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럭은 스포츠랑 인연이 별로 깊지 않다. 중학생 때 카트라이더 리그와 스무 살 때 오버워치 리그를 응원하던 걸 제외하고는 스포츠 경기를 챙겨본 적이 없다. 카트라이더랑 오버워치도 스포츠로 칠 수 있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뭐, 일단 이스포츠니까 되지 않을까? 난 잘 모르겠지만 두유노클럽의 선두주자 대상혁 페이커 선수가 작년에 좋은 답변을 해주었으니 그런 거겠지. 아무튼 난 운동 경기 보는 취미도 없고 운동을 직접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냥 스포츠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음. 지금이야 롤 경기도 가끔 챙겨 보고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 경기 시즌에는 열심히 찾아보긴 하지. 그러나 사실 이건 내가 스포츠에 관심이 생겨서가 아니다. 롤이야 가끔 재미로 본다고 쳐도 국제 경기들은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보는 거다. 기념일 같은 거야. 나이가 들수록 무뎌지고 관심사가 줄어드는데 이벤트를 챙기지 않으면 추억도 줄어드니까 할 수 있을 때 하자는 마인드라고. 흑흑-
문제는 내 주변에 스포츠를 챙겨보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거다. 우선 얼마 안 남은 고등학교 친구 중 하나가 웬만한 스포츠는 다 보러 다닌다. 야구, 농구, lck가 기본인데 원래 스포츠 팬들은 여러 종목을 파면 응원하는 팀이 똑같은 건가요? 얘는 전부 SK 팬인데 이외에는 표본이 부족해서 알 수가 없네. 내 기억에 이 친구는 대학 시절에도 스포츠 관련한 각종 활동을 하러 다녔는데 우럭은 그걸 지켜보며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살지 생각했음. 취미라고는 글이나 게임처럼 실내 활동뿐인 내게 그녀는 너무나도 외향적이었기에... 이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성격의 문제도 있긴 함. 우럭은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기가 빨려 죽는 병이 있으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보러 다닐 수 있는 체력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지금보다는 활동량이 많았겠으나 기본 체력 자체가 저질인 인간이기 때문에 대여섯 살 어린 나라고 지금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그래, 말하자면 우럭은 스포츠를 안 즐긴 게 아니라 못 즐긴 거다.
2.
이런 슬픈 배경에도 불구하고 야구 팬들은 착실히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날 외롭게 하지는 않는다. 우럭, 그런 걸로 외로워하는 성격은 아님. 그냥 보러 간다고 하면 그래, 잘 보고 오렴. 나는 게임을 할 테니- 같은 상황이 이어질 뿐. 내가 정말 외로운 지점은 다른 친구들이 야구를 보러 가서 혼자 남는 상황 같은 게 아냐. 멀티 게임을 하고 싶은데 같이 해줄 친구들이 없어서 하지 못할 때가 진심으로 서글프다고.
가끔 몇몇이 물어보긴 해. 친구들이 야구를 보러 가서 게임을 못하는 거 아냐? 하지만 그 의문은 잘못됐다. 내 주변 친구들은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은 못한다. 야구를 열성적으로 보러 다니면서 가끔 게임도 같이 하는 친구 서너 명은 애초에 라이트 유저라서.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라이트 유저라는 문제점보다 훨씬 큰 결함이 있다. 안타깝게도 그녀들은 모두 다 쫄보임. 같이 돈스타브라도 했다가는 벌목조차 무서워서 못 할 거야. 왜냐하면 돈스타브는 내가 나무를 치면 나무도 날 치는 친환경 게임이니까. 이게 바로 이 시대의 PC.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기왕 샌 거 돈스타브 멀티 하실 분 구합니다. 게임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용기와 끈기. 관심 있으면 댓글 부탁.
3.
그러면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야구 찍먹을 시도했나. 그것은 이제 어느 여름날, 한 카톡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한마디로 사기당했다. 난 또 무슨 글램핑이라도 가자는 줄 알았어. 올봄에 글램핑 시도가 한 번 있긴 했는데 저 때는 여름이라서 정말 글램핑이었으면 거절했을 테지만. 더위 앞에 긍정적인 방향의 고려고 뭐고 다 없다. 그런데 야구장일 줄은 몰랐지 뭐야.
야구장도 덥지 않나요? 예, 찾아보니까 여름에 야구 직관 가는 건 조금 미친 짓 같더라고요. 근데 저는 5월부터 집콕 중이라 바깥 날씨를 잘 모르기도 했고 야외일 거라는 생각도 못 해서 그냥 ㅇㅋ 박았습니다. 뒤늦게 찾아보며 어디까지 준비해야 할까 걱정을 조금 했지만 다행히 당일 비가 와서 선선한 날씨에서 봤다는 후문.
4.
처음 가본 야구장은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이 바비큐 존 자리를 예매해 줘서 좌석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생각 이상으로 잘 보였음. 경기장은 큰데 공 날아가는 것까지 다 보이더라. 라섹의 힘도 조금 있었겠지만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렇지만 야구와 우럭이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는 했는지 SNS에 올라간 사진을 본 친구들이 의문을 표하기는 하더이다. 그래, 나도 알아. 내가 먼저 가자고 할 곳은 아니긴 하지. 나도 처음은 사기당해서 왔어. 그래도 결론은 좋으니까 됐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초록빛 필드를 배경으로 구워 먹는 고기. 크림새우와 라면 전부 맛있었다. 진짜 제법 좋았다고요. 무언가를 발견하고 어이가 뒤져버리기 전까지는 말이지.
5.
진짜 도라이 아잉교.
6.
그녀의 말에 틀린 것은 없다는 사실이 날 킹받게 했으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음을. 이미 난 인천이었고 경기는 끝나갔고 고기는 맛있었으니까. 하지만 결론과 별개로 날 속여먹었을 때 즐거웠을 그녀의 심정을 생각하면 분노가 밀려온다. 뭔가 당한 것 같아서 영 찜찜하다 이 말입니다. 다시 생각하니까 또 킹받으니 재차 다짐한다. 그녀에게 마늘맛 꾸사까를 꼭 선물하리라 굳게 결심한다.
7.
이렇게 직관을 마친 우럭은 야구와 다시 어색한 사이로 돌아가는 듯싶었으나 모종의 계기로 재회하게 되는데. 그건 이제 너무 길어지니까 다음 편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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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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