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은/는 밤에 비닐봉지를 보고 강아지나 고양이로 착각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벽에 남은 얼룩을 보고 다른 동물이나 물건을 떠올린 적은요? 어떤 물체를 보고서 비슷한 것과 연관짓는 것은 뇌의 당연한 활동이에요. 뇌는 시각정보를 해석할 때 간접 체험, 직접 체험 등을 활용해 가장 유사한 것과 연관지어서 생각해요. 이러한 활동을 수행하는 뇌 영역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고 불러요. 2001년 마커스 레이클과 동료들이 처음 확인한 영역이죠. 이 영역에서는 상상력, 기억 회상과 밀접하게 작동하며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과 연관지어서 해석하는 자기 참조적 사고를 활용합니다.* 즉, 우리는 미술작품을 볼 때 자기를 참조합니다.
관람자의 몫(Beholder's Share)

현대미술은 작품에서 그치지 않죠. 관람자가 작품을 보고 해석을 시도할 때 작품은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습니다. 같은 이미지를 보더라도 A에게는 감동을 줄 수 있고 B에게는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할 수 있어요. 그리고 감동을 받더라도 그 이유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관람자는 작품을 보고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기참조적으로 이미지를 해석하기 때문이에요. 2014년 에드워드 베셀의 연구에 따르면 해석의 여지가 있는 추상화를 볼 때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발히 활성화됩니다.** 그래서 현대미술에서 추상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구상화에 비해 관람자의 해석이 끼어들 여지가 더 커지니까요.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보고 관람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작품이 완성된다는 개념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는 “감상자의 몫”이라는 개념을 제시해요. 완전한 형태가 아닌 이미지를 보고 감상자는 자신의 경험, 상상력, 기억 등을 동원해서 이미지를 완성해내요. 한편 이미지를 볼 때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요. 시각은 이미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감각이 아니라 뇌에서 이미지를 재현할 수 있도록 하는 감각입니다. 이때 착각이 끼어들죠. “우리가 ‘바깥’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사실 머릿속에서 구축한 현실의 재현으로, 스토리텔링 뇌에서 일어나는 창작의 결과”입니다. “뇌는 앞으로 어떤 광경이 펼쳐지고 어떤 소리가 들리고 어떤 느낌이 들지 예상한 다음 그 예상을 토대로 환각을 만들어”냅니다.***
병렬적 배치

국제갤러리 서울 한옥에서 열리고 있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전 ≪형태의 시학≫은 특히 “감상자의 몫”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병렬적으로 배치하죠. 그 병렬적 이미지 사이에서 뇌는 본능적으로 유사한 것들을 찾아서 연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뇌의 이야기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구조를 따”르죠. “뇌는 뒤죽박죽인 현실을 한 가지 사건이 다른 사건을 유발하는 단순한 논리로 재구성”하죠.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근간이며 뇌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메이플소프의 사진을 보며 관람자인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과관계를 생각해냅니다.
1942년에 태어난 1989년에 사망한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세대 별로 다르게 해석되죠. 하지만 병렬 배치를 통해서 큐레이터는 전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요. 인체 누드의 조형미와 꽃과 화분의 조형미를 배치하여 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도록 만들죠. 이로 인해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고전적으로 이상적인 조각상의 비율, 매트한 질감에서 나오는 회화적 물질성을 보여줍니다. 아름답게 표현한 누드는 그가 퀴어 커뮤니티의 사람들을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아름다운 피사체로 거듭나도록 만드는 효과도 내죠.
남성 누드 작업 자체가 금기였던 시대에 메이플소프는 흑인 남성의 누드를 촬영합니다. 이 자체가 터부를 깨트리는 작업이었죠. 2026년 관람자가 보는 메이플소프의 작업은 터부시 되던 것, 사회적 소수자를 피사체로 삼았다는 것 보다 조형성이 더 먼저 강조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아트선재센터)같은 전시를 통해 퀴어 미술 기관 전시의 작품들을 더 접했기 때문이죠. 시대가 변하고 퇴적된 경험이 달라지면서 작가의 작업의 의미도 점차 달라집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그럼에도 작가를 이해했을 때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죠. 로버트 메이플소프(b.1946-1989)는 파격적인 흑백 사진 작업을 했습니다. 그에게 사진은 “조각을 만드는 완벽한 방법”이었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고전적인 조형성을 사진으로 구현하죠. 스튜디오에서 절제된 조명으로 빛과 그림자를 치밀하게 조절합니다. 회화는 비례감에 맞추어 스스로를 통제하는 작업이라면 그에게 사진은 피사체를 고전 비례에 맞추어 통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서 피사체를 아름다운 조각으로 만드는 일은 그가 속해있던 퀴어 커뮤니티를 아름다운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70~80년대 미국 뉴욕에 살았던 친구들의 포트레이트를 촬영했죠. 당시 그의 친구들은 음악가, 예술가, 포르노 배우, 게이같이 다양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그는 친구들을 정교하게 계산된 환경에서 촬영하죠. 여전히 흑백으로요. 1970년대에는 미국에 컬러 사진이 미술 매체로 인정받으며 “뉴 컬러”가 시작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흑백이라는 절제된 컬러를 유지합니다. 이 시기에 낸 골딘(b.1953~)은 비슷한 시기 뉴욕에서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 700여장의 슬라이드 쇼로 만들죠. 그녀는 자신과 연인의 모습, 퀴어 친구들의 모습을 일기처럼 촬영했습니다. 그녀는 컬러 사진으로 촬영했죠. 1970~80년대 사진은 기존의 미술 매체의 권위에 도전하는 새로운 작업으로 부상하고 있었죠. 작가들은 매체, 피사체, 크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진을 실험적 작업으로 활용했습니다. 이 시기에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낸 골딘의 이미지를 병치시켜서 보면 아름다움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메이플소프는 사진을 통해 피사체를 이상화하고자 합니다. “실물을 그대로 담은 사진을 보면 현실 속에 있는 것처럼 실용적인 태도로 그것을 대하게 된다. 하지만 조각과 그림 같은 예술 작품은 대상을 어느 정도 이상화, 이미지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현실의 일부분이 아닌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메이플소프는 주광첸이 지적한 “실용적인 태도”를 극복해 “이미지화”된 피사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미지를 병치함으로써 그가 깨트린 금기의 아름다움이 관람객에게 와닿죠. 메이플소프의 사진을 본 구독자에게는 어떤 자기참조적 해석이 떠올랐나요? 그것이 아마도 당신의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김민재 리포터, <추상화 앞에서 당신의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더 사이언스 타임스≫, 2025-04-30.
**위의 기사.
***윌 스토, ≪이야기의 탄생≫, 문희경 역, 흐름출판, 2020, p.41.
****위의 책, p.77
*****주광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화진 역, 쌤앤파커스, 2018, p.39.
로버트 메이플소프, ≪형태의 시학≫
국제갤러리
2026.06.09 - 202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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