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환(빵) 빵(성환)
오클랜드에서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시드니에서 메진의 친구 연과 남자 친구 알렉스가 왔음에도 온전히 그들과의 시간을 즐길 수 없었다. 두달 반을 함께 여행한 캠퍼밴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9일. 그 안에 캠퍼밴을 팔고, 친구들과 오클랜드를 즐기고, 그들과 같은 날 뉴질랜드를 떠나는 것이 당초의 목표였다. 우리는 캠퍼밴을 잘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그러길 바랐다. 캠퍼밴이 팔리지 않아서 힘들다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도 우리와는 다른 얘기라 생각했다. 아니 다르기를 바랐다. 우리는 첫 판매 가격을 13,700뉴질랜드달러로 책정했다. 뉴질랜드에서의 마지막 과제를 시작하던 참이었다.
캠퍼밴의 거래 과정을 설명하자면 당근 마켓과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페이스북 마켓스토어에 매물을 게재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후 현장에서 매물을 확인하고, 시운전을 진행한 후 가격을 흥정한다. 구매 여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알 수 없다.
처음 만난 커플은 남자분 키가 커서 이 캠퍼밴에서 자는 것은 어렵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하긴 내게도 짧은 캠퍼밴의 침대였으니 그에게는 오죽하리라 이해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난 커플은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같은 장소에 두 명의 판매자를 불렀다. 남자분과 몇 마디 나누고 시운전을 했다. 그는 조향에 문제가 있다고는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저 옆 사람은 7,500달러 제시했어. 너네도 현실을 좀 파악할 필요가 있어.(face the reality) 지금은 파는 사람이 많고 사려는 사람이 적잖아. 혹시 (가격에 대해) 맘이 바뀌면 연락해 줘." 당시는 3월 말, 뉴질랜드의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여름을 즐긴 사람들이 떠나는 시점이었고 즉 판매자가 구매자보다 훨씬 많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절반 가까운 가격에 팔 일은 아니었다. 충격이었고 두려웠다. 생각보다 많은 연락을 받지 못했고 어쩌면 그들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너무 낮은 가격에는 팔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우리는 가격을 11,900달러로 낮췄다. 그리고 다음날 고프로를 들고 온 남자 두 명과 빅토리아 파크에서 만났다. 이들은 캠퍼밴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는 다른 차량과 비교해 보고 이틀 내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희망을 품었다. '그래, 7,500달러는 미친 짓'이라며 훨씬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틀 뒤 구매 의사를 물었을 때 그들은 이미 다른 차를 10,500달러에 사서 떠난 뒤였다. 가격이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매일 같이 가격을 조금씩 내려갔다. 미국, 칠레, 프랑스, 이탈리아 등 범지구적으로 거절을 당하고 숙소로 매일 돌아왔다. 오늘 있었던 일을 연과 알렉스에게 고하면 "인생 힘드뤄?" 알렉스는 매일 그렇게 자신의 방식으로 우리의 안부를 물었다. 우리의 대답은 하루하루가 "응, 너무 힘들어" 였다.
이미 9일 중 5일을 써버린 우리는 3월 27일 목요일 오전을 맞이하고 있었고, 그 말인즉 3월 29일 토요일 오후로 예정된 호주행 비행기는 탈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우리는 3월 29일에서 4월 2일로 비행기 티켓을 변경했다. (우리의 뉴질랜드 비자 만료일은 4월 7일쯤이었다) 이윽고 3월 29일 토요일이 찾아왔다. 거절의 장소인 빅토리아 파크에서 호주인 블레어를 만났다. 이 사람은 차를 꼼꼼히 살폈다. 반면에 전혀 캠핑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같은 여자분을 대동했는데 그분은 영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상대는 차량 정비업을 하는 여자분의 삼촌이었고 삼촌은 우리 캠퍼벤을 사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에 더해 블레어는 시운전을 하면서 "네가 나라면 이 차를 사겠냐?"라는 압박 면접도 진행했다. 물론 나는 우리가 제시한 가격이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틀 뒤 월요일에 구매전 점검(Pre-purchase inspection)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점검은 가능했지만, 판매를 빨리 끝내고 싶었던 우리는 그 전에 다른 구매자에게 차량이 판매될 수 있음을 고지했고 구매전 점검 예약에 발생하는 비용 이슈로 블레어는 구매를 포기했다. 연과 알렉스를 다시 만나 점심을 나누고 예정대로 떠나는 그들을 배웅했다. 그 순간 내가 정확한 판단을 했었다면 일정에 맞춰 떠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했다. 그리고 메진은 떠나는 친구 연과 알렉스에게 미안했다. 구매자를 계속해서 만나야 했던 우리로 인해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망친 것 같아서였다. 연은 떠나기 전날 내게 물었다. 혹시 본인들이 며칠 더 같이 있어 주는 게 어떤지 말이다. 두 사람이 함께해 준다면 분명 나와 메진에게는 좋을 일이지만 그리 부탁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두 친구는 다른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연과 알렉스를 보내고 메진과 나는 급히 구한 새로운 숙소로 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3월 31일 월요일까지 판매를 끝내자 결의(씩이나)했다. 가격을 8,000달러로 인하하고, 일요일에 열리는 중고차 시장에 참가하기로 하고 최후의 수단인 중고차 거래상에게까지 연락했다. (중고차 거래상은 3,500달러 제시했다) 할인된 가격을 보고 연락이 온 영국인 커플을 일요일 아침 중고차 시장을 가기 전에 일찍 만났다. 나는 보자마자 느꼈다. 안 되겠다. 남자분은 물론 여자분까지 키가 컸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에 누웠더니 두 사람의 발이 한참 허공을 떠 돌았다. 두 사람은 그래도 시운전을 하고 돌아왔는데 돌아온 두 사람을 보자마자 이번엔 메진이 "아…. 표정이 안 좋아"라고 조용히 말했다. 나는 차량과 짐들을 정리하면서 어떤 길을 따라 중고차 시장까지 갈지 고민했다. 영국인 커플은 잠깐 두 분이 얘기를 나누고는 남자분이 다가왔다. 거절의 표현을 기다리고 있는데,"우리가 살게.""…? 응?? 산다구?! 진짜?!!?"우리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고는 이제 덕분에 집에 갈 수 있다, 고맙다는 인사를 수차례 했다. 금세 입금을 확인했다. 환전 수수료를 우리가 물게끔 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 수수료나 손해 본 금액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더 이상 마음 졸일 필요가 없고 다음 호주 일정을 위해 떠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숙소로 돌아와 메진과 나는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랬다. 서로에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제는 짐을 내려놓게 됐으니 그럴 만했다.
그제야 오클랜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미뤄뒀던 것을 떠올렸다. 1월에는 캠퍼벤을 사는 것 때문에, 3월에는 파는 것 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끄집어냈다. 가고 싶었던 카페, 차를 팔면 가자고 했던 피자집, 액자를 사러 소품 가게를 가고 기념품을 사면서 남은 시간을 즐겼다. 단 하나 하지 못한 건 에어비앤비 호스트, 스티브를 다시 보는 것이다. (그는 회사 일이 바빴다) 조급한 마음으로는 쓸 수 없었던 엽서도 썼다. 심지어 떠나는 날 오클랜드 공항에서 까지 말이다. 그렇게 뉴질랜드의 시간을 매듭지었다. 마지막 숙제 하나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뉴질랜드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은 변함 없었다. 이미 두 번 왔지만 또 오고 싶다. 그래서 세 번째 뉴질랜드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 석달을 보냈지만 다음을 위해 남겨 놓은 곳들이 아직 많다. 또 다시 가고 싶은 곳 역시 있다. 그때도 캠퍼밴으로 여행하고 싶다. 단, 사거나 팔 생각은 없다. 렌트할거다. 메진과 나는 캠퍼밴을 파느라고 지겹도록 들여다 본 페이스북 앱을 말끔히 지우고 깔끔히 뉴질랜드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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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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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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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쵸언니
을매나 전전긍긍 했을지...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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