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삶을 살고 싶다."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좋은 삶'이란 단어가 너무 추상적인 나머지, 사람들은 이를 몇개의 단어와 숫자로 환산하기 시작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집안, 좋은 연봉 같은걸로 말이다. 흙수저, 금수저 론은 단순 유행을 넘어 사람들의 생각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이 모든 것들은 삶의 본질을 담지 못한다. 비교하고 싶어하고 측정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가상의 기준일 뿐이다.
정지우의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는 이 기준을 정면으로 맞받아친다. 그는 맹목적인 성공에 삶을 재물로 바치는 기존의 자기계발 담론을 거부한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 삶, 그 여정이 바로 '좋은 삶'이라는 걸 이야기한다.
텅빈 삶을 짓누르는 돈의 무게
돈만 좇는건 허영을 채우는 것과 같다. 채워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텅텅 비어지는 중이다.
얼마나 버는가, 얼마나 모았는가, 얼마나 비싼 집과 차를 소유했는가. 사회는 이러한 지표로 삶의 성패를 판가름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기준에 맞추어 전속력으로 삶을 소비한다. 그러나 돈만으로 삶을 지탱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일과 같다. 화려해 보이지만, 한 번의 파도에 쉽게 무너진다.
돈에만 치중한 삶은 너무 취약하다. 돈에만 목을 매게 되면 말 그대로 돈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삶이 되는 셈이고, 돈마저 없어지면 삶을 증명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게 된다.
정지우,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마름모, 2024.
잘못된 투자로 악착같이 모은 돈이 반토 났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오직 돈만을 위해 살아온 인생이라면, 한순간 삶의 절반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반대로 투자가 대박 나서 몇 배의 수익을 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러나 이는 텅빈 삶의 토대 위에 무거운 돈을 짊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돈만 좇을 수록 삶을 이루는 기둥은 더욱 왜소해 진다. 운이 좋아서 돈을 더 많이 쌓아 올린다고 해도, 결국엔 못 버티고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돈 많은 부자가 도리어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몰고간 예시가 바로 이 경우이다.
그렇다면, 삶의 토대를 단단하게 다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정지우 작가는 '절절한 시간으로 쌓아온 것'만이 결국 삶을 지탱한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시간, 공들여 쌓은 자신만의 기술, 여러 경험으로 빚은 삶의 태도 같은 것 말이다.
사실 나도 한 때는 돈과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달렸다. 이름난 대학을 가려고 했고, 원하는 기업에 들어가고자 했고, 해외에서 인정받으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목표했던 대학에도 떨어졌고, 원하던 기업과 직무도 얻지 못했다. 실리콘밸리에 정착하겠다는 꿈도 끝내 무너졌다. 그 모든 실패는 마치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듯한 좌절로 다가왔다.
돈으로 내 생애를 평가한다면 명백히 잘못 산 삶이다. 더 좋은 직장에가서 더 좋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번번이 놓쳤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간을 기준으로 삼으면 위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진실된 시간으로 쌓는 삶
우리는 나의 시간을 써서 돈이 아닌 무엇을 쌓아왔는지 고민해야 한다.
정지우,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마름모, 2024.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선 먼저 '내가 보낸 시간이 내게 무엇을 남겼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좋은 대학을 가고자 열심히 공부했던 시간은 올바른 공부습관을 갖게 해주었고, 이는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좋은 기업에 들어가려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지우며 면접을 준비했던 과정은 20여년의 내 인생을 명확히 정리해주었다. 정확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했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스스로 알 수 있게 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거의 모든 네트워킹 파티를 뛰어다녔다. 그 과정에서 대화 스킬이나, 사람을 대하는 법 등 의사소통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운좋게 인턴자리를 구해 겨우 집세만 벌어 먹으며 지냈지만, 이 시간 동안 혼자 해외에서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고 있었다.
돈의 축적과 달리, 시간의 축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진실된 시간은 어느새 우리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있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은 공부 습관과 자기자신에 대한 이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남겼다. 시간으로 쌓은 것들은 실패조차 여정의 일부로 품어내며, 나라는 세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나만의 세계
시간의 축적은 곧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시간을 쌓아 얻은 것은 나만의 기준으로 정의된다. 그것이 사람이든, 기술이든, 태도든, 결국 그 축적물은 '나라는 세계'의 일부가 된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여기가 좋아서 여기 있는게 아니라, 저기로 가기가 두려워서 여기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저기로 가야한다.
정지우,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마름모, 2024.
치열한 입시 후, 고향을 떠나 서울권 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터전을 잡는다는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서울에서는 눈깜짝할새에 코 베어간다던데..' 이런 막연한 걱정이 내 마음을 채웠다.
부모님과 함께 차에 짐을 가득채워 서울 자취방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몇 시간이 참 뒤숭숭했다. 설렘과 두려움이 내 마음에서 엎치락 뒤치락 했다. 어찌저찌 이사를 마치고 부모님이 돌아갈 때가 되었다. 배웅하는 길에 어머니가 꼭 안아주신 품이 생생하다. 나를 두고 가는 아버지의 차를 그저 바라만 보았다. 어두컴컴한 단칸방에 누워 천장만 꿈뻑꿈뻑 바라보았던 그 새벽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렇게 나의 서울 생활은 시작되었다. 모든 소개팅과 미팅에 참석하며 서울 지리를 익혔다. 놀이기구 타는 것 같았던 지하철도 점점 익숙해졌다. 대학연합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생활 반경을 넓혔다. 그렇게 몇 년 지내고 나니 서울이 더이상 무섭게만 느껴지지진 않았다. '나라는 세계'가 한껏 넓어진 것이다.
이 느낌은 하와이와 보스턴, 샌프란시스코로 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도 나는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혹시 여권을 도둑맞지는 않을까?', '에어비엔비 숙소가 사기였으면 어떡하지?', '외국인과 말이 안 통하면 어떡하지?' 하고 말이다. 심지어는 도착하고 나서도 한 달 동안 적응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항공권 사이트를 들락날락 거렸다. 새벽을 지새면서 '난 여기에 왜 온걸까'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곳이 어디든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편안해졌다. 나의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처음 서울행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도 내 세상이 넓어졌다. 하와이에서 나는 내 스스로의 좌우명을 만들었다. '세상을 넓히고, 마음을 깊이자.' 정지우 작가도 같은 뜻으로 '나만의 세계 구축'을 말한 것 같다. 나는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나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도전과 실패, 극복의 여정
실패의 연속을 나는 이제 여정이라 부른다. 도전과 실패, 극복 그리고 다시 도전. 이 여정 속에서 나는 삶을 살아낸다. '어떤 대단한 도전을 했는지',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그 아픔을 어떻게 극복해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게 삶의 여정인 것이다.
살아 있다면, 우리는 시도하고 배우며 극복해가는 길을 택할 필요가 있다. 그 여정이 곧 삶인 것이다.
정지우,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마름모, 2024.
인생을 결과로만 재단하려는 이 시대는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시도조차 망설이게 한다. 하지만 삶을 여정으로 바라보는 순간, 실패는 그저 한 과정일 뿐인 걸 알게 된다. 그저 시도하고, 실패하고, 극복하는 사이클을 계속 이어나가기만하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실패를 거듭해왔다. 대학 입시의 실패는 내 가능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듯 했고, 원하던 직무와 기업에서 탈락했을 때는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의 실패 경험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나는 회사와 인턴 이후 맡을 업무와 처우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중이었다. 회사 측의 답변을 기다리며 나는 평소와 같이 출근해서 사내 메신저에 로그인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류창이 떴다. 몇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알고보니 사내 메신저 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 시스템의 접근 권한이 막혀있었다.
'아니겠지..' 당시엔 미국 내에 해고 바람이 거세게 불던 때였다. 불안한 마음을 잠시 미뤄두고, 회사 측에 즉시 이 소식을 알렸다. 물론, 회사 메일도 쓸 수 없었기에 내 개인 메일로 보내야했다. 약 오전 11시 즈음, 회사로부터 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I would like to inform you that the journey with OOO will be come to an end and we won't be offering you an opportunity to join the company going forward.
아쉽게도 OOO와의 여정은 여기서 마무리되며, 합류 기회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 보는 것 뿐이었다. "Happy Holiday!"로 끝나는 이메일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한톨이라도 발견하고 싶었다.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보았다. 이내 곧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천장을 바라봤다. 밝은 형광등 빛이 눈 앞에서 일렁였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힘도 없었다. 그렇다, 신년을 이틀 앞두고 나는 하루 아침에 해고되었다.
큰 마음 먹고 떠난 나의 실리콘밸리 도전기는 이렇게 실패로 마무리 되었다. "샌프란에서 보자!" 친구들과 나눈 작별 인사였다.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떠났지만, 결국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쓸쓸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영원히 비행기가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했다. 차라리 돛단배나 타고 평생 태평양을 떠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내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듯 했다. 정말 처절하게 절망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돌아보면, 그 모든 실패는 길의 끝이 아니라, 다른 길로 향하게 해주는 나침반이었던 것 같다. 하나의 문이 닫힐 때, 또 다른 문이 열린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역시 잘 살아냈고, 지금 이렇게 책 읽고 글 쓰면서 정말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내가 가는 길의 문이 쾅 닫혀 잠겨버리더라도, 계속해서 다른 문을 두드리며 나아가면 될 일이다. 설사 문전박대 당하더라도, 분명 다른 문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길을 향해 걸어 나아가면 된다. 실패를 나침반 삼고 걸어가는 여정 자체가 바로 삶이다.
지금 살고 있는 삶
서울, 하와이,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나의 세상을 한껏 넓히고 온 나는 지금 '마음을 깊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책읽고, 글쓰는 일이다. 정지우 작가는 글쓰는 것이 자신의 삶에서 큰 의미가 됨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 글쓰기란 늘 '깨어 있게' 되는 일이었다. 글을 쓸때면 비로소 가장 깨어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정지우,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마름모, 2024.
2025년 6월 3일 이래로 넉 달째 뉴스레터 『주간벤자민』을 발행하고 있다. 벌써 이번 편을 포함해 15편의 글을 발행했고, 161명의 구독자가 함께하고 있다. 그외에도 8년 째 일기를 쓰고 있고, 1년 째 회고록을 작성하고 있다.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라는 정지우 작가의 질문에, 나는 이 뉴스레터 링크를 자신있게 내보일 것이다. "보아라, 세상이 내게서 모든 돈을 다 앗아간다 하더라도, 나에겐 15편의 에세이와 161명의 구독자가 있다. 진심으로 글을 써냈던 넉 달의 시간은 영원히 나와 함께한다."라고 말이다.
책읽기는 한마디로, 내 삶의 일부이다. 책 읽지 않는 삶이란 이제 상상하기 힘들다. 나는 늘 가방에 책을 들고다닌다. 지하철에서도 읽고, 친구를 기다리며 읽는다. 그렇게 읽은 책만 1년새 30권이 넘었다.
독서모임 <한줄>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책 읽는 삶'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책에서 딱 '한 줄'만 실천하자는 의미에서 <한줄>로 이름을 지었다.
나는 책과 함께 나의 세계를 쌓아왔다. 그 경험을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 나누고 싶다. 책 읽는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즐거운지, 책 속 한 줄이 어떻게 삶을 바꾸는지, 몸소 경험하게 하고 싶다.
정지우의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를 펼치면 가장 먼저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 책은 좋은 삶으로 가는 여정에 관한 책이다.
정지우,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마름모, 2024.
바로 이 문장이 내가 독서모임의 첫 도서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다. 서로에게 좋은 삶을 묻고, 그 답을 함께 찾아가고자 한다. 한 줄의 문장을 읽고, 그 문장을 오늘의 삶에 옮김으로서 좋은 삶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나는 그 여정을 함께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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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저도 대학교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힘들었다가 회복하던 생각이 납니다. 좋은 삶에는 좋은 글이 빠질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주간벤자민
라이트님.. 그 상실감 이루 말할수 없죠... 그래도 이겨냈다니 다행입니다. 잘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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