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예또

내 하나뿐인 동생 마꼬에게.

[순간예또] 여덟 번째 편지. '이별'에 대한 이야기.

2024.03.19 | 조회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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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예또

꿈과 사랑, 희망을 노래하는 행운의 편지.

안녕. 조금 우울한 마음으로 돌아온 예또야.

그동안 잘 지냈어? 별일은 없어?

부디 구독자의 일상은 무탈했으면 좋겠다.

모든 액운을 내가 다 막아준 거였으면 좋겠어.

 

내 SNS 계정에도 올렸으니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얼마 전에 우리 가족의 일원이자 유일한 내 동생인 마꼬를 잃어버렸어.

마꼬는 내가 초등학생 때 데리고 온 말티즈 아이야.

07년생이니까 사람이었으면 어언 고2였겠지.

데리고 왔을 때 너무 작아서 아버지께서 ‘꼬마야’하고 부르던 것이 이름이 되어 ‘마꼬’가 되었는데, 그 꼬마가 장성해서 성견이 되고, 노견이 될 때까지 우리와 함께했었어. 행운이었지.

고3 때 내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로 거의 해외에서 지내거나 자취를 하느라 아버지 곁에서 실질적인 자식 노릇은 마꼬가 다 하고 있었거든.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집을 나갔대.

지난 호 순간예또가 발간된 바로 다음 날, 3월 10일 날 일이었어.

 

아버지에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방콕에서 파타야로 넘어가는 버스 안이었어.

그날따라 아침부터 아버지한테 연락이 많이 와 있었거든.

두서없는 말속에 사랑 어쩌고를 운운하는, 전형적으로 과음 상태인 아버지가 보내는 그런 문자들이었어.

아버지가 낮부터 술을 마시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닌지라 조금 의아하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게 이렇게 큰 사건으로 이어질 것까진 예상하진 못했던 거지.

아무튼 그날 밤 나는 아버지한테 “마당에 나가 산책을 하던 도중 깜빡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마꼬가 사라졌다.”라는 연락을 받았고, 난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

평상 하나 없는 마당에서 아버지가 대낮부터 낮잠을 잤다는 사실과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마꼬가 성치도 않은 몸으로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 모두 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어. 그런데 너무 현실감이 없는 소리라서 그런가 눈물은 안 나오더라.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아버지는 마당에서 키우던 큰 개들을 데리고 몇 번이고 동네를 헤집으며 마꼬를 찾아다니셨대.

하지만 아무런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던 거지.

하물며 사고라도 당했으면 핏자국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조차 없었더라는 거야.

안 그래도 연세 때문에 눈도 침침하신 아버지가 그렇게 찾아봤자 얼마나 소용이 있을까 싶어 나는 급하게 주변에 SOS를 쳤어.

그런데 사건을 전달받은 시간은 일요일 저녁.

그 시간에 수도권도 아닌 강원도 양양에까지 가서 강아지를 찾을 일을 도와줄 지인이 마땅히 떠오르질 않는 거야.

이미 헤어지긴 했지만 종종 양양에 와서 아버지와도 안면이 있던 전남친에게까지 연락을 했는데 또 하필 그때 해외에 있다더라고.

당근마켓에 글을 올리려고 보니 해외라서 접속이 되질 않고, 어쩔 수 없이 네이버 카페 양양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더니 딱 한 분이 도와주겠다면서 자원을 해주시더라고.

그분께 집 수색과 당근마켓에 글을 올리는 것까지 부탁드렸어.

그래도 아무런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어.

 

당장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니 내겐 여권이 없었어.

구여권 분실신고를 하고 신여권 재발급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거든.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아다리가 안 맞을까.

혹시 내가 여권을 잃어버리기 전이었다면 바로 귀국할 수 있었을 텐데.

혹시 내가 여권 재발급을 신청하기 전이었다면 긴급 여권이라도 신청할 수 있었을 텐데.

혹시 전남친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집 근처를 빨리 수색할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그날이 일요일 저녁만 아니었더라면 내 지인들에게 부탁이라도 해봤을 텐데.

혹시... 혹시...

그렇게 자꾸 의미도 없는 후회만 하게 되더라고.

 

결국 나는 새 여권을 받자마자 사건 발생 5일 만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

뭐랄까, 돌아오기 전까지는 크게 실감이 안 났거든.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처럼 마꼬가 소파 위에서 자고 있을 것 같았어.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휑한 그 공기 속에서 따끈한 숨을 내뱉는 하얀 털뭉치 같은 아이가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난 다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던 것 같아.

‘아... 진짜구나... 다신 이 아이를 보지 못하겠구나...’

마꼬 밥통엔 밥과 물도 그대로인데, 마꼬가 입던 옷과 마꼬가 좋아하던 담요도 그대로인데.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내가 집에 와도 그대로 잠만 자다가 코앞에 댄 내 손 냄새를 맡고 부스스 잠에서 깨 꼬리를 부지런히 흔들어 주던 내 동생이, 내 마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어.

 

나는 아버지께 드릴 점심밥을 차리고선 바로 밖으로 나갔어.

그리고 마꼬가 있을만한 곳들을 다시 한번 더 샅샅이 뒤져봤어.

그런데 한 편으론 무서웠어. 혹시라도 죽어있는 아이를 발견하게 될까봐.

이미 시간이 5일이나 지났으니 안 그래도 약한 아이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밖에서 버틸 수 있을 리는 없을 것 같았거든.

하필이면 그날따라 바람도 엄청 심했어. 집에 있는 수레가 날아갈 정도로.

결국 나는 허망한 표정으로 짧은 수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

아버지도 내가 차려놓은 밥을 드시지 못한 채 소파에 가만히 기대어 계시더라고.

 

나는 방으로 돌아와 생각을 정리했어.

내가 아버지를 크게 원망할 거라는 사실을 나는 미리 알고 있었거든.

평생 술 때문에 우리 가족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으면서, 결국 끝까지 술 때문에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든 게 너무 미웠어.

아버지만큼은 아니어도 내가 꽤 정성과 마음을 쏟았던 존재를 다신 볼 수 없다는 사실도 너무 화가 났어.

일단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자세히 파악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다시 거실로 나가 아버지 옆에 앉아 몇 가지를 물어봤어.

덤덤히 대답하시던 아버지는 이내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셨어.

“이 바보 같은 새끼 때문에 그 약한 아이를 못 지켰어... 미안하다. 미안하다, 송이야.”

자책 섞인 아버지의 울음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더 이상 미워할 수가 없었어.

야위어서 움푹 팬 아버지의 두 뺨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어.

난 그런 아버지를 두 팔로 감싸 안고 한참을 같이 울었어.

18년간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세 존재가, 이제는 두 존재가 되었음을 받아들이면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마꼬가 어딜 갔을까.

한참을 걷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왜 짖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아버지를 부르려고 낑낑대기는 했을까.

어디까지 걸어갔던 걸까. 지금은 어디에 있는 걸까.

옷도 입지 않은 채로 나가서 추위에 떨진 않았을까.

 

...지금은 좋은 곳으로 갔을까.

 

내가 지난번에 태국으로 출국하면서 공항에서 보조배터리를 잃어버리고서 쓴 글 기억해?

[그래서 나는 굳이 내 정신을 홀려가면서까지 나를 떠나버린 무언가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본인 의지대로 선택한 새로운 환경에서는 차라리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마꼬를 잃어버리고 나서 가장 먼저 이 글이 떠오르더라.

바로 얼마 전에 내가 얻은 깨달음이었잖아.

고작 보조배터리 따위를 잃어버렸을 땐 쿨하게 ‘갈 테면 가라. 나도 아쉬울 거 없다.’고 했던 난데, 같은 이치로 가족처럼 여겼던 존재를 잃어버리고 나니 예전처럼 쿨할 수가 없더라.

하루 걸러 하루 생각이 바뀌고 혼란스러웠어.

‘사실은 내가 그 무언가를 되찾는 데에 간절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아냐. 이렇게 우리를 떠난 것조차 마꼬의 의지인 거야. 우린 그 아이의 의지도 존중해야 해.’

‘내가 신중하지 않았던 것을 이런 식으로 자기합리화하는 게 아닐까.’

‘그러기엔 너무 많은 우연의 일치로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결국 이것이 그 아이가 정말로 바랐던 일인지도 몰라.’

 

마꼬를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전 집주인분은 그런 말씀을 하셨대.

‘걔가 지가 곧 죽을 걸 알아서 너네 고생 안 시키려고 알아서 나가서 죽으려는가 보다.’라고.

만약 마꼬가 우리와의 마무리를 이렇게 하고 싶었던 거라면 난 그 아이의 뜻을 존중해 주고 싶어.

그런데 정말... 마꼬는 곧 죽을 것 같은 아이 정도로 컨디션이 나쁜 상태가 아니었거든.

못해도 2-3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래서 그냥 천운으로 우리보다 좋은 주인 만나서 새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려고.

차라리 그런 마지막으로 평생 그 아이를 추억하고 싶어.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서.

 

나는 마꼬의 마지막에 꼭 같이 있고 싶었어.

마꼬의 보드랍고 반질반질한 이마를 쓰다듬으면서, 너로 인해 행복했고 우리 가족 모두 너를 너무 사랑한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귀에 대고 속삭여주고 싶었어.

그래서 우리를 떠나는 마꼬의 마지막이 외롭지 않도록 만들어주고 싶었어.

그런데 마꼬는 어쩌면 자기가 떠나고 나서 남겨질 우리가 더 걱정이 되었던 거였나 봐.

혹시라도 우리가 잘 못해준 걸 자책할까 봐 스스로 말없이 떠난 건가 봐.

그래도 그건 꼭 알아주면 좋겠다. 너는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하나뿐인 내 동생이었다고.

 

마꼬를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텅 빈 집을 마주했을 때, 그리고 마꼬를 찾는 전단지를 붙이면서 돌아다녔을 때.

마음은 심란했지만 생각보다 일상생활이 많이 힘들지는 않았거든.

그래서 난 속으로 ‘내가 소시오패스인가?’, ‘공감 능력에 장애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이 글을 쓰면서 많이 울었네.

아무래도 기억 속에 있던 마꼬 모습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아.

한동안 갤러리에 있는 마꼬 사진과 동영상은 차마 보지 못할 것 같아.

언젠가 정말 괜찮아지는 때가 오면, 그땐 아무렇지 않게 그 아이를 추억할 수 있겠지.

당장은 힘들겠지만 결국 모든 이별엔 시간이 약이니까.

 

한편으로는 내가 마꼬를 잃고 나서 고작 이만큼만 힘들 수 있었던 건, 마꼬에게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인 것 같아.

자주는 아니어도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마꼬를 안고 나가서 산책을 시켰고,

틈이 날 때마다 눈을 마주치면서 사랑한다는 이야길 해주었고,

마꼬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항상 노력했었거든.

마꼬가 그런 정성을 알아주고 나를 조금만 덜 원망했으면 좋겠다.

네가 힘들고 아팠을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했어.

그래도 누나는 항상 너를 사랑했고, 사랑할 거야. 그것만은 꼭 알아주라 마꼬야.

 

구독자의 곁에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면, 미루지 말고 사랑을 표현하길 바라.

보다시피 이별은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갑자기 오기도 하거든.

물론 준비과정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이별은 아픔을 동반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 하나로 후회의 감정은 조금 덜 수 있는 것 같아.

 

이 편지를 쓰면서 눈물을 한바탕 쏟고 나니까 차라리 속이 편하네.

그래, 가끔은 슬플 때 울 줄도 알아야 해.

이 편지를 읽어주어서, 또 내게 울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고마워.

마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구독자도 마꼬가 어느 곳이든 좋은 곳에 있기를 바라준다면 좋겠다.

나중에 나 죽으면 우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마꼬야

그곳에선 백내장 없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길 바라.

쌩쌩해진 다리로 예전처럼 마구 달리고, 점프할 수도 있었으면 좋겠어.

18년이란 시간 동안 충실하게 우리 가족의 막내 역할 해줘서 고마워.

네가 있어 많이 웃었고 너무 행복했어.

어디서든 사랑받으면서 잘 지내.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사랑해.

 

 

동그랗고 보드라운 너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잘 자. 꿈에선 맛있는 거 많이 먹어. 내일 보자, 사랑해. 우주같이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너. 내가 오이소박이를 담그는 동안 주방에서 같이 기다려주던 너. 마지막까지 시야에 내가 보이는 방향으로 누워 잠을 청하는 너.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17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 가족의 막내 역할을 충실히 해온 너. 조급하게 달려오던 나의 인생에 처음으로 찍어본 쉼표. 내가 이렇게 속 편히 백수생활을 했던 때가 있었나. 아마 없었겠지. 그게 바로 이 시대 청년들의 삶이었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그랬으니까. 그래서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여행을 다녀온 후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이 세상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돈이 많이 없어도, 많이 벌지 못해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거였다. 남들이 다 가진 것을 가지지 못했어도, 나만 가질 수 있는 걸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눈물 나도록 행복하다.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제대로 하지 못했던 딸과 누나 노릇을 오롯이 할 수 있는 지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두 남자와 하루 종일 함께할 수 있는 지금. 내가 정성 들여 차려낸 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누군가가 있는 지금. 사람은 추억으로 산다. 내가 정말 힘들 때 나를 다시 일으켜줄 수 있는 힘은 내가 사랑받았던 기억과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기억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해 후회없이 사랑하기로 했다. 돈이 아닌 추억을 쌓는 마음의 통장을 채우려. (2023.06.28 기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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