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벌써 5월이 다가왔네요. 올해는 부처님께서 눈치껏 오셔서 덕분에 즐거운 연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5월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5월 하면 초록초록한 나무와 따뜻한 날씨가 눈 앞에 그려져요. 그래서 이런 따뜻한 이미지가 5월의 또 다른 이름. '가정의 달'을 더욱 어울리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5일에는 어린이 날이 있었고, 8일인 내일은 바로 '어버이 날'입니다. 저는 이번 연휴를 이용해 고향에 내려가 할머니도 뵙고, 부모님도 뵙고 왔는데요. 구독자님은 이번 어버이 날을 어떻게 보내실 지 궁금합니다.

 어버이 날을 기념해 고향에 다녀온 것이 그다지 특별할 것 없었지만, 어버이 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든 생각을 구독자님과 나눠보고자 합니다.  

'어버이 날'의 잊혀진 진짜 의미

 사실 이렇게 주제를 잡게 된 이유는 어버이 날에 대한 의미가 많이 무뎌진 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때 어버이 날은 제게 참 크게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

 늘 받기만 하는 제가 처음으로 무언갈 해드릴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에요. 초등학교에서 만든 카네이션을 쭈뼛쭈뼛하며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드리고 나면 나도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머리가 조금 더 커진 고등학생 때에는 이런 뿌듯함을 넘어 진짜 어버이 날의 의미를 새기고, 부모님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집 밖에서 지내보는 첫 경험이었죠. 그런데 나와서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물론, 그때도 절반도 몰랐을테지만요.) 내가 입고, 먹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일주일에 두 번은 기숙사를 찾아와 군말 없이 입었던 옷을 가져가시고, 늘 빳빳하게 다려진 교복을 챙겨주시는 등 보이지 않는 뒷바라지를 해주신 어머니의 노고가 있었음에도 혼자서 지내는 생활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들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은 참 무식하게도 경험해봐야지만 알 수 있는 존재인지, 그렇게 부모님의 노고를 느끼고 난 후에야 진정한 감사의 의미로 어버이 날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 후 대학교를 가면서 저는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되었어요. 그렇게 지낸 게 벌써 어언 10년이 지났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후 보내는 어버이 날은 기회가 되면 찾아뵙기도 하며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하는 날이었습니다. 최근에 달라진 게 있다면 일을 하고 나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날이 되었다는 거에요.

 그렇게 어버이 날은 부모님에게 큰 감사를 느끼는 날이긴 하지만, 그보다 자식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1년 중 하루의 행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구독자님과 어버이 날에 대해 나누며,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가슴 깊이 사유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시절 나의 부모님

 현재 부모님과 함께 떨어져 지내고 계신 분이라면, 아마도 부모님과의 많은 추억은 어린 시절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부모님을 떠올려보자면, 저희 어머니는 굉장히 강인하신 분이었습니다. 저와 누나 둘. 삼남매의 육아를 도맡으셨고, 집안 살림을 다 하셨거든요. 지금 저희 누나가 조카 한 명을 키우는 걸 보면 한 명 키우는 것도 저렇게 어려워 보이는데, 어떻게 세 명이나 키우셨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와 6살 차이가 나는 큰누나를 낳은 후, 막내인 제가 대학교에 가며 집을 떠나게 될 때까지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청소기와 세탁기는 매일 어머니가 만나는 친구였습니다.

 이렇게 성인이 되어서야 느끼는 어머니의 대단함은 꼽자면 수십 가지는 넘겠지만, 초중생인 저와 작은 누나의 하루를 책임지고,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고등학생인 큰누나를 매일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던 어머니의 일상을 생각하면 차라리 마라톤을 뛰는 게 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뜬금없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추억이 있다면, 어느 평범한 날 거리를 걷던 중 어머니와 했던 대화인데요. 어머니가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신호등 불빛을 정확하게 보는 게 엄청 신기했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엄마는 시력이 2.0이야 엄마 완전 눈 좋아.'라면서 자랑을 하곤 하셨죠. 어린 저에게 그게 어찌나 멋있고 부러웠는지 아직도 기억이 나는 소박한 추억이에요.

 비록 20년이 지난 지금은 눈에 힘을 주고 돋보기 안경을 찾는 어머니가 되었지만요. 가끔씩 찾아뵐 때마다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은 야속하기만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머니께서 살림과 육아로 고생하시는 동안 아버지는 제게 감정적으로 거리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기억 속 아버지는 상당히 무뚝뚝하시고, 가부장적인 분이셨습니다. 집보다는 회사와 밖에 계시는 것이 익숙한 분이셨고, 잦은 회식과 야근으로 집에 늦게 들어오시는 것이 당연한 분이셨습니다. 

 구독자님께서 서른 한 살인 저와 비슷한 나이대라면, 구독자님의 부모님 역시 1960~70년대생이실 것이고, 구독자님의 아버지에 대한 인상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가정보다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했던 아버지는 그만큼 저에겐 심리적 거리가 먼 존재였습니다.

 사춘기에는 집안일을 하지 않고, 어머니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수 밖에 없었기에 어머니와의 심리적 거리감은 매우 가까운데 비해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고모보다는 이모. 친할머니보다는 외할머니가 정서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에는 많이 다짐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보다 다정다감하고, 가정에 헌신하는 남자가 되자고요. 그런데 커가면서 그런 아버지를 보는 시각이 점점 바뀌더라고요. 1960~70년대생 아버지들에게 요구된 책임을 생각해보게 되면서요.

 지금이야 남자들이 육아 혹은 살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그 시절 아버지들에게 요구된 사회적 책임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가장의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자식들의 교육 등 경제적인 책임을 져야 했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참고 견디는 것이 아버지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제 기억 속 아버지도 그러했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온 어느 날, 저를 앉혀놓고 '너 대학 보낼 등록금을 적금으로 다 마련했다.'라고 엄청 해맑게 웃으시며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나요. 

 또, 아버지께서 우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묵묵하던 아버지께서 장을 치르고 나서 방 안에서 혼자 우시는 걸 보면서 아버지도 똑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제가 아버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니 보이더라고요. 그 시절 아버지로 사는 것도 쉽지는 않았겠다. 라고요.

 지금이야 오은영 박사님 등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아버지, 남편의 역할에 대해 접하고 배울 수 있지만요. (물론, 그때에도 다정다감하고 가정에 헌신적인 수많은 '관식' 아버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 시절 어머니,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은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닮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있습니다.

 제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듯 부모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여전히 부모님에게 단점은 보이고, 반면교사가 되어 닮지 말아야겠다는 부분도 당연히 있죠. 그러나, 부모님께서 최선을 다했다는 데에는 토를 달고 싶지 않아요. 방식이야 옳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당신께서도 어머니로, 아버지로 살아가는 것이 처음이었을 테니까요. 

어버이. 그리고 가족의 의미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갈등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세대 간 갈등, 정치적 갈등, 남녀 갈등 등 대한민국을 가르는 수많은 선들이 우리로 하여금 혐오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가족과 사랑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지난 번 첫사랑에 관한 레터에서 '사랑은 원자적 개인이 허물어지는 경험'이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사랑을 통해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원자) 개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타인과 합일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어요.

 인간이 개인의 이해를 넓히고, 타인과의 공감을 할 수 있으려면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인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 사랑을 통해 원자적 경계를 허물고,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테니까요.

 예컨대 5-60대 세대를 미워하기엔 우리 부모님이 너무 좋은 존재이고, 모든 여성들을 미워하기에는 저의 누나들이 좋은 사람인 것 처럼요.

 이렇게 생각을 해본다면 우리와 다른 세대, 성, 사상 간의 갈등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갈등으로 가득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가정의 달 5월이 인류애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버이 날을 맞이해 평소와는 다르게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깊이 사유해보니,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 애틋함... 여러 가지 감정들을 느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구독자님에게 조금이나마 울림이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내일 찾아오는 이번 어버이 날엔 구독자님만의 방식으로 마음을 전해보는 따뜻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이만 줄일게요. 

 5/21(수)에 다시 편지할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