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아무도 없는 놀이터. 단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그가 말했다. “나 군대에서 태권도 1단 땄었어.” 나는 웃었다. ‘굳이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걸까?’라는 마음속 의문은 숨긴 채. 그는 말했다. “보여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내가 왜 봐야 하지?’라는 생각은 속으로만 했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태극 1장을 시연했다. 나는 숨죽이며 그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의 앙다문 입술과 진지한 눈빛을 보면서 나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긴 꼬리 깃털을 부채처럼 활짝 펼친 공작새, 커다란 뿔을 바닥에 마구 문지르는 사슴, 밤새 개굴개굴 울어대는 개구리....
연애 5년 즈음하여 누군가 물었다. “결혼할 거야?” 지금 연애하고 있는 그와 결혼까지 갈 거냐는 질문이었다. 내 마음속 대답은 ‘그렇다’였지만, 내 입은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식장에 들어가 봐야 아는 거’라고 주변에서 흔히들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10년 가까이 교제를 하고도 헤어지는 커플을 본 터였기에, 나는 감정과 달리 이성적인 답변을 택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확답은 어리석은 거니까.
오늘날은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연애하고 헤어지는 것은 입에 오를 주제도 되지 못한다. 식장에 들어가도 이제는 모를 사회가 되었다. 11쌍 중에 1쌍(9.3%, 2004 법원행정처)이 이혼하는 시대이다. 이혼의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는 ‘성격 차이’(2014 사법연감)가 꼽힌다. 연애 후 결혼이든, 결혼 후 연애이든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상대를 정했을 터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부로서의 연합을 어려워하고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나와 잘 맞는 사람, 결혼해도 좋을 사람,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각자 나름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외모, 성격, 인품, 직업, 종교, 가치관, 관심사, 집안, 재력, 건강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그러나 그 모든 기준에 부합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수학을 잘 모르고 확률이나 통계를 잘 모르지만, 그 답을 0%라고 답해 보려 한다. 그 모든 기준을 훌륭히 통과할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렵겠지만, 내가 그 기준에 합격할 가능성도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까?
물론 그 모든 것을 고려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기 전, 따질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따지는 것이 어쩌면 아주 이성적이고 현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을 따지면서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 ‘결혼하고 싶을 만큼 그 사람이 예뻐 보이는가?’
‘예쁘다’는 말은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외적인 의미에서의 정의다. 또한 ‘행동이나 동작이 보기에 사랑스럽거나 귀엽다.’라는 의미도 있다. 내적인 의미에서의 정의다. ‘아이가 말을 잘 듣거나 행동이 발라서 흐뭇하다.’라는 연령적인 측면에서의 의미도 있지만,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의미는 내적인 의미로서의 ‘예쁘다’이다.
실제 내가 내 짝으로 확신하고 결혼을 결정한 그는 상당 시간 나에게 ‘예뻐 보이는 이’였다. 뜬금없는 태극 1장이, 그것도 여자들이 기겁한다는 군대 이야기와 맞물려 멋있을 리 만무하건만 나는 그가 예뻤다. 그때부터 그가 예뻐 보이는 순간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렇게 얘기하면 우리가 정말로 불타오르는 사랑에 잠식된 것처럼 들리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진절머리 날 정도로 싸웠고, 막말을 퍼부었고,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우리가 결혼에 골인하고, 2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여전히 그에게서 예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한 기업에서 적잖은 팀원들을 이끄는 팀장으로서 그는 꽤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다. 이성적이고 계획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의 그는 가끔 그 성향 때문에 나의 불만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종종 내 앞에서 개그 본능을 감추지 못한다. 조금 자중했으면 하는 바람에도 끝내 볼썽사납게 코믹 춤을 선보인다. 세 아이들과 내가 기겁을 하든 말든 잠재되어 있던 욕망을 표출하고 끝내는 우리를 웃게 한다. 기가 찰 노릇이지만, 그 모습이 나는 너무 예뻐 보인다.
결혼 18년 차 되던 해에 우리는 ‘이혼’이라는 무서운 말을 언급하며 정말 심각하게 다퉜다. 화해의 과정이 이전보다 많이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그때를 돌아보면 아직도 살이 떨릴 만큼 두렵고 슬프다. 그때 우리가 다시 연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 답은 여전하다. 그가 예뻐 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1년 간격으로 잃은 그가 몹쓸 말로 내 마음에 상처를 주었어도 ‘미안하다’고 하는 그 눈빛이, 그 입술이, 그 마음이 예뻐 보였다.
누군가는 이 ‘예쁘다’를 사랑스러움, 귀여움, 안쓰러움, 보호본능 등의 감정으로 대체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나쁘지 않다. 어떤 기준에서의 예쁘다이든, ‘예쁘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감정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혼 상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의 옆에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 사람의 무엇이 당신을 끌어당기는가? 수많은 요소들 중에서 당신을 미소 짓게 하는 부분이 있는가? 그리고 그 부분이 당신의 눈에, 당신의 마음에 예쁘게 보이는가? 마음껏 따져라. 외모, 성격, 인품, 직업, 종교, 가치관, 관심사, 집안, 재력, 건강.... 막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저 상대가 ‘예뻐 보인다’면 제발 놓치지 말길 바란다. 그 사람은 당신의 평생의 반려자일 수 있으니까.
[저자소개]
글로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신나기 때문에 ‘쓰니신나’라는 닉네임으로 ‘쓰고 뱉다’(글쓰기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글을 쓰는 것과 더불어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글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이 있기에,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7년 연애 후 결혼에 골인한 뒤 20년차 주부로 살고 있으며, 초, 중, 고 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습니다. 한때 ‘완전한 엄마가 되기’를 소망했지만, 지금은 ‘안전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 주일 학교에서 4세 이하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황금머릿결’이라는 필명으로 7권의 웹소설 전자책을 출간한 이력이 있습니다. 모든 일상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며, 보석처럼 반짝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를 즐깁니다.
[쓰고뱉다]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는 함께 모여 쓰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닉네임을 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존재의 언어로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글쓰기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뉴스레터로 발송되는 글은 <쓰고뱉다> 숙성반 분들의 글입니다. 오늘 읽으신 글 한잔이 마음의 온도를 1도 정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 ‘댓글 보러 가기’를 통해 본문 링크에 접속하여 ‘커피 보내기’ 기능으로 구독료를 지불해 주신다면 더욱더 좋은 뉴스레터를 만드는 데 활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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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베레벤
결혼과 육아를 더욱 회피하고 있는 이 시대, 너무나도 귀하고, 공감되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뱉이 더욱더 번창하고, 저도 언젠가 이 무리에 더욱 한발짝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는 2024년 첫날 보내봅니다^^ 첫 스타트를 잘 끊어주셔서 감사해요!
쓰니신나
베레베레벤 님, 공감어린 칭찬과 격려 너무 감사합니다~^♡^ 한발짝 용기있게 내딛는 걸음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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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바란
이뻐보이면.. 정말 답이 없죠😂
쓰니신나
ㅎㅎㅎ 잘 알고 계시는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초바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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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가정을 돌보고 일하시면서 글도 쓰시는 모습이 대단하고 멋있어 보여요^^ 응원합니다!! 저도 여러 방면에서 예뻐보이는 사람을 찾을 수 있기를ㅎㅎ
쓰니신나
본인이 예뻐서 정말 예쁜 사람 만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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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로리
결혼은 무엇보다 상대가 이뻐보여야 한다는 그말에 너무나 공감!!! 합니다.🥹
쓰니신나
느낌표 3개짜리 공감! 감사합니다, 묘로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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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벤처공인중개사
24년 한 해도 그 이쁘신 분을 제가 함께 공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쓰니신나
네^♡^ 이쁨을 나누면 또 배가 되겠지요 ㅎㅎ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새삥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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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말코
결혼 메커니즘이 이렇게나 간단하군요 ! 결혼이란 단어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때가 오면 꼭 참고하겠습니다😁
쓰니신나
참고할 때가 어서 오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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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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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니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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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우두
이뻐보이면..... 좋네요 더 명확해집니닼ㅋㅋㅋ
쓰니신나
좋다고 해주셔서, 명확하게 느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바우두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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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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