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유독 조용했습니다. 주 초반에는 이렇다 할 일이 없어서 모니터만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죠. 속 편하게 월급루팡이나 하면 좋으련만, 마음 한구석이 괜히 찝찝합니다. 사실 일하는 중간에 이 보란더 뉴스레터를 끄적거리기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일이 없을 때는 왠지 모르게 눈치가 보여서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일이 몰아치고, 정신없이 일을 쳐내고 내 할 몫을 다 하고 나서야, 비로소 모니터에 뉴스레터 창을 당당하게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참 간사한 마음입니다. 투덜대며 일할 때는 언제고, 차라리 일이 몰아치니 시간도 빨리 가고 마음도 편해져 속이 다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퇴근 이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녁 시간을 쪼개 등록해 둔 운동도 가고, 대단한 자기계발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남들은 퇴근하고 러닝크루니 자기계발 모임이니 잘만 사니까요. 그런데 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까요. 술도 안 마시는데 피로만 가득해서 TV 리모컨을 의미 없이 돌리다 침대로 기어들어 가는 날이 허다합니다. 이쯤 되면 ‘내가 인생을 너무 대충, 무기력하게 살고 있나’ 하는 죄책감이 듭니다. 클릭 한 번이면 온갖 성공 신화와 화려한 결과물이 쏟아지는 인스타그램을 보면 조급함은 배가 됩니다. 다들 저렇게 치열하게 무언가를 해내는데,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철학가 한병철은 현대 사회가 점점 더 많은 영역을 성과와 효율의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었으며, 인간 스스로도 그 기준을 내면화하게 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웃풋을 내지 못하면 그 시간은 낙오나 낭비로 취급받는 세상입니다. 낮에는 월급루팡 같아 불안하고, 밤에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 해 자책하는 이 굴레는 결국 우리가 세상의 조급증에 전염되어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낮에 회사에서 온 에너지를 쥐어짜내 살아남은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성과 아닐까요? 일이 없으면 없는 대로 눈치 보느라 에너지를 쓰고,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정신을 갈아 넣었으니 퇴근 후에 방전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체의 신비입니다.
애초에 우리는 매일 밤 대단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 텐데 말이죠. 낮에는 밥벌이를 하고, 밤에는 지친 몸을 누이고 멍하니 쉬는 것. 이 뻔하고 지루한 반복이야말로 인스타식 결과주의 세상에서 나를 지켜내는 가장 정직한 리추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녁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나를 너무 자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헬스장 회원권만 끊어놓고 가지 못해도, 늘지 않는 취미 생활에 현타가 와도, 그냥 그 한결같은 민낯을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쓰고 보니 너무 자기합리화인가 싶기도 하지만, 안 그러면 어쩌겠어요. 이미 방전된 몸을 억지로 쥐어짜는 것보단, 차라리 이렇게 뻔뻔하게 마음이라도 편한 게 낫지 싶습니다.
매주 일요일 아침 배달되는 이 작은 텍스트를 쓰는 이유도 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저처럼 지상의 소음에 방전된 누군가에게, 잠시 고도를 높여 숨을 고를 수 있는 안전한 도피처를 건네고 싶었거든요. 이 메일함 속의 덤덤한 위로가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모니터 너머가 아니라 여러분이 언제든 찾아와 지친 몸을 뉘일 수 있는 진짜 물리적인 공간으로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도 슬쩍 꾸어봅니다.
대단한 갓생러가 되지 않더라도, 내 속도대로 하루를 버텨내고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요.
🎙️ 부기장의 한마디
기장님의 무기력, 어쩐지 요즘 비행기가 조용하다 싶었습니다. (우리 비행은 하고 있는 거죠?)
문득 우리는 왜 이렇게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정말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예전의 부모님 세대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TV나 라디오가 고장 나면 직접 뜯어보고, 수도꼭지가 새면 공구를 꺼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을 밥을 짓고, 김치를 담그고, 철마다 나오는 것들을 준비하셨어요. 그러면서 이웃을 챙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삶은 끊임없이 서로 개입하고 돌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고장은 AS센터가 해결하고, 식사는 반찬가게와 배달앱이 준비하며, 육아와 교육의 상당 부분은 전문기관이 맡습니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삶의 많은 과업들을 외부로 넘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대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한병철이 말한 '성과'와 '효율'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바로 '외주화'입니다. 외주화는 단순히 노동을 대신 맡기는 일이 아닙니다. 책임과 돌봄, 문제 해결의 과정까지 밖으로 내보내는 일입니다. 해야 할 일들이 줄어들수록 우리는 자유로워졌지만, 역설적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더 고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무기력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지나치게 줄어든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의 작은 목표는 '웬만하면 스스로 하기'입니다. 직접 고치고, 직접 만들고, 직접 해결해보는 것.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방식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가장 사소한 일들을 자기 손으로 해보는 데서 다시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보란더의 시선
부기장님의 뼈 때리는 말에 변명을 보태며
"무기력은 스스로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든 외주화의 결과"라는 부기장님의 글을 읽으며 찔린 구석이 많았습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이번 주 새로 발견한 여행 유튜브 채널 ‘히시월드(Hisi World)’를 침대에 누워 멍하니 보면서, ‘나 대신 누군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마저 외주를 주어 대리 만족하고 있었으니까요.
자극적인 자막 없이, 낯선 풍경 속에서 자기만의 여정을 묵묵하고 열심히 채워 나가는 주인공들을 랜선으로 지켜보는 일은 분명 달콤한 도피이자 해방감을 줍니다. 하지만 부기장님의 말대로, 언제까지고 남의 삶을 외주 받아 구경만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오늘 밤엔 현실의 피로를 이 잔잔한 영상으로 잠시 달래되, 내일은 배달 앱을 켜는 대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내 손으로 직접 차려 먹는 밥상부터 개입해 보려 합니다. 여러분의 '스스로 하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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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
저도 부기장님의 의견에 뼈를 맞았네요! ㅎㅎ 맞아요. 많은 일들에 전문가가 생기며 세분화 되다보니 나는 시간이 많이 남게 되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인스타, 유튜브 등에서 보여지는 다른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리만족 또는 휴식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도 있고,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사람들도 있지요. 앞으로 로봇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면 시간은 더 남게 될 텐데.. 계획이라도 슬쩍 세워 놓던가, 아님 내가 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이라도 해봐야 겠네요 ㅎㅎ 그런 의미에서 저의 이번 주 여유있는 시간의 '스스로 하기'는 '오이지 담그기'로 해야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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