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The Great Escape to Great Britain] Vol. 2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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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보리스!

런던 베이스캠프에서의 삶은 안락했다.
하지만 삼겹살과 김치찌개로 배를 채우고 나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금세 바깥 세상이 궁금해졌다.

당시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은 집단 면역이라는 전무후무한 실험을 선언한 상태였다.
덕분에 스페인과 달리, 영국에서 우리는 완전히 갇혀있지 않았다.
우리는 그를 '히어로 보리스'이라 부르며, 비꼬는 듯 진심인 듯 외쳤다.
"땡큐, 보리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기차 노선이 줄어들고 있었고, 런던 시내의 마트 진열대는 비어가고 있었다. (특히 달걀은 구경조차 힘들었다.)
도저히 좀이 쑤셔 못견디겠을 때즈음, 누군가 나즈막히 이야기했다.
"더 늦기 전에, 딱 한 번만 제대로 된 여행지 다녀오면 안될까?"
"그래! 이왕이면 사람 없는 곳, 그리고 확실히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들까지 합세했다. 그래, 그들이 더 답답했겠지.
우리는 각자 역할을 맡았다. 각자 노트북과 지도앱을 켰다. 마치 은행을 터는 강도단처럼 비장했다.
누군가는 기차 시간표를, 누군가는 입장 가능 여부를, 누군가는 인근 마트의 달걀 재고를 파악했다.
치열한 작전 회의 끝에 낙점된 곳은, 하얀 절벽으로 유명한 '세븐시스터즈'.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갇혀 있는 것보다는 바람이라도 맞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리는 여섯 명의 원정대를 꾸렸다.

정면 돌파 전략
"뭐하러 가려고? 다 닫은 거 몰라? 뉴스 안봤어?"
빅토리아 역의 역무원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달걀 사러 가게요! 숨도 좀 쉬고요 - 코에 맑은 공기 좀 넣게요."
이내, 깊은 한 숨과 함께 표를 끊어주며 이야기 했다.
"젊은이들. 어차피 거기가도 아무것도 못해"

우리는 소풍 나온 아이들 같았다.
사실,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 자체로 우리는 들떠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바이러스가 없는 세상인 것 마냥 웃고 떠들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마트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다보니 어느새 브라이튼(Brighton) 역에 도착했다.
이제 브라이튼에서 세븐시스터즈 앞까지 가는 버스만 타면 되는 상황.
깔깔거리면서 도착한 역 앞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안내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건가? 역시 무리였나...'
하고 고개를 돌린 곳에 테이프로 이리저리 급하게 붙여진 종이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곳에 큼지막하게 인쇄된 글씨.
SERVICE SUSPENDED
Due to COVID-19 restrictions, the 13X Coaster route to Seven Sisters is suspended until further notice.
(코로나 상황으로 브라이튼-세븐시스터즈 노선을 잠정 폐쇄합니다.)

굳게 닫힌 정문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이것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버스운행중단이라는 굳게 닫힌 문. 그 앞에 무기력하게 선 우리.
하지만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역 내 관광 안내소로 들어갔다.
"저기, 우리 세븐시스터즈 가려고 왔는데..."
"오늘 아침 버스 끊겼어. 못 가." 직원은 단호했다.
"알아요. 근데 진짜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 이거 보려고 목숨 걸고 왔는데..."
"지금 식당도 다 닫았어. 그냥 돌아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다.
우버를 타겠다, 걸어가겠다, 제발 길만 알려달라.
우리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아니면 귀찮았을까.
세 명의 직원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지도를 꺼내 놓고 한참을 상의하던 그들이, 마침내 우리를 불렀다.
샛길 (The Back Door)
"헤이- 일로와봐. 방법이 하나 있긴 해."
직원이 지도 귀퉁이의 작은 역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시포드(Seaford) -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루트야."
"여기 내려서 한 시간 정도 걸어가면 절벽 뒤쪽으로 접근할 수 있어."
유레카.
좀 많이 걸어야 하긴 하는데, 로컬들은 산책하러 종종 가는 길이란다.
정문은 막혔지만 현지인들만 아는 샛길이 열렸다.
우리가 연신 "땡큐!"를 외치며 나가려는데, 직원이 시계를 보더니 묘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근데 그거 기차가 오늘 한 대인가 그럴걸? 아마 지금 막 출발하려나..."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윙크를 던졌다.
"Good Luck."
뛰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짧은 감사인사를 전하고는, 우리는 브라이튼 역의 플랫폼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뛰어!"

영국의 텅빈 브라이튼역에서 여섯 명의 동양인이 역사를 질주하는 광경이라니.
대부분의 노선 중단, 축소라는 초유의 사태에 전광판은 깜빡였고, 안내 방송은 웅웅거렸다.
"Where is it bound for? Is it going to Seaford?"
(어디 가는 거예요? 이거 시포드 가나요?)
우리는 보이는 역무원마다 붙잡고 소리쳤다.
시간은 1분도 채 남지 않았다.
저 멀리 초록색과 노란색이 섞인 기차 하나가 보였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였다.
"저거다! 일단 타! 각자 가장 가까운 칸으로!"
다른 달리기 속도 탓에 각자 다른 위치에 있던 우리는 각자 눈 앞에 있던 칸에 뛰어 올라 몸을 실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거친 숨소리만이 감도는 객차 안. 다행히 6명 모두 몸을 실었다.
예상보다 1인당 20파운드가 넘는 요금을 내야 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우리는 서로의 헝클어진 머리를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기차는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닫힌 정문을 돌아 샛길로,
그렇게 우리는 비밀의 문을 향해 가고 있었다.
(2부 쥐구멍에도 볕들날은 있는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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