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 헬로코니

반려견의 정형외과 진료를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보호자라면 이분의 성함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보호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지만, 수의사들 사이에서는 더욱 유명한 분이죠. 앞서 만난 엄태흠 수의사가 추천한 '수의사의 수의사', 경기 부천 조규만외과동물병원의 조규만 원장님을 만났습니다.
어느덧 25년 차 베테랑 수의사지만, 진료와 연구, 봉사를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갓 임상에 들어선 이처럼 뜨겁습니다. 지금의 원장님을 있게 한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Part 1. "하고 싶은 거 말고, 잘하는 것을 해라"
Q. 외과 진료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으시죠. 남들보다 일찍 정형외과 특화 진료에 집중하셨던 계기가 있으셨나요?
2001년에 수의사 면허를 따고, 이듬해인 2002년에 비교적 빠르게 개원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어요. 누구 밑에서는 제 소신과 철학대로 진료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고가의 장비에 투자하기도 쉽지 않고, 설령 투자를 받았더라도 그만큼의 매출을 만들어내야 하는 압박이 있으니까요. 때로는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선제적인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데, 페이닥터 위치에서는 불가능했죠.
그렇게 내 병원을 차렸는데, 처음엔 모든 진료를 다 잘하고 싶었어요. 젊고 패기가 넘칠 때라 욕심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모든 분야를 다 잘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하고 싶은 걸 하지 말고, 잘하는 걸 해라"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내가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 끝에 내린 답이 바로 외과였습니다. 못 걸었던 아이를 걷게 하고, 장애가 있던 아이를 낫게 하니 치료 전후의 결과가 확실하잖아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외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Part 2. 다른 곳에서 포기한 5%가 나에게 일깨워주는 것
Q. 저만 해도 10여년 전에 원장님 성함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거든요. 보호자들에게 입소문이 난 계기가 있으셨을까요?
수술한 환자들의 재발률이 적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난 것 같아요. 그런데 솔직한 생각으로는 저희 병원을 찾는 5%의 보호자들 때문 아닐까 싶어요. 이 5%가 일반외과 진료인데요. 소위 '다른 병원에서 포기한 환자들'입니다. 처음부터 저를 찾아왔다면 저 역시 "어렵겠습니다" 했을 법한 심각한 케이스인데, 다른 곳에서 거절당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 분들을 어떻게 그냥 돌려보내겠어요.
그래서 보호자께 말씀드립니다. "제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 하나만 믿어주시면, 힘닿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 라고요. 물론 그렇게 해서 모든 아이를 다 살려낸 건 아니에요.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친구들이 있죠. 한번은 새벽에 무작정 부산에서 올라와 저를 기다리던 보호자가 계셨습니다. 이미 배를 열었다가 종양이 너무 크고 위험해서 그냥 닫은 환자였어요. 반드시 산다는 보장은 할 수 없었지만 수술을 감행했고, 나중에 종양을 꺼내보니 몸무게의 절반이 되는 크기더라고요. 다행히 수술이 잘 돼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얼마 전에도 기관 유착 때문에 일반적인 기도 삽관이 불가능한 유선종양 환자가 왔어요. 5분 안에 기관절개와 삽관을 마치지 못하면 위험한 상황이니 리스크가 컸는데, 이 또한 수술이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경험들은 저에게 ‘일찍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줘요. 그러다 보니 보호자들이 최후에 찾는 병원이 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Part 3. 상처받아도 다시 수술실로 향하는 이유
Q.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지만, 바람과는 다르게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도 있을 거잖아요. 그걸 감당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수의사도 사람이기에 환자가 잘못되면 상처를 받습니다. 자기 눈앞에서 생명이 스러지는 걸 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치료 결과가 안 좋을 때 얻는 이익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막상 상황이 나빠지면 마음이 달라지는 보호자들이 있습니다. 다 이해한다고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비난 화살을 던지시죠. "우리 아이는 안 그럴 줄 알았다"면서요. 그럴 때마다 '믿은 내가 잘못이지, 다시는 이런 고위험 환자 맡지말자' 결심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아이가 오면 여지없이 수술대 앞에 서죠.
Q. 왜요?
이유는 하나예요. 아이가 불쌍해서요. 살 수도 있는 아이인데 이대로 죽을까 봐요. 그래서 제 최종 꿈은 야생동물이나 유기동물을 구조하는 곳에서 봉사하는 수의사로 사는 겁니다. 보호자를 안 만나도 되잖아요. (웃음)
Q. 가장 마음에 남아있는 환자가 있다면요?
외골격 고정 수술 후 감염이 생겨 뼈 유합에 실패했던 아이가 있습니다. 감염을 치료하고 다시 뼈가 자라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보호자에게 참 미안했죠. 비용을 다 받으면 아이를 포기하실 것 같아 "돈은 안 받을 테니 치료만 꾸준히 오시라"고 설득해 1년 반 동안 공들여 치료하고 재수술을 해 줬습니다. 다행히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죠.
그런데 얼마 후, 아이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다시 부러진 채 찾아왔습니다. 보호자분께서 "더 이상은 힘들어서 못 하겠다"며 아이를 데리고 가신 뒤 연락이 두절되었어요. 수많은 수술을 성공시켰지만, 이렇게 끝내 잘 안된 아이들이 항상 마음에 죄인처럼 남아있습니다. 늘 미안한 마음뿐이죠.
Part 4. 괴로웠던 나를 일으켜줬던 말 "Your destiny"
Q. 아까 잠깐 이야기가 나왔는데, 동물원 동물이나 야생동물 진료도 하고 있으시잖아요. 소동물 진료를 전문으로 하시는데, 어떻게 가능한가요?
제가 공부할 때는 소동물 임상 환경이 열악해서 책과 논문이 유일한 스승이었습니다. 해부학 책을 펼쳐놓고 머릿속으로 수술 과정을 혼자 시뮬레이션해야 했죠. 그래서 저희 병원의 원훈이 '환자가 가장 큰 스승이다'입니다. 환자를 통해 배운 게 훨씬 많아요. 그런 환경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야전'에 강하달까요. 일단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이 끝나면 해보지 않은 수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가진 재능이 다 다를텐데, 저는 그 능력이 남들보다 조금 좋은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온 영향도 있고요. 장난감도 없으면 만들어서 놀았거든요. 그래서 가보지 않은 길이나 해보지 않은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편입니다.


Q. 진료는 물론, 강의와 논문 연구, 특허 출원까지 참 바쁘게 지내시더라고요. '욕심이 많으신 분인가보다'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는 원래 대동물과 소동물 진료를 병행하며, 사계절을 느끼고 출장도 다니는 자유로운 삶을 꿈꿨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제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군요.
2004년쯤이었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정형외과에 집중할 때였어요. 당시 두 학교 출신 선생님이 꾸린 스터디 그룹이 있었는데, 대학원 박사 과정 중인 선생님께 수업을 듣다가 임상 현장에 도움이 되는 실전 수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저에게 강의 요청을 한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때는 학사 졸업만 한 상태였거든요. 그래서인지 그룹원이 전부 나오지도 않았고, 심지어 실제 환자를 수술해 달라는 요청도 받았죠. '내가 이 수업을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시험에 들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해서 슬개골 탈구 수술을 30분만에 끝냈더니, 그 다음부터는 이분들의 태도가 바뀌는 거예요. 수업을 열심히 듣고, 안오던 분들도 왔죠. 그렇게 시작된 강의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결국 대학원 박사 과정까지 진학하게 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원치 않는 삶으로 끌려가는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일 마치고 무작정 들어간 극장에서 본 영화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원시 부족의 소년이 우연하게 맘모스를 잡고 차기 추장이 되는데, 소년은 자신이 겁쟁이라며 샤머니스트 할머니에게 "우연히 죽였을 뿐 추장이 될 수 없다"고 울먹입니다. 그때 할머니가 단 한마디를 건넸죠.
"Your Destiny."
그 대사에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구나.' 예전에는 원치않는 삶에 끌려가는 것 같아 불평불만이었거든요. 그런데 내게 온 운명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 뒤로는 제게 주어진 모든 시련과 힘든 과제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논문 쓰라면 쓰고, 강의 하라면 하며 주어진 도전을 열정적으로 완수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습니다.


Q. 그 마음이 언제까지 유효할까요?
글쎄요. 제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아요. 지금까지 끌려왔듯, 운명이 시키는 대로 끝까지 가봐야죠.
Part 4. 그 시대에 필요한 수의사로 남고 싶다
Q. 앞으로 어떤 수의사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젊을 땐 그저 '멋있는 수의사'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수의사, 그 시대를 최선을 다해 살아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제자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메스 놓고 3년만 지나면 내 이름은 기억도 못 하고 지워진다." 라고요. 물론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기억하겠죠. 하지만 새로운 수의사들은 끊임없이 올라오고, 그 흐름에서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 잊히고 말아요. 그래서 그동안 쏟아부은 연구와 노력을 세상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꾸준히 논문을 남기고, 특허를 남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료하기 힘들었던 영역을 해결하고, 교과서의 오류를 수정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이 작업이 기록으로 남아 다음 세대 수의사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그게 곧 환자를 치료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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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필
늘 한결같이 열심히 하시고, 후학 양성에 힘쓰시는 조원장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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