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흐를 줄만 알았던 내 인생의 물줄기는 제 스스로 수문을 닫고 멈춰있다. 흘러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 닿으리라 믿었다.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게 취업인 줄 알았고, 승진인 줄 알았고, 이직인 줄 알았다. 아쉽게도 무엇하나 종착점은 아니었다. 돌이켜보자니 기차 속에서 보는 풍경처럼 빠르게 지나가기만 했다. 남은 게 없음에 아쉬웠다. 지금에서야, 지금부터라도 잘 담아두려 한다. 어떻게 멈춰 섰는데 말이다.
2.
‘캡틴 필립스(Captain Philips)’, ‘와일드(Wild)’, 그리고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yness)’ 영화 세 편을 봤다. 보는 내내 속으로 ’제발… 이제 그만 괴롭혀…’ 되뇌었다.
(캡틴 필립스)해적의 위협을 받는 선장, (와일드) 과거의 자신을 극복하려는 사람, (행복을 찾아서) 가난이 오늘을 보장할 수 없는 사람.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를 일렁인 생각이자 질문은 “나였다면?”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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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이어 나가며 근래 나는 위기를 느꼈다. 회사는 더 이상 새로운 자극보다는 지루한 일상이 됐다. 빵과 커피를 먹기 위한 수단이 됐다. 강의실에서 배운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설의 ‘자아실현 욕구’ 따위는 실현되지 못했다. 드라마 ‘미생’ 마지막 부분에 홀로 남은 김 대리의 대사. “재미없네.” 딱 그렇게 됐다. 김 대리처럼 사표를 던질 수 없는 나는 그렇게 재미없게 계속 회사에 다녔다. 첫 직장의 위기에서는 이직할 수 있었던 반면, 이제는 새로운 것보다 이전을 답습하는 아저씨가 됐다. 재미없는 아저씨가 됐다.
4.
세 영화의 세 사람이 위기의 한가운데서 선택한 방법은 (캡틴필립스) 스스로 인질이 되거나, (와일드) 4,800km의 PCT 트랙을 걷거나, (행복을 찾아서) 새 직업의 인턴이 되는 것이었다. 덕분에 제각기 위기의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들의 출구는 들어온 방향이 아니라 깊은 곳에 있었고 각자의 방법으로 위기를 빠져나온다.
5.
나는 잠시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이 선택의 방향이 내가 마주한 위기의 출구와 만나는지 모른다. 그리고 잠시 멈춰 서는 것인지 아니면 세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나아가려는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휴직과 여행의 결말이 영화 같지는 않을 것이다. 주어진 여행의 시간이 다하면 부여받은 자리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참 다행이라 여기는 것은 몇 줄의 규정에 시비를 가리고 얽매이기보다는 지도를 펴고 어디로 향할지 고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지금 먹는 빵이 어떤 색, 어떤 맛이며 어제 먹은 것과는 무엇이 다른지 고민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내일은 그 집 빵을 먹자) 반대편 운전자에게 인사를 건넬 여유다. 그리운 이들이 생기면 어떤 말을 엽서에 눌러 담을 지 고민하는 순간이다. 이달의 월세와 이자와 관리비의 출금 걱정보다 돌아가서 또 벌면 되지 싶은 생각이다. 어떤 글을 써볼지 고민하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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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쵸언니
”내가 지금 먹는 빵이 어떤 색, 어떤 맛이며 어제 먹은 것과는 무엇이 다른지 고민한다는 점이다.“ >> 약간 로댕의 생각하는 빵돌 느낌으로 변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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