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싱그러운 초록이 짙어지는 5월의 한가운데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증명하듯 낮의 햇살은 제법 뜨거워졌고, 나무들은 저마다의 그림자를 넓혀가고 있어요.
요즘 길을 걸으면 자꾸 나무를 올려다보게 돼요. 며칠 사이에 풍경이 금세 바뀌니 지금의 풍경을 담고 싶거든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게 실감이 나시나요? 벌써 한 해의 중간에 닿고 있다니 괜히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구독자님은 이 푸르른 계절을 어떻게 통과하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 이렇게 사용해요
산딸나무를 알게 된 건 작년 이맘때였다. 특색 없는 나뭇잎이라 존재감을 깨닫기 어려운 산딸나무는 꽃이 펴야 눈길을 받는다. 가운데 오톨도톨한 동그라미를 기점으로 끝이 뾰족한 물방울 모양 네 개가 표창처럼 붙은 흰 꽃. 하와이를 상징하는 플루메리아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 꽃에 반해 이름을 메모장에 적어뒀을 때, 나는 뭐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신이 있었다. 설렜다. 열의가 있었다. 무관심 속에서 묵묵히 꽃을 피워내는 산딸나무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눈부시게 하얀 네 개의 표창은 사실 꽃잎이 아니라 나뭇잎이다. 가운데 뭉쳐 있는 작고 연약한 진짜 꽃들을 지켜내기 위해, 나뭇잎이 스스로를 변형시킨 것이다. 서글픈 방어막.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작년의 내가 스쳤다. 나는 산딸나무의 예쁘장한 흰 꽃만 봤다. 그것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모양을 바꾼 나뭇잎이라는 건 보지 못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꽃보다 나뭇잎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차이가 1년, 꽃만 봤던 때가 그립다.

하남 나무고아원에서 만나는 산딸나무

버려질 뻔한 나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습니다.
도시개발이나 도로공사가 시작되면 오래된 나무들은 하루아침에 베어지거나 뿌리째 뽑혀요. 수십 년을 그 자리에서 자라왔어도, 개발 계획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죠. 하남 나무고아원은 그렇게 갈 곳을 잃은 나무들을 데려와 심고 가꾸는 곳이에요.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기른다는 취지로 2,000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강 변 공사로 베어질 뻔한 소나무, 도로 확장으로 상처 입은 은행나무, 가로수 교체 계획에 밀려난 버즘나무들이 여기에 다시 자리를 잡았어요.
수많은 나무들이 숲을 이룬 나무고아원에서, 5월에는 산딸나무 앞으로 발걸음을 디뎌보면 어떨까요?
평소에는 평범한 초록 잎사귀로 숲의 배경이 되어주던 산딸나무는 이맘때가 되면 하얀 표창 모양의 꽃들을 일제히 밀어 올립니다. 진짜 꽃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를 하얗게 변형시킨 산딸나무처럼 나무고아원의 나무들은 저마다 보이지 않는 그늘을 하나씩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서늘한 그늘 덕분에 이곳을 찾는 이들은 숨을 고르고 위로받습니다.
상처받았기에 오히려 더 다정하게 안아주는 숲. 푸르름이 짙어지는 요즘, 사연 있는 나무들이 모여 위로의 숲이 된 하남 나무고아원을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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