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지난주 단어 기억나시나요? 지난주 낯선 단어는 ‘절륜하다’였어요. 아주 뛰어나다는 뜻이었죠. 이번 주 단어를 고를 때, 지난주 단어와 연결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별생각 없이 단어를 하나 골랐는데, 지난주 단어와 정반대 뜻이더라고요.
그런데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극단적인 두 단어가 오히려 서로의 존재를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잘한 것과 못한 것, 만족스러운 결과와 그렇지 않은 결과. 하나를 알고 나면 정반대의 다른 하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이번 주 뉴스레터의 막바지를 쓰면서 지난주 단어가 새삼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우리는 늘 절륜한 순간만을 살아가지는 않으니까요. 그 반대편의 순간을 끌어안고 통과한 뒤에야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죠. 완벽하지 않아 아쉬웠던 순간들은 모두 다음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정이기를 바라봅니다.

✏️ 이렇게 사용해요
결과가 나온 자리에는 여러 감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견함, 뿌듯함, 자랑스러움. 긴 시간이 끝났다는 후련함이 찾아오기도 하고, 조금 더 해볼 걸 하는 미련이나 아쉬움도 온다.
아무리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음에도 조야한 결과를 마주치면 끝내 부끄러워진다. 이상과 실제 사이의 아득한 간격을 깨닫고 나면, 다음에 더 잘해보겠다는 의지나 희망의 자리를 두려움에 쉽게 내어준다.
그래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는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부족함을 모르기보다는, 조야한 것을 조야하다고 알아보는 편이 나을 테니까.
부끄러움에 멈추는 것은 비겁한 핑계일까, 크게 다친 마음이 선택한 나약한 포기일까. 아니면 한계를 묵묵히 안아주는 정직한 용기일까.
💥<에디터의 질문> 우리를 주저앉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대충 때우려던 태도가 아니라, 너무나 잘 해내고 싶어 온 마음을 다했던 진심과 높았던 기준일지도 모릅니다. 결과가 기대보다 조야하더라도, 그 무안함을 견디며 한계를 정직하게 관찰했던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준 적이 있나요?
조야한 회로판 위에서 시작되는 용기

영화 <오디세이>를 봐서인지, 갑자기 제 알고리즘에 2016년 MIT 졸업식의 맷 데이먼 축사 영상이 떴습니다. 맷 데이먼은 수없이 오디션에서 떨어졌던 이야기를 했어요.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결과는 번번이 기대와 달라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해야 했던 순간들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 축사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올해 MIT 졸업식에서 축사를 남긴 이는 AMD CEO 리사 수(Lisa Su)였어요. 답을 알고 있다는 확신보다, 답을 모르는 순간에도 결국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무언가를 새로 발견하려는 팀의 일원이 되어 실패하더라도 다시 실험하던 바로 그 순간 진짜 엔지니어가 되었다고 합니다. 조야한 결과를 마주하고도, 기어이 다시 시도해 보는 태도가 결국 세상을 바꾸는 무언가로 닿는다는 메시지입니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다시 들여다보고 다음 시도를 하는 고집스러운 시도가 끝까지 가게 하는 가장 단단한 동력 아닐까요?
낯선 단어 '조야하다'를 일상으로
[👁 눈으로] 완벽한 명작 대신, 예술가들의 거칠고 투박한 초기 습작이나 기획 노트의 흔적을 유심히 들여다보기.
[✍️ 손으로] 조야하다고 느끼는 나의 면모를 한 줄 적어보기. 그 옆에, 조야해도 괜찮은 이유 한 줄 적어보기.
[🚪 밖으로] 조야한 것들을 오히려 매력으로 삼는 공간이나 브랜드를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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