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주요 장면을 인터넷 짤로 여러번 보게 됐다.
영화 ‘신과 함께’처럼 한국적 소재가 아닌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을 다룬 이야기이길래 흥미가 가서 몇번 짤을 봤더니 알고리즘이 다른 장면들도 보여주기 시작했다.
먼저 하늘로 간 반려동물을 만나는 장면이나 저승행 지하철을 타고가다가 지옥 역에서 빨려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천국에 들어가기 전 몇살때의 모습으로 가고 싶은지 물어보는 장면과 (그래서 남편은 젊을때 손석구이고 김혜자는 80 나이로 천국에서 만났다는 설정) 살면서 힘들어 조각내버리고 잊어버린 기억이 자아가 되어 천국에 다른 존재로 있다는 설정들이 기억에 남는다. 성경적이진 않지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운 이야기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드라미였다.
내가 참 좋아하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초창기 작품 ‘원더풀 라이프’도 천국에 관한 이야기이다.
천국으로 가기 전 머무는 중간역이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이다. 죽은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기 전 이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면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러면 천국행 중간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죽은 자들이 고른 기억을 똑같이 재현해 영화로 만든다. 자신이 고른 기억이 담긴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편안히 천국으로 떠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그외에도 한국판 내세에 대한 이야기 신과 함께를 비롯해 많은 창작물에서 천국과 지옥이란 미지의 세계를 소재삼아 이야기 한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천국과 지옥이 죽은 뒤에 가는 특정 장소라는 보편적인 인식을 전제로 둔다. 하지만 정말 천국과 지옥은 죽음 너머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내 내면이 지옥같았던 긴 시간이 하나 떠오른다.
처음은 좋은 의도로 시작됐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운동과 체중조절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처방을 받았다. 그 당시 내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은 상태였다.(임신때를 제외하고) 처음 헬스장이란 곳을 제 발로 찾아갔다. 이런 고객은 처음이 아니라는듯 트레이너는 인바디라는 기계가 파악해준 숫자 데이터로 내 몸 상태의 심각성과 운동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제대로된 첫 운동이 시작됐다. 식이조절을 같이 병행하면서 운동한지 2개월쯤 됐을까. 주 3회에서 4회로 꾸준히 운동했더니 내 몸에서 8kg정도가 빠져있었다.
일단 해내기만 하면 명확한 결과가 숫자와 겉모습으로 보여지는 운동의 세계는 목표중심적인 나에게 너무 잘 맞았다. 운동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건 물론이고 인생 최대의 성취감을 누릴수 있었다. 덕분에 자존감과 나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하기 싫은걸 매일 꾸준히 해내는 경험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줬다. 체력이 좋아지니 매사에 여유와 느긋함이 생겼다. 세상의 모든 힘겨움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해낼수 있을거란 믿음이 생긴 것이다. 운동을 꾸준히 해본 경험은 도전하고 싶었던 다른 영역들까지 도전하게 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성실하게 해내는 힘은 점점 확장되는 특성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2달 간의 운동과 식단으로 정상 체중을 만든 후 다음 목표는 바디프로필이었다. 그때만 해도 바디프로필 붐이 일어나기 직전 이었다. 그당시 헬스장을 못 가는 날 홈트용으로 찾아보던 심으뜸씨의 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그분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혹해져서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나 꽂히면 몰입하는 성격이 여기서 발휘되어버린 것이다. 운동은 주 3-4회에서 6회로 늘렸고 웨이트 트레이닝 1시간, 이후 고강도 유산소 30분씩 매일 1시간 반씩 운동에 매진했다. 바디프로필은 체지방 커팅인지라 고강도 운동량에 비해 먹는 양은 턱없이 적었다. 고구마 100g,샐러드, 닭가슴살 100g. 3개월동안 삼시세끼 내 식단은 그게 다였다. 프로필 촬영이 얼마 안 남았을때는 고구마마저 양을 줄여야했다. 처음 한두달은 할 만했다. 배가 고픈것 빼고는. 마지막 한달은 죽을맛이었다. 그때 라디오방송에 작가로 일하던 때 였는데 직장생활하며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내 몸속 체지방은 당연히 쭉쭉 빠져나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말랐던 그러나 찰나같았던 시절, 프로필 촬영 당시 내 몸무게는 50kg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중 2%만 한다는 유지어터의 단계가 찾아온 것이다.
바디프로필을 찍고나서 대부분 겪게 된다는 ‘강박’증상에 나도 오랫동안 시달렸다.
힘들게 뺀만큼 더 이상 살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매일 나를 따라다녔다. 조금이라도 체중이 오르면 그렇게 내가 미워보일수 없었다. 남들이 날씬하다고 해도 절대 믿지 많았다. 매일 체중계가 보여주는 숫자에 따라 그날의 내 기분도 정해졌다.
극단적인 식단으로 살을 뺐으니 그 외에 다른 음식은 먹을수 없는 식이장애까지 찾아왔다. 매일 저녁은 샐러드나 샌드위치로 먹었고 어쩌다 간식이나 디저트를 먹거나 세속의 음식을 먹으면 무조건 2시간씩 운동을 했다. 이러한 사정이다보니 식단을 지키려면 사람을 만날수 없었다. 사람을 못 만난다는 건 사회생활을 할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진짜 문제는 극단적인 식단을 오래 지속할수 없다는것에 있었는데 맛있는걸 먹고싶은 욕구를 못 참아내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참고 참다가 결국 폭식해 버리는 나를 보며 그렇게도 절망하던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왜 그리도 어리석었나 싶다. 그래봐야 체중은 1-2kg 불어 났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걸 깨달은건 헬스장에서 나에게 운동을 가르쳐준 트레이너에게 살쪘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은 와르르 무너졌다. 그 말이 그때는 그렇게도 두려웠던거다.
그래서 강박에서 어떻게 벗어났냐고?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걸 깨닫고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반식도 먹어보고 양껏 배부르게 먹어보고 운동량을 조절해보기도 하고 얼만큼 먹고 얼만큼 운동하면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여러가지 방면으로 실험해보기 시작했다. 한동안 체중계와 샐러드, 고구마와 멀어지기로 했다. 그리고 두려움의 근원이 됐던 무지를 이겨내기 위해 공부했다. 너무 적게 먹으면 몸이 비상상태로 전환해 대사량을 줄여버린다는 논문의 이야기를 읽게 됐고 그때부터 나는 다시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먹으면서 꾸준히 운동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렇게 꾸준히 운동한지 5년정도 된 지금, 50kg는 물론 아니지만 근육량과 근력이 더 성장했고 유지할수 있는 체중이 됐다. 건강에는 크게 문제 없고 체력도 부족한 정도는 아니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심리적으로 심하게 압박을 느낌’. 강박의 사전적 의미다. 내가 경험한 강박의 굴레도 그랬다. 내면의 강한 한 소리에 사로잡혀 생각과 마음, 일상까지 마비되버리는 지옥이었다.
내 영혼을 죽이는 내면의 목소리가 잠잠해진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생각해보면, 마른 몸이 예쁘다는 건 내 생각일 뿐 누구도 나에게 강요한 적도 없었고 성경적 관점도 아니었다. 그 목표를 유지 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부족하거나 ‘나쁜 것’도 아니다. 이전의 그 마른 몸을 유지했다고 쳐도 그건 그냥 내 자랑만 될뿐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나 뜻과 일절 상관도 없다. 내가 무얼 해냈다는 것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꼭 마른 몸이어야만 내가 사랑받을수 있는 존재도 아니니까. 결국 나를 강박이라는 지옥속으로 몰아 넣은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아니라 죄성으로 찌들어있는 내 본성에서 나온 생각에 철저히 붙들려 살기로 선택한 내 의지였던 것이다.
경험해보니 지옥은 단지 장소가 아니라 존재가 사랑을 떠난 상태, 빛이 없는 내면의 질서 붕괴이다. 존재론적 파멸 즉,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 스스로를 지옥으로 만든다. 성경에서도 영생(영원한 삶)은 이생의 천국 뿐 아니라 지금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말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인격적이시고 나를 존귀하게 여기시는지 아는 것, 그것이 자존감이고 강박과 내면의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이제 나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 성숙한 내면의 리듬,천국의 원리를 알게 됐다. 주님 지으신 그대로 나를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 그 이상이나 그 이하로 해석하는 것도 나의 교만이자 죄임을 안다. 나는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죄인이고, 그러나 주님이 용납하신 의인인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것,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 아는 것,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 아는 것이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사는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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