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알못이 저 맘대로 말하는 와인이야기

이름하여 알(지도 못하는 게) 쓸(데 없이) 신(나서 떠드는) 잡(소리..?)

2025.03.27 | 조회 96 |
0
|
역마살 실전편의 프로필 이미지

역마살 실전편

2025 세계를 떠도는 야채빵(메진,빵돌)의 여행기

스물네 살의 여름.

 여름이면 즐겨 마땅한 포도를 먹은 저녁.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 두드러기와 함께 포도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를 가지고 태어나도 추후에 발현될 수 있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었고(뚜레쥬르 모카 크림빵의 건포도와 엄마가 챙겨 먹으라고 사준 하루 견과의 건포도를 먹고는 시야가 흐려지는 알레르기 반응) 포도와는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으로 정리했다.

 2019년 일본 나고야 여행을 준비하며 야구장외에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알 수 없는 사고의 흐름으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는지 찾아봤다. L AUBERGE L'ILL(오베르쥬드릴, 당시 미슐랭3스타)을 찾아냈고 생애 첫 파인다이닝을 접했다. 본 건 많아서 맹물만 마실 수 없었던 나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사고의 흐름으로 샴페인을 주문했다. 나는 샴페인이 포도로 만들어진 줄 몰랐다. (심지어 코스에 포함되지 않아 추가 요금을 지불했다. 어쩐지 연미복 입은 아저씨가 정성스레 따라 주더라니) 한 잔을 잘 마셨고 아무 일 없이 기껍게 여행을 즐기고 돌아왔다.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메진은 생각했다.'샴페인을?! 포도 알레르기? 이 새끼 구라 같은데?' 그렇게 메진의 작년 생일, 내 손으로 예약한 와인바에 갔고 소믈리에조차도 이상하게 느낀 알레르기 이야기에 포도 껍질 성분이 들어있지 않은 화이트 샴페인을 마셔보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메진의 취향을 따라 뉴질랜드 말보로(Marlborough) 지역의 소비뇽블랑(Sauvignon Blanc) 품종을 주로 마시며 와인이라는 신대륙에 안착했다. 내 작은 와인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한 말보로 소비뇽블랑, 그 와인의 산지를 스쳐 간 이야기를 와인 잘 모르는 와알못이 제 멋대로 전한다.

 

1. Forrest

Forrest의 좌석들은 빈백이 많았다. 
Forrest의 좌석들은 빈백이 많았다. 

 말보로지역의 포도밭(Vineyard)과 와인 양조장들은 블레넘(Blenheim)과 렌윅(Renwick)이라는 작은 도시 주변에 모여있다. 처음 이 지역을 지날 때 일정상 시간이 부족했던 메진과 나는 캠핑장에서 가장 가까운 와이너리를 방문하기로 했고, 'Forrest'였다. 방문했던 일요일은 여러 종류의 와인을 조금씩 주는 방식의 테이스팅 메뉴 주문은 어려웠다. 그러나 운 좋게도 매니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와인을 맛보고 주문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우리는 슈넹 블랑(Chenin blanc)이 가장 맘에 들어 주문했다. 여름 과일의 적절한 단맛과 신맛, 그리고 그 정도가 강하지 않은 가벼운 와인이었다. 이동 시간을 아끼고자 자전거를 대여해 달려온 여름날의 우리에게 딱 맞는 와인이었다. 또한 Forrest라는 이름의 걸맞은 와이너리의 풍경은 덤이었다.

'덤' 
'덤' 

 

2. Framingham

Framingham 입구
Framingham 입구

 대다수 와이너리는 오후 네 시 이전에 문을 닫는다. 시간을 아껴 한 잔이라도 더 마셔야 했기에 Forrest 지근 거리의 와이너리를 골랐고, 'Framingham'이었다. 나는 화이트 와인 베이스의 Summer tasting, 메진은 레드 와인을 포함된 Textured tasting을 골랐다. 그리고 내(짧디짧은) 와인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다.(세상에..)샤도네이(Chardonnay)였다. 레몬, 자몽처럼 산도 높은 과일로 표현되는 소비뇽블랑과 달리 구운 빵의 고소함을 가진 샤도네이가 좋았다. (와인마저도 빵으로) 테이스팅이 끝나고 샤도네이 한잔을 추가 주문해서 마셨는데, 여전히 좋았다. 이후 나는 와인 가게에서 확인해야 할 품종이 두 개가 됐다.

뒤에 보이는 오토바이에는 타지 않았다. 
뒤에 보이는 오토바이에는 타지 않았다. 

 

3. Yealands

바다에 위치한 Yealands의 포도밭. 
바다에 위치한 Yealands의 포도밭. 

 한 달 후 다시 찾은 말보로, 메진이 한국에서부터 궁금해했던 와이너리 'Yealands' 에 갔다. 매니저 빌리가 큰 역할을 했다. 포도 품종과 만드는 방식만 간단히 설명하고 맛 설명은 지양했다. 대신 우리의 느낌을 알려달라며 그에 맞춰 시음의 방향을 잡았다. 수능과 토익 영어로 설명한 우리가(특히 내가) 가상했는지 정해진 테이스팅 구성 외에 별도의 와인을 맛볼 수 있게 해줬다. 와알못에게 인상 깊었던 경험은 Single Vynyard와 Single Block의 비교 시음이었다. 지역 내 여러 포도밭 중에 한 포도밭에서 생산한 포도로만 만든 와인과(Single vinyard) 그 밭 안에서도 세부 구역의 포도로만 만든 와인(Single block)이 서로 다른 맛을 가진다는 것, 또 그것을 찾아내고 와인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 바닷가에 위치한 덕에 와인에 짠맛이 돌았고 바다내음이 와인을 완성했다. 그 특징의 절정은 피노 누아(Pinot noir)였다. 입안을 감아 도는 레드 와인과 바다 향은 알레르기 걱정을 잊게끔 했다. (사실 잊으면 안 됨) 매니저 빌리는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와인이라 알려줬고 21년 빈티지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더했다. 다시 그 말을 생각하면 몇 병 더 살 걸 후회가 든다.

Babydoll은 Yealands 산하 브랜드라는 걸 알았다.
Babydoll은 Yealands 산하 브랜드라는 걸 알았다.

 

4. Wairau

설레지 않을 수 없는 입구
설레지 않을 수 없는 입구

 처음 뉴질랜드에서 사서 마신 와인. Wairau 소비뇽 블랑이었다.(약 13,000원) 산도 높은 레몬, 자몽 맛이 적절한 이 와인은 저녁 식사에 곁들이기 좋았다. 메진과 나는 뉴질랜드에서 처음 마신 와인이라는 의미를 담아 Wairau를 가기로 했다. 'No. 11'이라는 식당이 함께 영업하고 있기에 점심을 먹으며 와인 시음을 더 했다. Wairau는 뉴질랜드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포도를 재배해서 다양한 와인을 만든다. 나는 알바리노, 비오니에, 그리너 벨트리너, 게뷔르츠트라미너(발음을 세 번 씩 물어봤는데 아직도 안된다) 로 구성된 'Aromatic and Fragrant'를 시음했다. 이것은 와인의 다음 챕터를 읽는 것 같았다. 뭐 물론 등장인물 A가 이랬던가 저랬던가를 되짚기 위해 지나간 챕터를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도 동일했다. 참치회와 치즈를 곁들인 수박 샐러드는 압권이었고 도리어 와인의 특색이 요리를 뛰어넘지 못한 건 아쉬웠다. 그럼에도 폭넓은 와인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건 Wairau의 선명한 장점이다.

인생에서 가장 잘 먹은 수박(사실 수박 싫어함)
인생에서 가장 잘 먹은 수박(사실 수박 싫어함)

 

5. Huia

다른 곳과 구분되는 편안함의 Huia입구였다. 
다른 곳과 구분되는 편안함의 Huia입구였다. 

 와인 투어용 자전거 대여점 아저씨, Yealands의 매니저 빌리가 추천한 와이너리 'Huia'. Welcome drink로 나온 Brut Rose부터 반했다. 단맛이 절제된 드라이한 와인은 와알못에게 조차 부드럽게 다가왔다. 할 수 있는 말은 "맛있다" 뿐이었다. 이곳 시음의 특징은 'Aromatic of the day' 와인이 그날그날 바뀐다는 점이다. 우리는 로제(Rose)와 비오니에(Viognier) 중에 선택할 수 있었고 금방 다녀온 Wairau와의 비교를 위해 둘 다 비오니에를 골랐지만, Brut Rose에 반한 메진은 다른 로제를 마셔볼 걸 후회했다. 마스코트(?)인 네 마리의 닭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감상하며 즐기는 차분하고 따사로운 시음이었다.

어쩌면 둘 다 샀어야..
어쩌면 둘 다 샀어야..

 

6. Fromm

비싼 자리값을 치룬 것 같다. 
비싼 자리값을 치룬 것 같다. 

 마지막 날. 일정이 허용하는 와이너리는 단 한 곳. 우리는 와인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할 곳을 찾았다. Fromm은 이 지역의 주된 품종인 소비뇽블랑이 아닌 다른 품종의 레드와인을 주력으로 삼는다. 와인 캐스크가 보이는 가장 안쪽 테이블을 배정받았을 때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윽고 다른 어떤 테이블도 우리 주변에 배정되지 않고, 가장 먼저 왔음에도 서빙이 늦어지는 걸 느끼며 의심했다. 인종차별이다. 여기까지다.

 

여행 기간 동안 7군데 와이너리를 8번 들렀다. (Forrest를 두 번) 모든 집의 장맛이 다른 것처럼, 모든 집의 김치 맛이 다른 것처럼, 각각의 다름을 찾아보고 나를 맞춰 나가는 과정은 즐거웠다. 덕분에 샤도네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떤 레드가 맛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모든 와인 투어를 정리하면서 크게 깨달았다. 

"돈 쓰는 취미가 또 늘어났구나"

신에게는 12병의 와인이.. 
신에게는 12병의 와인이.. 

 * 가장 사랑한, 이 곳에서 언급하지 않은 와이너리 한 곳의 얘기는 다른 편에서 정리할 예정입니다.

사실 두 병 비워서 남은 게 열두병.
사실 두 병 비워서 남은 게 열두병.

---------------------------------------------

유료회원 월 구독료 : 4천원(optional)

여러분의 구독료는 빵 구매에 큰 도움이 됩니다.

월 구독료 보내실 곳 : 신한 110-436-024680 김혜진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역마살 실전편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역마살 실전편

2025 세계를 떠도는 야채빵(메진,빵돌)의 여행기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뉴스레터 광고 문의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