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알 것 같은데...

하지만 알 수 없었던 우리의 캠핑.

2025.04.30 | 조회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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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 실전편

2025 세계를 떠도는 야채빵(메진,빵돌)의 여행기

5년 전 어느 날 아침 6시. PT를 받다가 헛구역질하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말 그대로 힘들어서 토할뻔한 셈이다. 간신히 돌아온 내게 강사님이 해준 위로가 꽤나 좀… 그랬다.

"회원님, 다음에 한 번 더 하면 괜찮을 거예요"

이틀 뒤, 같은 프로그램을 무사히 소화했으나 해냈다는 기쁨보다 강사님 말대로 된 것이 맘에 안 들었다.

경치가 좋은 곳이면 언제 어디서든 멈출 수 있었다.
경치가 좋은 곳이면 언제 어디서든 멈출 수 있었다.

 캠핑도 비슷했다. 우리의 처음은 필요한 물건을 하나 찾으려고 복작복작한 캠퍼벤의 모든 서랍을 그것도 여러 번 뒤지기 일쑤였고, 하루라도 제대로 씻지 못할 때면 주위의 모든 안 좋은 냄새가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뉴질랜드의 남섬을 돌았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우리는 웰링턴에서 하우스 시팅을 했다. 웰링턴 하우스 시팅은 넓은 집, 푹신하고 내 키보다 큰 침대, 따뜻한 샤워라는 캠퍼에게 분에 넘치는 환경을 제공했다. 안락한 환경에 푹 젖은 그와 나는 웰링턴 일정 대부분을 취소하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6일을 보내고 캠퍼로 돌아가야 할 때 우리는 다시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마치 뉴질랜드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캠퍼 사상을 잃은 정치범 같았달까. 허나 기우 였다. 두 달을 캠핑과 트랙킹을 하며 아프기만 한 것 같았던 우리의 손과 발에도 굳은살 비스므레 한 것이 박힐락 말락 하던 차였다. 다음 여정, 뉴질랜드 북섬에서 가장 높은 타라나키산 일정을 준비할 때쯤엔 대충 각이 나왔다. 어느 경로를 따라 어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지 “Gaspy” 앱으로 찾고, 어느 캠핑장을 이용할지 “Ranker” 앱으로 확인하고, 수영보다는 샤워에 목적이 더 강해진, 동네의 좋은 수영장을 찾는 그런것들에 꽤나 익숙해졌다. 만약 그 지역 기름값이 비싸다면 리터당 6센트 할인 쿠폰을 구매 영수증과 함께 제공하는 Newworld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 역시 계획에 포함됐다. (어디에서 커피를 마시고 빵을 살지는 이미 준비돼있었다) 그와 나는 조금씩이나마 나름의 캠핑의 방향과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뭔가를 고치는 것에는 서투르기만 했다.
뭔가를 고치는 것에는 서투르기만 했다.

 우리의 트랙킹 체력과 속도가 리뷰를 남기는 사람들과 차이가 난다는 것마저 몸으로 깨우친 그와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내몰지 않았다. 트랙의 안내 책자가 6~8시간 정도 소요된다 말하면 우리는 8시간을 준비했고, 어떤 사람은 하루 또 어떤 사람은 이틀이 걸렸다고 하면 우리는 이틀을 준비했다. 캠핑 초반이었다면 주저 없이 타라나키산 정상을 향했겠지만, 객관화 혹은 주제 파악이 끝난 그와 나는 정상의 성취감보다는 우리의 체력과 일정에 맞는 Poukai트랙을 선택했다. 우리는 이전 Great walks의 트랙킹처럼 사나흘 동안 먹고 입을 것들을 짊어질 필요가 없었다. 오늘 마실 물과 간식만 챙긴 가방은 부피가 작고 무게는 가벼웠다. 덕분에 걸음의 난이도는 차원이 다르게 쉬웠다. 주위 풍경이 익숙해질 때쯤 타라나키산 정상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고 인생샷을 찍을 수 있다는 ‘Reflective tarn’에 다다랐다. 물에 반사되는 타라나키산 정상을 보고 기록하기 위해 작은 호수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 역시 빠질 수 없었고 인생샷을 건지고자 먹구름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한참 사진을 찍었다. 트랙을 내려와서는 많은 것들이 수월했다. 좋은 날씨 아래에서 뉴플리머스의 야외 수영장을 즐기고 후기가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고 미리 점찍어둔 무료 캠핑장에서 오늘 내 한 몸 뉠 자리를 찾아내면 하루가 꽉 찼다.

사진 맛집 'Reflective tarn'
사진 맛집 'Reflective tarn'

 물론 스스로의 객관화에 완벽히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로토루아에서 MTB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두 개의 호수를 따라 풍경을 즐길 수 있으며 난이도가 낮은(Grade 1~2, 누구나 가능한 코스) Whakarewarewa Forest Loop Trail을 선택했다. 잘 정돈된 산길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며 반짝이는 호수를 즐기는 너와 나, 우리는 이미 취해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빽빽한 나무 사이사이 구불구불한 길, 기어를 아무리 바꿔도 다리가 터질듯한 오르막과 브레이크를 잡아도 미끄러지기 일쑤인 내리막의 반복이었다. 상상에 취한 상태에서 대략 네시간쯤 걸린다는 안내를 보며 우리는 시간이 남을 경우 어떤 트랙을 더 가볼 것인가를 고민했으나 허사였다.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에도 절반에 다다르지 못했다. 다른 가게와 달리 우리가 이용한 자전거 대여점은 트랙의 중간에 또 다른 지점이 있었다. 또 다른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얻은 메시지는 아주 명확했다. ‘그만두자’ 그곳을 지나 원점까지 돌아가려 했다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뿐더러 이미 아프다 소리칠 기운마저 잃은 내 엉덩이는 어느 높이 솟은 나무에 걸어두고 오는 게 나은 지경이었다. 대여점에 뛰어들어 간단하게 하나만 물었다. ‘Can I quit? (그만둬도 돼?)’ 다행히도 가능했다. 다만 반납 예정 시간 남았고 사람들이 주변 공원에서 너무나도 행복하게 자전거를 타고 있었기에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린이 코스’를 한 바퀴 더 돌기로 했다. (엉덩이야 찐막이야) 그러나 어떻게 된 것이 어린이 코스에서마저 허덕였다. 그리고 서너 살 정도의 꼬마와 그의 아버지가 우리를 가볍게 추월했다. 그 뒤로 두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행복하게 추월했다. 즉 내 자전거 실력은 뉴질랜드 어린이 수준에도 미치지 못함을 확인하고는 자전거를 반납했다. 그래. 역시 이래서 뭐든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구나.

'포기' 3km 전.
'포기' 3km 전.

 다행히 시련은(?) 거기까지였고 MTB자전거 이후 로토루아를 잘 즐겼다. 호숫가 전망과 밤하늘의 별을 즐길 수 있는 온천, 동네 공원에서 즐길 수 있는 온천 족욕, 약간의 맥주 그리고 캠핑 초반이라면 하지 않았을 무단 캠핑. (캠핑을 위해 별도 구분된 주차 지역 외에서 캠퍼벤을 주차하고 잠을 자는 경우에는 최대 800 뉴질랜드 달러까지 벌금이 나온다) 이른 단속을 피해 아침 7시에 들른 카페, 그리고 뉴질랜드 북섬의 동쪽 해안을 따라 여름의 끝자락을 즐기며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오클랜드로 향했다. 아직 모르는 것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은 우리가 이 여행의 시작점이었던 오클랜드로 돌아간다는 것은 첫 번째 여정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처리해야 할 큰 일, 캠퍼벤을 팔아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는 우리가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수월하게 일이 해결될 거라 믿었다, 아니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to be continued..(커쥬오마걸-)

걸어놓은 수영복, 냄비와 프렌치프레스, 아주 캠퍼 답다.
걸어놓은 수영복, 냄비와 프렌치프레스, 아주 캠퍼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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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쵸쵸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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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out 1 month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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