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뤄볼 내용은 배민의 베트남 진출과 축소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배민은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BAEMIN이라는 네이밍으로 지금까지 서비스를 운영해오던 중, 2023년 09월22일 갑작스럽게 사업 축소와 인원 감축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직 완전히 철수한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정황상 철수를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 같아요.
배민 베트남의 현 임시 대표(전 CFO)인 Loan Cao가 직원에게 발송한 메일에 따르면 “베트남 사업 축소와 인원 감축은 가볍게 내린 결정이 아니다”라며 “이번 결정은 베트남 음식배달업계의 치열한 경쟁과 높은 소비자 기대치로 인해 만들어진, ‘High incentivisation’을 특징으로 하는 어려운 시장환경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라고 전했어요. Loan Cao 임시 대표가 대표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유된 내용이니 단시간에 내려진 결정이라고 보긴 어렵죠.
당장 4월만 하더라도 배민 앱에서만 주문할 수 있는 자체 코스메틱 브랜드 Lazy Bee를 출시하는 등 의지를 보여주던 배민 베트남은 왜 사업을 정리하게 된 걸까요?
배민 베트남의 사업 축소 및 철수
배민 베트남의 사업 축소 소식은 딜리버리 히어로 산하의 또 다른 브랜드인 Foodpanda가 APAC(Asia Pacific, 아태지역)에서의 감원계획을 밝히고 하루 만에 공유되었는데, 딜리버리히어로가 푸드판다의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에 대한 사업부 매각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배민 베트남의 사업 축소는 베트남 시장 철수의 사전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딜리버리 히어로의 CEO인 Niklas Östberg가 로이터 8월 인터뷰에서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는 베트남을 제외한 아시아에서 딜리버리 히어로의 전망은 긍정적이다”라고 밝혔던 점도 배민 베트남이 철수 수순에 들어갔다는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모멘텀웍스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베트남 음식배달시장은 USD 1.1B 규모로 그랩이 45%로 1위, 쇼피 푸드가 41%로 2위, 배민이 한참 떨어진 12%로 3위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베트남 기준 그랩은 라이드 헤일링 1위, 쇼피는 이커머스 1위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배민 베트남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있었는지 알 수 있어요.
2023년 4월엔 자체 코스메틱 브랜드 Lazy Bee를 출시하며 유저 락인 강화를, 6월엔 로컬 전기차 인프라 스타트업인 Selex Motors와 전기오토바이를 사용한 배달을 위한 파트너쉽을 맺으며 미래를 그리던 배민 베트남이 2023년 9월 13일, 2022년 초부터 배민 베트남을 이끌던 송진우 전 대표의 사퇴를 기점으로 결국 빠르게 사업 축소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공격적인 베트남 진출과 여러 시도들
배민 베트남은 2019년 5월 베트남 로컬 음식 배달 플랫폼인 Vietnammm을 인수하면서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어요. 2011년에 설립된 Vietnammm은 베트남 음식 배달의 선두 주자로, 호치민과 하노이의 외국인 거주자들에 의해 주목받는 서비스였어요. 천천히 성장한 끝에 2015년에는 현재 같은 그룹 아래에 있는 Foodpanda의 베트남 사업부를 인수했고, 2019년 2월 배민에 인수, 2021년 1월 앱의 서비스를 종료하며 완전히 배민 베트남으로 흡수되었어요. 배민이 딜리버리 히어로에 인수된 게 2019년 12월이었으니, 인수를 통한 공격적인 베트남 진출은 여러모로 배민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전략 성공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배민 베트남이 초반에 보여준 퍼포먼스는 나쁘지 않았어요. 사업 개시 1년 만인 2019년에 37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요. 2020년도엔 Now Delivery(쇼피푸드에 인수되었음)가 42%로 1위, 그랩이 40%로 2위, 고젝과 배민 베트남이 9%였고, 이제 막 시작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특히 배민 베트남은 어린 층일수록 더 선호한다는 점과 일부 조사에서는 배달 서비스 중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는 점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가치가 컸어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전 대표는 2021년 8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베트남 락다운 당시 베트남 코로나 백신 기금에 약 10억 원을 기부하기도 하고, 한국의 한나체, 주아체, 도현체의 성공을 레퍼런스 삼아 베트남에서는 디자인 스튜디오 Rice Creative와의 협업으로 BM Daniel체를 출시하고, 유명 디자인 어워드인 Red Dot Awards 2021에서 최우수 수상하며 베트남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고, 베트남인들의 고양이 사랑을 고려해 베트남을 위한 고양이 캐릭터도 추가하였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공룡 Grab, Shopee와의 공방전
Loan Cao 임시 대표가 말한 것처럼 베트남 시장의 특성 중 하나가 높은 가격 민감도와 그로 인한 ‘High incentivisation’인데, 마켓 쉐어를 가져오기 위해서 지속해서 쿠폰, 포인트 등을 제공해야 해요. Shopee(이하 쇼피)는 Sea Group 산하의 동남아시아 최대 이커머스고, Grab(이하 그랩)은 동남아시아 최대 라이드 헤일링 서비스인 만큼 배민 베트남이 출혈경쟁을 통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베트남 배민은 2019년엔 37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이후 계속해서 적자 폭을 키워나갔고, 2022년도 95억 원 영업이익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순적자는 총 2,597억 원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현재 21개 도시에서의 서비스 운영을 위한 고정비 부담과, 그랩과 쇼피푸드와의 경쟁으로 지출 대비 저조한 점유율로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퍼스트 무버의 특혜를 여실히 누려가며 성장한 배달의 민족이었으나, 베트남에서는 인프라와 자본력, 그리고 점유율마저 더 월등한 그랩과 쇼피로 인해 고전했어요. 인당 소득이 낮은 지역은 자연스럽게 가격 민감도도 높을 수밖에 없고, 프로모션을 지속해서 제공하지 않으면 고객들이 금세 떠나가 버립니다.
그랩은 동남아시아 어디를 가도 쓸 수 있는 라이드 헤일링 앱이에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싱가포르의 러브콜로 본사를 옮겨, 현재는 싱가포르 회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죠. 베트남에서 배달에 쓰이는 차량은 역시 오토바이고, 오토바이 라이더들을 가장 많이 가진 곳 역시 그랩입니다. 2022년 기준 약 200,000명의 드라이버 중 약 50%가 그랩을 사용하고, 그중 대다수는 오토바이죠. 그랩은 압도적인 라이더 인프라를 이용해 라이드 헤일링 뿐 아니라 음식 배달, 소매점들과의 연결을 통한 퀵커머스 등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슈퍼 앱이에요.
쇼피도 만만치 않은 경쟁자입니다. 동남아시아 권역 구 강자 Sea Group에서 운영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이고, 베트남에서는 점유율 기준 중국 Alibaba의 서포트를 받고 있는 2위 이커머스 Lazada(이하 라자다)를 큰 차이로 이기고 있어요(최근엔 틱톡 숍이 무섭게 치고 올라와 라자다를 제치고 2위를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이커머스 배송 역시 오토바이로 하므로 그랩 정도는 아니지만 쇼피도 많은 수의 드라이버 풀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자본력과 연동성(이월렛, 포인트 등)이 그랩 못지않죠.
베트남 로컬 이커머스 플랫폼 대표주자인 Tiki.vn 역시 위에 언급한 쇼피와 라자다, 그리고 틱톡 숍으로 인해 점유율 하락과 과도한 지출 경쟁에서 밀려 힘든 상태로, 동남아시아에서 이미 슈퍼 앱으로써의 위치를 잡아가는 쇼피, 그랩과 경쟁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양강구도의 베트남 음식배달업계, 승자는?
현재 베트남 음식배달업계의 투 탑, 그랩과 쇼피가 각각 점유율 45%, 41%로 근소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으니, 배민 베트남이 차지하던 12%는 작지만, 꽤 군침 도는 파이일 거예요. 다만 현재의 열악한 재무구조로 인해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려워 보여서 인수전이 펼쳐질지, 아니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다시 결정하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겠네요.
딜리버리 히어로가 현재 푸드판다 산하 일부 지역 사업체들에 대한 매각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발표했고, 몇 차례의 발표로 미루어 보아 딜리버리 히어로 본사에서는 베트남 지역을 아픈 손가락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거든요. 특히 딜리버리 히어로의 거래량 기준 약 60%를 차지하는 아시아지역에서 한국이 70%를 차지하고 있고, 동남아시아 지역은 현재 딜리버리 히어로에게 있어 핵심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해서 적자를 내는 베트남 사업 역시 처분하고 싶어하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초창기부터 멋진 성장을 보여줬던 우아한 형제들인 만큼 베트남 진출 성공사례가 되길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는데, 팬의 입장에서 이번 일은 다소 아쉽습니다.
참고
https://vir.com.vn/baemin-launches-lazy-bee-beauty-brand-101384.html
https://momentum.asia/product/food-delivery-platforms-in-southeast-asia-2023/
https://marketreport.io/online-food-delivery-in-vietnam-report#:~:text=Beamin and Loship have younger,average growth rate reaching 66.3%25.
https://www.techinasia.com/delivery-hero-owned-baemin-vietnam-starts-laying-off-staff
https://www.techinasia.com/baemin-vietnam-ceo-calls-quits
https://vir.com.vn/baemin-vietnam-appoints-new-ceo-90456.html
https://www.techinasia.com/foodpanda-deal-cement-grabs-market-dominance-regulators
https://thelowdown.momentum.asia/where-does-delivery-heros-asia-gmv-growth-come-from/
https://www.techinasia.com/foodpanda-deal-cement-grabs-market-dominance-regulators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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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k
너무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배민은 자영업자와 라이더를 너무 존중하지 않는 것 같은데, 베트남에서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Under The SEA Letter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베트남에서는 아무래도 후속주자인 만큼 라이더 친화적인 정책을 택했었습니다. 이미 그랩이 어느정도 라이더 풀을 장악한 상황에서 라이더들이 ‘배민도‘ 사용하게 해야 했으니까요. 자영업자는 말할 것도 없죠. 다만 현재처럼 사업이 어려워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니 베트남에서는 크게 차이나는 3위의 플레이어로써는 쉽게 개선이 어려웠고, 결국 정리까지 가지 않았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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