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시간 동안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있었다.
3년, 짧지 않은 연애 기간 동안 매번 대중교통을 타고 두 시간 걸리는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내가 그 사람을 만나러 직접 간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막차를 놓칠까 봐 뛰어가면서도 나를 만나는 날이 새로운 한 주를 사는 힘이라며 힘든 기색 한 번 낸 적이 없었다. 먼 길 달려온 사람을 일이 많다는 이유로 겨우 2시간밖에 보지 못했어도 나도 모르게 잠들어서 1시간을 기다리게 했어도 화 한 번 낸 적이 없었다.
바보 같은 이 사람이 가끔은 싫증이 나서고약한 성질을 부릴 때도 있었다.나 자신도 너무 싫은 추한 모습을 보이고 나서 후회하고 있을 때도 그 사람은 ‘그것 또한 네 모습’이라며 사랑해줬다.
‘자발적 을의 연애’.
어디선가 본 글에서 그런 말을 하더라. 그 사람의 연애 방식이 딱 그랬다. 반면에 나는 계산하기 바빴다.이리 재고, 저리 재고, 지지 않으려고,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생각하느라 나는 늘 다 표현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상처받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내가 먼저 절대 다 주지 않으려 애썼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 사랑했지만, 더 행복한 건 아마 그 사람이었을 거다. 그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처럼 재지 않았다. 나에게 지고지순하며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퍼주었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 나는 다 준다’는 방식의 사랑.
그 사랑이 결국 깨지더라도 부족했던 건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 없는 사랑을 한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었다.
여러 번 사랑의 실패를 경험하고 난 뒤 나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돼있었다. 어릴 적 꿈꿨던, 지고지순한 사랑은 잊은 지 오래였다.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시 제목일 뿐 그것도 결국 용기가 있어야 가능했던거다.
‘자발적 을’이 되어 내게 한없는 사랑을 퍼부어준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됐다. 그리고 그 사람과 결혼에 골인했고 부부가 됐다. 긴 시간에 걸쳐 나를 있는 그대로 용납해주는 사랑을 받은 시간은 차곡차곡 쌓였고 마침내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다. '나를 나답게 하는 사랑'은 결국 나를 변화시켰다.
하루는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평생 나만 사랑하며 살 자신이 있냐’고.
남편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껏 자신의 힘만으로 나를 사랑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사랑을 계속 부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두려워했던 나는 이제 의심하지 않는다. 남편이 나에게 부어준 한결같은 사랑과 남편이 가르쳐준 마음껏 사랑하는 용기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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