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사진을 얼마나 자주 찍으시나요? 저는 직업 때문에 사진과 아주 밀접하게 살고 있어요. SNS 콘텐츠를 만들고, 기사에 쓸 사진을 찍기도 하죠. 사진은 이제 대표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허물어진 매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오니, 다시금 현대미술의 분기점이 되는 “사진은 미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논쟁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 무엇보다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사진’이 있는데 ‘회화’는 어떻게 기록할까요?
인덱스 드로잉

갈라 포라스 김이 그리는 ‘인덱스 드로잉(Index drawing)’은 작가의 기준으로 사물을 분류하고 화면 안에 배치합니다. 사물을 재분류하고 배치하는 과정은 곧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에 있는 반가사유상 두 점을 볼 때, 불상의 미술사적 흐름에 맞추어서 반가사유상이 놓여져 있을 때 관람객이 받는 감동의 정도는 다르겠죠. 이러한 질서와 충돌을 만들어내는 것은 ‘창조’의 영역이죠.
‘인덱스 드로잉’은 다양한 충돌로 창조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개인전에 앞서 2024년 리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국보”는 갈라 포라스 김의 ‘인덱스 드로잉’의 재맥락화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국가유산은 건물부터 조각, 공예와 도예, 회화까지 다양한 매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유산들을 회화 안에 단순하게 기록합니다. 단순한 ‘인덱싱’입니다. 이를 통해 국가유산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가치, 미적 논쟁, 숫자의 서열화 논쟁 등을 벗겨냅니다. 관람객은 그러면 온전히 국가유산의 존재 자체에 몰입하게 되죠. 이러한 재맥락화 과정은 사진이 아니라 회화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즉, 왜곡이야 말로 회화가 가지는 특징과 힘이죠.
사진이 화질과 화면의 크기, 기술력으로 스펙타클의 권력을 행사할 때 회화는 왜곡을 통해 온전히 기록하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왜곡은 또한 창의적인 방법을 낳게 되죠. 사진이 매체적으로 다른 방향성을 찾아갈 때 회화는 그 안에 담기는 것들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찾아갑니다. 갈라 포라스 김의 작업에 따르면 회화는 기록화이자 세밀화이면서 동시에 창작물인 형태로 나아갑니다.
새로운 분류학적 회화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신호‘ 연작 5점을 비롯해 신작 수석 드로잉 6점이 공개되었습니다. 특히 ’인덱스 드로잉’인 수석 시리즈는 여전히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분류 체계에 대한 전복적 시도입니다. 수석은 모양(조형미), 돌 안에 새겨진 무늬 등으로 가치가 매겨지고 분류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 체계는 갈라 포라스 김의 세계에서는 힘을 잃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낸 체계 속으로 다양한 수석의 이미지를 가지고 와 새롭게 배열합니다. 이로써 관람객들은 한 화면 안에 배치된 수석들을 보면서 이 수석들이 배치된 이유와 수석의 모양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이는 병렬로 배치된 사물 사이에서 관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려고하는 사람의 지적 활동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 안의 수석의 관계에 실제 수석이라는 항이 하나 더 추가됩니다. 실제 수석이 전시된 것을 보면 드로잉 안에 그려진 수석과 전시된 수석 사이의 관계를 찾아내기 위해 관찰합니다. 하지만 수석이라는 것 외에는 드로잉과 전시된 수석 사이에 공통점은 없습니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공간 안에서 드로잉과 수석 간의 관계를 쫓아가죠. 즉, 국제갤러리 K1 전시실 안은 그러한 맥락과 관계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나 갈라 포라스 김의 회화는 이러한 관계성을 의도적으로 차단합니다. 전시실 가운데 있는 수석을 재현한 드로잉은 없죠. 그리고 둘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드로잉 속 수석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현실에 존재하는 객체를 재현한 회화가 아니라는 순간 회화는 ’레플리카’에서 ‘오리지널’이 됩니다. 관계가 생겼다가 끊어졌을 때 오히려 회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 강해집니다.
갈라 포라스 김의 드로잉은 회화가 세계를 왜곡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왜곡을 통한 관계의 단절이야 말로 회화가 가진 특징이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병렬적 배치를 통해 새로운 갈라 포라스 김만의 계보학이 탄생합니다. 일견 보르헤스적이죠. 보르헤스의 작품 <또 다른 심문들>에서 나오는 “중국 백과사전“에서 인용한 동물의 분류체계가 나오죠. 그 작품에 따르면 “동물이 a. 황제에게 속하는 것, b.향기로운 것, c.길들여진 것, d.식용 젖먹이 돼지, e.인어, f.신화에 나오는 것, g.풀려나 싸대는 개, h.지금의 분류에 포함된 것, I.미친 듯이 나부대는 것, j.수없이 많은 것, k.아주 가느다란 낙타털 붓으로 그린 것, l.기타, m.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것, n.멀리 파리처럼 보이는 것”으로 분류되다는 내용입니다. 갈라 포라스 김의 회화는 익숙한 분류체계가 아니라 새로운 분류법을 시도하고, 이것은 세계를 기록하는 또다른 방식입니다.
관점
사진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해상도를 높여줍니다. 회화는 세계를 분류하는 방식의 관점을 새롭게 제안하죠. 세계를 재현하는 두 이미지 장르는 점차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켜켜이 쌓아오고 있죠.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에게는 자신만의 계보학이 필요합니다. 갈라 포라스 김이 세계를 자신만의 기준으로 분류하듯이 말이죠. 이것이 곧 자신의 관점이자 취향이 됩니다.
전시 정보
갈라 포라스 김 개인전, <자연 형태를 담는 조건>
국제갤러리
2025년 9월 2일 ~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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