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주간벤자민』 구독자 여러분,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벤자민 입니다.
갑작스레 발행을 멈춘지 벌써 6개월이나 지났네요. 갑자기 사라져서 죄송합니다.
당시 마지막 글에서 저는 글쓰기를 계속하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을 탓했어요.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재작년 말 부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던 글쓰기가 다른 것들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글쓰기 때문에 연차를 쓴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고, 책과 글로 가득찼던 나의 저녁 시간에 운동과 돈, AI 등 이 밀고 들어왔다.
'운동하지 않고는 나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힘들어.' '돈을 충분히 벌지 않고는 양질의 삶을 살 수 없어.' 'AI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금방 도태되고 말 거야.' 이 세가지 바위가 굴러들어왔다. 박혀있던 책과 글을 빼냈다. 운동하지 않고 돈벌 궁리를 하지 않고 AI를 공부하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건 참 바보같은 짓이라고도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시간이 안 난다', '돈벌 시간도 없다', 'AI도 좇아 가야한다' 라고 말하며 도망치듯 제 일상에서 글쓰기를 털어냈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벤자민, 왜 요즘 뉴스레터가 안와?"
그럴 때면 저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다른 일하고 있는게 있어서', '요즘 AI 따라가느라 바빠', '운동에 재미 붙였잖아, 나 몸 좀 커지지 않았냐?'
제 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말 감사했지만, 내심 사람들이 빨리 '글쓰는 벤자민'을 잊어줬으면 했어요. 글쓰지 않는 삶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삶을 사는 것 같았거든요. 과거 글 쓰던 때의 행복한 감정과 기억이 자꾸 마음을 쿡쿡 찔렀습니다. '그때의 나'를 나도 잊고 다른 사람도 다 잊기를 바랐어요. 생각나면 힘드니까. 현실 살이에 방해되니까.
글쓰기를 그만두고, 정말 돈을 벌었습니다. AI도 잘 사용하게 되었고요. 운동하며 마른 몸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현실을 정말 잘 살아냈지만,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점점 흐려졌습니다.
보람차고 재미없는 나날의 연속이었어요. 열심히 돈 벌고 AI 공부하고 운동하며 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셋다 하기 싫어지는 날을 만났습니다. 돈, AI, 운동. 다 미래를 위해 하고있는 것들 이더라고요. '결국 이렇게 사는 수 밖에 없나.' 무기력하게 축 늘어져 있던 중, 우연찮게 하나의 글을 읽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어쩔 수 없이 자르듯, 나는 내 마음을 잘라내는 법을 배웠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내키지 않은 일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의견을 내세우기 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먼저 살폈다. 그렇게 나를 조금씩 잘라냈다. 두발 규정에 내 머리를 맞추듯, 세상의 규칙에 나를 맞춰갔다.
모두가 나의 행복한 생일을 기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녀석들 모두 나를 만나지는 않았다. 작은 휴대폰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생일 축하 퍼레이드는, 어두운 방안에 혼자 누워있는 나를 더 공허하게 만들었다.
생일이 아직 아닐 때는, 행복한 생일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생일이 지나고 나면 짓이겨진 마음이 눈물처럼 힘없이 흘러내렸다. 일년에 한 번 있는 생일에 제대로 축하도 받지 못하다니.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태어난 날에 태어남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 묻곤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지도 못했다. 무기력과 초조함이 뒤엉켜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게걸스럽게 과자를 쿰척이고, 새벽까지 SNS를 보며 키득댔다. 책상에는 잡동사니가 나뒹굴고, 의자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이 걸려있었다. 집이 어질러지는 만큼 마음도 어지러워졌다. 일부러 어질러진 쪽은 눈길도 주지 않다보니, 점점 눈을 둘데가 없어졌다. 이내 눈을 감고 마른 세수를 했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네, 제가 쓴 글이었습니다. 이런 말 스스로 웃기지만, 저 나름 꽤 글을 잘 썼더라고요. 글쓰기를 그만둘 당시에 '이거 다 무슨 소용이야.' 하며 쌓아놓은 글을 그저 데이터 조각 보듯이 흘겨봤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읽어보는데, 그 글을 쓰던 공기, 영감 얻은 순간, 후기를 받은 뿌듯함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정말 글 한편 한편에 '삶의 한 조각'을 넣어 썼나봐요. 마치 케익 한 조각 먹듯 제 삶을 다시 맛볼 수 있었습니다.
'길어낸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깊은 우물에 바가지를 빠뜨리고, 도르래를 잡아당겨 물을 긷는 것인데요. 그 길어낸 물에는 이끼도 섞여있고, 소금쟁이도 떠있고, 가끔 개구리도 숨어있어요. 그렇게 길어낸 물을 잘 정제해서 독자 여러분들께 나누어 드렸습니다.
맑은 물만 잘 걸러 드리고 싶었는데, 가끔 섞여있던 이끼에 인상 찌푸리고 팔짝 뛰는 개구리에 놀라지는 않으셨는지요. 이 글도 아주 맑지는 않습니다. 소금쟁이가 떠있는 것 같으니 잘 보시기 바라요.
뭐라도 길어내려면 우물이 차있어야 했는데, 글쓰기를 그만 둘 당시의 저는 참 메말라 있었습니다. 바삭하고 빳빳한 만원짜리 지폐처럼요.
뭔가 흘러넘치는 것 같아 무작정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명색이 '삶의 한 조각'을 나누는 뉴스레터인데 아무것도 준비한 글이 없네요. 송구합니다.
아쉬운대로 일기 한 조각을 옮겨 적으며 오늘의 레터는 마무리 하겠습니다. 다음주부터 다시 제 삶의 조각, 생각 한편을 꾹꾹 눌러담아 보내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벤자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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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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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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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벤자민
경아님 감사합니다! 경아님 댓글을 보고 '아 이게 진짜 행복한 삶이지' 하며 웃음지었네요. 작가 벤자민이 아닌 다른 벤자민이 커가는 중이었다는 말이 참 위로가 됩니다 ㅎㅎ 경아님의 아홉수에 제 글이 많은 위로가되다니 저도 감격스럽네요 감사합니다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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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
벤자민님 글 기다렸어요. 구독하고 ‘우리 아빠 차는 초록색 번호판’ 을 처음 보고 따뜻한 글이라 계속 읽고 싶었는데 잠시 글을 멈추신다해서 아쉬웠거든요. 이제 계속 볼 수 있다니 넘 기뻐요.
주간벤자민
루씨님~~ 한걸음에 달려와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루씨님이 항상 읽어주신다고 생각하고 따뜻한글 많이 쓰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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