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래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2026.08.20 | 조회 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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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여행은 아니고, 책이 될 수도 있지만 책은 아니며, 자유가 될 수도 있지만 자유 그 자체는 아니다.

 

교환의 매개체

  돈은 그 자체로만 보자면 교환의 수단이다. 물건과 물건을 일일이 맞바꾸는 물물교환 대신 돈이라는 공통된 교환 수단을 사용한다. 즉, 돈이란 모든 상품의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 물건도 경험도 노동도 돈을 거쳐야만 그 가치가 매겨진다. 돈의 통로를 지나야만 서로의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돈이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돈만 있다면 가격표가 있는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명품, 여행, 경험, 교육, 건강 등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돈은 마치 현대의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것이다.

 

 

대타자의 욕망

  나는 돈이란 교환의 수단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이와 비슷한 개념이 한 철학서에 있었다.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의 욕망'이란 인간의 욕망이 교환의 구조인 상징계에서 타인들의 욕망을 통해 인정될 때만 의미를 갖기에 필연적으로 타자의 욕망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김석 『프로이트&라캉 무의식의 초대』, 김영사

  프랑스 철학자 라캉은 인간의 욕망이 자기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사회가 무엇을 가치 있다고 인정하는지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만들어간다. 라캉의 유명한 명제인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이런 구조를 가리킨다.

  여기서 나는 돈을 떠올렸다. 돈만큼 타자의 욕망을 확인하기 쉬운 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정말 가치 있는지는 길게 설명해야만 하지만, 현금 2만원이 가치있다는 사실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는 타인의 욕망이 가격으로 찍혀 있다.

  우리는 돈을 많이 가진자를 부러워하고, 돈을 많이 버는 자를 성공했다고 말한다. 남들도 돈을 원하기에 나도 돈을 원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욕망해야 할지 잘 모를 때, 돈이란 가장 욕망하기 쉬운 안전한 대상이 된다.

 

 

욕망의 유예권

  그러나 돈에 대한 욕망은 특정한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가능성을 욕망하는 것이다. 돈은 아직 그 무엇도 아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으로 바뀌기 전 단계일 뿐이다. 돈에 대한 욕망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모든 욕망의 가능성을 한꺼번에 품고 있다.

  따라서 돈은 욕망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욕망의 유예권에 가깝다. 아직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하지 않은 채 모든 가능성을 보유하게 해준다. 돈을 충분히 번 뒤에 여행을 가도 되고, 책을 써도 되고, 시골에서 살아도 되고, 일을 그만둬도 된다. 지금은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말은 이런 말과 같다. "나는 아직 내가 무엇을 진정 원하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렇게 결정을 미루면서 사는게 너무나 편하다는 것이다. 나중을 위해 모으던 돈이 어느 순간 그 자체로 삶의 목적처럼 자리잡는다. 욕망을 계속 미루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모으는 삶은 선택을 미루는 삶이 되기도 한다.

 

 

돈은 답을 주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돈을 좇는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었다. 돈을 버는데에 보람을 느끼는 삶, 돈을 쓰는데에 즐거움을 느끼는 삶을 살 수 있다. 평일에는 돈을 벌고, 주말에는 돈을 쓰고, 남는 돈은 미래의 몫으로 둔다. 돈은 교환의 매개체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엔 욕망의 유예권으로 작동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불편한 질문에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아직 답을 찾은 상태는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돈은 답을 주지 않았다. 질문을 유예시켰을 뿐이다. 언젠가는 이 질문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답이 늦으면 늦을수록 지각비는 복리로 불어날 것이다. 이 지각비는 결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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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개츠비》 강독회 진행중 캡처
 《위대한 개츠비》 강독회 진행중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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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강독회에서는 꼭 함께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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