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ANDER] 21호 : Know-where 다음의 질문

익숙한 방식이 사라진 자리에서 무엇을 물어야 할까

2026.08.30 |
from.
VOLANDER

 오랫동안 스탭 부서에 머물며 조직의 실적을 관리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화면이 빽빽해질 만큼 온갖 수식을 걸어두고, 실적 표를 한눈에 보기 좋게 다듬는 게 꽤 중요한 일이었죠.

 입사 3년 차쯤 되었을 때일까요. 데이터 시각화 프로그램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화려한 그래프와 실시간 차트가 등장했지만, 정작 그 장표를 봐야 할 직책자들이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으면서 결국 기존의 엑셀 보고서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AI의 등장은 확실히 다릅니다. 새로운 기술을 업무에 적응시키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분위기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릅니다. 저 역시 그동안의 엑셀 장표들을 자동화로 만들기 위해 직접 써보고, 모르는 것은 다시 찾아보고 물어가며 간신히 따라가며 오랜만에 다시 '신입'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팀의 2년 차들과 이야기해 봐도, 본인들이 입사할 당시와 비교해 불과 1~2년 만에 일하는 방식과 환경이 너무 빨리 달라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예전에 처음 데이터 추출을 가르쳐주었던 개발자가 해준 말이 떠오릅니다.

첨부 이미지

 “데이터를 뽑는 일은 Know-how가 아니라 Know-where다.”

 어떤 수식을 쓸 줄 아느냐보다, 어떤 데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뜻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 ‘where’마저 AI가 찾아줍니다. 원하는 데이터를 설명하면 필요한 자료를 찾아주고, 표를 만들어주고, 수식까지 제안합니다.

 앞으로 들어올 신입들은 제가 몇 년 동안 반복하며 익혔던 그 과정을 처음부터 경험하지는 않겠구나 싶더군요. 틀린 숫자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엑셀 수식을 한참 들여다보고, 데이터의 출처를 찾느라 여기저기 물어보고, 겨우 만든 표를 다시 수정하던 그 시간 대신 제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경험을 하겠죠.

 생각해 보면 그 과정이 꼭 효율적이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귀찮고 오래 걸렸고, 때로는 ‘내가 왜 이런 일까지 하고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돌아보면 그 지루한 과정을 통과하며 자연스럽게 익힌 감각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어떤 숫자가 이상한지 알아차리고, 필요한 질문을 누구에게 던져야 하는지 아는 눈치, 그리고 내가 만든 결과물을 읽을 상대방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배려 같은 것들입니다.

 수식을 짜고 표를 가다듬는 수고로움 속에는 일과 동료를 대하는 개인의 정성과 태도가 스며있기도 했죠. 하지만 모든 과정이 AI로 자동화되고 나면, 감정이 없는 기술 앞에서 그 ‘태도’라는 영역은 과연 어디로 사라지게 되는 걸까요.

 Know-how의 시대를 지나 Know-where의 시대를 건너온 지금, AI가 데이터의 위치마저 단숨에 찾아주는 세상에서 우리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아는 ‘Know-what’일까요, 아니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본질을 묻는 ‘Know-why’일까요.

 물론 지금 새로 익히는 기술이 앞으로의 제 커리어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무언가가 등장해 지금 배운 것들을 덮어버릴지도... 그래도 그저 헤매면서라도 적응해 볼 수밖에 없겠죠.

 익숙했던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흐름에 발을 들이는 일은 늘 낯설고 서툽니다. 무엇보다, 조금 피곤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오래 일한 사람에게도, 다시 신입이 되어 스스로에게 다음 질문을 던져볼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기술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요즘, 자신만의 다음 질문(Know-?)을 어디서 찾고 계신가요?

첨부 이미지

🎙️부기장의 한마디

  기장님의 말씀 중에서는 특히 ‘Know-Why’에 가장 공감이 갑니다.

 저는 지금껏 많은 기획서를 써오는 삶을 살았습니다. 기획서의 구조는 사실 단순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고, 그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방향을 정하는 문서입니다.

 돌이켜보면 최근 제가 쓴 기획서 중에도 방향을 잃은 것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냥 아무 말의 대잔치라고 할까요? 그럴듯한 단어들을 엮고, 새로운 개념을 붙이고, 멋진 도표를 만들다 보면 그것만으로 뭔가 대단한 전략이 만들어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요즘 AI가 바로 그런 아무말 기획서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어 몇 개를 가지고 그럴듯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AI는 정말 탁월합니다. 어쩌면 웬만한 사람이 만드는 기획서보다 훨씬 빠르고, 그럴듯하게 만들어냅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선명해집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묻는 것, 정말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 수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할지 판단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을 끝까지 설명할 수 있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어느 순간 잃어버렸던 ‘Know-Why’가 아닐까 싶습니다.

 AI가 새로운 무언가를 가르쳐 준다기보다, 우리가 본래 고민했어야 할 것을 다시 고민하게 만드는 시대가 아닐지.

 재미있는 시대입니다.

🔭 보란더의 시선

  AI를 써오면서 저 나름대로 조금씩 쌓이는 Know-how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건 바로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라는 사실입니다.

 AI는 늘 무엇이든 다 안다는 듯 만능인 척 굴지만, 정작 제가 던지는 질문이 형편없으면 돌아오는 대답 역시 그저 번지르르한 글자 조합일 뿐이라는 거죠. 빠르게 변하는 AI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결국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공부시키고 다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인간의 글에 감탄하며 읽고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하며 이번 21호를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입니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사람과 삶을 향한 깊은 시선과 온도가 스며 있어, 가짜가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진짜 ‘인간의 태도와 언어’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번지르르한 껍데기 대신 정성스러운 알맹이를 채우고 싶을 때, 여러분께도 작은 울림이 되길 바랍니다.

첨부 이미지

💌 '보란더' 구독하기 : https://maily.so/volander

📧 '보란더' 관련문의 : rrpptkd@naver.com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VOLANDER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VOLANDER

지상의 소음이 지겨울 때, 잠시 고도를 높여 바라본 것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대표번호: 070-8027-1409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