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야심한 새벽에 마감을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예또야.
나 세상에 얼마 전에 완전 지독한 술병이 났지 뭐니.
예전엔 술집 가면 술집 안주 거덜 내냐고 핀잔 듣던 게 나였는데 트레이너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안주를 안 먹는 게 버릇이 됐거든.
술 먹을 때 같이 먹는 안주가 살 제일 많이 찌는 거 알지?
그래서 의외로 술만 먹으면 살이 안 쪄. 대신 술이 엄청 빨리 취할 뿐.
내가 그래서 지난 일요일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너무 반갑고 기쁜 나머지 장장 10시간을 먹은 거야 소주를... 그것도 오로지 물과 함께...
취하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니. 나는 그 술자리 1차 중반부부터 기억이 안 나.
거진 12시간 정도를 기절했다가 일어났는데도 숙취는 나아지질 않더라.
이틀을 꼬박 누워있었더니 그제야 회복이 됐어. 참 이젠 진짜 나이 못 속이겠다.
그 와중에 웃긴 건 뭔 줄 알아? 나 화장 참 꼼꼼하게 잘 지우고 잤더라.
이걸 웃어야 돼, 울어야 돼?
'사랑' 얘기를 쓰는 주간이 오면 이상하게 맘이 참 답답해.
어떤 사랑 이야기를 적어야 하는지 모르겠거든.
분명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항상 곁에 있는 게 사랑인데, 나한텐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하자니 딱히 지금 할 만한 말이 없고,
가족 간의 사랑이야기를 하자니 우리 집이 엄청 끈끈하고 애틋한 가풍도 아니거든.
그래서 지난날들에 무슨 이야기를 적었나 하고 슬쩍 보니 맙소사 연거푸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 뿐이었네.
아, 좀 참담하다. 내가 이렇게 사랑이 메마른 사람이었나.
나는 우리 집 외동딸이야. 게다가 아버지 나이 마흔 가까이에 얻은 첫 딸이고.
정이 많은 우리 아버지는 나를 어렸을 때부터 애지중지 키우셨어.
그렇다고 오냐오냐는 아니었어. 초등학교 저학년정도 금쪽이 시절까진 종종 맞으며 자랐으니까.
내가 일곱 살 때 부모님의 맞벌이 때문에 중국에 있던 친척집에 1년 정도 맡겨졌던 때가 있었어.
아버지는 밤마다 내가 보고 싶어서 내 방 내 침대 위에 이불을 끌어안고 우시곤 했대.
시 쓰기를 좋아하는 우리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내게 편지와 직접 쓴 동시를 보내주시곤 했어.
[순간예또]가 있기 이전에 우리 아버지표 [주간최정진]이 있었던 셈이지.
퇴근 후 동료나 친구들과 술잔 기울이는 게 아닌, 타지에 있는 딸을 그리워하며 한 번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편지를 쓰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 일거야.
어렸을 때의 나는 그 사랑과 애정을 당연시했었지만 말이야.
그러던 아버지였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점점 생기를 잃게 되셨어.
아마 이혼을 하시면서 나를 오롯이 혼자 힘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
아버지는 퇴근을 하고 돌아오시면 나와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망부석처럼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시거나 컴퓨터로 바둑을 두셨어.
이따금씩 술을 많이 드시는 날엔 고래고래 본인의 억울함과 한을 소리치거나 걸어 잠근 내 방문을 밤새 두들기셨고.
언젠가부터 나는 아버지가 편하지 않았어. 아니, 솔직히 좀 혼란스러웠어.
평소의 아버지와 술에 취한 아버지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거든.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건지 미워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어.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하겠다며 어리광부리던 때에 내가 알던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부턴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으니까.
다른 모든 자식들이 그러듯, 나도 내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어.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하는 모든 선택과 결정들을 응원해 주신 편이었는데,
아버지의 그런 절대적인 지지 덕분에 나도 여태껏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 같아.
이 부분은 아버지께 정말 평생 고마워할 부분이야.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무한한 자신감을 주신 것.
하지만 이것 외에는 예전처럼 아버지를 존경하고 닮고 싶은 부분을 찾을 수가 없더라.
내가 너무 커버린 탓도 있겠고 아버지가 너무 작아진 이유도 있겠지.
얼마 전에 작은 고모가 가족들과 함께 우리 집에 왔었어.
그녀는 집을 둘러보다가 이내 뭔가 이상한 듯 물었지.
"오빠, 강아지는 어디 갔어?"
잠시 착잡한 표정을 짓던 아버지가 대꾸했어.
"... 집을 나갔어. 걔 때문에 내가 요즘 잠도 못 자고 미치겠어."
그러자 대뜸 그녀가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아이구 오히려 잘 됐네. 키우는 개 없으면 냄새 안 나고 집 더럽혀질 일 없고. 좋아, 오빠 잘 됐어요."
그녀의 그런 반응은 놀랍지도 않았어. 원래 다른 사람 호사에 축하 못 해주고 아픔에 공감 못 해주는 이기적이고 못된 여자였으니까.
내가 놀랐던 건 아버지의 반응이었어.
아버지는 그 얘기에 어떤 반박이나 꾸지람, 혹은 언짢다는 기색조차 없이 그 사건으로 얼마나 자신이 힘든지에 대해서만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거든.
아, 그때 나는 다시 깨달은 거야.
우리 아버지는 자기 가족이 욕봐도 그보다는 자기 얘기가 더 중요한 사람이란 걸.
그러니 어렴풋이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들이 있더라.
명절에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작은 고모와 작은 엄마가 손윗 형제인 우리 엄마를 무시하고 깔보는 말을 해도 아버지는 침묵하였던 일.
내가 초경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생리에 익숙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는데 작은 고모가 "넌 엄마 없이 여기 왔으니 엄마 몫까지 네가 일해야 돼"라는 말을 해도 아버지는 침묵하였던 일.
어쩌다 합석하게 된 아버지 동네 친구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나를 스스로 연극배우라고 소개하니 한 친구분께서 대뜸 "야, 나 배우랑 한 번 자보는 게 소원인데"라는 말을 하는데도 아버지는 끝끝내 침묵하였던 일.
아, 그랬구나. 아버지는 무언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는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엄마를 놓쳤고, 마꼬도 놓쳤고, 결국엔 나까지도 놓치게 되겠구나.
아니, 어쩌면 이미 그날 날 놓쳤을지도 몰라.
더 이상 아버지에게 기대할 구석도 없었거든.
한때 나의 영웅이자 존경하는 대상이었던 누군가가 추락하는 걸 지켜보는 일은 참 너무 슬픈 일이야.
그날 나의 영웅은 죽었어. 그것도 아주 처참한 모습으로.
내가 평생 존경하던 내 아버지가 고작 그런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자 나는 너무 괴로웠어.
어디에 내 마음을 의지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웠어.
난 형제도 없고 엄마랑도 멀멀한데, 아버지도 아니면 난 이제 힘들 때 어디에 의지를 해야 하지?
마음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내 가족은 어디에 있지?
가족이 없다는 건 되게 외로운 거구나.
나는 이제 고아의 마음을 조금, 아주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
세상에 홀로 남은 기분이라는 게 어떤 기분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 최근 들어 이런 일을 겪고 느낀 내게 사랑이라는 게 얼마나 와닿을 수 있었겠어.
그 얄팍한 감정이 얼마나 부질없게 느껴졌겠어.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던 어렸을 적 나의 이상형은 어느 새부터 '아버지와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
오죽하면 내가 키가 큰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니까.
내가 아버지의 씨를 받아 엄마의 뱃속에서 잉태된 건 거스를 수 없는 진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아버지 같은 남자 만나서 엄마 같은 인생을 살게 될까 봐 겁이 나.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글재주와 엄마한테 물려받은 끼는 너무 감사하지만,
인생의 모습까지 그들에게 물려받고 싶진 않아.
나는 엄마처럼 미련하게 살고 싶지도, 아버지처럼 외롭게 살고 싶지도 않아.
그게 참 죄송스럽기도 하고 모순이기도 해.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멀어지고 싶은 마음도 존재한다는 게.
떠들어봤자 가문에 먹칠하는 꼴이라 혼자 속으로만 끙끙댔는데 차라리 이렇게 털어놓고 나니까 속 편하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 날이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적을까, 최근에 술 먹고 만난 남자들 이야기를 적을까 고민하다가 내 본능이 이끄는 대로 적은 글이거든.
사실 나 이 얘기가 엄청 하고 싶었던 거였나 봐. 성격상 떠벌리고 나면 속편해지는 사람이거든, 내가.
[순간예또]를 운영하다 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점이 하나 있더라.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도 내 근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내가 굳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래서 때로는 "나도 그런 일이 있었어"하며 쉽게 서로 공감해 줄 수도 있고,
"그런 일이 있었던데 힘들었겠다"하며 쉽게 위로를 주고받을 수도 있더라고.
내가 오늘 했던 이 이야기도 누군가에겐 또 의외의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요즘 이렇게 사랑에 큰 신경을 못 쓰며 살아.
구독자는 어때? 사랑 많이 하고 있어?
혹은 나처럼 큰 실망할 일은 없었어?
나의 이 자랑스럽지 못한 이야기가 구독자에게 작은 위로 혹은 생각할 거리가 되어준다면 좋겠다.
나보다 더 나은 가족을 가졌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행운인 거고,
나보다도 못한 가족을 가졌다면 더 좋은 가족을 직접 꾸리면 되는 거니까.
나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백년해로할 신랑감 찾고 있거든.
괜찮아, 사랑도 일도 다 때가 있는 거니까.
구독자가 좋은 사람이라면 언제든 좋은 기회와 좋은 인연이 다가올 거야.
맞아, 사실은 이거 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구독자에게도 들려주고 싶지만 나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 정도 흔들렸으면 이만 피어도 되지 않을까.
도대체 얼마나 멋진 꽃을 피우게 해 주시려고 이렇게까지 나를 흔드는 건가.
이번 계절은 바람이 좀 짓궂다, 그치?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랬어.
흔들리고 때로는 주저앉고 쓰러져도 돼.
꺾이지만 않으면 언젠가 꽃은 피게 될 테니까.
이번 봄은 나에게 조금 아픈 계절이네.
아마 올해 남은 세 계절이 너무 좋을 건가 봐.
다음 사랑이야기는 정말 설레는 이야기로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들 내 몫까지 사랑 충만한 한 달 보내!
그럼 다음 편지에서 또 보자, 안녕!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또다비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