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자은/는 규칙을 잘 지키는 편인가요? 사회에서는 규칙을 잘 지켜야 하죠. 어려서부터 학교에서는 규칙을 지키는 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미술에서는 규칙도 하나의 재료로 사용해요. 미술은 규칙을 무너뜨리고 금기를 수용하죠. 그래서 미술관이라는 장소는 다양한 규범을 전복시킬 수 있는 실험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에너지가 미술관이라는 장소를 벗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질문 역시 영화를 통해 실험해봅니다. 영화 ≪백룸≫은 새로운 규범의 장소가 무한히 펼쳐졌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동희, 우한나 2인전인 ≪주름과 망루≫와 함께 세계에 대해 묻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영화 ≪백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한한 팝업

미술관은 팝업을 무한히 생성하는 공간이죠. 수장고에는 불후의 명작들을 보관합니다. 그리고 전시실에서는 새로운 전시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어요. 가벽을 세우고 그 위에 그림을 걸어둡니다. 이것은 미술이 가지는 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주죠. 미술 작품은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라는 한편 한정된 시간에만 전시될 수 있어요. 그리고 김동희의 작업은 이 양면성을 드러냅니다.
김동희 작가의 작품은 전시장 안에 건축물을 만들거나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전시가 끝나면 이 작품은 온전히 보존될 수 없죠. 분해되어서 철거되죠. 작가는 이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서 철거된 부자재들을 조각내어 소장하고 있었죠. 그리고 일민미술관의 릴레이 전시 ≪오프화이트≫의 2인전 ≪주름과 망루≫에서 미술관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미술관이라는 규칙은 무엇을 소장하고 무엇을 전시하는가? 온전한 작품이었던 것이 조각났을 때에도 여전히 작품으로 작동하는가? 이 질문은 앞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의 문제의식과 통하는 부분이 있죠.
이 문제의식은 인간 문명이 모두 팝업같다는 인식으로 이이집니다. 지구의 시간 선에서 인간의 건축물은 모두 팝업과 같죠. 서울역사박물관 외부 전시장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광화문의 파편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한 때에는 광화문으로 서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잘못된 복원이라는 과거를 보여주는 전시물로 존재하고 있죠. 모든 건축물은 사람들의 시간에서는 영원히 존재할 것 같죠. 하지만 지질학적 시간에서는 이 건축물은 언젠가 무너지고 지구의 일부로 환원됩니다.
김동희의 작품으로 비춰보면 미술관은 시간을 빠르게 움직이는 타임머신이 됩니다. 망루의 조각난 기둥은 여느 건축물의 기둥과 다르지 않죠.
스며드는 주름

조각은 단단하죠. 조각을 떠올렸을 때 대부분의 작품들은 금속과 돌로 만들어져 있어요. 이집트 석상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대리석 조각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죠. 청동기와 같은 유물들도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입니다. 나무로 만든 조각들은 썩어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죠. 시간을 견디지 못한 조각들은 사라졌죠. 그럼 반대로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들로 조각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우한나의 작업들은 천으로 만들어진 조각입니다. 단단한 형태를 이루지도 못하고 천은 삭아서 사라집니다. 미술관보다 먼저 사라지는 작품이라는 것은 도리어 미술관의 규칙의 대척점에 있죠. 미술관이 보존하고 싶다 하더라도 우한나의 작품은 온전히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낙수장>(2026)은 카펫과 스폰지, 재봉틀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스폰지는 실시간으로 부서지겠죠. 이 작품을 보존하고 다시 전시할 때 스폰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이 선택을 강제할 때 미술관의 규칙을 두고 고려해야만 하죠.
물처럼 흐르는 천은 공간에 스며듭니다. 우한나의 작업은 이처럼 장소의 틈새에 스며들어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기존의 표준이라고 생각했던 규칙들을 전복시킵니다. 우한나의 작업이 만드는 질문 뭉치들이 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답변을 요구하죠.
비정상성 테마파크

≪주름과 망루≫는 미술관이라는 규칙을 전복시키죠. 보존하고 전시하는 순환구조를 비틀어 버리죠.미술관은 안전한 실험실이 됩니다. 김동희를 통해 미술관 안에서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마주하죠. 우한나에게서는 작품의 시간을 실감하죠. 하지만 이 사건은 모두 미술관 안에서만 벌어집니다. 미술관 바깥은 여전히 익숙한 규칙대로 움직이죠. 규칙이 무너진 공간을 일상에서 마주치면 어떻게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실험이 바로 영화 ≪백룸≫입니다.
영화 ≪백룸≫은 기억을 재료로 삼아 무한히 증식하는 “경계 공간”입니다. 가구점 지하에 생긴 이 공간은 주인공으로 볼 수 있는 ”클락“의 기억으로 재구성 되어있죠. 모든게 섞여 있는 ”백룸“은 현실에 간섭하고 있죠. 괴생명체들은 ”백룸“에 들어온 사람들을 죽이죠. 현실의 규칙은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클락은 안락함을 느끼죠. 하지만 메리는 이 공간에서 공포를 느낍니다. 현실 세계가 둘에게 적응할 수 있는 공통의 공간이라면 ”백룸”은 새로운 규칙을 제안합니다. 이 안에서 느끼는 모든 이상함은 익숙한 규칙을 잃어버린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 ≪백룸≫ 속 ”경계 공간“은 비정상적으로 보이죠.
미술관은 일부러 규칙을 무시하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미술관은 현실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죠. 그래서 관객들은 그 안에서 안전하게 비정상성을 체험합니다. 출구로 나가면 다시 익숙하게 표준화된 공간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술관은 테마파크처럼 비정상성을 체험하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백룸“은 그 출구가 없는 비정상성의 공간이죠. 결과적으로 두 공간이 우리에게 하는 질문은 하나죠. ”지금 당신이 믿고 있는 정상이 과연 정상인가요?“
김동희, 우한나 2인전, ≪주름과 망루≫
2026.5.1 ~ 2026.7.12 까지
일민미술관
입장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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