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출근길마다 빈속에 넘기는 진하고 달달한 커피가 밤새 쪼그라들었을 위에 닿아서인지 명치가 딱딱해져 왔다. 어제 그 건은 신제품 런칭 전에 이슈 없이 바로잡겠습니다. 드디어 몇 번이고 연습했던 그 문장을 내뱉었다. 지난 주말 동안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더블체크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 일 때문이었다. 팀장님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히는가 싶더니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휴, 넘어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알람이 울렸다. 꿈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혼나기 싫어 그랬던 완벽에 대한 강박은 마케팅 직무를 맡으면서 강화됐다. 어느 직무라도 그렇겠지만 챙겨야 할 사소한 일들이 많고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일을 잘 해내야 하는 특성 때문이었다. 행사가 있으면 인쇄물에서 판촉물까지 무엇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리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어도 일 제대로 못 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당연히 모든 일에서 플랜 비를 대비하는 것 또한 디폴트였다. 일이 끝나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인플루언서와 진행할 홍보 기사나 리뷰 콘텐츠를 제작할 때는 강박감이 극에 달했다. 미팅이나 전화로 작업 조건을 협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비용을 집행하고 나서 작업 결과를 보면 협의가 이뤄진 작업들이 쏙 빠져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때부터였다. 대화 중에도 확정된 내용을 두, 세 번 다시 정리된 워딩으로 질문해 확답을 받고 대화가 끝나고 나면 곧바로 서면으로 내용을 공유해 휘발되지 않을 증거를 남겼다.
일에서 빌드업된 습관은 삶의 전반으로 파고들었다. 티끌 하나 놓칠까 늘 불안했고 모두를 의심했다. 딱딱해져 가는 나의 이미지만큼이나 나의 어깨도 위장도 스트레스로 딱딱해져 갔다. 나도 믿지 못해 여러 겹의 안전망을 만들어 놓았는데 남에게는 오죽했을까. 택시 값을 흥정하는 관광지에서 기사를 믿지 못해 택시에 타기 전 메모지에 구두로 합의 본 금액을 적어 손에 쥐여주는 것 같이. 늘 그렇게 상대방에게 꾸깃꾸깃하게 접힌 기분 나쁜 메모지를 한 장씩 억지로 쥐어 건넸다.
동네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 마치 큰 계약 건을 앞에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양 내가 사장님께 심각한 표정으로 지나친 질문들을 던졌나 보다. 그것도 여러 번. 나의 지나침에 당황하고 사장님의 표정까지 읽어버린 남편은 가게를 나오고 나서 나에게 그 일에 대해 언질을 줬다.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느냐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을 할 때는 완벽히 해내고자 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자세가 지나쳐 강박이 되고 강박이 일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공과 사를 넘나들게 되면 문제가 시작된다. 나를 잃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잃는다. 여유를 잃고, 웃음을 잃어버린다. 완전무결함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설령 완벽에 가깝게 목표를 달성했다 할지라도 돌아보면 다른 곳에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놓쳤을 것이 분명하다. 완벽은 언제나 벽을 품고 있는 법이니까.
한강을 가로지르는 한강 다리도 사이사이 틈이 있다고 한다. 그래야 온도로 인한 구조물의 변화에, 주변에 흔들림에 안전하다고 한다. 그 틈을 무언가로 가득히 채워 놓았다가는 도리어 더 큰일이 난다. 나도 조금 빈틈이 있으면 어떤가? 그 빈틈이 도리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면. 놓쳐서 한 번, 두 번 더 물어보면 어떤가? 한 번 더 전화를 걸면 그만인 것을. 상대방이 언젠가 그런 식으로 나에게 한 번 더 전화를 걸어올 때 조금 더 넉넉해지면 되는 것을.
처방을 위한 나의 계획은 틈을 만드는 것이었다. 조금 덜 계획하고, 조금 더 여유를 갖는 것이었다. 이미 몸에 밴 습관들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운 일이라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의식적으로 틈을 내기 시작하면서 강박의 수위는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물론 지금도 그 수위는 종종 예상치 못한 때에 아슬아슬하게 차오르곤 한다. 이제는 그럴 때면 괜히 동료를 불러 커피 한잔하고 오자고 한다. 어떤 날에는 목적지 없이 밖으로 나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거리를 걷기도 한다.
걷다가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농담 소리가 들려온다. 보도블록 틈 사이로 아무렇게나 피어난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얕게 내쉬던 호흡이 차분해져 온다. 아슬아슬하게 차오르던 강박의 수위가 조금씩 낮아지는 것을 느낀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배 속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꼬르륵.
[저자소개]
필명 따티제. 풀어서 말하면 따뜻한 인티제(MBTI 성향 중 INTJ의 별칭). 서울 올림픽 기억 안나는 87년생. 흔한 K장녀. 혼자 다 해야 하는 작은 외국계 기업 1인 마케터로 본능을 거스르고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강제장착. 아무거나 안 하는 고집쟁이 프리랜서 도전 중. 밥먹듯이 밤새는 수학강사의 아내. 쓰고뱉다 21기(대한민국 No.1 글쓰기 강좌)에서 글 배우는 중. 정리되지 않은 누군가의 마음 속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듯, 읽으면서 시원해지는 글을 쓰려는 중.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한 포도원 일꾼들에게도 일찍 일을 시작한 이들에게와 같은 품삯을 주는 사회적기업 대표가 되는 꿈 꾸는 중.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는 함께 모여 쓰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닉네임을 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존재의 언어로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글쓰기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뉴스레터로 발송되는 글은 <쓰고뱉다> 숙성반 분들의 글입니다. 오늘 읽으신 글 한잔이 마음의 온도를 1도 정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 ‘댓글 보러 가기’를 통해 본문 링크에 접속하여 ‘커피 보내기’ 기능으로 구독료를 지불해 주신다면 더욱더 좋은 뉴스레터를 만드는 데 활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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