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 The Great Escape to Great Britain] Vol 1.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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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낡은 나침반 그리고 지도
나에게 영국은 두려움이었다.
2009년 스무 살, 멋 모르고 떠난 유럽 일주.
스마트폰도 LTE도 없던 시절, 나는 종이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런던의 미로를 헤맸다.
설상가상으로 출발과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 여파가 몰려왔다.
환율은 미친 듯이 치솟았고, 내 주머니는 가벼워졌다.
매일 트럭에서 파는 핫도그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버티던 날들.
사실 여행을 가장한 서구 문화 탐방 훈련이었다고 하는게 더 맞을까?
나는 런던 중심가가 아닌, 버스로 한 시간이나 떨어진 외곽의 싼 숙소로 숨어들었다.
타향살이의 설움, 동양인을 향한 은근한 멸시, 그리고 나에게 화풀이하던 집주인의 날 선 목소리.
나는 한 달간의 고된 여정 끝에 도착한 우울하기 그지없는 영국 날씨 속에서,
지독한 '트래블 블루(Travel Blue, 여행 우울증)'를 앓으며 방구석에만 박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그곳.
나에게 런던은 늘 비가 내리는, 차갑고 무서운 회색 도시였다.
그리고 2020년. 나는 다시 그 회색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이번엔 전염병이라는 재난을 피해서.
2020년, 새로운 친구 그리고 온기
사실 세비야에서의 탈출도 쉽지 않았다.
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택시의 청천벽력같은 말에, 돈이 모자라 주머니 속의 동전까지 탈탈 털어야 했다.
라이언에어(Ryanair)는 얼리 체크인을 안 했다는 이유로 항공권 값의 절반에 가까운 벌금을 물렸다.
비행기 안에서는 코로나를 핑계로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파는 물은 마시게 했다는게 아이러니.)
타들어 가는 목구멍과 바짝 마른 입술.
'영국... 괜찮을까?'
10년 전의 트라우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때보다 더 쉽지 않으면 쉽지 않지, 더 좋지는 않겠구나.'

사실 그때보다 상황은 더 나을게 없었다.
전 세계가 문을 닫고 있었고, 중국인 한국인할 것 없이 동양인이라하면 바이러스 취급을 받고 있었다.
또 다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런던의 차가운 거리를 헤매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리움의 냄새
공항을 빠져나와 워렌스트리트(Warren Street)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세비야에서의 고생담을 전해 듣고 마중 나온 친구들.
영국에서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를 하고 있던 친구들이었다.
아이슬란드를 가기위해 잠깐 들르기만 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인연이었지만,
이런 전 세계 위기 상황에서 이런 인연은 더욱 끈끈해진다.

"형. 고생했어! 얼른 가자."
그 한마디에 10년동안 숨겨왔던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두려움의 장소가 오히려 베이스캠프 캠프로 바뀌는 극적인 순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하면서도 오랜만에 맡는 그리움의 냄새가 진동했다.
세비야의 텅 빈 마트에서 구한 카레로 연명하던 우리를 위해, 친구들은 한국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소리. 김치찌개의 매콤한 향기.
그리고 "어서 와" 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의 온기.
직원과 손님의 관계가 아니었다.
재난 속에서 다시 만난 전우이자, 가족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곳은 더 이상 2009년의 그 차가운 런던이 아니었고,
낙동강 오리알이 될까봐 우려했던 나의 걱정은 기우였음이 증명되었다.

에필로그: 국가, 국적, 그리고 사람
세계 여행을 시작하며 나는 종종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인"이라고.
나는 처음으로 국가, 국민, 소속감과 같은
일상 속에선 가장 추상적이어 보이던 것들,
그래서 더 피부에 와닿지 않던 것들의 위력을 실감했다.2019~2020 세계 여행중에 든 생각

세계여행의 첫 여행이 독립투사를 기리는 여행, 나라 빼앗긴 선조들의 마음을 되짚어 살펴보는 러시아 여행이었었기 때문일까.
혹은 세계가 마주한 경험해본 적 없는 위기 때문이었을까.
'만약 내가 나라를 잃은 사람의 심정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이 이 팬데믹의 한복판에 떨어졌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한국인이시죠?"
이 한마디가 그렇게 그립고 감사할수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
영국은 여전히 우중충한 날씨였고, 바이러스는 창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런던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곳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한 분홍빛이었다.
나의 영국 여행은 그렇게, 고향의 음식 냄새와 함께 다시 시작되었다.
(1부 프롤로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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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블
런던이군요, 제가 갈 땐 브렉시트 이후여서 환율 낮을 때라 다들 운이 좋을 때 간다 했었어요. 당시 생존 본능으로 똘똘 뭉쳐진 저에게 볕 좋은 날이 그닥 위로가 되지 않았었는데, 공원 잔디밭에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하던 노인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었죠.
화이트크로우
하하 영국에겐 힘든 시기였지만 @레블님께는 너무 좋은 기회였겠네요! 공원 잔디밭 수영복이라~ 보기만 해도 뭔가 생각이 많아졌겠는데요?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러면서요. 맞아요... 생존 본능... 처음 유럽여행 가면 보고싶은 게 뭐가 그리많은지... 강행군을 하면서 살아남기 급급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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