, 가장 친하고 가까운 이들 곁에서 나란 사람의 자리를 살피게 되는 때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귀성이든, 귀향이든 고향으로 향하는 길. 그건 어쩌면 나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의 행위는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저희 집은 몇 해 전부터 명절마다 가족 여행을 떠나는데, 그럴 때면 여행이란 특수한 상황까지 더해져 혼자와 함께 사이의 소리없는 부대낌이 시작돼요. '이래서 가족 여행은 안돼'라고 불만이 쌓이다가도 함께여서 다행인 순간들은 여지없이 있어, '그래서 가족 여행이구나' 싶어지곤 하거든요. 올해도 장시간 조수석에 앉아 돌아다니다(여태 면허가 없어요) 지쳐 숙소 침대에 누워 어김없이 그런 '나의 시간'을 만나곤 했어요.

어쩌면 '나'란 사람은 실은 살아온 세월, 관계의 수만큼이나 있어 가족들 곁에 돌아왔을 때 반응해 보다 더 진솔한 '내'가 재생되는 건 아닐까요. 오피셜한 나는 결코 몰랐던 사적인,  그보다 더 은밀한 나를 우리는 아마, 명절에 마주해요. 1970년대부터 여성지 '부인공론(婦人公論)'에 일러스트를 그려온, 뽀글뽀글 파마 머리에 얇은 눈썰미가 인상적이었던 일러스트레이터, 이이노 카즈요시 씨의 이야기가 바로 그러한데요. 두  번째 🎨 내 마음의 로컬, 고향에 가지 않아도 고향을 느끼는 두  번째 토픽, 그림 작가 이이노 카즈요시 씨에요.

일단 그의 약력을 좀 훑어볼까요.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시골에 태어나 방법이 없었던 그는 일단 전기 설비 특목고에 입학, 하지만 바로 자퇴한 뒤 백화점에 취직, 그러나 그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도쿄 디자인 전문학교에, 학력 불문이었던 덕에 들어가 이제야 진로를 찾았나 싶었지만,  '그래픽 디자인의 밀리미터 단위의 째째한 작업이 나랑 맞지 않았어요' 그도 실은 별로 그러지  못했던지라 패션 디자이너로 전향하는데요. 열심히 독학 후 어패럴 업체에 직원이 되어 이번에야 말로 '됐다' 싶었지만, 팔리는 옷을 만들지 못한다는 이유로 영업직으로 좌천되고 그를 참지 못해 다시 퇴사, 친구 소개로 아방가르드한 교풍으로 유명했던, '세츠 모드 세미나(2017년에 폐고했어요)'에 입학, 비.로.소 자신 만의 '그림'을 만나거든요. 

들어갔다 나온 학교만 하나, 둘, 셋. 직장은 하루라도 발을 들였던 곳을 모두 다 카운트 하면 열 곳에 가까운데요. 그야말로 좌충우돌, 우왕좌왕, 방황 그 자체의 기록이지만, 이이노 씨는 이런 자신의 지난 시절에 대해 '차도 잘 안오는 산골마을.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이렇게나 맘대로 용기를 부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 말해요. 그의 고향은 사이타마현 치치부군(秩父郡) 나가토로마치(長瀞町). 지금도 인구가 600명 남짓이면 그야말로 '시골 중 시골'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글에 더하는 그림이나 작품의 감초처럼 쓰이는 삽화. 어디서든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는, 곁에 함께하며 존재하는 그 그림이라는 게, 곧 어딘가 그가  자라온 산골마을, 나가토로마치와 같다고 느끼는데요. 얼마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6년만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가 출간되었을 때, 디자인 전문지 '일러스트레이션'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장정'이란 타이틀의 특집호를 발매했거든요. 장정이라 하면, 쉬운 말로 책의 표지. 곧 책의 얼굴과도 같은 커버 작업에 주목한 특집호였는데요,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 특히나 일러스트여서,

잡지는 그의 소설 '기시단장 죽이기'와 '1Q84' 등을 작업한 타카하시 치히로 씨와 '색채를 지니지  않은 타자키 츠쿠로와 그의 순례의 해', '여자 없는 남자들'의 커버를 작업한 오오쿠보 아키코 씨 등을 취재, 그에  더해 그 무렵 7월엔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림 작가그 그리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의 오마주'展을 갖기도 했어요. 국내에서는 몇 해 전 세상을 뜬 안자이 미즈마루, 그리고 와다 마코토 씨 등이 인지도가 있지만, 사실 무라카미 책에 사용된 그림을 모두 세어보면 수 천 장이 넘는다고도 해요. 그렇다는 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러스트, 그림의 세계란 늘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게 모르게  활약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이이노 씨는 더구나 그림체가 딱 보기에 귀엽지도 친근한 느낌도 아닌지라, 초기엔 '기분 나빠서 써줄 수가  없다'며 수도 없이 퇴자를 맞았다고도 하거든요. 하지만 무라카미 씨의 예를 다시 들어보면, 그는 커버  작업을 할 때 반드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나 작가와 깊이 회의를 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소설의 일러스트,  혹은 삽화. 그건 곧 소설이 다 하지 못한 말의 일부일 거에요.

그래서 오오쿠보 씨는 '하루키 씨와 일을 할 때면 글이 제시한 하나의 세계를 먼저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마치 티는 잘 나지 않지만 나름 신경을 쓴 장식이나 옷차림의 숨은 포인트같이, 혹은 평소에는 귀찮고 성가실 때도 있지만, 명절이면 어김없이 떠올라 그리워지는 우리 고향처럼, 일러스트레이터의 사는 세월, 어딘가 인생과 좀 닮아있지 않나요. 그리고 이이노 씨의 인생이 마치 딱 그러한데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시골 태생의 자유분방함을 무기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과 맞서 이겨왔는데요, 20대 중반까지는 낙서같은 그림에 산문을 더하는 식의 일러스트 작업을 했고, 크로키 스케치북 가득 채운 그림을 갖고 출판사를 전전하며 편집실 문을 두드리는 나날을 보냈지만 '애들이 무서워해', '이런 거 기분 나빠서 써먹을 수가 없어'란 소리를 듣기 바빴어요. 하지만 그런 중에도 우연히 알게 된 당시 거거물의 아트 디렉터이자 그림 작가 호리우치 마코토로부터 '재밌어. 이런 걸 판타지라고 하지'란 평을 받아냈고, 드디어 패션지 '앙앙(an-an)'에 작품이 실리며 본격적 데뷔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이노 씨는 생각했다고 해요. '내가 보기엔 귀여운데. 재밌어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 나타났다. 두 명째가 나타나면 이번엔 그림 뿐 아니라 이야기를 기반을 오리지널 그림책을 그려보자'라고 말이에요. 마치 드나들었던 학교의 개수처럼 나의 팬을 하나 둘 늘려가자는 마음 가짐. 역시 무언가 그림책 화법같이 느껴지지 않나요. 현재 이이노 씨는 77세에 배우이자 그림 작가 오오나리 슈지 씨와 일본의 전통 구어 문학 시음(詩吟)의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시작은 하나같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며 퇴자를 맞기 바쁜 나날이었지만, 이후엔 그 '시대와 맞지 않은' 화풍이 개성으로 인정받으며 '소학관 아동 출판상을 비롯 20회 '일본그림책 대상'까지 받으며 일본 그림 문학의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어요. 익숙하게는 에쿠니 카오리, 사노 요코, 그리고 모리 요우코 씨의 책 속 삽화 작업도 하고, 패션지와 포스터, 그래픽 디자인 작가와도 협업하며 그야말로 일러스트레이터의 지평을 넓혀왔어요.

마치, 그가 살아온 뭐를 해도 잘 되지 않고 내 것이 아니라 느꼈던 바로 그 방황의 시절을 그대로 다시 밟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인생 참 재밌고 오묘하고,  이런 게 나의 뿌리는 아닐까 생각도 드는데요. 그래서 최근 공개된 인터뷰에서, 그가 뭐라고 했을까요. '세상은 늘 언제나 돌이켜보면 '프리덤'이 가장 멋진 시대였어요. 그를 잊지 않으려, 믿으려고 발버둥쳤는지 모릅니다.' 달리 말해보면 믿을 구석 하나 갖고 있다는 건, 세상 살아가는 가장 큰 무기가 되어주나요. 고향이 고향으로 다가오는 계절, 우린 다시 한 번 내 편을 만나 내일의 미래를 확인해요. 9월 그리고 가을은 달 뜨고 1일, 바로 그런 시작이거든요. 

 🌓 가을은, 어부바의 계절 '체온을 나눌 때가 이제 곧 시작해요' 

구독자님, 명절이나 공휴일 혹은 기념이 될 만한 날에 주로 밖에 나가 즐기는 편인가요, 혹은 간만의 여유를 집 안에서 보내는 쪽인가요. 한 때 요즘의 INFP 처럼 사람의 성향을 IN과 OUT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물론 대략적인 행동 패턴에 의한 분류가 가능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세상 대부분의 것들은 사실 모두 상대적인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추석과 같은 명절이라면 얼추 정해진 패턴의 일과가 있어 주로 그를 기반으로 귀성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혹은 여행을 떠나는지로 구분되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그런 다지선다형의 패턴 놀이들, 결국은 내가 어느 부류에 속해있는지를 가늠하는 그런 확인을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명절이면 찾게되는 우리의 고향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아직도 식을 줄 모르는 결국 고향 놀이같다는 생각도 하는데요.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사람이란 언제나 늘 내가 있을 곳, 마음을 기댈 장소를 찾는 본능을 가진 동물이란 느낌도 들어요. 명절이 본래 기능을 잃고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달까요.

도쿄 아오야마의 스위츠 전문점 'Aoyama decarbo('데카-보'라 읽어요)'이 신제품으로 인형이 인형을 안고있는 모양의 신작 쿠키를 내놓았어요. 다즐링 홍차 쿠키가 인형이 인형을 동물들로 꾸며졌거든요. 예를 들면 늑대가 예를 들면 꼬고댁을 안고 있거나 곰 인형을 닥스훈트 댕댕이가 얼싸안거나, 혹은 여우가 꼬마곰을 어부바 하거나처럼 말이에요. 이럴 때 보면 일본은 귀여움에 있어 한계를 모를 정도라 느끼는데, 그 귀여움 또한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고향같은 감정은 또 아니었을까요. 이제 곧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겨울이 시작할지 모르잖아요. 추석의 푸근함, 보름달의 충만함 잊지 않고 남은 올해도 따뜻하게 보내보자고, 다짐해 보아요. 우리의 소원은 꺽이지 않는 기도의 마음일까요. 그럼, 우리 다시 또 보아요. 다음 번엔 꼭 정해진 내일에 찾아올게요.🙇‍♂️

📫 오는 금요일, 10월 6일에 '밤에 보는 뉴스 '야후 뉴스' 읽어드립니다' #114호가 발행됩니다.

📫📫 그리고 다음 화요일 레터(10.10)는 지역 불균형, 고령화, 기후 위기와 포스트 코로나를 사는 '로컬의 다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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