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아빠아빠 나 키. 키."
예닐곱살쯤되는 아이가 차키를 달라고 조른다. 아버지는 익숙하다는 듯 호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건낸다. 아이는 골목에 세워진 차에 올라타 조심스레 시동을 건다. 그리고 아빠처럼 핸들을 잡고 이리 저리 돌려본다. 기어도 넣어본다. 철컥하는 기어 소리가 무섭기도 또 신기하기도 그리고 운전하는 아빠의 모습과 조금은 가까워져 기쁘다. 기어의 차가운 마찰음은 오래도록 뭉근하게 끓여진 운전에 대한 내 첫번째 기억이다.
이번 여행의 예상가능했던 어려움 중 하나는 운전이었다. 도로의 진행방향과 운전석의 위치가 반대라는 점은 2년전 뉴질랜드 여행에서 느껴본 바가 있었으나, 문제는 수동 기어였다. 우리의 여행계획은 캠퍼밴을 타고 뉴질랜드를 일주하는 것이고, 우리가 구매할 캠퍼밴은 2000년대 초중반에 생산된 승합차를 개조한 형태였기에 대부분 수동기어를 갖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첫번째 기억과 달리 나는 2종 자동면허로만 살아왔기에 역시나 양탄자 2종 자동 면허만 갖고 있던 그와 나는 급히 1종 보통 면허를 땄고 영문면허증을 발급했다. 서류적으로 문제는 사라졌다만 도로주행 연수 이후 우리의 첫 실전이 뉴질랜드 도로위가 된다는 건 가늠조차 어려운 문제였다.
도로의 진행방향과 운전석의 위치만 다른 것이 아니다. 깜빡이는 오른손으로 기어와 핸드브레이크는 왼손으로 조작해야 한다. 한국의 수동기어 1단은 오른손 기준으로 몸쪽으로 당기는 방향이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왼손 기준으로 몸에서 멀어지는 방향이다.
그리고 우리의 차는 2006년식 미쓰비시 승합차, 결코 나에게 많은 편의와 친절을 배풀 수 없는 친구였다. 나는 차량을 구매하려 진행한 테스트 드라이빙에서 판매자를 태우고 골목 한바퀴를 돌며 시동을 두 번 꺼먹었다. 이후 숙소의 주차장을 나가는 오르막에서 엔진은 다섯 번 쯤 꺼졌다. 울기직전이었다.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었다. 내가 따라하고 싶었던 아빠의 운전이 사실은 참 별로라고 말하던 엄마는 순간 보고 싶지 않았다. 메라딘*은 나를 달래고 진정시키고 내렸다가 타기를 반복하며 마치 한라산 성판악 정상 앞의 돌 계단 같았던 언덕을 넘어섰다.
*메라딘 = 메진 + 알라딘
캠퍼밴을 우리에게 팔았던 벤과 조지아는 "큰 도로에 나가면 쉬울거야, 그냥 5단 넣고 밟기만 하면 되잖아" 나를 위로했고, 그렇게 나는 첫 운전으로 고속도로까지 나갔다. 순탄할 것 같았던 고속도로 부근에 교통체증이 있었다. 문제는 교통 체증이 아니었다. 바로 수동기어였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위해서는 기어 변속을 계속 해줘야 했다. 내가 흘린 땀이 더워서 인지 긴장해서 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분간 할 정신머리가 없었다. 분기점을 빠져나가 고속도로 쪽으로 느리게 진입하다가 그만 또 시동이 꺼졌다. 고속도로에서 한 가운데서 시동이 꺼진 차를 봤을때 여러분의 반응이 어떨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다행히 뒷 차 운전자는 경적도 울리지 않고 기다려주셨고(절로 나오는 존댓말) 나는 무사히 고속 도로로 진입했다.
그렇게 242km를 이동해 오클랜드에서 와카마루까지 이동했다. 연습문제도 없이 실전문제를 풀며 우리는 약 800km를 이동해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에 닿았다.(어? 수도가 오클랜드아니야? 크라이스트처치아니야? 수근거림이 들린다만 웰링턴이다) 남섬으로 이동하기 위해 우리는 페리를 기다렸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운전으로 페리의 가파른 출입구를 오르는데 갑자기 모의고사 문제가 떴다.
"오늘 며칠이지? 19일이니까 19번, 29번 나와서 문제풀어봐" 라는 선생님의 음성이 들렸다. (오늘은 19일이었고 고3때 29번이었다) 나는 문제를 틀렸고 정지 후 언덕을 오르다 차가 뒤로 흘러내려 뒷차와 충돌직전까지 갔다. 또 한번 울기직전이었다. 다행히 근처에 있었던 페리의 작업자분들이 고임목을 설치해주셔서 무사히 올라올 수 있었다. 잠시 방심했다가 큰일날뻔한 셈이다.
지금은 페리를 타고 남섬으로 이동중이다. 일정을 고려해볼때 앞으로 두달여의 운전 환경이 편하지는 않을것이다. 사고가 나더라도 차량 보험 잘 들어놨으니 괜찮겠지 싶지만 그저 조심하고 안전하게 운전하고자 한다. (뉴질랜드는 차량 보험이 의무가 아니며, 사고 발생 시 사고 상대방의 피해만 보장하는 보험도 있다. 우리는 한국과 비슷한 형태의 차량 보험을 가입했다) 사고 없이 안전히 또 건강히 우리의 여정이 끝이 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메라딘이 운전 하는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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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너
어휴 보기만 해도 식은땀이 나네요ㅋㅋㅋ 뉴질랜드는 초보운전 스티커 없나요??ㅋㅋㅋㅋㅋ 안전운전 하시고 마지막까지 무사고로 여행 마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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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쵸언니
ㅎㅇㅌ... 그나저나 하늘을 보니 운전할 때 선그라스 필수이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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