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좀비딸> 재미있게 보셨나요? 좀비로 변한 딸 수아를 끝까지 품으려는 아버지 정환의 모습은 많은 관객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 장면 앞에서 그렇게 가슴이 저려왔을까요?
이 글은 아래와 같은 개인적인 궁금증에서 시작했습니다.
'좀비딸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 정환에게 AI딸이 나타난다면?'
유족을 위해 국가에서 보급하는 AI딸은 원래 수아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게다가 DNA를 통해 인공신체를 만들어서 외모와 피부결은 물론, 식성과 방귀 냄새까지 완벽한 수아이죠.
단, 조건이 있습니다. AI딸을 선택하면 좀비딸은 군에 의해 끌려가서 백신 개발을 위한 실험체가 됩니다. 아니면 인류 평화를 위해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아버지 정환은 이 상황에서 좀비딸을 선택할까요, AI딸을 선택할까요? 저의 답을 마지막에 밝혀 놓았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여러분 만의 답을 찾으면서 읽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 영화 <좀비딸>, <광해, 왕이 된 남자>, <노트북>, <미키 17>의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억은 존재를 증명 할 수 있을까
정환은 날카로운 무기를 높이 쳐들었다. 그러곤 좀비가 된 딸, '수아'의 눈을 쳐다 보았다.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영화 <좀비딸>에서 가장 뭉클한 장면은 아버지 '정환'이 좀비가 된 딸 '수아'를 죽이려던 순간이었다. 좀비 바이러스를 말살시키기 위해 정부는 군을 동원했고, 좀비를 찾아서 즉각 사살했다. 정환은 군인의 총에 딸을 잃을 바에,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수아를 보내주려 했다. 좀비 수아는 이 마음을 알긴 하는지 더욱 사납게 모든 것을 물어 뜯으려고 했다. 정환은 날카로운 무기를 높이 쳐들었다. 하지만 결국 수아를 죽이지 못했다.
찰나의 망설임 속에서 수아와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같이 차려먹은 식사, 함께 춤 췄던 몸짓, "아빠"라고 부르던 목소리. 이 모든 기억을 갖고있는 정환에게 눈앞의 좀비는 자신의 딸 수아임이 틀림 없었다. 그런 기억이 없는 다른 사람들만 그녀를 감염자, 좀비라고 불렀을 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좀비가 된 수아에게는 정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정환은 더이상 아버지가 아니었다. "수아는 아무 기억이 없어, 수아는 너를 아빠로 안봐!" 정환의 친구가 정신차리라며 정환에게 한 말이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기억이 권력까지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천한 신분의 광대 '하선'이 왕 '광해'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하지만 점점 신하들의 의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중전'은 하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전하, 제 젖가슴에 있는 점의 위치를 아십니까?" 하선은 중전이 옷을 갈아입을 때 슬쩍 보았던 기억으로 정답을 말했다. 중전과 신하들은 이때부터 광대 '하선'을 진짜 왕 '광해'라고 철썩같이 믿게 되었다.
영화 <노트북>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년 여성 '앨리'는 눈 앞의 노년 남성 '노아'를 그저 '책 읽어주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그녀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 그는 갑자기 그녀의 '남편'이 된다.
이렇듯 기억은 존재를 보증하는 증거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다. 기억이 그 존재의 근거로 충분한가?
기억의 한계, 복제 가능성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보았던 것 처럼, 그 사람의 존재를 기억만 가지고 규정하기에는 역부족하다. 특정 기억으로만 판단한 탓에, 신하들이 광대 '하선'을 왕 '광해'라고 잘못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AI는 이 허점을 보다 깊숙하게 파고든다. 기억은 데이터이고, 데이터는 저장과 복제가 용이하다.
대표적인 AI모델인 OpenAI의 ChatGPT는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와 상호작용한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 수록, 나에 대한 정보를 AI가 더 많이 알게되고 이것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제 AI기술은 채팅 기록 뿐만 아니라, 이메일, 사진, 캘린더 등 개인의 거의 모든 데이터를 학습하려 한다. 이렇게 쌓인 정보는 나를 흉내내기에 충분하다. 사용자가 허락만 한다면, '나'처럼 행동하며 에이전트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중국의 한 기업은 사망한 사람의 디지털 기록을 학습해 '유령 봇'을 만드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유족들은 고인과의 조우로 심리적 안정을 얻었다고 이야기했다. 한 사용자는 "고인이 된 아들과 메타버스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기억 복제가 감정적 진정성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기사링크)
더 나아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 기술이 적용될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인이 된 아들이 아니라, '실종'된 아들을 대상으로 '유령 봇'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혹여나 아들을 다시 찾는다면 어떤 혼란을 겪을지 예상하기도 힘들다.
기술의 발달로 나의 DNA와 단백질 구조를 활용하여 인공신체를 만들고, 거기에 내 기억의 데이터를 주입한 후, AI를 통해 생각하고 행동하게 한다면, 과연 누가 진짜 '나'인걸까? 마치 영화 <미키 17>처럼, '벤자민 17'이 나타날 가능성을 전혀 불가능 하다고 할 수 없다. 내가 봐도 '나'인 존재가 생겨나는 것이다.
AI시대의 정체성 위기를 여기서 엿볼 수 있다. 기억이 나를 나이게 하는 핵심 요소라면, 기억을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은 '나' 자체를 복제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직관은 이를 거부한다. 복사본은 원본과 '같을' 수는 있어도 '바로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이 보통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나'란 존재의 핵심은 무엇일까? 무엇이 수아를 수아이게 만든 걸까?
서로에게 새겨진 시간
"AI가 인간의 모든 걸 대체하더라도, 대체할 수 없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삶이다."
정지우,『AI, 글쓰기, 저작권』마름모, 2025.
이에 대한 힌트는 정지우 작가의 저서,『AI, 글쓰기, 저작권』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는 서로에게 새겨지는 시간만큼은 AI로 대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서로 '대체 불가능한 시절'을 함께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영화 <좀비딸>에서 아버지 정환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수아와의 '기억'이 아니라, 수아와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정환은 더이상 딸을 맘놓고 안아보지 못한다. 수아는 더이상 정환을 "아빠"라고 부르지 못한다. 하지만 정환이 여전히 그녀를 딸로서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10여년의 시간 덕분이 아닐까.
시간은 데이터처럼 단순히 쌓아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나눈 진실한 시간의 흔적은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절대 흉내낼 수 없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은 그 자체로 고유하다.
AI 인조인간이 아무리 정교한 기억을 이식 받았고, 사람의 DNA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과 나 사이에는 '시간'이 없다. 시간은 오직 삶을 지나온 자에게만 주어진다. 즉, '너와 나의 시간'은 결코 대체 불가능하다.
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
'나'의 존재를 끝내 증명해주는 건 바로 시간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타인에게 새겨진 시간의 흔적이 나를 나이게 만든다. 서로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소비한 이들만이 서로의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다. 서로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너가 있기에, 내가 있는 것이다.
좀비가 되어 기억을 잃어도, 나보다 더 나같은 AI가 나타나도 상관없다. 좀비 바이러스가 수아의 기억을 망쳐도, 시간까지 파괴하지는 못한다. 나의 모든 것을 갖고있는 AI가 나타나도, 시간까지 소유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잃더라도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만큼은 끝내 우리의 존재를 증언할 것이다. 결국 존재란, 살아있는 동안의 기록이 아니라, 함께 겪어낸 시간이 서로에게 새겨놓은 흔적의 총합이다.
좀비딸 vs. AI딸
정환은 역시 좀비딸을 선택할 것이다. 수아가 좀비가 되었더라도,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정환 안에는 여전히 수아와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시간이 그를 아버지로 만들었고, 지금도 아버지로 존재하게 한다.
물론, AI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다만 앞서 말했듯 그 존재는 정환과 공유한 시간이 없다. 그 세월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현실적인 이유로 AI딸을 선택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면 그것은 수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와의 관계의 시작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데이터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와 함께한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일테다. 함께한 시간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정환이 좀비딸과 AI딸 중 결국 무엇을 선택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단언컨데, 정환이 사랑하는 수아는 '완벽한 수아'가 아니라, 자신과 시간을 나눈 '바로 그 수아'이다.
좀비시대가 창궐하고 AI시대가 펼쳐져도, 타자와 함께한 진실된 시간은 여전히 소중한 가치로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이 시간을 계속 축적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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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름
과거 함께한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쉽지만, 미래의 시간을 정상적으로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것에 AI딸을 선택할 수도 있겠네요. 선택 시점으로부터 함께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나간 10년에 대한 기억이 묻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주간벤자민
넵 그런판단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정환이 AI 딸을 진짜 딸처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거에요. AI딸은 현실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영원한 대체재가 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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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la
Wow, what words, huh? I haven't seen the movie yet, but I'll look for it. Strong reflection.
주간벤자민
It's the most famous Korean movie now. I highly recommend. And please share your opinion after watching it.
Camila
Y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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