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생태숲을 둘러보다가 비명이 터졌다. 머리 위 날카로운 타격이었다. 새가 그런건가?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도토리만 있을 뿐. 겨우 손톱만한 도토리가 떨어졌을 뿐인데 알맹이가 실해서일까? 높이 있었던 열매라 그런가? 눈물이 찔끔 났다. 요즘은 숲 어디서든 굴러다니는 도토리와 밤송이가 발견된다. 혹여나 밤나무가 많은 숲을 거닌다면 모자는 더더욱 필수다.


이맘때쯤 수목원에서는 실랑이가 잦아진다. 한번은 수목원을 모니터링 하다가 공원 경계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내가 있는 그쪽에 밤이 많다며 넘어갈 수 있냐 물으셨다. ‘읭?’ 하는 순간이었다.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개장도 하지 않은 시간에 들어와 가방 한가득 밤을 줍고 있던 아주머니를 마주쳤다는 목격담, 엊그제는 질서분들이 도토리로만 채워진 비닐봉지를 몇 봉지나 압수했다는 무용담까지. 그래서 요즘 수목원 입구에는 밤과 도토리를 줍지 말라는 경고, 아니 호소문이 붙었다. 실제로 공공부지에서 허가없이 진행된 임산물 채취는 경범죄에 해당한다.
수목원 밤은 맛도 없다는데, 왜 자꾸들 주워 가실까?ㅠ 물론 발 밑에서 밤송이가 익어 벌어진 틈새로 탐스러운 밤이 보이면 탐내는 마음이 이해도 간다. 만약 밤톨 한 개, 도토리 한 알쯤 주머니에 넣어 갔다면, 소박하게 계절을 기억하는 것이었다면 이렇게까진 소란스럽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누가 봐도 두툼한 가방과 묘하게 흐르는 긴장된 분위기가 결국 “가방 좀 확인할게요!”로 이어진다. 적어도 우리는 먹을 밤과 도토리는 서로의 안전을 위해 구매하는 걸로 약속! ㅎㅎ

사실 이 계절에는 도토리와 밤 말고도 매력적인 열매가 도처에서 목격된다. 크리스마스가 미리 온 듯 빨간 오너먼트를 닮은 열매가 인상적인 주목부터 잎도 열매도 붉게 물들어가는 덜꿩나무, 길가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남천의 열매까지. 곳곳에서 빨간 열매의 향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빛나는 보라 열매를 만나게 되면 감탄이 터진다! 바로 좀작살나무의 열매!! 꽃도 옅은 보랏빛을 띠지만 열매는 더 쨍한 보라다. 볼 때마다 카메라 앱을 여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좀작살나무는 아파트나 동네 공원에서도 흔하게 심겨져 있는 수종이니 동네 산책하면서 찾아보길 추천한다.

여기에 덧붙여 소개하고 싶은 대상은 핑크 핑크한 참빗살나무의 열매다. 아마도 할머니가 썼을 법한 참빗(촘촘한 빗살로 예전엔 머리의 이를 잡는데 썼다는 그 빗이다)의 재료가 되던 나무다. 목재가 단단하고 질겨 빗으로 만들기 좋았다고 하는데, 얼마나 단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열매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잘 알고 있다. 이맘때면 각진 핑크색 열매를 달고, 잎마저 핑크빛으로 물드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바로 참빗살나무다. 구름도 없는 파란 가을하늘에 대비되는 핑크빛. 볼 때마다 마음이 몽글해져 이 역시 자꾸 사진을 찍게 된다. 이 열매는 무르익으면 4쪽으로 쪼개지면서 안에 품은 빨간 씨앗을 뱉어 낸다. 그 모양새가 수박씨를 뱉는 나 같아 웃음이 나는데, 계속 관찰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

이렇게 매력적인 가을의 씨앗을 한데 모아 다람쥐 밥상을 차려보았다. 실제 다람쥐가 먹을지는 모르겠으나 밤이 떨어지고 나간 껍질, 도토리 각두를 모아 그릇으로 삼았다. 그 안에 좀작살나무의 열매, 마가목의 열매, 잘 익은 포도 같은 범부채의 열매 등 주변의 씨앗들을 소복히 담아보았다. 수목원을 찾는 관람객들이 조금 더 즐겁게 씨앗을 관찰해볼 수 있도록. 물론 만들면서 느꼈던 내 즐거움이 먼저지만.

어제는 소나무 밑을 서성거리다 진짜 다람쥐가 먹고 간 진짜 밥상?을 발견했다. 바로 솔방울 새우튀김. 다람쥐나 청설모가 잣나무, 소나무 솔방울 사이에 껴 있는 씨앗들을 쏙쏙 빼먹고 남긴 흔적이다. 그 모양이 새우튀김과 꼭 닮았는데, 이런 흔적은 이미 꽤 유명해져 요즘 산림청에서는 새우튀김 자랑대회를 진행중이다. 올해로 벌써 5회째라고 ㅎㅎ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아래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대회 참가 목적이 아니라도 숲에서 새우튀김을 발견하는 순간 반가움에 배시시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테다.

숲에서 가장 완벽한 새우튀김을 찾아라! - 국립산림과학원, 제5회 새우튀김 자랑대회 이벤트 개최
봄이나 여름만큼 꽃이 많이 피는 계절은 아니지만 숲과 공원 곳곳에서 포착되는 열매들 덕분에 지루하지 않은 가을 산책이다. 요 며칠 찬 바람의 기세가 점점 세지고 있다. 가을을 몰아내는 겨울의 움직임이랄까. 느긋하게 산책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직립보행의 계절 가을이니, 어서 밖으로 나가 가을을 흠뻑 즐겨 보시길 종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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