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실에서 쓰는 새해의 이솝우화, 가장 보통의 'Perfect Days'를 만나다

새 해가 별 거라고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불러보고 싶어지는 23년의 마지막 주, 화요 레터를 쉬어가려다가 어딘가 마지막이 서운하게  느껴져버린 탓에 참지 못하고 목요일의 레터를 보내보아요. 목요일이라면, 한 주의 절반이 지나고 하루만 참으면 주말이 찾아오는 나름 설렘 가까이의 하루인 것 같기도 한데, 2023년이 한 손바닥도 남지 않은 지금 그게 다 무슨 소용있는 이야기일까요. 어느덧 2024년, 또 한 살을 먹게 생겼는데요. 지난 해가 어찌했든, 좋았든 나빴든 덜 좋았든 더 나빴든 새로운 1일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것,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럴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지런한 새해 기념 한정 각종 상품들이 또 우릴 새해 벽두부터 유혹하잖아요. 스타벅스 재팬이 얼마 전 24년의 첫 겨울 시즌 아이템, 12간지 중 '용의 해'를 맞아 용을 비롯 복이든 돈이든 사람이든 때와 장소에 맞게 불러 들어준다는 '마네키 네코(招き猫)', 그에 더해 일본의 영험함의 상징이기도 한 후지산과 그 못지않은 수호의 신 '다루마(だるま)' 등을 형상화 각종 아이템들을 발표했어요. 그런데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할 것 같은 드래곤, 용이 이렇게 귀여웠나요.

공개된 물건들 보면 결국 고양이 좋아하는 민족성 드러내듯 '마네키 네코' 계열이 충실한 기분도 드는데요. 그럼 좀 어떤가요. 어차피 우리 모두가 용띠는 아닌 게 현실, 내게 가장 어울리는 좋아하는 것들로 '완벽한 한 해'를 빌어보아요. 그래서 D-1도, 1주일도 아닌 어중간하하게 신년까지 4일을 남기고 기념 레터의 주제는 '가장 완벽한 하루'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에요.  요즘 일본에선 약 3년간 완성한 시부야구의 공공 화장실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야쿠쇼 코지가 화장실 청소원으로 분한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Perfect Days'가 여러모로 화제거든요. 한 평론가는 '세상엔 이런 삶도 있었다'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다분히 말되어지지 않은 여백의 문장이지만 곧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가짐같지 않은가요. 그리고 얼마 전엔 '호보니치(ほぼ日)'의 이토이 시게사토와 영화의 주인공 야쿠쇼 코지의 대담이 공개되었는데요, 반고개 세월을 살아온 두 인생 선배의 이야기 속에서 며칠 남지 않은 내일의 중요한 힌트를 찾아보아요.

  🚽 토일렛 이솝우화, 새삼 평범한 '보편・다양성'에 관하여 

먼저 영화의 간단한 소개부터, PERFECT DAYS는 사실 시부야구의 공공 프로젝트에서 촉발된, 즉 관과의 합동 작업이라 얼핏 시시하고 빤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구가 추진한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그간 소진되어 온 영화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거든요. 다만, 여기에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등을 만들어온 저번 시네마의 거장, 빔 밴더스 감독이 함께하며 그런 기우 따위 일찌감치 떨쳐버리는데요. 더불어 이번 영화는 주인공 히라야마를 맡은 배우 야쿠쇼 코지 씨의 데뷔 45주년 작품이기도 하고, 지난 해 칸느 영화제에서는 최우수 남우 주연상을 타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관공서의 영화를 넘어, 여기엔 아마도 보통의 가치와 미학을 공유하는 새로움의 발견이 있어요.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카세트 테이프를 틀고 하루 3번의 정해진 청소, 업무를 마치고는 한 잔을 걸치기도 하고, 그리고 잠들고. 눈 씻고 찾아봐도 특별함이라고는 조금도 없을, 그저 반복되기기만 하는 일상을 따라가는 영화이지만, 저널리스트 스즈키 나오이는 '세상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공기와도 같이  존재하는 '도쿄의 천사'라 평했고,

'유레루', '아름다운 세계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야쿠쇼 씨가 분한 히라야마 씨를 두고 '번뇌하는 영혼과 천사와 같은 존재'란 말을 하기도 했어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영화는 일본 영화의 공통된 스타일이기도 한데, 그런 일상을 청소원이라는 일종의 중립적 포지션에서 살아가는 히라야마란 캐릭터는 정말 어딘가 좀 '베를린 천사의 시'를 떠올리게도 하지 않나요. 이토이 씨가 운영하는 '호보니치 학교(ほぼ日の學校)'의 대담으려 마련된 자리에서, 야쿠쇼 코지 그리고 이토이 씨는 모두 다 '히라야마의 삶에는 인간이 동경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했어요. 아직 새해의 무언가를 다짐하기 전이라면, 청소를 하며 '아무것도 다짐하지 않는 새해'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완벽하다는 것, 어쩌면 그건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바로 그 순간을 가리키기도 할 테니까요.

 🕯 '완벽한 하루'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아요 

 1️⃣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의외로 일상의 수수께끼

이렇게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얼추 훑어 보았는데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걱정할 것도 없이 이 영화, 즉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는 영화'에요. 심지어 이토이 씨가 '너무나도 평범한 행위가 계속 지속되기 때문에 오히려 '수수께끼(謎)'처럼 느껴진다'고 했을 정도인데요. 야쿠쇼 씨의 연기를 떠올리면 대부분 높은 텐션에 얼굴엔 표정이 가득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인상이 있잖아요. 물론 그렇지 않은 연기가 그 와중에도 섬세히 새겨지곤 하지만(가령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의 살인'처럼), 이번 작품은 유독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정도가, 아니 차원이 남달라 영화 저널리스트 와다 타카시는 '그저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이, 영화가 되었다'라고까지 이야기했어요. 뭐든지 채우고 또 채우고 넘쳐야만 만족하는 시대에 분명 새로운 전환의 영화처럼은 느껴지죠. 일견 근래 유행처럼 번져간 '콘마리', 콘도 마리에 씨의 정리정돈법을 필두로 미니멀리즘의 스토리처럼도 들리지만,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우린 아직 잘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아주 단순하게도 정작 살고있는 이의 생활에서 실제 우리가 살고있는 삶의 모습이란 보이지 않고, 곧 알 수 없는 것일테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 루틴 아닐까요. 요즘엔 계획적인 시간 활용의 팁으로 자주 이야기되지만, 영화에서 그 루틴은 좀 다르게 비쳐지는 것 같아요. 그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할 뿐, 자신의 하루를 흘러가는 대로 살 뿐 전혀 세계에 반응하지 않는 듯한 히라야마 씨가 영화에서 유일하게 화를 내는 대목이 바로 청소 동료이자 후배 직원의 잘못으로 자신의 루틴이 헝크러졌을 때였어요. 야쿠쇼 씨는 벤더슨 감독이 '이 영화에서 제일 크게 화내줘'라고 지시했던 부분이라고도 했는데요, 내가 지키고 있는 루틴 망가지면 화가 나기 마련이지만 무엇에도 반응하지 않고 이상한 표현같지만 '어느 중립'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돌연 고함을 지르며 감정을 드러낸다는 건 분명히 좀 다른 의미일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토이 씨는 히라야마 씨의 이런 캐릭터에 대해 '거의 ○X게임(삼목게임(三目並べ)Tic tac toe, 3X3으로 그려진 칸에 2명이 을 순서로 그려가며 한 열 씩 제거해가는 서양 유래의 게임)'와 같다고 했거든요. 물론 영화에서도 사건이라면 사건은 발생해요. 매일같이 똑같은 옷을 입고 일을 하고 생활하는 히라야마 씨이지만,

 2️⃣ 반응하는 제3자로서의 방 한칸 세계, 영화가 되다

그의 일터란 공공 화장실 즉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곳인 특성 상 주변 인물들의 사연이 랜덤하게 섞여들거든요. 먼 친척의 여자 아이가 찾아오거나, 앞서 히라야마 씨를 노하게 했던 동료 청년 타카시(에모토 토키오)같이 말이죠. 하지만 히라야마 씨는 그에 영향을 받지 않아요. 그리고 이는 마찬가지로 기본 무표정이었지만, 열이 받으면 금세 폭발하고 또 언제 망가질지 모르던 '멋진 세계'의 전 야쿠자 남자 미카미와 크게 차이를 갖는 지점인데요. 야쿠쇼 씨는 이에 대해 '상대방에 대해 감정을 갖지 않는 건 아니지만 폭발하지도 않고, 동정이나 공감을 표하지도 않아요. 일정 정도 거리감과 온도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남자인 거죠.'라 말했어요. 하자면 자의로 자발적으로 폭발하지도, 애당초 행동하지 않고 변화하기를 스스로 금하고 있는 듯한 사람이에요. 캐릭터상 분명 독특한 설정이지만, 이렇게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별로 개성이라 보이지도 않을 거에요. 오히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잊고있던 가장 고요한 존재로서의 하루, 그런 사람을 의미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베를린 천사의 시'가 좀 떠오르지 않나요.

 3️⃣ 그 남자와,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사이의 관계 

그래서 빔 밴더슨 감독이 적어 놓은 히라야마의 전사, 영화에선 드러나지 않는(어쩌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고 판단된), 과거사에는 단 두 글자 만이 쓰여있었다고 해요. 그건 바로 '나무 사이 쏟아지는 햇살'과 평평한 산맥을 일컷는 '平山(히라야마)'. 그리고 그 곁엔 '둘의 관계'라고도 적혀 있었다고 하는데, 보다 앞서 야쿠쇼 씨는 이 역할에 대해 '숲에 살고 있는 남자'같다는 말도 한적이 있거든요. 평평한 산,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산 등성이 위에 심어져 있는나무 그 가지 사이로 비춰오는 햇살. 멈춰 있지만 관계하지 않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움직이고 관계중인 것들의 이야기 혹은 인물. 그런 사람이 이 영화의 바로 주인공인 걸까요. 그야말로 영화가 될 것 같지 않은, 최소한 멀티 플렉스 상영관에는 결코 걸리지 못할 것 같은 스토리인데 어쩌면 그래서 우리 삶이 지금 이곳에 영화의 틀을 입고 찾아온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시간을 살며 정작 그를 느끼는 건 바람에 일렁이는 꽃잎이나 어느새 저물어 변해버린 하늘 색과 같은 것들이잖아요.

심지어 야쿠쇼 씨의 영화를 마친 이 소감은, 마치 현실과 영화 사이의 '나무잎 사이로 비친 햇살'같은 관계를 은유하고 있는 듯도 읽혀요. 영화의 각본, 즉 현실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주변에 귀를 기울인채 그저 살다보면 '삶'이란 게 조금씩 알게되는 걸까요. 영화는 늘 현실의 반영이라 쉽게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영화를 우린 너무나 보이는 것들로만 판단해 왔잖아요. 새해가 된다고 술렁이지만, 한 해가 왜 지났는지 모르겠으면서 달력을 또 한장 넘기고 있지만 그를 정말로 감각하고 알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 아마도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을 시간, 곧 히라야마 씨의 오늘과 또 한 번의 오늘 같은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여담으로 이토이 씨와 야쿠쇼 씨는 이 비어있음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조언도 주고 받았는데요. '퍼펙트 데이즈' 그건 비어있지만 의외로 가득찬 것이기도 해요.

"마른 나무가지도 멀리서 보면 똑같은 산이에요"

야쿠쇼 코지 타카시(에모토 토키오)와 히라야마는의 관계는 깊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따뜻함으로 이어져있다고 보았어요. 그 '어느 정도'의 따뜻함이란 게 참 좋다고 생각했죠. 제 대본에도 쓰여져 있지만, 히라야마는 그(타카시)를 거의 무시해요. 하지만 때대로 그의 이야기를 정말 즐기면서 듣기도 하죠.

이토이 시게사토 맞아요 그랬어요.

야쿠쇼 관공서에 그런 청소원(타카시, 청결하지 못한 차림과 덤벙거리는 행동 등)이 있다면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에 마이너스한 이미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요(웃음)

이토이 아, 하지만 그 정도까지 포함하지 않으면 세상 만사 돌아가지 않지 않을까요. 저는 '마른 나무도 산의 일부'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마른 나무의 존재도 소중하다는 그 마음이 말이에요. 어릴 때에는 같은 텐션을 가진 친구들끼리 모이고 싶어지잖아요. '진짜로 (나를) 알아주는 녀석이면 됐어'라고요. 하지만 다양한 것들에 마음의 눈을 열어두면 모두가 같은 일에 같은 정도로 빠져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걸 알아차리게 돼요.

예를 들면 야구장 객석에서 앉아 주변을 훑어보면, 진심으로 야구를 보고있는 사람은 실은 별로 없거든요. 그게 도쿄 돔 4만 관중의 정체라고(웃음), 생각하게 되고나서 전 스스로의 사고 방식이 변화했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그런 청소원(타카시와 같이 모범적이지 않은 유형의)이 없으면 시프트 자체도 꾸릴 수 없잖아요.

야쿠쇼 맞는 말이네요.

이토이 그에 더해 토일렛이라는 건 그 설정 자체가 상징적이었어요. 공중 화장실은 모두가 이용할 수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이용의 방식이 제각각이에요. 없으면 곤란한 사람이 있는 한편, 더럽히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요소가 혼잡해 있는 곳이 화장실이고, 그곳을 매일 청소하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건 그래서 마치 현대판 이솝 우화처럼도 보였어요. 후세에 남아 오래오래 구전 계승되어 갈 것이라고요. 

야쿠쇼 정말 그래요.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지만 기분 좋은 음악이 흐르고, 왜인지 편안한 '이런 영화도 있었지' 싶은 생각을 나이를 먹으면서 가끔 하게 된 것 같다는 기분을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받아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그 다름과 다름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삶에 대한 메시지가 아닐까도 생각하고요.

"도리어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걷는 길"

그리고 올해로 65, 그리고 74세를 맞는 야쿠쇼 코지, 그리고 이토이 시게사토 씨는 살면서 더욱 중요해진 '거절한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그건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는 부정형의 의사 전달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한 에두른 긍정의 표현이라는 의견에 서로 공감의 말을 더해요.

이토이 시게사토 저는 '거절한다'는 건 괘 커다란 문제라 생각해요. 프리랜서일 때는 '거절해도 되는걸까' 늘 생각했어요. '나 주제에 거절해도 되나'라고 말이죠.  그러다 언젠가부터 제 안에 정해놓은 것이 있어서, 나 스스로 '하고싶다'고 말하게 되는 일을 의뢰받는 일이 대체할 수 있는가가, 하나의 기준이 되었어요. 계산적이라 느껴질지 모르지만, 저 스스로 하고싶다고 생각하는 일이라 생각되면 (의뢰를) 받아들여요. 단, 모든 게 그렇게 쉽게 굴러가는건 아니라, '죄송하지만 이런 기준으로 정하고 있어서(거절합니다)'라고 솔직히 이야기하게 됐죠.

전 사람은 좀 더 간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 타인으로부터 전부 할수 있을 거라는 인상을 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역시나 어떤 일에도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리해서 승낙하면 별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운'같은 것, 일종의 타이밍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굴러 들어올 때가 있잖아요. 그런 걸 늘 감지하며 일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야쿠쇼 코지 배우의 경우, 최근에는 스스로 작품을 고르는 배우들도 늘어나지만 하고싶은 것 만을 고르는 건 역으로 자기 자신의 (세계를) 좁아보리게 한달까, 사람들이 본인에게 기대하는 것이랄지, 자기 자신의 세계가 스스로 알지 못할 지경에 이를 때가 있어요. '이 역활도 이 배우에게 연기하게 하면 재밌지 않을까' 정도의 감각으로 오퍼를 받는 편이 의외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죠. 하고싶은 일도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역도 하는 것이 역할의 폭을 균형감을 지켜준다고 생각합니다.

"화장실 옆 조용한 카페같은, 넘침(足る)을 아는 사람"

조용한 카페엔 조용한 사람들만이 모일 것 같지만, 실은 함께하며 만들어지는 무드, 데시벨, 관계란 게 있잖아요. 영화 속 히라야마 씨아 타카시의 관계 역시 어쩌면 그와 같은 화장실 옆 카페와 같은 건 아닐까 생각하게도 되는데요,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할, 나아가 그 너머를 고찰하는 주인공 히라야마 씨에 대한 두 베테랑 창작자의 이야기를 담아 보아요. 이름도 어딘가 자연 풍경같은 이 남자 도쿄에 찾아온 또 하나의 천사일까요.

이토이 시게사토 저는 히라야마도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빛'과 같은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는 '즐거움'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 일정 예산 안에서 술을 마시러 가기도 하고, 먹으로 가기도 해요.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궁리해서 느긋느긋 살아가고 있죠. 결코 금욕적인 것과는 다르게 보았어요.

야쿠쇼 코지 어느 한도 안에서 궁리해 즐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숲의 생활'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잠이 오면 잠에 들고, 아침 해와 함께 눈을 뜨고. 빔 벤더슨 감독은 히라야마가 부러워 죽겠다고 했을 정도였거든요. 히라야마처럼 살고싶다고요(웃음)

이토이 시게사토 '넘침을 알다(足るを知る, 만족하는 사람은 풍요로워진다는 뜻)'는 말이 있잖아요. 히라야마는 그야말로 그 경지에 있어요. 서양에선 ZEN MOVIE(선(禅)의 영화)'라는 말을 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간달지, 남에게 칭찬받는 일을 한다와 같은 것이 살아가는 의미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히라야마)는 달라요. 스스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이따금 즐거워 하고있는 느낌이 있고. 동료인 타카시(에모토 토미오)와 노는 장면도, 과하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며 어울리고 있어요. 조금은 자기 마음대로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달까. 그야말로 '넘침을 안다'의 사람이라 느꼈죠.

야쿠쇼 코지 히라야마 씨를 보고 있으면 '잊고있던 것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감각이 있어요. 이렇게나 대도시에 살아가는데, 이것밖에 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게 됐죠.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의 편안함, 저도 그렇지만 모두가 잊고 있었던 것이잖아요. 좋아하는 걸 맘껏 살 수 있는 것만이 분명 행복은 아니니까요.

 🦖 사소하게 창대하게, 그리고 너와 다시 만나다 

구독자님, 또 한 번의 1월 1일까지 하나둘셋 사일. 새로운 아침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나요. 저는 요즘 아침과 밤, 정확하게는 새벽과 저녁이 뒤범벅 엉망진창이 되어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고 있는지 가늠을 하는 게 무의미해질 정도로 좀 혼란한 상황인데요. 그 계기의 시작은 분명 있었지만, 어느새 그와 상관없이 전혀 예상 밖의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거. 인생이란 굴레바퀴의 법칙인가요. 돌아온 길은 수정할 수 없고, 밀려난 것들은 채워 넣을 수 없으며 모자라 구멍이 거슬리기만 하지만 지금 넘쳐나는 무언가로 그를 대신할 수도 없어요. 오늘은 화욜 레터를 '쉬어갑니다'라고 말하고, 쓰고있는 일종의 호외 성격의 레터인데요. 사실 '쉬어갑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부터 제 맘 한 켠엔 무언가의 다른 레터를 써보자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의도된 변칙적 레터에요. 한 해가 어느새 흘러 또 한 해가 오려고 하는데 모든 게 똑같기만 한다면, 끝을 어떻게 끝내고 시작을 어떻게 시작하겠어요. 다분의 자의적인 의도된 변칙이라 해도, 다름으로 알게되는 시간이 곧 세월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오늘 레터의 주제 '퍼펙트 데이즈.' 이만한 새해스러운 타이틀이 있을까요. 영화는 사실 형식 상 시부야구의 '토일렛 프로젝트'에서 촉발된, 소위 부산물적 결과에 불과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잡지의 부록이 본 책보다 더 재미나게 읽히는 것처럼 때로 보다 의미를 갖는 건 정해지지 않은, 예상에 없었던 것들이 불러 일으키는 다방면의 새로움이기도 해요. 새해에 도쿄를 간다면, 얼마나 다름의 시간들이 흐르고 있을까요. 다시 또 시부야, 하치코상을 보유한 시부야는 카운트다운이 진행될 12월 31일 오전 6시부터 24년의 첫 날 1월 1일 오전 1시까지 시부야 동상과 그 일대를 봉쇄한다고 발표했어요. 연말의 시부야라면 우리의 명동과 같아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 것이고, 그로 인해 거리의 상징과 같은 하치코를 지키기 위함인데요. 물론 광장에의 머묾을 사전 차단하며 안전 사고를 예방하려는 목적도 담겨있어요. 그러니까 하치코도 연말연시 휴식에 들어가는 지금, 우린 

📫 바로 내일 오는 금요일(29일) 레터는 한 템포 쉬고, 다음 주 새해의 첫 영업일 2일에 '야마테센의 뉴스 배달부' #126호와 함께 다소 남다른 버전으로 발행할게요.

🎁 그리고 지난 번 예고했던 4주기 기념 선물 이벤트 관련 레터가 아마도 새해 무렵 발송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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