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5월에 소개했던 '산딸나무' 기억하세요? 하얀 표창 모양으로 피어나던 산딸나무꽃 이야기를 나눴죠. 얼마 전 산책로를 걷다가 옆을 올려다보니, 산딸나무의 흰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붉은 열매들이 탐스럽게 익어 있더라고요.
쌀쌀한 바람에 아이의 옷장에서 긴 바지를 꺼내 입혔어요. 마찬가지로 5월쯤, 아이 키에 맞춰 산 옷인데, 그새 자란 아이의 발목이 훤히 드러나더라고요.
1년의 반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임에도 주변이 바뀌고 있음을 새삼 느꼈어요. 계절이 바뀌고, 나무에는 꽃 대신 열매가 맺히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잠시 돌아보았어요. 구독자님은 어떠신가요?
드디어 기다리던 추석 명절입니다. 저는 엄마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역할을 하느라 바쁠 예정이에요. 다음 주 뉴스레터는 쉬고, 다다음 주에 돌아오겠습니다. 풍요로운 명절 보내세요!

✏️ 이렇게 사용해요
할 수 있는 게 기다림밖에 없을 때, 나는 나를 너무 쉽게 괴롭힌다.
대학 입학시험을 보던 겨울, 수시 탈락 소식을 듣고 집에 오는 내내 노약자석에 웅크려 눈물을 흘렸다. 그 열차 안에서 가장 심신이 미약했던 사람은 분명 나였을 것이므로 당연하게 노약자석에 앉아 울었다. 한껏 작아진 나에게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도착한 시험장에는 가장 좋아하던 아폴로 석고상과, 가장 좋아하던 아폴로의 얼굴인 좌측을 바라보는 나를 위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 아쉬움 없이 시간을 채우고 시험장을 나섰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 분심이 회오리처럼 일었다. 기다림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나는 강아지가 터그놀이를 하듯, 나를 물어대기 시작했다. 야성을 잃은 무딘 송곳니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날카로운 맹수의 이빨과 발톱으로 나를 구석에 몰고 찢어발겼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나는 이미 재수해야겠다 싶었지만, 부모님의 차가운 눈빛까지 상상하다가 결국, 성적에 맞는 학교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걸레보다 못하게 찢긴 자존감은 조금이라도 버텨보겠다고 바닥에 철썩 달라붙었다. 나쁜 결과는 당연한 처사로 느껴졌다. 2주 뒤, 좋은 결과를 받았지만, 구걸 끝에 감히 받아버린 성은처럼 과분했다. '잘해서'가 아니라 '어쩌다 운이 좋아서'가 되어버렸다.
그때의 나는 결과가 오기 전에 이미 나를 몇 번이고 떨어뜨리고 있었다. 20년이 흘러도 나를 제일 미덥지 않아 하는 사람은 여전히 나다. 나는 언제쯤 나를 향한 지독한 적의를 거둘 수 있을까.
💥<에디터의 질문>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있나요?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자꾸 앞서 나가고,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스스로를 괴롭힌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세요. 어쩌면 분심이 생기는 것은 결과를 몰라서가 아니라, 결과가 오기 전의 ‘사이’를 견디기 어려워서인지도 몰라요.
분심이 가라앉는 옛돌정원

지난 주말, 용인 호암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늘 전시와 희원만 둘러보다가 이번에는 야외에 조성된 ‘옛돌정원’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이우환 작가의 ‘관계론’이 자연에 구현된 공간이에요. 세월의 흔적을 품은 한국의 옛 돌들과 작가가 엄선한 정돈된 쇠판, 자연석이 여백을 두고 놓여 있어요. 작가는 작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여 사물과 사물, 사물과 공간, 관람객이 서로 부딪히며 자아내는 울림에 집중합니다. 그늘에 앉아 무겁게 제자리를 지키는 거대한 돌과 키 큰 나무를 멍하니 바라보니 온갖 분심이 사라지더라고요.
아쉽게도 옛돌정원은 공사로 인해 9월 28일부터 휴장한다고 해요. 올해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건 추석 연휴가 마지막일 것 같네요.
머릿속이 시끄러워 고요함이 그리운 날에 옛돌정원을 찾아 가만히 거닐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넓은 자연에 배치된 돌과 쇠판 사이의 여백을 거닐며 순간에 집중하다 보면 내 안의 분심도 가라앉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낯선 단어 '분심'를 일상으로
[👁 눈으로] 마음이 번잡하게 흩어질 때, 머릿속 복잡한 생각 대신 지금 당장 시선이 닿는 공간이나 물건을 유심히 들여다보기
[✍️ 손으로]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생각을 검열하지 않고 적어보기. 정리하려 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적은 뒤 마지막에 지금 내 감정을 한 단어로 붙여보기.
[🚪 밖으로] 좁은 실내에서 벗어나 정처 없이 밖으로 나가, 주변의 감각을 느끼며 걸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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