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스페인 여행을 취소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즐기는 여행

2022.06.11 | 조회 7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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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의 주간 성찰

일하고 배우고 느낀 성찰을 나눕니다

3월 말에 멜버른 출장을 다녀오며 코로나 종말이 바짝 다가온 듯 여겨졌습니다. 2년 전 코로나가 닥쳤을 때 미리미리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되었습니다. 사전에서 해외여행이라는 단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회복되는 모습에 놀라며 여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10월 3일과 9일이 각각 월요일 휴일이라 그날을 포함하여 4일만 휴가를 내어도 10일 정도 해외여행이 가능하겠더라고요. 우크라이나 전쟁을 염려하면서도 유럽 쪽으로 함께 갈 친구를 찾았습니다. 2년 전 네덜란드 여행을 계획했다 코로나 때문에 취소한 친구에게도 연락하고 여기저기 알렸습니다.

처음엔 함께 가자고 좋아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일정이 안 맞는다거나, 당장 돈이 없다거나 등 이런저런 이유로 어렵다고들 했습니다. 가장 절친인 딸도 학기 중이라 힘들다고 했고 생업에 종사 중인 남편도 쉽지 않았죠.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점점 항공료가 올라간다는 언론 보도가 저를 들썩거리게 했어요. 

외국인을 위한 '폴케호이스콜레'(IPC, International People's College)를 찾아봤어요. 단기 코스가 있다면 혼자라도 다녀오고 싶더라고요. 가장 짧은 과정이 3주라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언젠가 3주 영어 어학과정을 도전해보고 싶네요.

사실 해외여행으로 가고 싶은 곳은 스페인이었어요. 생각해보면 가고 싶은 여행지는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 결정되더라고요. 싱가포르 출장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때 동료가 싱가포르를 어찌나 찬양하던지 궁금해서 가족 여행으로 다녀왔고요. 친구가 제주도 사려니 숲이 그렇게 좋다고 해서 제주도에 다녀왔지요. 스페인도 지인이 4년 전에 다녀왔는데 어찌나 자랑하던지... 그래서 가고 싶었나 봅니다. 주변 친구 중 스페인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저밖에 없더라고요.

그동안 해외여행을 주로 패키지로 다녔기에 자유여행으로, 바르셀로나에 머물며 시내 골목 투어를 하고 싶었어요. 가능하다면 현지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면 좋겠더라고요. 햇살 좋은 날 노천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우선 비행기 표부터 끊고 그사이 동행을 구하면 함께 가고 아니면 혼자서라도 가려 했습니다. 

조금씩 여행을 준비하려고 회원 200만명이 넘는 여행 카페에도 가입했어요. 동행을 구하는 게시글도 있고, 호텔 정보와 현지 여행 정보가 가득했어요. '바르셀로나' 키워드로만 검색해도 매일 50개도 넘는 글이 넘쳐나더군요. 매일 밤 잠들기 전 카페 글을 읽으며 혼자 떠나는 여행을 상상했어요.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단 스페인은 소매치기가 많아 아시아인이나 여행객 같은 사람이 주요 타깃이 되고 더 큰 문제는 숙박비가 엄청나게 비쌌어요. 안전한 곳에 머물려면 1박당 거의 20-30만 원이라 숙박비만 200-300만 원 나오겠더라고요. 아무래도 2명이 가야지 혼자는 절대 안 되겠더군요.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과 동반 여행은 자신이 없었어요.

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왜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가?'

'낯선 경험을 하고 싶어서.'

'낯선 경험을 우리 동네에서는 못하는가?'

'사실 안 가본 길이 많긴 하지.'

'그럼 동네 주변을 여행왔다 생각하고 돌면 되지 않을까?'

'여행 가서 하고 싶은 게 관광지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은 거리의 카페에서 여유 있게 책 읽는 거인데.'

'그럼 동네 카페에서 책 읽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게. 동네 카페도 좋고 정 자연의 정취를 누리고 싶으면 제주도만으로도 아주 훌륭한데.'

'주말에 가족들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함께 추억을 만드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그러게. 살아 있을 때 가족과 함께 더 시간을 보내는 게 맞지.'

'도서관 탐방 프로그램이나 템플스테이도 좋고. 친구와 가볍게 당일치기 여행도 좋고, 꼭 그렇게 거창하게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건가?'

'흠...'

솔직히 제 속마음은 어디 어디 다녀왔다는 자랑질을 하고 싶었던 거였습니다. 가보지 못한 이국적인 여행지를 다녀오면 물론 좋겠지만, 상황이나 여건이 맞지 않다면 무리할 필요는 없겠죠. 방학 때 가족과 함께 가면 모를까요. 아니면 미리 여행계를 들어서 동행을 정해서 계획적으로 가는 게 좋겠더군요.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여행지는 함께 가는 사람으로 결정되니까요. 혼자 여행 다니는 건 국내로 제한하고 싶어요. 아니면 해외 출장을 연장해서 다닐 수도 있겠죠.

가격이 엄첨 올랐다는 4월 말에 예약한 10월 바르셀로나 왕복 티켓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곤 7명의 지인이 있는 단톡방에 제주도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계속 제주도 여행 가자는 말이 나왔는데 제 스페인 여행 계획 때문에 일정 잡기가 애매했거든요.  

회사 일이 바쁘지 않은 주말에는 혼자 낯선 여행을 떠나보렵니다. 평소에 가보지 않은 도심 공원과 카페를 방문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려고 해요. 가족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렵니다. 코로나로 소원했던 친구들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만나려고요. 

여러분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여행을 꿈꾸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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