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해할 수가 없다. 살면서 운동과 친하게 지낸 적이 없다. 기초체력은 바닥이고 근육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으며 내 몸무게는 순도 높은 지방의 결과물일 거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스물몇 년간 잘만 살아왔는데 왜지. 에이징 커브라는 게 바로 이런 걸까? 이제는 운동하지 않으면 정말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물이 난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어. 고개를 들면 거북목에 익숙해진 내 근육들이 소리를 지른다. 한의원에 갈 때가 되었지. 한의원 선생님이 그러던데. 보통 어떤 근육이 아프면 그 주변 근육이 받쳐줘야 하는데 우럭 씨는 그럴 근육이 없어요. 그래서 아픈 거예요. 싯팔, 서럽다. 운동 안 하고 근육 만드는 법은 없는 걸까? 난 노력 안 하고 결과를 얻고 싶을 뿐인데. 운동 안 하고 근육 만들기. 출근 안 하고 월급 받기. 작고 소박한 소원인데 세상이 날 억까하는지 이루기가 드럽게 어렵다.
2.
작년부터 땀 흘려가며 운동하는 건 싫은데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수영을 배워야지 생각했다. 문제는 정말 생각만 했다. 인턴 초반에는 집에 오면 피곤해서 처자느라 운동을 할 여유가 없었고 조금 익숙해지니까 겨울이 왔다. 물론 지금도 수영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 하지만 춥잖아? 추운데 새벽이나 밤에 수영을 어떻게 하냐구. 조금 더 날씨가 따뜻해지면 그때는 진짜로 수영을 다닐 거다.
우리 동네에는 근처에 수영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세 군데 정도 있는데 하나는 민영이고 나머지 두 곳은 구에서 운영한다. 구에서 운영하는 곳 중 한 곳은 여성 전용이라 그곳으로 갈까 하는데 문제는 거기가 제일 멀어. 그렇다고 남녀 공용인 곳을 가자니 아무래도 거기는 민영이 아니라서 청결 관리가 제대로 안되는 모양이다. 근데 민영은 또 너무 비싸… 엄청 비싼 것까지는 아니지만 한 달 이용요금이 다른 곳의 거의 두 배 가까이 된다. 하, 돈이 없으면 아파도 안되고 운동도 못한다. 제기랄.
3.
사실 수영보다도 필라테스나 요가를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근육이 시급한 사람이다 보니까 선택지가 좁아졌다. 태어나서 운동을 뭐 각 잡고 해본 적이 없다 보니 헬스장을 다녀도 바른 자세로 다치지 않게 적당량의 운동을 할 자신이 없더라. 그렇다고 PT를 끊기에는 난 돈이 없어. 그래서 내린 결론이 수영이었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 이제 운동 좀 해볼까 싶었더니 겨울이 찾아온 거임. 망했네. 깔끔하게 수영은 포기하더라도 뭐 어떻게든 다른 운동을 할 방법이 없을까 나도 고민은 했지. 우리 집에서 3분 거리에는 어린이대공원이 있어서 가끔 친구와 운동 겸 산책을 나갔는데 이제는 친구가 없어. 동네 친구들이 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겨울에 컴컴한 곳에서 혼자 찬 바람 쐬어가면서 20-30분 걷기? 생각만 해도 처량하다. 그런 이유로 조깅은 기각되었음을 알립니다. 땅땅-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느냐. 겨울이 빠르게 지나가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건가- 하고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상여자 우럭은 마음먹은 건 해내겠다며 링피트를 구매했다. 링피트라면 집에서 운동하고 땀나면 바로 씻으면 되니까 귀찮다거나 찝찝한 게 싫다는 이유로 안 하지는 않겠지
4.
- 라고 안일하게 생각해버린 결과였음을 지금에야 고백합니다.
5.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나흘은 진짜 열심히 했다. 하루에 한 시간 반 정도씩은 했던 것 같다. 큰 챕터가 있고 챕터 안에 대략 5개 이상의 스테이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루에 한 챕터씩 했다고. 아니, 매일 스쿼트를 200개 정도 하느라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물론 걸을 때마다 허벅지가 비명을 질렀는데도 연속적으로 그걸 해냈다니까?
문제는 우럭 작심삼일 만렙이라는 것. 마음먹은 건 해내기 위해 링피트를 구매했지만 마음을 절반만 먹었던 걸까. 끝까지 해내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맞다. 사실 난 상여자가 아니라 하여자다. 엉엉.
6.
마음을 절반 먹은 게 고작 사나흘이라는 생각이 든 사람들은 시작이 반이라는 걸 항상 기억하도록. 아무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그냥 혼자 찔려서 말해본다.
7.
아무튼 이제 신년이 되었으니 올해는 정말 꾸준히 운동을 해야지 다시 한번 다짐한다. 본격적인 에이징 커브가 오기 전에 빨리 기초체력과 근육을 길러야 하고 이제는 살도 빼야 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몸무게 앞자리가 5였던 적이 없었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몸무게가 슬금슬금 오르더니 어느새 5에서 내려갈 기미가 안 보인다. 이게 다 군것질과 액상과당 때문이다. 콜라를 너무 마셨지. 하지만 콜라를 끊을 수가 없다. 친구가 그럼 제로 콜라를 마셔보는 게 어떻냐 권했지만 제로 콜라는 콜라가 아냐! 그런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같은 건 마시고 싶지 않다고ㅠ
8.
당을 섭취해야 행복이 오는데 행복을 늘리다 보면 운동을 해야 하고, 운동을 하다 보면 불행해지고, 불행하면 다시 행복을 위해 당을 섭취하고…
인생이란 뭘까? 갑자기 이 모든 게 억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댓글 2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전윤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우럭이야기 (42)
지금에서야 이 댓글을 보고 있는 나, 격하게 반기는 중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