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SG 랜더스필드와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우럭은 다시 야구와 초면 아닌 초면으로 돌아갔다. 야구장 직관은 재미있었으나 응원하는 팀이 없다는 건 스포츠 경기를 챙겨볼 이유 또한 그다지 없다는 뜻이니까. 물론 팬덤과 관계없이 스포츠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럭, 당신들도 알다시피 그런 유의 인간은 아님. 그래서 요즘 롤 경기에 흥미를 잃었어요. 아, 이스포츠가 왜 이렇게 손에 안 잡히지- 생각해 보니 딱히 롤에 응원하는 팀이 없었음을. 카트라이더 리그에서는 박인재 선수를, 오버워치 리그에서는 루나틱 하이를 응원했지만 롤 리그는 정말 누가 이기든 뭐, 관심 없어. 예전에는 T1을 응원했던 것 같은데 그건 제가 T1을 좋아했다기보다는 그냥 이기는 팀 우리 팀 체고^0^/ 하면서 댁알히 꽃밭처럼 볼 때라서요. 얘기가 왜 고기를 잡으러 산으로 갔지. 아무튼 야구에 영 흥미를 못 붙였다 이 말입니다. 역시 야구와는 안 맞나 보다 생각했어요. 정말로.
2.
그런 우럭에게 다시금 야구 작두가 내려왔다. 그 이름하여 바로 최강야구. 갑자기 신내림을 받았지 뭐예요? -같은 말도 안 되는 전개는 아니고 그냥 SNS에 최강야구 클립이 떠서 보게 됐다. 바로 이대호가 태그업 요구에 어리둥절하다가 안돼안돼 하는 장면을 말이지. 처음에는 왜지? 하고 이대호 영상을 조금 찾아보다가 곧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음. 그러다가 이제는 하차해버린 장원삼 유잼 모멘트들을 보고... 그다음에는 정근우의 절이 싫어서 중이 떠났는데 절이 쫓아와요 클립을 보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사실 그런 거다. 우럭은 야구를 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예능을 보려고 했던 거야. 왜냐면 우럭, 재미를 압수당하면 살아갈 원동력을 잃으니까. 할 일 없이 빈둥댈 뿐이었던 인도네시아 생활 속에서 어떻게든 콘텐츠를 찾아내려 했던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어쨌든 최강야구 후기를 남기자면 야구는 이겨도 스트레스 져도 스트레스라는 말과 달리 편안한 시청 가능. 어차피 은퇴 선수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그런지 이기면 이기는 대로 감동적이고 지면 그저 짠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혼자 보려고 틀었는데 어느새 온 가족이 다 같이 보고 있는 휴먼 프로그램이더라고요. 예상치 못했으나 결론적으로는 좋았습니다. 우럭, 칭호는 효년이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따땃한 여자거든요.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지만 난 거실에 가족끼리 모여 앉아 일요 예능 보면서 깔깔 웃을 때 행복해. 희희.
3.
그리고 이런 나의 시도가 야구를 즐겨 보는 주위 친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는지 정주행을 알리는 SNS 소식에 몇몇으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한 명은 롯데 영업을 시도하다가 조진웅이 되기를 강하게 거부하자 그대로 전의를 잃었음. 친구 미안. 하지만 나는 진웅이 왔다는 야구장 목격담이 SNS에 심상찮게 올라오는 것과 달리 그가 경기 결과에 환호했다는 소식은 통 찾아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아무래도 그는 영화의 흥행보다 롯데의 우승을 선택하는 배우니까. 우럭 27세, 안 그래도 삶이 각박한데 그런 고단한 길은 가고 싶지 않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오로지 단 한 마디만을 보내왔는데 그게 나의 심금을 울렸음을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4.
문제는 최강야구 이제 재미없음.
5.
이렇게 한 줄 만에 말 바꾸는 거 맞아? -의문이 들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지만 솔직히 재미없는 걸 어떡해. 할 게 쥰내 없는 인도네시아와 달리 한국은 동서남북으로 콘텐츠투성이다. 기실 이것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크긴 하지만... 하아아- 아무리 스포츠의 재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지만 기본적으로 우럭은 더티 토크와 결이 안 맞는 인간이다. 물론 시합 전에 기선제압으로 몇 마디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요. 마흔 살 넘은 아재들이 고등학생에서 스무 살 갓 넘은 애기들 상대로 유치하게 경기 내내 입 터는 게 너무 쪼잔하고 없어 보인단 말이에요. 정도껏 해야 재미있지 계속 보다 보면 사람이 좀 짜게 식는다고... 역시 하남자 모멘트에 내성이 없는걸 보니 난 상여자가 분명한 듯. 나는 개소리 바이링구얼이라 개소리를 그럴듯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하지만 그건 최근의 일이고. 열심히 시청하던 당시에는 이왕 야구를 보기 시작한 김에 좀 더 찾아보면서 나도 야구판에 발이나 담가 볼까 했다. 최강야구 보면서 대학 리그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는데 대학 리그는 직관하려면 경상도에 가야 하더라.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함. 그럼 어쩌지 생각하던 우럭에게 어둠의 야구 팬 한 명이 손을 뻗어왔다.
대화를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그녀는 엘지 팬임. 최근에 만났을 때는 일코용 귀걸이로 괜찮을 것 같다며 엘지 트윈스를 상징하는 알파벳 T 형상의 귀걸이를 사 와서 할 말을 잃게 한 전적이 있다. 전 편에서 교묘한 말장난으로 사기행각을 벌인 것도 이 인간임. 아무튼 그녀는 내게 엘지를 영업하려 했으나 롯데 팬의 조언과 망그러진 곰이 구장 위를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각종 영상으로 인해 우럭은 마스코트 맛집을 원하던 차였고. 그에 따라 기아나 두산을 언급한 저는 친구를 잃을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원래 엘지랑 두산은 홈구장이 겹쳐서 사이가 안 좋다나 뭐라나. 그건 뭐 사실 알 바 아니라서 저 때까지만 해도 엘지에는 관심 없었어요.
6.
분명히 없었는데 생겨나면 안 될 게 생긴 건 며칠 후의 이야기.
7.
내가 진짜 귀여운 걸 좋아하거든... 물론 귀엽다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적당히 못생기고 적당히 하찮고 적당히 귀여운 게 삼박자로 이루어져야 좋아하긴 하는데 그래서 결론은 마루를 쥰내 좋아해. 즉? 우럭은 마루와 엘지가 콜라보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엘지를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함. 진심으로 뛰어들 용의가 있었다. 마루는 귀여우니까. 귀여우면 심장이 뛰니까. 귀여운 마루는 내 심장을 뛰게 하니까.
엘지의 좆구린 미감으로 금방 심정지 당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뛰기 시작한 심장이었는데. 내내 죽어있던 심장을 마루가 CPR 성공해서 가슴 뜨겁게 만들어놨는데 엘지가 다 망쳤음. 진짜 마케팅 팀 뭐 하지? 두산 콜라보 유니폼 보면서 느끼는 게 없나? 분노와 의심에 가득 찬 제게 엘지 팬은 진정하라며 연명치료를 시도했어요.
그러나 느낀 것이 없었던 엘지에 끝내 그녀 또한 영업을 포기하셨습니다. 결국 차가운 가슴의 우럭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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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는 뭐. 최근에 차은우가 엘지 경기 시구하러 오면서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질 뻔했으나 그건 이제 야구의 문제가 아니었으니. 최강야구에 대한 흥미도 잃고 마루 인형탈과 유니폼 디자인에 낙담한 우럭은 야구 찍먹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친구들이 보러 가자고 하면 가끔 보러 갈 정도는 될 것 같으니 나름 나쁘지 않은 결말인 듯.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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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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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이야기 (4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지만 기아 홈구장 너무 멀어요... 근데 마스코트는 귀여운듯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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