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게 나이들어요, 우리

‘나를 알수록, 너를 모를수록’ 잘 할 수 있는 일-상처주지 않기

[귀엽게 나이들어요, 우리] by 박나긋

2024.01.23 | 조회 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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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상처받은 마음 | 사진출처: freepik
상처받은 마음 | 사진출처: freepik

얼마 전 TV를 보다가 흥미로운 인터뷰에 빠져들었다. 영국의 한 국립 심리치료사가 출연한 방송이었다. 여러 이야기 중 특히 눈에 띈 것은 영국 정부가 2018년에 ‘외로움부’를 신설했다는 내용이었다. 현대인의 우울증, 고독, 분노 같은 마음의 질병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취급하고 범정부적으로 맞서기로 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는 계속해서 영국인들이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결국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충분히 공감 가는 내용이었다. 나의 경우에도 진심이라 생각한 관계에서 몇 번 상처받은 뒤에는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잔뜩 움츠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할 사람은 많지만 소통을 나눌 사람은 점점 없어지고, SNS 등을 통한 자기표현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기는 힘들다. 진정한 관계를 원하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쉽지 않다. 참 외로운 인생이다. 

   사람들은 왜 상처를 주고받을까. 사실 상대방을 해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많은 경우 상대방을 도우려는 의도가 오히려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이 되는 듯하다.

   몇 년 전 교회에서 전도사로 있을 때 일이다. 당시 3040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전체를 진행할 담당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추천되었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라 담당자가 되었을 때 잘하고 싶은 기대가 컸다.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이 찬성했는데 한 사람이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자녀 양육의 경험도 없는 사람이 가정사역을 할 때 얼마나 공감하며 잘할 수 있겠냐는 취지였다. 

   순간 당황스러운 마음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금세 차오른 눈물을 꾹 참으며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회의가 끝났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분이었고, 당시 실제로 그 부분이 콤플렉스였던 터라 큰 상처가 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근처 카페에 가서 한참을 혼자 앉아있다 왔다. 

   나중에야 내 마음이 상한 걸 알고 사과를 전해왔다. 본인은 상처 주려고 했던 게 아니라, 일이 뜻대로 잘 안되면 상심할까 봐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랬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이 진심일 수도 있고, 문제 제기 했던 부분들이 실제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진심이라고 해서 상대방도 그 진심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상처받은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 나 스스로 그 프로그램을 맡지 않겠다 했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는 거기까지가 끝,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처를 주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기준이 정답이라는 전제하에 상대방을 가늠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잣대를 휘둘러댄다. 결국 함부로 재단한 대가는 우리 둘 다의 짙은 외로움이었다.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귀엽게 나이들 수 없다.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상처 주다 홀로 추운 겨울을 맞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두 가지 자세를 제안하고 싶다. 

   먼저는 나의 약함에 대해 더 알아가고자 하는 태도이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장점이 부각되는 것은 즐거워하지만, 단점이나 실패에 직면하는 것은 어려워한다. 하지만 나의 연약함과 결핍, 부족함과 좌절을 솔직히 마주할수록 다른 사람을 향한 높은 기준을 거둘 수 있다. 내가 부족한 만큼 너도 충분히 연약할 수 있음을 알 때 한결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상대방을 아직 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이다. 상대에 대해 내 경험 안에서 지레짐작하지 말자. 내 손안에 답지가 없는 문제지처럼, 우리 관계 안에서 너의 마음과 또는 상황이 어떠한지 먼저 질문해보면 좋겠다. 이를 위해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적은 말이 오가더라도 상대의 답을 충분히 기다려주며 눈빛과 표정으로, 배려하는 몸짓으로 소통을 누려보자. 우리의 관계에 꽃이 피어날  것이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다. 사람,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나의 말에 기울여주며, 어떤 모습이라도 안심하며 존재를 보여줄 있는 사람이면 된다. 나이가 들어도 따뜻한 삶은 계속된다,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있다면.



[저자소개]

평생동안 귀여운 것을 수집하며 살았다. 그러다보니 좁은 집이 귀여운 잡동사니들로 가득해졌다. 더 이상 귀여운 것들을 들일 곳이 없자 스스로 귀여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말랑한 마음가짐과 둥글한 삶의 태도면 충분할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한다는 진리를 믿는 중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매일 글을 쓰고 마음을 뱉으며 한뼘씩 자라는 중이다. 언젠가 작은 그늘이라도 생긴다면, 지친 누군가에게 한자리 내어주고 싶다. 

[쓰고뱉다]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함께 모여 쓰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글쓰기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가장 표현해줄 있는 닉네임을 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존재의 언어로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다보면 누구나 글쓰기를 할수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뉴스레터로 발송되는 글은 <쓰고뱉다> 숙성반 분들의 글입니다. 오늘 읽으신 한잔이 마음의 온도를 1 정도 높여주는데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댓글보러가기 통해 본문 링크에 접속하여커피 보내기기능으로 구독료를 지불해주신다면 더욱더 좋은 뉴스레터를 만드는데 활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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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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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피어

    0
    8 months 전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 읽어 내려가다가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있는 글체에 완벽히 설득을 당해버렸습니다. 귀엽게, 외롭지 않게 나이들기 위한 두 가지 제안 잊지 않을게요! 저 또한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귀여움이 글에서 더욱 드러나시는 '박나긋'님을 응원합니다.ლ(╹◡╹ლ)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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