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0월 28일의 일기를 에세이로 재구성했습니다.
능력자 수석님
우리 팀 수석님은 그야말로 능력자이다. 모범 개발자의 표본, 아니 그 이상이다. 그는 일론 머스크를 좋아한다. 스타트업을 운영해 봤다. 서버 배선 작업부터 해킹까지 개발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을 두루두루 꿰고 있다. 대표가 지시하면 다음 스프린트만에 만들어 실제 시연을 선보인다. 우리 회사가 대기업의 자회사로 편입되는 데에도 적지 않은 공을 세운 최고의 실무자이다. 남을 가르치는 데에도 능하여 사내 교육을 열면 대회의실이 꽉 차곤 한다. 팀 인원도 다 본인이 일일이 교육해 주고, 모든 질문에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 준다.
2024년 초, 대표가 큰 일감을 새로 가져왔다. 수석급 이상 회사 중역이 모인 회의 자리였다. "이러이러한 게 첫 시도이긴 한데 저러저러해서 우리 회사가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팀 이상의 규모가 필요한 일이었다. 회사 중역 중 아무도 이 일을 맡고 싶지 않아 했다. 우리 팀 수석이 나서서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을 함께 하려고 하는 팀원은 없었다. 그렇게 수석 1명으로 이루어진 신생 팀이 만들어졌다.
대표와 수석 사이에는 수십 개의 마일스톤과 수백 개의 일거리가 있었다. 수석은 대표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고, 대표가 상상하는 그림을 그려야 할 의무가 있었다. "탁탁, 타다닥, 흠." 큰 사무실 저편에는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렸지만 한 구석에서는 키보드 소리와 한숨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오늘도 퇴근 안 하세요?"로 인사를 대신하는 동료들, 야근은 이미 그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하늘과 땅 차이
수석 혼자서 일을 쳐내고 있는 4월의 어느 날,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내가 입사하고 이 부서로 온 것이다. 인사를 나누는 수석과 사원, 우리 사이에는 17년 이상의 세월이 있었다. 수석은 몹시 바쁜 와중에도 매일같이 이것저것 가르쳐줬다. 나의 질문을 하나하나 다 해결해 주었다. 수석의 정성 덕분에 간단한 일은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팀 사람들이 많이 놀랬다고 들었다. "어떻게 벌써 실무를 하냐."
같이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셨다. 회사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고 답했다. 한창 최인아 작가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감명 깊게 읽고 있는 시기였다. 이 책은 건강하고 바람직한 직장인 마인드를 담고 있다. 우리 팀 수석은 이 책 그 자체였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회사와 수석에 대한 호감이 점차 쌓였고, 이윽고 나는 수석을 완전히 신뢰하고 따르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석의 기대치와 사원의 능력치는 딱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다. 아무리 독려해도 나아지지 않은 사원을 보며 수석은 답답해했고, 아무리 용을 써도 만족하지 않는 수석을 보며 사원은 힘겨워했다. 나는 그런 수석에 의지했지만 이따금 무너지기도 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같이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한 날이었다. 참고로 나의 야근에는 어떠한 강요나 눈치도 없었다. 그저 이 업무를 마무리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한창 일하던 오후 10시, 수석이 말했다. "이제 그만 들어가시죠.", "넵." 수석과 함께 1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오늘도 열심히 일했다고 속으로 뿌듯해하고 있었다. "수석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원 님이 고생 많았죠. 근데요..."
죽어라, 열심히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지만 그 뒷말은 끝나지 않았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1층 엘리베이터 앞 복도, 어정쩡한 시공간에서 이야기가 길어졌다. "더 열심히 해야 해요.", "이래서는 안 돼요.", "진짜 걱정되어서 그래요.", "진짜 딱 1년만 죽어라 해봐요." 수석은 이외 여러 말들을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토해냈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넵.. 알겠습니다." 마침내 뒤돌아 헤어졌다. 싫은 소리를 들었지만 속으로 욕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 수석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의로 가득한 그의 말을 감히 반박하거나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차마 건물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로비 의자에 푹 주저앉았다. '여기서 어떻게 더 열심히 하지?' 답답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그 후 약 한 달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열심히 한다. 다만 수석의 기대는 맞추지 못한다. 어느 정도 포기한 감이 있다. 수석은 '딱 1년만', '죽어라'를 요구했지만 죽어라 하는 그 생활과 각오를 1년 동안 가져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상태의 나는 일주일도 가지 못한 채 나가떨어져 버릴 것이다. 내게도 수석에게도 회사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게 뻔했다.
불안한 동기부여
불안감, 부담감, 압박감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됨은 확실하다. 하지만 과하면 오히려 해가 된다. 적당한 불안, 부담, 압박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도와준다. 하지만 너무 과하면 그 강력한 감정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들이 건강한 동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매우 잘 안다. 뭉텅이째로 잘라내거나 그 감정을 유발하는 곳에서 도망쳐야 했다. 퇴사와 부서 이동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실제로 일을 해내기보다 부정적 감정을 정화시키는데 더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수석의 말과 그로 인해 유발되는 부정적인 감정 다 흘려보내기로 했다. 흘려보내는 것은 무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무시는 아예 내 속으로도 들이지 않는 차단이라면, 흘려보내는 것은 내 속으로 들어왔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빠져나가는 통과를 의미한다. 불안에서 벗어나 차분히 일을 해내기 위한 나름의 조치였다.
그즈음 경력직 2명이 입사했다. 각각 7년 차, 5년 차이다. 입사 한 달도 안 되어 큼직한 일을 해내주어서 수석은 만족해하고 나는 신기해했다. '역시, 이래서 경력직, 경력직 하는 거구나.' 수석의 하늘 같던 기대는 내가 아닌 선임을 향해 갔다. 더 이상 수석의 신임이 내게 느껴지지 않았고 말수도 줄었지만, 숨통이 트였다. 불안, 부담, 압박도 많이 줄어들었다.
새로운 신입사원
회식 중 신입 이야기가 주제에 올랐다. 2024년 하반기 공채 인원이 내일 우리 부서로 배치될 예정이었다. 모두들 한창 바쁜데 신입 케어까지 하자니 많은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나는 수석과 선임에게 말했다. "개발에만 전념하실 수 있게 제가 잘해보겠습니다."
자신 있었다. 수석의 하늘 같은 기대를 맞추지 못했을 뿐, 사실 나는 회사에 꽤 잘 적응한 편에 속한다. 우리 팀 선임보다 일찍 입사해서 회사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고, 경력과 나이는 신입과 다르지 않다. 여러 문서와 자료도 정리해 놓았다. 신입 가까이에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팀에 연착륙시킬 자신이 있었다.
이 친구들은 수석과 사원 사이의 17년의 갭을 적나라하게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나보다 더 빨리 적응했으면 한다. 얼른 성장하여 팀에 기여하고, 수석의 기대에 부응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내가 겪었던 불안, 부담, 압박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이 마음으로 목요일, 금요일 신입사원 3명을 대했다. 이리저리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이틀 만에 기본적인 업무 환경 세팅과 회사 생활 안내가 끝났다. 이들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바로 일에 착수할 준비가 되어있다.
어쩌면 이번 신입이 나보다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낼지도 모르겠다. 내가 신입보다도 더 수석의 기대를 못 받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지 않도록 내 일도 열심히 해내겠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괜찮다. 수석의 기대치에 사원의 능력치가 가까워지면 좋겠다. 대표의 지시만큼 우리 팀의 구현이 빨라지면 좋겠다. 대표, 수석, 사원 셋 모두의 성과 부담, 업무 부담이 적어지면 좋겠다. 조만간 업무 수준과 능력 수준이 조화를 이루어서 안정적으로 성과를 내는 직장인이 되기를 바래본다.
《위대한 개츠비》 강독회 후기

얼마전 책 《위대한 개츠비》로 첫 강독회를 열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참여자 분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강독회를 계속 진행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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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강독회에서는 꼭 함께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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