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뤄볼 내용은 한국 창업자가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망하는 3가지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동남아시아, 특히 베트남에 오래 살기도 하고 최근엔 투자도 하고 있다 보니 작은 음식점부터 IT 창업까지 다양한 유형의 창업 사례를 보게 됩니다. 특히 코로나 전까지는 더 많은 분들이 ‘기회의 땅이다’, ‘한국의 20년 전과 같다’며 인도를 찾는 콜럼버스처럼 많이들 오셨어요. 물론, 그 중에는 잘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지난번에 다뤘던 배민 베트남 뿐 아니라 한국 핀테크 혁신의 주인공 토스도 베트남 진출에 한 번 좌절을 맛봤습니다. 토스는 지난해 12월 베트남 사업을 축소하고, 올해 공식적으로 나머지 동남아 국가에 대한 진출을 정리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배민, 토스처럼 한국에서 리소스를 받아 들어갈 수 있으면 차라리 상황이 낫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정말 ‘창업’을 하시면,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다각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창업자가 직접 굴러야 합니다.
물론 오늘 이 내용을 다루는 이유는 그래서 가지 말라거나, 가면 무조건 망한다 와 같은 비관적인 의견을 공유하거나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로 가야 하고, 이에 동남아시아 시장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더 많은 한국 창업자들이 높은 프로덕트 개발 능력을 잘 살려서 동남아시아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부족하나마 정보를 제공해 이후 동남아시아 시장에 도전하고 성공한 창업자분들이 생겨, ‘그때 그 글 읽어서 도움 많이 됐지’ 했으면 해요.
서론이 길었네요. 바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국인 창업자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실패하고 돌아가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너무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길어지니 이번엔 세 가지만 다뤄보겠습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아래 내용에서는 특정 스타트업이나 회사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1. 시장을 모르고 뛰어든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알고 맞는 매보다 모르고 맞는 매가 아프니까요. 어차피 창업하면 매 몇 대는 맞아야 하지만, 맞을 준비를 좀 하고 들어가야겠죠.
- 아예 모르고 뛰어드는 경우
많은 창업자가 시장조사가 부족한 상태로 뛰어듭니다. 베트남에 대한 증권사의 리포트를 많이 본 사람이든, 친척 혹은 지인이 베트남에서 10년간 일을 하고 있든, 심지어 베트남인 가족이 있다는 것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결국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 뿐이에요. 최악의 경우 한국어 조금 하는 베트남인 인턴을 고용해 그 인턴에게 베트남인, 베트남 시장, 베트남 문화에 관해 물어보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글로 써놓으니 진짜 말도 안 되는 것 같네요.
특히 B2C 프로덕트를 고려하시는 경우 더욱 위험합니다. 젊은 인구가 많다는 사실과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맞고, 그게 큰 기회인 것은 맞아요. 근데 그게 내가 그들을 사용자로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의 모든 세대, 모든 시장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같은 세대의 트렌드도 따라가기 바빠, 하나라도 제대로 알면 그나마 다행이죠. 마찬가지로 베트남에서 살다 왔던, 베트남 사람이던, 베트남 관련 일을 하던, 결국 개인 단위로 아는 것만 알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아예 처음 진입하는 외국인이라면 더 모를 수밖에 없죠.
- 조금만 아는 경우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게 조금만 아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희극인 이경규 씨의 명언이 있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이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특히 한국은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가까워서, 다들 주워들은 것들이 많아요. 심지어 자주 가기도 하죠. 그렇다 보니 다들 ‘베트남은 이렇지’ ‘인도네시아는 저렇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조사와 분석에 소홀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가령 베트남의 경우 젊은 인구가 많고 모바일 디바이스 사용률이 굉장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베트남에서 앱 서비스가 굉장히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베트남에서 사용하는 모바일 디바이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고성능, 대용량의 디바이스가 아닌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이런 곳에서 3선, 4선 도시를 타게팅하면서 대뜸 앱을 출시하면 쉽게 설치까지 가기 어렵죠.
- 결국 지름길은 없다
대부분의 한국인 창업자분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하는 이유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는 얕보기 때문에, 두 번째로는 노다지를 발견한 것 같다는 착각 때문이죠. 경제 수준이나 문화적인 힘은 약할 수 있지만, 그만큼 그 시장에서의 제로투 원은 더 힘들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해요.
유독 동남아시아로 오면 많은 분들이 당연한 것을 잊으시는 것 같아요. 소득 수준이 낮고 덜 개발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 밟은 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이 경이로운 성장을 한 것도 분명 맞고, 개발도상국들이 많은 부분 참고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한국은 그들에게 좋은 레퍼런스 중 하나일 뿐이에요. 계속해서 알아보셔야 해요. 직접 가서 보세요.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묻고, 필요하면 함께하세요. 가설을 세우고, 체크하는 이터레이션을 게을리하지 마세요.
언어 구조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차이, 인종과 민족 구성의 차이에서 오는 차이, 해당 국가의 정치 시스템과 지향점 등으로 인한 차이 등 다양한 문화적 몰이해로 인해 우리는 해당 국가들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쉽게 이해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착각일 뿐이죠.
- 현지인 파트너와 함께하자
만약 내가 현지인 수준의 이해도와 네트워크가 있는 게 아니라면 해당 국가 국적의 믿을만한 파트너를 찾으세요. 공동창업자이건, 창업팀 멤버건 간에, 믿을만하고 능력 있는 현지인 멤버와 함께하세요. 만약 핵심 멤버라고 생각된다면, 지분을 너무 아까워하지 말고 확보해 두세요. 오히려 그게 가장 낮은 비용으로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2. 막연히 비용이 낮을 것이라 생각한다.
베트남 호치민을 예로 들면, 최저임금 기준 한 달 월급은 25~30만 원 정도 합니다. 신입 사무직 월급은 포괄적으로는 50~90만 원 정도(초봉) 정도 하고요. 한국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낮은 월급에서 이미 많은 창업자가 눈이 돌아버립니다. 한국어나 영어를 잘하는 베트남 직원분들의 월급도 높으면 100~150만 원(초봉) 정도예요. 거의 거저죠?
(거의) 모든 가격에는 이유가 있죠. 제가 본 많은 경우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 저렴한 임금에 감탄하며 몇 차례 고용을 진행함
- 원한 만큼의 퍼포먼스도 나오지 않고, 소통도 잘되지 않음
- 결국 창업자와 밀접하게 소통할 위치에는 한국인 직원들을 뽑기 시작해 헤드 급은 한국인, 대리~사원급은 베트남인인 구조를 만들게 됨
-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끼리, 베트남인들은 베트남인들끼리 놀기 시작하며, 빠르고 효율적인 소통이 되지 않음
- 들인 비용과 시간에 비해 결과물이 나오지 않음
그 와중에 한국에서 만큼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고 하면 개인적인 생활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아요. 어리고 건강하며 나는 베트남 음식만 먹고도 5년은 견딜 수 있는 분들이라면 괜찮을 수 있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 비용과 시간을 고려하면 막상 한국보다 비용효율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3. 지표에 속는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트래픽에 속기 쉽습니다. 특히 인도, 인도네시아와 같은 시장에서는 더욱 그래요. 그 첫 번째 이유는 당연하게도 인구수의 차이에 있습니다. 인구수를 보자면 한국은 4천만, 인도네시아는 2.7억, 베트남은 1억 명 정도 됩니다. 백만 다운로드가 각국에서 가지는 가치를 인구수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한국은 2.5%, 베트남은 1%, 인도네시아에서는 0.3%입니다.
비용 대비 수익률은 어떨까요? Statista의 국가별 구글 ads 평균 CPC(Cost per Click)를 참고한다면, 한국은 USD 0.98, 인도네시아는 USD 0.32, 베트남은 USD 0.35입니다. 각 국가당 인당 GDP는 한국이 30,000, 인도네시아 4,300 베트남 3,700이고, 소득과 소비 능력을 비례한다고 가정, 클릭이 설치로 이어진다고 가정한다면 한국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44%, 베트남은 한국의 35%에 해당하는 비용 대비 수익률을 가지고 있네요. 물론 소득과 소비가 완전히 비례하지는 않고,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정도 느낌은 잡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 가처분소득까지 고려할 경우 유료 회원으로 전환하는 건 더욱 힘든 일이죠.
쿠폰 뿌리고, 혜택을 제공하면 방문에서부터 심지어 구매 전환까지도 빠르게 증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난 배민 베트남의 흥망성쇠 편에서 다뤘던 것처럼, 충성도가 굉장히 낮습니다. 지표에 대해 해석하실 때 한국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해당 국가의 유저 특성에 대한 디테일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망하는 이유는 한도 끝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가야한다.
이번 글에서 저는 딱 세 가지 이유만 다뤘지만, 망하는 이유, 안될 이유는 끝도 없이 많습니다. 창업은 원래 어렵고, 노련한 사업가분들도 매번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모국에서 창업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고 있다가 자연재해 같은 이유로 망할 때도 있죠. 그럼에도 우리는 창업하고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의 성장 속도를 볼 때, 앞으로 한국인 창업자들이 개척해 나가야 할 시장임은 틀림없습니다. 시장에 아직 다양한 기회가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중요한 건 우리가 준비되어 있느냐 입니다. 동남아시아라는 워딩은 마케팅 용어일 뿐입니다. 각각의 나라는 알면 알수록 유사성만큼이나 차이점도 크기 때문에, 창업자라면 나의 프로덕트 특성에 맞춰 동남아시아 권역 전체를 노릴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나라부터 들어갈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어떤 특정 나라를 목표로 할지 확실히 알고 가야 하겠죠.
이 글을 통해 동남아시아 시장의 다양한 문제들을 태클해 보려는 창업자분들이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베트남통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지만 부족한 생각을 공유해 봅니다. 이걸 읽는 분들 중 동남아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댓글로 자유롭게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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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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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SEA Letter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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