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 보셨나요? 소니픽쳐스에서 제작한 K-POP 소재의 애니메이션이에요. 목소리에 담긴 힘으로 악귀들로부터 이승을 지키는 내용이죠. 시놉시스만 들어봤을 때에는 왠지 진부할 것 같았죠. 하지만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X(트위터)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파랑 호랑이 더피(Derpy)와 세눈박이 까치 수지(Sussie)였어요. 17세기의 서브컬처와 21세기의 서브컬처가 만나는 작품이었어요. 그렇다면 까치와 호랑이 그림(작호도, 호작도)은 어떻게 그려졌을까요?
호랑이와 까치
맹한 호랑이 더피와 영리한 까치 수지는 조선 후기 민화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왔어요. 호랑이는 산을 호령하는 주인이거나 산신령의 전령, 민가나 가축을 덮치는 맹수에요. 이러한 모습은 삿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의 ‘벽사’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호랑이 도상은 기본적으로 용맹한 무관의 복식에 쓰이고, 집안의 평안을 비는 상징으로 쓰여왔죠. 그래서 호랑이 그림은 무과 급제나 출세를 바라는 의미로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18~19세기에 들어서 <작호도(鵲虎圖)>에서 호랑이가 우스꽝스럽게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민담에서도 호랑이가 토끼, 까치, 사람의 꾀에 넘어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상의 변화와 맞물리는 것으로 풀이되죠. 무능한 탐관오리인 호랑이를 꾀 많은 백성들이 물리치는 이야기로의 변화입니다.
화원화풍의 호도가 아니라 민화 속 호랑이가 점차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양반, 관료라는 특권 계층을 가지고 노는 민중의 심리가 표현되어 있는 셈이죠. 그 결과, 더피는 귀여운 호랑이가 되고 수지는 영리한 까치가 됩니다. 이러한 관계는 “사자보이즈” 속 진우의 역할과도 비슷하죠. 영리한 진우가 폭정의 귀마와 대치하는 이야기에서요.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중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더피와 수지는 전령이죠. 루미와 진우가 편지를 주고 받도록 도와주는 역할입니다. 둘의 역할은 전통적인 <작호도>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이 민화는 ’벽사’와 ‘길상’의 의미를 담아서 집에 붙여두는 그림이었는데요. 우선 호랑이는 재액과 흉한 것들, 삼재를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까치는 기다리던 소식을 물어다주는 길조의 역할을 하죠. 한 그림에서 ’벽사‘와 ’길상‘의 의미를 함께 담았죠.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는 ‘호랑이와 까치‘의 원 도상인 명나라의 그림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명나라에서는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의미로 까치와 표범이 나오는 <보희도(報喜圖)>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새해에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뜻의 문장인 ‘신년보희(新年報喜)’를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입니다. 이때 표범의 ’표(豹)’와 알린다는 뜻의 ‘보(報)‘가 비슷한 발음으로 나타나는 것을 통해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 도상이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들어오고, 조선의 스타일대로 변형되는 셈이었죠. 특히 조선에서는 표범과 호랑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호랑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더욱이 호랑이 하나로 자리잡았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작호도>의 유래의 한 가지 설이고, 조선에서 자생했다는 설도 있죠. 그러나 대체로 도상은 시대와 지리적 측면에서 변용된다는 점에서 ‘까치와 호랑이’는 조선의 전통적인 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더피와 수지가 루미와 진우 사이에서 기쁜 소식을 주고받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건 전통적인 역할을 아주 잘 가져온 사례라고 볼 수 있죠.
민화라는 장르
민화는 실용적인 회화입니다. 쓰임이 명확하죠. ’세화’는 새해를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집안의 평안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붙이는 그림이었습니다. 과거에나 현재나 화원들이 그리는 그림은 귀했죠.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청계천에서 그림을 그려서 파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민화 역시 활발하게 유통됩니다.
화원들이 그리고 양반들이 누리는 그림과 관련된 문화를 여러 사람이 누리게 된 것들이 ‘민화’입니다. 그 시대의 하위문화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이 민화의 호랑이와 까치가 살아남아 미국 애니메이션의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그림의 생명력은 이렇게나 독특하고 끈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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