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에 보는 뉴스 '야후 재팬' 읽어드립니다 10월 1주차 #114

🌰 거리엔 벌써부터 패딩이다, 롱코트다 겨울이 시작한 것 같지만요, 그래도 아직은, 가을 아닌가요. 언제나 늘 그랬든 계절은 패션이 가장 먼저, 한 템포 시작하는 듯 싶은데요. 이제 막 아침저녁 찬바람이 부는 지금, 세월은 분명 가을의 거리를 걸어요. 지난 10월 5일, 바로 어제부터 도쿄의 '이세탄 백화점' 신쥬쿠 본점에서는 가을하면 밤, 밤이 들어간 다종의 스위츠를 만들어 선보이는 페스타, '가을의 미각, 밤에 빠지는 6일간(秋の味覚 栗に溺れる6日間。)'을 벌여요. 물론 가을이면 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디저트 만들기에 밤은 일단 몽블랑이 있어주잖아요. 럼이 살며시 첨가된 몽블랑은 그야말로 가을밤 정취와 참 닮았다 느끼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세탄'은 몽블랑을 필두로 크로와상, 롤 케이크, 그리고 쿠리킨톤(栗きんとん, 일본풍 밤과자를 말해요) 등 동서양 대표 디저트를 밤을 매개로 선보이는데요. 일단은 그 주자들이 화려해요. 일본 오리지널 초고급 호텔 '뉴오타니'의 파티세리 사츠키 씨의 몽블랑이 등장하고, 이번엔 '피에르 에르메'와 콜라보한 버전까지 출시하는데요.

국내산 밤을 다양하게 블렌딩한 마롱 페스트에 쿠마모토산熊本産 밤조림, 바닐라풍 큐슈 오오무네타(大牟田) 시의 크림과 오렌지 필 등을 재료로 완성한, 말하자면 일본을 재료로 만들어낸 일본풍 몽블랑 더하기 피에르 에르메라고나 할까요. 그 외에도 가볍고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파티세리 파로라(パティスリー・パロラ)'의 '일본 밤 파르페'랄지, 도쿄 야나카(谷中)의 퓨전 밤과자 전문점 '와구리(和栗)'에서는 시장에 거의 유통되지 않는 희소 종의 밤을 활용해, '밤과 버터 마리아쥬'를 선물용으로 내놓아요. 사실 9월은 봄의 4월과 같이 어느새 시작해 어느덧 끝이 나있는 계절이기도 한데요, 이 정도라면 분명 가을 사는 맛 나겠죠.

🌹 이상하게도 마지막 쯤 다달았을 때 생각나는, 어렴풋이 보이는 시작의 장면같은 거 있지 않나요. 영화를 볼 때도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즈음에도 생각의 회로는 종종 지나왔던 궤적들을 나도모 르게 돌아보고 있는 것 같아요. 여행을 떠나고서도 '아, 나 첫날 뭐 했더라'와 같이 정신 없는 일정 중 질서를 잡아보려는 충동같은 게 있는데요, 코로나 5년째를 지나며 그리고 또 한 번의 10월을 관통하며 지금 이곳에 보이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다카하시 쥰의 'UNDERCOVER'가 지난 9월 21일 파리 편지에서 24년 봄 여름 위민즈 콜렉션, 타이틀 'Deep Mist'을 선보였어요. 해석해보면 '깊은 안개' 정도일 것 같은데, 지하 주차장을 빌려 마련된 회장은 안개를 연상케하는 스모크가 잔뜩 끼어있었고, 런웨이 중앙 천장에는 시어 소재의 불투명 천으로 감싸인 샹제리아가 어딘가 미스테리어스(mysterious)한 빛을 발하는 가운데, 다카하시 쥰이 이야기하는 2024 봄의 옷들이 등장해요.

전반적으로 시어 소재의 불투명성, 독일의 유채 작가 네오 라우흐, 그리고 지난 9월 진행된 다카하시 본인의 개인전 타이틀 THEY CAN SEE MORE THAN YOU CAN SEE에 등장한 '얼굴 없는 초상화'를 모티브로 '언더커버' 특유의 테일러 재킷이나 MA-1 재킷을 변주한 룩들이 만들어졌는데요. 정리해보면 이제 곧 봄은 찾아오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깊은 터널을 지나 짙은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계절을 은유하고 있달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마 이번 쇼의 하이라이트가 될 게 분명한 피날레의 룩. 시어 소재 스커트의 내부에 밝은 빛을 켜고 그 안엔 장미가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그야말로 치마 속의 정원을 연출했거든요. 이런 거 분명 입으라고 만드는 옷은 아니지만, 계절을 옷으로 살아본다면 왜이리 시의적절할까요. 다카하시는 보통 패션쇼의 엔딩과 달리 피날레 이후 모델을 포함 본인도 등장하지 않았고, 쇼는 끝났는데요. 그 날, 그 시절 우리가 잃어버린 건, 시작이었을까요 마지막이었던 걸까요. 이제 곧 세상엔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요.

🍷 밤과 몽블랑과 함께, 그리고 가을엔 와인일까요. 하지만 친환경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지금, 와인도 전과 다른 보다 에코 친화적 움직임이 돋보이는데요, 그 중 하나의 모범 사례로 읽히는 스웨덴 스톡홀름 태생의 와인브랜드 'Djuce'가 이번 10월부터 일본 내에서 판매돼요. Djuce, 디-쥬스는 와인 브랜드라고 해도 와인을 직접 제조 생산하는 곳이 아닌, 유럽 각국의 맛 좋은 와인을 엄선, 그를 유리병이 아닌 알리미늄 캔에 넣어 운송하는 즉, 제조 그 후의 작업을 총괄하는 업체인데요. 여기에 패키지를 아트 작품으로 장식하고, 나아가 순환형 와인의 새로운 에콜로지를 만들어내며 자연에 부담되지 않는 와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먼저 미슐랭 별을 받은 각국 레스토랑의 소믈리에들과 협력해 상품군을 엄선하고, 이를 자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알리미늄 캔에 넣고, 유리병의 고풍스러운 중압감을 대신할 현대 아트로 새로운 멋을 내는 식이에요. 근래 와인 농장에서도 오가닉한 농법이 학산되면서 내추럴 와인의 수요가 높아지고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와인과 관련해서 환경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그 후' 패키징과 운송에 있었거든요.

관련 연구에 따르면 와인 페키지 생산, 그리고 운송에서 발생하는 CO2 배출량은 와인 제조에 의한 CO2 배출량의 51%에나 달해요. 그러니까 문제는 머나 먼 와이너리의 우리집에서도 마시게 되며 벌어지는 일이었달까요. 하지만 이를 알루미늄 캔으로 바꿔 보았을 때, 탄소 배출은 약 70%가 줄어들고, 리사이클 효율은 유리병에 비해 28배가 증가, 뿐만 아니라 운송을 할 때에도 알루미늄은 유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가벼운 덕에 비용이나 탄소 배출 등 여러모로 약 절반의 환경 호전의 효과를 가진다고 해요. 물론 그래도 와인은 유리병에 코르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지속 가능한 와인 라이프 스타일. 탄소 가득 뿜어내며 하루이틀 견디는 와인이 아닌, 미래를 배려하며 건강한 방식으로 공유하는 포도주가 아마, 우리가 찾아낼 앞으로의 새로운 와인 맛은 아닐까요. 그리고 Djuce가 사용하는 알루미늄은 특수 공범이 활용된 라인이 설계되어 있어 와인이 알루미늄과 직접 접촉하는 일은 없어요. 즉, 맛이 산화하거나 변할 우려 할 필요 없달까요. 구독자님, 우리 언젠가 와인 한 캔 한 번 딸까요.

🎩 상식을 뒤집어 보면, 보통이랄지 평범의 틀을 지우고 이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지난 코로나 2년째 '키'보드가 아닌 키'보드', 지금까지 '키'만 주목을 받았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라는 좀 쓸데 없는 물음에서 '막대기 키보드, Gboard'를 만들어냈던 '구글 재팬'이 이번엔 모자를 뒤집어 쓰면 그대로 입력을 할 수 있는 일명 'Gboard'의 모자 버젼을 개발해 공개했어요. 왜 학교 다닐 때 시험이 코앞인데 해놓을 게 거의 없다면, '머리에 책을 얹고 다 암기됐으면 좋겠다'라고, 되지도 않을 우스개소리 했던 기억 한번쯤 없을까요. 어느 만화에서는 실제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이번 키보드 그야말로 딱 그런 사향의 키보드거든요. 먼저, 모자형 디바이스를 머리에 쓰고 좌우로 움직이며 원하는 문자를 선택, 그리고 머리에 쓴 모자를 위에서부터 '톡톡' 두들겨주면 바로 입력이 돼요. 물론 블루투스 기술을 활용한 예이고, 머리(Atama, 頭)로 입력(Input)한다고 해서, 이름이 'Atama Input', 또 하나의 새로운 AI가 탄생했나요.

나아가 확장 모듈로서 형태가 망가지는 현상을 방지할 '메슈 소재 모듈(자)'과 낙하 방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턱에서 매듭을 지을 수 있는 끈 달린 모듈, 이름하여 Caps Lock가 함께 준비됐어요. 말 장난 센스, 정말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나요. 생긴 건 모자여도 실은 전자 기기이니 떨어지면 큰일이잖아요. 이 외에도 키보드에 커피 쏟으면 큰일 아니냐며 차컵에 자판 박아 만든 '차 마시는 키보드'도 있는데요. 오래 전 자판 연습한다고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사실 그건 모두 입장을 뒤집어 보면 될 일이었을까요. 정해진 룰에 적응하기 위해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일상에 맞추어 환경을 뒤바꿔 보는 것도 지혜일 테니까요.  더구나 머리로 바로 입력한다면, 나의 창의력도 

😴 아주아주 좋아하는 가게가 있으면, 조금 더 머물고 싶은 기분 들지 않나요. 그게 호텔이라도 되면 그냥 여기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질 때도 있어요. 근래 중 최장 연휴라는 추석도 이제 모두 다 지나가 당분간 열일하는 날들이 기다리는데요, 오는 10월 29일부터 29일까지 1박 2일간 도쿄의 서점 '쥰쿠도우(ジュンク堂)'에서는 '서점에서의 1박' 이벤트가 열려요. 말 그대로 서점에서 책을 사거나 읽거나 토크 이벤트 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왕 그럴 거면 아예 1박을 하자는 요지의 행사인데요. 그냥 욕심에 해봤던 말이 이렇게 실현이 된 건, 5년 전 옛 '트위터' 내에서 한 유저가 '쥰쿠도에서 살고싶다'라고 트윗을 했던 일이었다는 것.  분명 글쓴이는 그냥 한 때 기분에 지저귀어 봤을 뿐이었을텐데, 그야말로 말이 씨가 되어버린 일. 책방엔 어쩌면 정말 그런 마법이 작용하는 걸까요. 18세 이상 모두 5팀 10명을 모집하고, 참여 투숙객들은 매장 내 책과 잡지 등을 마음껏(비닐 포장이 된 코믹이나 일부 잡지들은 제외돼요) 탐독할 수 있어요.

다만, 숙박 시설이라면 으레 따라붙는 샤워랄지 조식 등의 식사는 '각자 알아서'이고, 체크아웃 직전에 '도서 구입'이라는 스케쥴도 있어요. 책이 너무 좋으면 나머지 것들은 아무래도 괜찮은 걸까요. 다소 숙박을 매개로 결국 책을 팔고 있는 것도 같은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까요. 물론 평소에 보지 못하는, 잘 들춰보지 않는 나의 잠자고 있던 관심사(책)을 발견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겠죠. 이번 '책방 나이트'는 '쥰쿠도에 살고싶어'란 트위터 이후, 매년 개최했고 올해가 벌써 4번째, 처음으로 동북 지역, 센다이 지점에서 열어요. 얼마 전엔 '북호텔'이 등장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책과 잠의 궁합이란 어떤 맛을 낼까요.

🤵🏼 10월이 10월이라 깜짝 놀란 분, 혹시 여기 있나요. 저는 나이 탓인지 9월이 그렇게나 9월같이 느껴지더니, 이제는 10월이 너무 10월이라 어찌할 줄을 모르겠어요. 봄철의 4월이 그런 것처럼, 9월은 가을의 뒤숭숭함 그 자체이고 10월은 또 아직 겨울은 아니라 내 맘이 나도 모르게 일렁이곤 하는데요. 세계적 패션지 1931년 창간해 전세계 20개국에서 발간되고 있는 GQ의 일본판 'GQ JAPAN'이 오는 리뉴얼을 단행, 기념 1호를 K-팝 그룹 BTS의 RM 표지로 장식해요.  'GENTLEMAN’S QUARTERY'라는 매거진 상호명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 GQ들이 관심을 갖는 아트, 디자인, 여행, 푸드, 그리고 뷰티에 관한 콘텐츠를 새로 시작하는 관점에서 풀어가겠다는 포부에요. 그리고 지난 4월, GQ는 편집장이 새로 취임했거든요. '유행통신(流行通信)'으로 경력을 시작해 'VOGUE JAPAN', 그리고 'VOGUE HOMME' 등에서 일했던 이시다 쥰 씨가 이번 특집호를 총괄해요. 참고로 GQ JAPAN의 창간은 1993년 2월,

'콘데 나스트'의 공식 라인센스 협력 업체로 '중앙공론사(央公論社)'가 지금까지 발행하고 있어요. 사실 GQ하면 2012년부터 독특한 패션 스타일이 인상적인 스즈키 마사후미 씨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시다 씨는 GQ 재팬 역사상 2009년 약 1년간 편집장 대리로 있었던 군지 사유미 씨를 제외하면 첫번째 여자 편집장이에요, 그리고 비일본 탈렌트가 표지를 장식한 것 역시, 단독으로는 RM이 처음이에요. 지난 번 레터에서는 나라 요시토모 씨와의 친분을 잠시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이번엔 아트에 초점을 맞춘 특집에 맞게 일본의 거장 사진 작가 스미모토 히로시 씨와의 2숏도 포함되어 있다고 해요. '아트에 대한 정열, 맴버를 향한 사랑, 그리고　RM이 꾸는 꿈에 대하여.' 10월이 아무리 10월이라도, 이제 막 시작할 것 같은 설레임. 잡지의 계절감이란, 아마 이런 걸까요.

🙋‍♂️ '해보고 싶었던 것을 다시 해보는 캠퍼스', 지난 레터에서 배움에 눈을 뜬 도시를 이야기하며 문구 중심 라이프 궂즈 제작 기업 '코쿠요'의 그야말로 '다시 만난 세계'같은 공간이 지난 4월 도쿄 문을 열었는데요, 1975년 창업해 문방구와 오피스 한 길. 앞으로만 달려온 시간이라면 그럴 만도 했을까요. '코쿠요'가 오는 10월 11일, 노트로서는 좀 독특한 커피 회사와 콜라보 상품을 발매해요. '코쿠요'의 노트라 하면, 1930년대 일본에서 노트의 일상을 개척한 '츠바메 노트'와 버금가는 어른 타깃의 노트 아마도 'CAMPUS'가 가장 대표적일 텐데요, '캠퍼스'는 캔커피 BOSS를 판매하는 '산토리 인터내셔널'과 힘을 합쳐 커피 색의 노트 2색, 사이즈와 페이지수 별로 모두 12종의 커피풍 노트를 만들었어요. 사실 노트라는 게 요즘엔 필기 문구류도 스마트화 되어가며 점점 더 쓸모를 잃어가지만, 그렇게 눈에 잘 뛰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손에 펜을 잡고 무언가를 쓰는 '자리'는 왜인지 남아있잖아요. 디지털 AI 시대를 말하는 가운데 이런 건 아마도 가장 사람같아서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꾸준함을 계속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종종 특별함이 필요한 것처럼, '캠퍼스'도 일하는 사람의 다양한 목적에 맞는 노트'라는 모토는 이어가되 BOSS 브랜드의 이미지 컬러인 네이비와 '크래프트 보스'의 블랙, 그래고 라떼와 미당을 시각화해 신 직장인의 노트를 완성했어요. 정식 상품명으로는 블랙, 라테 베이지, 그리고 커피 브라운. BOSS 역시 CM을 보면 늘 일하는 사람 곁에 있거든요. 일하는 사람의 다양한 용도에 맞게, 그 자리에 필요한 휴식을 위해 노트와 커피가 만나다. 오늘도 밤늦게 노트북을 꺼지 못하는 우리에게, 좀 뭉클한 만남, 콜라보 아닐까요. 형태는 하프 사이즈의 무선 매듭, 동일한 사이즈에 링 매듭, 그리고 A5사이즈의 무선 매듭 3종이고, 내지의 궤선(罫線)은 블랙과 라테 베이지, 커피 브라운은 5mm 모눈 무늬, 그리고 네이비는 도트가 포함된 수평선을 채용했어요. '츠바메 노트'는 노령층 및 필기가 익숙치 않은 이들을 위해 궤선을 일부러 사선으로 그린 버전(정식 명칭은 글씨가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이들을 위한 노트)을 출시한 적도 있는데, 노트라는 건, 나의 손글씨를 기억해주는 매체일까요. 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을, 부러 노트에 적어 보아요.

 👧🏻 토토로 '지브리 마을'의 '이유있는 합병' 

미야자키 하야오의 6년 만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지금, 며칠 전 아리송한 뉴스가 들려왔어요. 바로 '지브리'가 일본 민영 방송 중 하나인 '일본 테레비'의 자회사로 인수 합병이 이뤄졌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사실 '지브리'라고 하면, equal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기도 해서, 늘 그의 후계자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따라다니곤 했죠. 장남이자 실제 '코쿠리코 언덕에서' 등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미야자키 고로 씨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영화의 만듦새들이 별로 신통치 않아 지브리의 미래는 오랜 시간 별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흘러왔는지 몰라요. 다만, 중요한 건 올해로 하야오 씨의 나이는 여든 다섯, 그리고 그와 40년 넘게 동거동락을 해온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 씨의 나이도 일흔 다섯. 앞으로도 계속 두 노년의 힘 만으로 '지브리'를 굴려갈 수 없다는 건 명백한 사실일 거에요. 그래서 찾은 해답이 아마도, '니혼 테레비'의 경영을 빌리다, TV 방송 플랫폼 안에 상주하며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만들다...에요.

그저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인데, 언젠가 맞닥뜨리는 현실에의 문제. 이런 거, 좀 아련하지 않나요. 흡사 하야오 씨 작품 중 '바람이 분다'를 떠올리게도 하는데요. 하지만, 대부분 일본 내에서는 두 회사 사이의 별안간의 '손잡음'이 실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온 관계가 맺은 하나의 결실이라는 평이 많아요. 사실, '니혼 테레비'는 '지브리'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개봉 때부터 '지브리'를 적극 후원하며 함께해온 또 하나의 파트너이기도 했거든요. 더불어 '니혼 테레비'의 영화 방영 프로그램 '금요 로드쇼(金曜ロードショー)'에 '지브리' 작품이 상여된 건 그러니까, 1985년 방송의 시작부터 2023년 오늘까지 무려 200회가 넘는다고도 해요. 즉,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안에서 내밀하게 관계했던 내일을 위한 '합작'이랄까요. 스즈키 씨는 하야오 씨와 더불어 이러한 상황에 대해 무엇보다 솔직하게 털어놓았는데요. 이번 발표가 공개된 건 지난 9월 21일 코가네이시(小金井市)의 지브리 '스튜디오' 내 회견 자리에서였어요.

 🧸 계산에 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토토로들의 '함께 살아보기' 

결국은 영화는 영화, 현실은 현실인 걸까요.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중요한 건 오늘 이후의 내일, '다음'을 길러내는 능력일지 몰라요. 일본이라면 대대로 가업을 이어받는 장인 육석 시스템이 가정 내에서 토착화 되어 있지만, 요즘같이 다변화하는 시대에서 모든 후대 세대가 그를 따라간다고 믿고만 있는 건, 대책 없음에 다를 바 없거든요. 실제로 하야오 씨 장남 고로 씨는 후대를 잇는 문제에 대해' 혼자서 지브리를 끌고가는 건 어렵다, 회사의 장래에 관해서라면 다른 곳에 맡기는 게 좋다'라 말했다고도 하고요. 그리고 그는 지금 개관한 '지브리 파크'의 실무 관장으로 역임중인데요. 반면, '지브리'가 살아온 70년 세월, 그 안에 자연스레 형성된 영화를 매개로 한 일본 엔터테인먼트 업계 내 공적과 인적 인프라는 예상 밖의 대책을 모색하고 있었던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시절 '니혼 테레비'의 영화 담당이었던 오쿠다 세이지 씨는 이후 제작된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의 묘'가 줄이어 흥행 성적이 하락하자, 방송국 간부들을 설득해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서 지브리 영화를 소개하는 특별 코너를 편성하고,

'마녀 배달부 키키'가 개봉하던 즈음엔 '금요 로드쇼'에서 위의 흥행이 부진했던 세 편을 연달아 방영하며 위기의 '지브리'를 기사회생하게 도와준 1인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때부터 개봉과 맞물려 TV에서 관련 작품이 방영되는 하나의 마케팅 패턴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스즈키 씨도 '니혼 테레비' 대표 집행위원  스기야마 요시쿠니 씨와 한 온천지에서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경영에 대해 도움을 요청해 동의를 얻었다고도 말했어요.

그리고 역시나 '지브리'의 팬이었다고 하는 스기야마 씨는 이에 대해 '앞으로도 '지브리'의 작품을 응원하고, '지브리'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지켜가야 한다'고 답했다 하는데요. 겉으로 보기에는 회사와 회사, 두 법인의 인수 합병 M&A일 뿐이지만, 그 안에 사실 속 깊은 오랜 세월의 교류가 작용했던 셈이에요. 그리고 그보다 이전 이번엔 다카하다 이사오 씨의 열혈 팬이었던 지난 2011년 세상을 뜬 전 '니혼 테레비' 방송 채널 대표이사였던 우지이에 세이치로우 씨는 '이웃집 야마다군(ホーホケキョ となりの山田くん) 이후 한동안 작품을 만들지 못했던 다카하다 씨의 재기를 돕기 위해 '아무리 적자가 나도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방송 경영진을 설득, 2013년 '카구야 공주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헀어요. 더불어 생전 '도쿄도 현대 미술관'의 관장이기도 했던 우지이에 씨는 '지브리 그림의 장인 오가 카즈오 미술 감독의 특별 전시를 기획하는 등, '지브리' 밖에서도 그리고 '니혼 테레비'를 나가서도 여러 방면으로 지속 가능한 '지브리'를 위해 함께했던 셈이에요.

후대 문제와 관련 스즈키 씨 말을 들어보면, 일흔 넘은 노인 둘의 그저 위태로운 '지브리'인 것만 같지만, 실은 그와 함께한 무수의 동년배 '지브리'들이 늘 함께였던 걸까요. 어찌보면 '지브리'는 일본에서 하나의 문화 유산이 되어버린 것도 같아요. 지브리가 지금 없어진다고 하면, 분명 엄청난 진동이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연대', 그 어떤 그룹 간의 시너지  보다 탄탄하지 않을까요. 스기야마 씨는 회견 자리에서 '우리는 TV가 중심이라 애니메이션에 관해서는 초보입니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제작 체계를 최대한 존중해가고 싶습니다'라고 했어요. 크리에이티브 집단이 거대 자본 대기업과 손을 잡을 때, 가장 우려되는 게 그 창조력, 참신함의 훼손이잖아요. 하지만 위의 이야기했던 두 간의 스토리를 보면, 그런 걱정 좀 놔둬도 될 것 같달까요. 그리고 실제 '스튜디오 지브리'의 홍보지 '열풍(烈風)'의 2023년 5월호에 보면 '지브리'에서 '니혼 테레비' 영화부로 자리를 옮겨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서머 워즈'를 프로듀싱했던

타카하시 노조무 씨는 ''니혼 테레비'는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오기도 했지만, 그에 관해서의 목표는 늘 '지브리의 방식'으로 세팅이 되어있다'고 했거든요. 이를테면 '니혼테레비'와 한 지붕에 사는 '지브리'의 앞으로의 1일을 점쳐볼 수 있는 멘트랄까요. 그래서 왜, 요즘 믿거나 말거나 하야오 씨의 차기작이 벌써 시작됐다는 뉴스가 종종 보이기도 하잖아요. 몇 번이나 은퇴를 번복할 정도로 미래가 불안했던 '지브리'인데, 이제야 맑은 해가 둥둥 떠오르는 걸까요. 개인적으로 이번 '지브리'의 인수 합병 소식, '그래서 무엇이 달라질까'보다 이런 약삭 빠른 일에 좀처럼 민첩하지 못한 사람들의 걸어온 길이 맘에 오래 남아요. 이를테면 '문과'계 사람이 조립 복잡한 가구나 가전 기기 마주할 때와 같이, 서툼이 그를 견뎌내기 위해 애써온 세월의 흔적이란 분명 우리가 가진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유산일테니까요.

스즈키 이제는 평범한 노인으로 돌아갈 프로듀서는 '작품을 만듦에 있어서는 일단, 이런 이야기를 남겨 놓았어요. 지브리,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결국 이 영화 타이틀이 이번 발표의 예고편이었는지 모르겠지만요.

 🙆‍♂️ 세상을 믿고, 다시 한 번 너에게 맡겨보는 일 

구독자님, 근래 자꾸만 틀어지는 레터 일정...저 어떡하면 좋을까요. 물론 추석이다 개인적인 이유일 뿐이지만 이사를 하며 정신 없었던 것도 있지만, 진짜 문제인 건 그로인해 이전의 리듬이 어딘가 도망가고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에요. 처음엔 피로가 쌓여서라 지나가고, 다음엔 맘도 힘들었으니라고 스스로 변명도 해보지만, 실은 어쩌면 그게 아니라는 걸 저는 알고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이럴 때의 가장 큰 문제는 평소에 갖고있던 믿음, 삶에 대한 애착, 관계에 대한 인내와 같은 것들이라 생각하거든요. 당장 내 발 밑도 정리가 안되는 마당에, 그 다음을 돌아볼 여지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래서 오래 전 폴 세잔은, '내가 믿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계속 탐구를 한다.'  이런 명언을 남기기도  했던 걸까요. 어젯밤, 이사하고 3일 째 밤을 보내며 심야 라디오에서 문득 이런 문장을 들었는데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 어쩌면 이건 평소의 일상을 살며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매번 잊고마는 것들일 것 같아요.

그리고 바로 그 저녁, 배드민턴 경기를 보다 전 실제 살아 존재하는 그 문장을 리얼 타임으로 목격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먼저, 안세영 선수 정말 대단하지 않았나요. 올림픽이나 국제 스포츠 경기를 볼 때면, 운동을 하면 이런 순간의, 자신을 증명하고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주어지는구나 내심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인데, 스스로를 믿고 그 세계의 최대치를 향해 달리는 모습은 가히 인간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 같았거든요. 물론 그 일련의 일들이 얼마만큼의 노력, 아픔, 힘듦은 견뎌야 하는지는 결코 헤아릴 수 없겠지만, 그로 인해 보는 사람은 우리 인간에 대해 다시 한 번 믿음을 포기하지  않게돼요. 구독자님, 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새로 이사 온 집에서는 창문 밖 대각선 방향으로 작은 공원이 있는데요, 왜인지 아직 가보지 않았어요. 메이와 사츠키가 숲속의 비밀스러운 집을 탐방하는 것과 같이, 인생은 늘, 알아가는 과정일테니까요. 구독자님, 우린 오늘 또 무엇을 알았을까요. こんな私ですが、믿고 기다려주셔서 모두 감사드려요. 그럼, 우리 또 만나요.🙋‍♂️

📫 오는  화요일(수요일이 될지 모르겠어요) 10월 10일에 '야마테센의 뉴스 배달부' #120호가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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