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답답하시죠? 저는 평소 에너지가 넘치고 긍정적인 사람인데도 요즘 많이 가라앉네요. 뭔가 신나는 일이 '짠'하고 나타나면 좋으련만 반복되는 일상에 시들시들 병들어가는 잎새처럼 누렇게 변해갑니다. 이게 코로나 블루인 걸까요 아님 코로나 엘로우일까요?
과거 여행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예전엔 고객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일을 했기에 여름 휴가를 편하게 다녀올 수 없었어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삶을 살게 된 이후에는 바쁜 남편과 일정 맞추기 어려웠죠.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가자던 약속은 희미한 흔적으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참다못한 제가 두 아이와 함께 첫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막상 다녀와 보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아이들과 자주 다녀오려고 노력했어요.
문제는 제 스타일입니다. 저는 MBTI의 J 성향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 철저하게 계획해야 움직입니다. 2013년 아이들과 싱가포르 여행을 가기 위해 거의 한 달 이상 준비했습니다. 싱가포르 관광청에서 소개 책자를 받고 각종 카페와 블로그를 방문하여 한 치의 오차가 없는 계획표를 짰습니다. 시간, 동선, 교통수단, 할 일, 소요 금액, 환율, 할인 정보, 음식 메뉴로 빼곡한 엑셀 일정표(나는야 엑셀 마니아)를 만든 후 의기양양하게 출발했죠. 하지만 지나친 제 욕심에 아이들은 지쳤고 촘촘한 일정에 숨 막혀 했어요. 종일 호텔에서 놀고 싶다고 해서 일정에 상관없이 시간을 보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지갑을 잃어버려 국제 미아가 될 뻔하기도 했어요. 결국 계획과는 동떨어진 여행을 즐기다 왔어요.
자유여행은 준비과정에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니 패키지여행을 선호해요. 패키지여행이 더 저렴하기도 하고, 제가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중요한 스폿을 버스로 이동하며 돌아보니까요. 문제는 호텔과 관광지가 항상 멀어서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저녁 늦게 도착하는 빡빡한 일정으로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원하지 않는 쇼핑몰도 가야하고요. 그래도 일정표를 짜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에 패키지여행을 선호했어요. 코로나가 생겨나기 직전에도 유럽 패키지여행을 고려했죠. 지금은 여행을 갈 수만 있다면 뭐든 좋겠지만요.
이런 구태의연한 사고를 하는 저에게 일침을 가한 분이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의 김원희 작가님입니다. 지난 주말에 이분의 특강을 들었습니다. 강의가 처음이라지만, 독서와 여행, 책 쓰기를 연결하여 조곤조곤 삶의 지혜를 알려주셨습니다. 강의 내내 72세 할머니인 작가님은 "꿈, 재미"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어요.
작가님은 50세대에 패키지여행 한 번 다녀오셨답니다. 너무나 가고 싶던 여행지를 가서 감탄하는 중 10분도 안 되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니 황당했죠. 남는 게 하나도 없어서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는 자유여행만 다니신다는데요. 자유여행이 좋은 점은 현지에서 사람을 구경하고 만나기 때문이랍니다. 가보고 싶은 곳을 여행하며 여유 있게 즐긴다는데요. 여행지 선정의 원천은 책이라고 해요. 예를 들면 《장미의 이름》을 읽고 소설의 배경 장소인 빈에서 떨어진 멜크 수도원을 직접 다녀오는 거죠. 자유여행은 많이 걸어 여행을 다녀오면 더 건강해진 느낌을 받는답니다. 평소에 체력 관리를 하지 않는 할머니 작가님의 건강 비결이기도 합니다. 동남아는 좀 더 나이가 들면 가려고 아껴두었고 주로 유럽을 자유여행으로 다닌다고 해요.
지금까지 작가님은 세 권을 책을 내셨어요. 자세한 자유여행의 경험을 블로그에 꾸준히 올리다 보니 2017년에 출판사로 연락을 받아 책을 냈고, 두 번째 책은 2020년 초에 부크크로 자가출판을, 최근 책은 직접 출판사 투고로 내셨어요. 젊은 사람도 부크크 자가출판이 어려워 망설이기도 하는데 더군다나 출판사 투고라니요. 저 역시 몇 군데 투고했다 잘 안 되어 요즘은 부크크 자가출판에 기울었는데요.
패키지여행이나 자가출판 같은 쉬운 방법에 기대어 묻어가려는 제 모습이 백지 모서리에 숨은 점처럼 보였습니다. 여행을 진심으로 즐기지 않고 "나는 ~를 다녀왔어"라는 자랑의 용도로 패키지여행을 선호한 것 같기도 하네요. 말로만 은퇴 후 현지인처럼 여행지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겠다 주장하면서 한 번도 여행에서 현지인과 대화를 해본 적도 없습니다. 호기심으로 여행지의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지 않았어요. 여행의 참뜻도 모르고 번지르르한 겉면만 사랑했네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이가 들면 친구가 한둘씩 사라진다고 합니다.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혹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이 생겨나는 거겠죠. 기나긴 시간을 홀로 외로이 보낼 것인지 꿈과 재미를 찾아 떠날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할머니 작가님은 더 일하고, 책 내고, 여행 다닐 꿈을 꿉니다. 저도 죽을 때까지 일하고, 책 낼 생각은 했습니다만 자유여행은 생각 못 했네요. 코로나가 끝나면,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꼭 자유여행을 가서 여행지의 사람을 관찰하고 대화도 나누렵니다. 그 꿈을 위해 저 역시 책을 읽으며 떠나고 싶은 여행지 목록을 만들어야겠어요. 또한 코로나 옐로우를 극복할 작은 프로젝트도 시작하렵니다.
패키지여행과 자유 여행 중 여러분은 어떤 여행을 선호하나요? 어디로 떠나고 싶은가요? 여러분은 어떤 재미를 추구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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