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이니까 하는 이야기, 한 살을 더 먹은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갈 뿐

사실 달라지는 것도 별로 없는데 연말, 그리고 새해는 왜 매번 남다를까요. 크리스마스라는 조금은 달콤한 설렘을 지나 한 해의 마지막 31일까지, 시간은 모자라는 것만 같고 할 일은 남겨둔 것 같고, 올해도 이 모양이다 싶어 마음은 무거워지기만 해요. 연말이란, 아마도 '아쉬움'의 계절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결국 숫자 차이일 뿐이지만 한 해가 끝나간다는 건, 어김없이 지난 시간의 우릴 돌아보게 하거든요. 그러니까 뭔가 모르게 '헛헛함.' 그래서일까요. 일본에선 이 무렵이면 각종 브랜드, 상점 할 것 없이 쇼핑가에 '복주머니' 판매가 열을 올려요. 바로 '후쿠부쿠로(福袋)'라 불리는, 말하자면 봉투 하나에 이것저것을 채워넣은(판매자 왈, 절대 손해보지 않는 아이템 구성) 세트 판매가 시작하는 시즌인데요, 말 그대로 복주머니처럼 생긴 것도 있는가 하면, 근래엔 브랜드, 업종에 따라 좀 더 다양해지는 추세이기도 한데요. '무인양품'의 주머니가 아닌 캔, '후쿠캔福キャン'이랄지, 코로나 이후 '포장 판매'의 맛을 본 음식점 업계에서는

규동 체인 스키야(好き屋)가 도시락통, 벤토바코(弁当箱) 모양의 '후쿠부쿠로'를 내놓았거든요. '후쿠부쿠로' 그리고 새해 첫 날의 장사를 일컫는 '하츠우리(初売り).' 몇 해 전 영화관을 운영하는 70세 사장님은 '모두 다 상술에 불과하다'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한 해의 시작과 마지막 시기. 복 주머니를 사며 새해 첫 쇼핑을 기다리며 새로운 마음을 가다듬는 풍습을, 과연 상술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츠우리'는 대부분 1월 1일이 아닌 연휴를 모두 쉬고 3일이나 4일에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날 아침 도쿄 거리를 나서보면 상점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또 한해가 찾아왔구나' 생각하게 돼요. 그렇게 '오늘'을 다짐하죠. 이런게 아마, 도시에 흐르는 시간 아니겠어요? 아래 사진은 켄터키후라이드 치킨 KFC 재팬의 '후쿠부쿠로', 다만 '오세치' 형실을 빌린 '켄타重(쥬)'에요. 오세치는 보통 2, 3, 5단으로 쌓아올리고, 그 숫자는 집안의 경제 사정을 반영하기도 하는데요, '켄타쥬' 역시 단이 오를 수록 구성품이 많아지고, 값 또한 비싸요.

이름 또한 '마츠(松)', 타케(竹), 우메(梅)라고 붙었어요. 그리고 기존 메뉴에 없는 새우 튀김 '새우 탱글탱글 후라이(えびぷりぷりフライ)'가 운을 빈다는 의미로 포함되어 있대요. '후쿠로'가 아닌 '쥬'를 택한 건, 아마 치킨은 함께 즐기는 음식이여서겠죠? 혼자 받는 '복' 보다는, 함께 행복하고 싶은 새해. 오늘이 1월 1일인가요? 그래서 🧧여러모로 득이 되는 이야기, 곧 '후쿠-레터', 복이 되는 이야기 가져왔어요. 

 💤 MZ에 배우다, '효율주의'와 자애로운 노력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 열심히 하더라도 '너무 그러진 말자', 새해를 다짐하며 이런 생각 하기도 할까요. 지난 레터에서 MZ 사이에 요즘 확산하는 '무리하지 않게 사는 법'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건 곧 근래 키워드로 떠오른 'Quiet Quitting', 조용한 사직에 다름 아니기도 해요. '조용한 사직',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직'이라고는 썼지만, 실제 사직을 말하는 건 아니고, 주어진 만큼 혹은 필요한 만큼만 일한다'의 의미로, 요즘 MZ 사이에 확산되는 '일의 방식'인데요. 곰곰이 살펴보면 굳이 'MZ 만의 철학'일 것 같지도 않아요. 너무 열심히 하지 않다, Quiet Quitting이라는 건, 곧 나를 지키기 위함'이거든요. 동시에 MZ에게도 배울 게 있다 싶기도 하고요().본래 MZ란 말이 등장했을 땐 '나다운 것', 나답게 살자'란 카피가 주목 받았지만, 근래엔 그도 좀 과져 '나 다움'에 피로를 느끼는 이들이 늘었다는 발표가 있는데요. "2022년을 돌아보면 '나다움 말들기'에 Z세대가 피로를 느낀다는 인상을 받는다(오츠키 유이 FIN 대표사장)"

SNS가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 영상, 동시간 접속 플랫폼 등 다양하게 확장하며, 즉 '교류 사이트'의 증가로 Z 세대가 스스로를 외부에 어필한 '장소'가 늘어났고, 그로 인한 역효과로 '어떤 형태로든 나를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이 피로를 느끼게 하는 층이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에요. 특히 코로나 3년을 지나며 '접속 시대'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뒤 대면 아닌 비대면 관계에서의 일상은 그만큼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잖아요. 말하자면 '만나지 않고 어떻게 만나야 할까'를 우린 처음으로 경험했어요. 그래서, (비대면) 관계에 대한 피로를 방지하기 위해 근래에 또 늘어나고 있는 게 그에 동반한 '노력하지 않는 Z 세대'라 하는데요. Quiet Quitting에 이어 Effortless Z. 따라가기 점점 힘들어지나요. '에포트리스'라면 사전 상, 노력하지 않는, 수월해 보이는, 그러니까 나태한 Z로 해석되기 마련이지만 실은 여기서 '노력하지 않음'이란 좀 다른 의미를 가져요. 바로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나를 지키기 위한 자애적(自愛的) 의미'인데요. 태초부터 인터넷 환경에서 자라 '무리하는 건 좋지 않다'는 인식을 갖춘 Z세대에게 '자신을 지키다, 가꾼다는 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거든요.

그래서 여기에서 '없애다'의 대상인 Effort는 곧 나를 희생함을 말해요. 회사를 위해 무리한 야근을 하거나 관계를 가질 때 내 의견을 굽히고 상대가 원하는 걸 무조건 따르거나 하지 않고, '나다운' 일상을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Effortless'라는 이야기에요. 그렇게 '너무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렇게 '나를 보호한다'와 동일한 문장이 되는데요 이의 가장 큰 메릿, 장점은 '안신감을 전해주는 가치관'이라는 것. 왜 대부분의 다짐이나 목표, 새해가 시작하면 갖게되는 마음가짐이란 늘, 매번 우릴 긴장하게도 하잖아요. 물론 긍정적인 긴장일 때도 있지만, 부담이 되는 긴장도 있거든요. 오츠키 대표는 "Z 세대는 나는 나대로 괜찮다. 노력하지 않는 것도 좋아'와 같은 가치관에 안심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무리를 하지 않는 용모(無理しない美容, 미용이라 하면 미용실이 떠오르지만 미용은 용모(容貌)와 자태(容姿)를 가꾸다는 의미)'가 새로운 이상으로 자리하고 있어요."라 이야기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Effortless'에서 '없다'가 가리키는 또 하나의 대상은 앞서 '나를 희생하다'에 이어 '쓸모없는 노력'이에요. 달리 말하면 애초에 신중한 선택으로 업무에 효율을 더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애초 그들은 자신의 캐퍼시티를 숙지하고 있고, 무언가 요청을 받았으면 그를 정말 자신이 잘 수행할 수 있는지, 그럴 수 있는 상태인지, 충분히 파악한 뒤 YES, 혹은 NO라 답한다는 건데요. 요즘 'SNL에 보면 그런 장면들 자주 나오잖아요. 물론 그들이 모두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그들 밖에 모르지만, Z 세대에게 '에포트레스'란 단순히 게으름 피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최대치를 발휘하기 위해 취사선택을 하고 매일의 생활을 가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노력'에 대한 그들의 정의도 이전 세대와 다른데요, 오츠키 대표를 포함 Z 세대는 '그 노력은 지금 필요한 것인가, 진정한 의미에서 서스태너블한가'를 늘, 염두하고 있다 해요. 정말, 그럴까요. 세상은 변하고 세대는 교차되고 시간을 흐르는 법, 새로운 가치관에 귀기울이고 싶어도 '노력의 시대'를 살아온 세대로서는 좀 얄미운 것도 사실일 것 같아요.

다만 오츠키 대표는 'Z 세대가 흥미로운 건 가장 지금의 시대를 반영함과 동시에 유동적, 늘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라 말했어요. 이건 곧 그들의 일상에 미래의 힌트가 숨어있다는 이야기일까요. 후배 직원에게 무언가 시켰을 때 그 무언가만 하거나 그도 하지 않을 때, 갈등은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곳에 MZ란 말을 잠시 지워볼 때 그건 곧 내일 앞에 방황하고 있는 우리의 오늘일 뿐일지 몰라요. 사실 전, (개인적으로) 세대 별 가치관이 아닌, 이건 그저 시대의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아무튼, 23년 엔 조금은 MZ처럼 어떨까요.

 👳‍♂️ 오래된 별난, 이야기를 듣다 

MZ에 귀 기울이는 새해, 하지만 이런 시절엔 모름지기 오래됨이 주는 교훈을 잊을 수 없어요. 비록 새롭지 못하지만, '라떼는'에 갇힌 사고일지 몰라도 MZ보다 많은 날을 살아온 지혜란, 분명 어딘가 살아있거든요. 그리고 그런 선-경험이란, 특히나 위기, 힘듦에 빠질 때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말고, 그림 한 장에 수 백 억을 호가하는 무라카미 타카시 씨의 대대적 실패담이 담긴 책 '해파리의 에술(The Art of Jelly Fish, ジ・アート・オブ・めめめのくらげ)가 지난 8월 박스 포함 대형판으로 재-출간 되었어요. 이 책은 무려 478페이지에 달하는 초-대작인데요. 2013년 자신이 처음으로 각본, 연출까지 맡아 완성한 영화 '메메메의 해파리(めめめのくらげ)의 제작 일기를 바탕으로, 본 영화는 무라카미 씨 밝히길 '초대형 실패작'이었기에, 실패에 관한 고찰들, 그리고 그를 어떻게 극복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해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영화인데요,

무려 쿠보타 마사타카, 사이토 타쿠미, 그리고 소메타니 쇼타가 출연했더라고요.  무라카미 타카시라면 2008년 미국 타임즈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기도 한데, 그건 되돌릴 수 없을 만큼의 실패를 살아온 시간이기도 했던 걸까요. 가격은 박스 포함 2만 2천엔. 지금은 현대 아트의 거장이지만, 그는 사실 영화를 찍고싶은 '미래소년 코난' 세대였다 말해요. 사람 사는 일, 참 알 수 없는 걸까요. 그더불어 안도 타다오의 이야기를 가져왔는데요. 무라카미 씨의 올해 나이는 60세. 오는 가을이면 여든 둘이 되는 안도 씨는 요즘 어린이 도서관 건축에 힘을 쏟는데요, 지난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풋풋한 파란 사과의 정신을 말하며 '안심은 적敵, 다시 일어나기立て直す 위해선 '어린이'와 '책'이라 이야기했어요. 또 한 번의 새해를 맞이하기에, 정신이 번쩍 들지 않나요. 그럼, 안도 센세이의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 떫고 덜익은 사과를 좋아하는, 영원한 청춘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 청춘은 숫자가 아니다...이런 이야기 참 멋있어 보이지만, 실은 고리타분,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자주, 남용되기 마련인데요.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예순이 넘어 두 차례 암을 선고받고, 췌장을 비롯 장기 5개를 적출하는 대수술을 받고, 그럼에도 살고있다면, 그것도 현역 못지 않게 일을 하고 있는 이라면, 어떨까요. 진부하지만 진실인, 결국 약이되는 말들은 그 말의 화자, 즉 그 말의 주인공이 누군인지가 중요해진다 생각해요. 안도 타다오는 1995년, 퓰리츠커 상을 수상하는 등 성공을 거뒀지만, 60이 된 이후엔 건강에 이상으로 힘든 시절이 이어지고 있는 느낌인데요. 그럼에도 복서로서의 경험 탓인지, 독학으로 건축업계에서 성공한 이력인지,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줘요. 그 중 최근 눈에 띄는 게 바로 지난 봄 개관한 오사카의 '어린이의 책의 숲 나카노지마(こども本の森 中之島)을 비롯, 어느새 여섯 곳으로 늘어난 어린이 도서관이에요. 그는 병실에서 투병중일 때고 그 일을 이어가,

현재 방글라데시에도 일이 진행중이라 하는데요. 이 지치지 않는 하루, 청춘 말고 무어라 할 수 있을까요. 그의 도서관엔 모두 파란 사과 오브제가 설치되고, 안도는 이에 대해 '영원한 청춘'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안도 타다오  그건 '영원의 청춘'이란 이름을 갖고있어요. 본래 미국의 시인 사뮤엘 울만(Samuel Ullman)의 '청춘'이란 시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시에는 이렇게 써있어요. 청춘은 인생의 어느 시기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다라고.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아요. 이상을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늙어가지요. 70세이든 16세이든, 가슴에 품고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진짜 행복이란 빛 아래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멀리의 빛을 바라보며 놓치지 않고 그를 향해 열심히 달리다. 무아지경의 시간 안에서야말로 삶이 충만해진다. 그런 신념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이 파란 사과는, 10대인 사람이 만져본 뒤 이후 50대, 70대가 되어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다시 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습니다. 즉, 사람도 나라도 파란 상태가 좋다. 숙성되면, 그건 끝. 청춘인 채로 달리다. 각오와 희망을 갖고, 삶은 결국 그런 거에요.

현재 장기 5개가 없는 80대를 살고있는 안도 씨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해요. 하루에 6번 혈당치를 측정하고 매일같이 만 보를 걷고, 점심엔 한 시간을 휴식, 독서를 하고. 그런데 의사도 놀랄만큼 몸 상태가 매우 조화롭다 하는데요, 나이란 결국 마음 가짐의 빛깔일까요. 그는 예순 하나가 된 지금에도 세계 곳곳으로부터 의뢰가 끊이지 않는 현역 건축가, 하지만 모든 건 가장 작은 하루에서 시작한다 말해요. 결국은 호기심이 가장 큰 에너지랄까요. 세계 최초로 유글레나(ユーグレナ) 개발에 성공한 이즈모 미츠루 씨와의 대담에선 장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남녀의 기질적 차이로 빚어지는 미래의 가능성 대목이 흥미로운데요. 여자가 더 장수하는 이유를 안도 씨는 일본의 자랑꺼리이자, 노력의 상징이라 말해요.

 안도 타다오  "여성이 건강하고 오래 사는 건 지금의 일본의 자랑이에요. 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식사를 만들어요. 다 먹은 뒤에는 식기를 씻죠. 그 후에는 나머지 가사 일을 후다닥 해치웁니다. 반면 쇼와에 태어난 남자들이란 먹었다면 그걸로 끝(웃음). 대체로 그런 습관에서 차이가 생겨요. 신문이나 TV, 인터넷을 보아도 새로운 것에 '재밌다, 빨리 해봐야지'라고 말하는 건 여성, 남성은 '음...'하다가 5년이 흘러버려요.(또 웃음)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중년 남성에겐 지금의 일본이 겹쳐 보이죠. 점점 하강선(下降線)을 밟고 있어요. 여성은 그를 어떻게든 멈추고 위로 향하려 애를 씁니다. '이것도 재밌어 저겄도'라고 호기심을 갈고 닦는다면 노화를 멈출 수 있거든요. 특히나 일류 대학 나와서 대기업 들어간 남자들은 아직도 종신고용, 연공서열이 통하는 줄 알잖아요. 세계의 정세에서 볼 때, 그런 시대 이미 끝났거든요. 어서 의식 개혁을 해야해요. 지금 지구의 인구는 80억명.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건 80억 명 모두 마찬가지거든요.

 👧 도서관의 미래를 심다, '순환의 건축' 

2020년 안도가 병원에서 투병하며 시작해 완성한 오사카의 '어린이 도서관'을 비롯 코베(神戸)와 이와테(岩手)현 토오노(遠野)의 또 다른 '어린이 도서관', 그리고 현재 방글라데쉬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어린이의 도서관. 그의 남은 여생은 가히 어린이, 그리고 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기는 수 십년 안해본 건축이 없을 만큼 걸작을 남긴 사람이니, 이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안도 씨는 매우 풍족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살았어요. 알려진 대로 오사카의 시타마치(下町)에서 태어나고 조부모 손에 자라며 고등학교 시절엔 프로 복서가 되봤다 이후엔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한 셈이거든요. 자신이 살았던 나가야를 개수할 대 젊은 모습을 보고 건축가의 꿈을 피우기 시작,

1976년 오사카 스미요시구의 주택 '스미요시의 나가야(住吉の長屋)로 이름을 알리게 됐는데요. 그건 곧 책, 문화, 도서관에 쉽게 드나들 수 없는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에요. 스무 살이 넘어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알게 된 교토 대학 학생들과의 교류 속에서 처음으로 독서의 재미를 알고, 그는 '너무 늦었다'고 수차례 생각했다 하거든요.

그럼에도 늦게 배운 OO가 무섭다고 안도는 독서가 전해주는 깊은 상상력과 호기심을 충분히 즐겼고, 곧 건축에 응용하는 자신 만의 방법을 찾아가요. 그렇게 책과 씨름을 하던 시절 완성한 게 가장 대표적 작품 '빛의 교회(光の教会)', '이바라키카스가오카 교회('茨木春日丘教会)거든요. 콘크리트 벽과 벽 사이로 비쳐드는 십자가 모양의 빛, 자연 안에 세워올린 교회처럼 매우 성스러운 건축으로 남았는데요. 그건 어린이 안도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어쩌면 뒷골목 낡은 나가야에 사는 아이도, 그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그런 빛의 내일을 기도했던 건 아닐까요. 안도는 도서관, 그리고 책에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 필요한 건 다름아닌 바로 그 둘이라 말했어요. 안심하며 정주하기를 늘 거부하고 새로움을 쫓는 책과 어린이의 마음 만이 시대를 멈추지 않게 한다는 이야기였는데요. 그래서 안도의 도서관은 책을 통한, 그리고 어린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쌓아올린, 순환의 건축이기도 해요.

어린이를 생각하는 마음, 그건 곧 미래를 향한 기도일까요. 안도 씨에 대해서는 재미난 일화가 많은데요. 그 중 하나는 한 때 도쿄대학에 퍼져갔던 '안도 선생이 밥 사준대'라는 소문. 건축은 오로지 독학, 혼자서 다 해낸 그는 당연히 출신 학교가 없고, 그 당시 도쿄대 출신들이 장악하던 일본 건축 현장에서 그렇게 그는 혼자였는데요. 반면 일로서 실력을 입증한 뒤 도쿄 대학 강단에 서게되면서, 그는 산토리 사지 케이조우 회장에게 불려가 이런 말을 들었다 해요. "어, 건축은 잘 하는데 학생들 가르칠 만큼의 지적 능력이 있어? 그래서 안도 씨가 했던 답이 그야말로 명문이에요. '지적 능력은 없지만, 저도 학생들과 함께 배우겠습니다.' 산토리 회장 님은 '그렇다면 좋다. 너도 가끔은 생각을 하는구나'라 답을 했고, 그렇게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강단에서의 시간이 시작하는데요. 가진 게 없었던 그는 늘 평등한 관점에서 사고했고, 관계하고, 일을 하는 습관이 곧 체력이 되었다 느껴요. 실제 그는 누구보다 학생들과 친구같은 관계를 유지했어요. 학생들 간 교류가 없는 걸 알아채고 점심 먹으러 가자 아무렇지 않게 청했고,

그를 알게 된 학생들이, 심지어 의학부, 문학부 할 것 없이 몰려들어 많을 때는 50명이 함께 밥을 먹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대요. 당시 학식 1인분은 350엔. 그래도 곱하기 50이면, 얼만가요? 아마도 이건 분명 돈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하는데요, 안도의 도서관에 책은 모두 누군가의 기증으로 채워지고, 방글라데쉬와 같이 언어가 다른 경우 대사관과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번역 작업이 이뤄진대요. 전세계에 일본어를 쓰는 사람은 1억 25백명. 방글라데쉬 모국어인 펭갈어를 쓰는 이는 세계 곳곳에 2억 6천 만명. 이들이 조금씩 자신의 시간을 내어줄 때 그건 수 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게 안도 씨의 계산이에요. 책방과 도서관이 다른 건, 바로 이런 지점일까요. 

 안도 타다오  (방글라데쉬) 도서관에 책들을 어떻게 모으나요 미국 대사관에 문의하니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책을 제공하겠다고 했어요. 방글라데쉬 사람들에게 도서관을 지어주는 대신 번역을 의뢰한다는 말도 했죠. 별 거 아닌 이야기이지만, 이게 실현된다면 전 굉장한 일이라 생각해요. 세계 곳곳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책으로 도서관이 만들어진다. 그 만으로도 이미 희망이 시작된다 느끼거든요. 현지 사람들도 자신의 도서관이라는 애착을 가질 수 있고, 건축은 그저 상자(箱)일 뿐이에요. 상자를 길러 나가는 건 그곳에 있는 인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도서관 계획은, 할 수록 재미를 느껴요.

 🏛️ 오래된 꿈을 꾸는 사람들, 내일 

구독자님, 어젯밤 일몰은 무사...보았나요? 올해는 코로나로 하지 못했던 종로 4거리에 타종 행사도 돌아오고, 22년을 차마 보내지 못하는 아쉬움의 마음이 늦은 밤 어둑한 빛을 밝혔는데요. 결국 날짜가 다를 뿐,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으면서 왜 세상엔 꼭 시작, 그리고 마지막이 있을까요. 오늘은 새로 시작하는 계절, 복 福이 되는 이야기를 모아보려 했는데요, 어쩐지 이런 이야기 좀 무거워서 지칠 때도 있어요.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아는 것보다 행동. 실천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요. 세상에 시작과 마지막이 있는 건, 어쩌면 그렇게 행동을 위함이 아닐까요. 허허벌판 같은 '시간'에 홀로 떨어져 나름의 정해진 시작과 끝이 없다면, 우린 계속 방황을 할지 몰라요. 그래서 매번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를 새로 사고, 달력도 새로 걸고, 시계도 틀리진 않았나 점검하게 되는 거...겠죠.

사실 전 오늘,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를 보러 가려 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까지 망설이기만 할 뿐, '행동'을 하지 못했어요. 한 해의 마지막인데,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무언가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설령,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집에 있어야겠다는 마음, 이거 뭘까요. 한 해의 마지막 날, 그건 다시 우리를 '함께'이게 하기 위함일까요. 그렇게 조금은 내가 아닌 날일까요. 정리정돈의 달인, 콘도 마리에는 '오늘의 정리를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을, 청소의 제1법칙으로 이야기하는데요, 1년치 대청소 무사히...끝났나요. 혹시 진짜 시작은 구정이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괜찮아요. 혼자서 보내는 진짜 1일은 내일부터니까요. 그리고 젤 중요한 것, 일본에선 신정을 쉬고, 이렇게 말한다죠? 여러분 모두, '아케오메~!!' 그럼 또 보아요.🌤️

📫오는, 화요일 2023년 1월 3일 '야마테센의 뉴스 배달부' #97호가 발행됩니다.

📪1월 중순 즈음, 🐰아마도 구정 전후로 새로운 운영 방식에 대해 공지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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