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예또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기적인 걸까?

[순간예또] 아홉 번째 편지. '실망'에 대한 이야기.

2024.03.29 | 조회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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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예또

꿈과 사랑, 희망을 노래하는 행운의 편지.

안녕! 오늘은 조금 발랄한 기분으로 돌아온 예또야.

나는 지금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친구 집에 있어.

지난 일요일에 멀리서 서울에 온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를 만나서 서울에 왔었는데, 지내다 보니 거진 일주일 정도를 이렇게 집을 떠나있게 되었네.

워낙 즉흥적인 인생을 사는지라 급하게 서울에 와서 몇몇 약속들을 잡으려니 쉽지가 않더라.

나처럼 즉흥적인 태도로 사는 지인들밖에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나니 기분이 좋아.

이야기의 주제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일은 참 고마운 거니까.

 

 

이번 주 순간예또의 주제를 정하는 일은 퍽이나 쉬웠어.

요 근래 계속해서 이 주제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거든.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떨까, 구독자도 이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을까?

오늘 내가 심도 있게 다루고픈 주제는 바로 ‘실망'이야.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 끝엔 무엇이 있을까.

내가 하고 있는 이 고생과 지금의 힘든 순간들이 의미가 있긴 한 걸까.

이런 생각들, 해본 적 있어?

해봤다면 언제 해봤어?

 

나는 고3 때 이런 생각을 처음 해봤던 것 같아.

어쩌면 그전에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자각하는 최초의 시점은 그즈음이야.

그때의 나는 한창 대학교 입시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는데 사람이 힘드니까 저런 생각들이 들더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고민과 걱정들이 다 무엇인가 싶고,

왜 사람들은 좋은 대학교에 이렇게 목을 매는가 싶고,

이 인생이 다 부질없게 느껴지고 내가 싫어지고.

이 모든 번뇌의 끝엔 자기혐오, 그리고 현실 부정이 남게 되었던 거지.

 

다행히 나는 염려와는 반대로 내 나름의 노력을 하며 한 단계씩 성장해나갔고 그러면서 더 넓은 세상들을 만날 수 있었어.

그러면서 똑똑한 사람, 멍청한 사람, 돈 많은 사람, 돈 없는 사람, 긍정적인 사람, 부정적인 사람, 예의 바른 사람, 싸가지 없는 사람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세상을 엿볼 수도 있었지.

이런 기회들을 통해 점점 깨닫게 된 것은 겉보기가 어떻고 평판이 어떻고 간에 모든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결핍과 컴플렉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어.

추가적으로 성향에 따라, 결핍의 정도에 따라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게 되는지를 지켜보는 일은 참 흥미로웠고.

‘아, 사람은 완벽할 수는 없는 거구나.’

그리고 이것이 나의 결론이었어.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더 여실히 느낄 수 있었어.

여행이 길어지자 처음의 그 열정과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나는 그저 시간과 돈을 축내는 나약한 여행자가 되어있었고, 혼자 설 힘도 없어 자꾸 누군가에게 기대려 했어.

나는 내가 이토록 나약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도의 야간버스 안에서 깨달았던 거야.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지한 나는 이내 나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느꼈어.

하지만 자기혐오와 현실 부정으로 점철되었던 고3 때의 나와는 다른 결론을 내렸지.

‘이토록 부족한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이기에 이런 모습의 나라도 사랑하겠어.’

왜냐하면 그때의 나는 이미 ‘완벽'에 대한 로망이 없었거든.

그래서였는지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그냥 그렇게 겸허하게 받아들여지더라고.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

나는 나에게 한없이 관대함을 베풀었어.

 

 

사람이란 게 그래. 때로는 한없이 간사하고 또 한없이 관대하기도 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만 나에게는 끝없는 자기합리화로 이해심을 베풀고.

다른 사람에게 만든 상처는 생각도 못 하다가 내가 받은 상처엔 예민하게 반응하고.

어쩔 수 없어.

인간이라는 게 애초부터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보단,

그저 기초적인 생존 욕구에서부터 비롯된 특성이라고 설명하고 싶어.

천상천하 유아독존.

내가 있어야 네가 있고, 내가 있어야 이 세상이 있는 거니까.

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중요한 믿음이지.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인간의 불완전함과 이기심'에 대한 설명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사실 지금 나 스스로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라서 그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송이야, 인간은 원래 완벽하지 않아. 인간은 원래 자기가 제일 중요한 동물이야.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너무 실망하지 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그래.

 

 

가족처럼 여기던 마꼬를 잃어버리고 나서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랐어.

해외에 있던 나를 대신해서 인터넷에 글을 올려주겠다든지,

직접 집에 가서 강아지 찾는 일을 도와주겠다든지,

전단지 만드는 일을 도와주겠다든지.

뭐… 뭐가 됐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어.

자기 일처럼 도와줄 걸 기대하며 염치없이 부탁할 만한 사람도 없었어.

뭐랄까, 세상에 혼자 남겨진듯한 기분이었어.

‘막상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정작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구나.’ 같은 생각이 들면서 외로웠어.

안 그래도 형제자매도 없어 친구들을 소중히 여기는 나인데,

막상 도움이 필요할 때가 되니 그냥 남은 남이더라고.

 

 

그래서 잠시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어.

그러니까 오히려 속이 편하더라.

괜히 연락하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기대할 일이 없어지니까 실망할 일도 없어지는 거야.

내 마음속에 고요함이 찾아왔어. 나는 더 이상 흔들릴 것이 없었어.

깊고 푸른 심연처럼 내 마음은 안정을 찾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반대로 생각해 보니까 어이가 없더라?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 진심으로 내 일처럼 도와줬던 적도 생각해 보니까 없는 거야.

아니, 내 정성을 먼저 줘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정성만 받길 원했던 거잖아?

와, 나 되게 뻔뻔한 사람이었네.

참 나. 내가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었을 줄이야.

 

 

내가 한동안 근황을 숨기는 동안 내 안위를 궁금해하며 조심스레 안부 연락을 했던 지인들이 있었어.

내가 마꼬를 찾는 게시글을 올렸을 때 자기 일처럼 홍보해 주었던 지인들도 있었고.

이번에 만나서 내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면서 맛있는 걸 사주던(중요) 지인들도 있었고.

그래. 사실 나는 이렇게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였던 거야.

나에게 섣부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 데에는 또 내가 알지 못하는 개인만의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는 건데 감정이 많이 동요하던 그때의 나는 그 모든 일들을 내 입맛대로 곡해했던 것 같아.

참 어리숙한 판단이었지.

 

 

인생을 산다는 건 놀라움의 연속적인 과정 같아.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기쁨과 행복을, 혹은 예상치 못했던 슬픔과 분노를 다스리면서 말이야.

그러니 이 광활한 우주의 수많은 행성 중 지구라는 별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의 인연 또한 얼마나 놀랍고 기쁜 일이겠니.

내 옆에 있어 주어서, 내 글을 읽어 주어서 항상 고마워.

수많은 생각들과 감정들 속에서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굳건히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도 항상 노력할게.

 

 

오늘 편지는 쓰고 보니 뭐랄까 반성문 비슷한 것이 되어버린 기분이네.

어쨌든 이곳은 가장 솔직한 태도로  가장 최근에 겪은 나의 감정과 깨달음들이 적히는 공간이니까.

그렇다고 누군가를 의식해서 쓰는  글은 아니니 부디 누군가에게 불편하게 읽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마꼬일과는 별개로 내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았었거든.

생각해 보니까 트레이너 일을 그만두고 정기적인 수입이 끊긴지도 벌써 2년이 되었더라고.

여행 다니면서 좋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것도 빡빡한 현실 생활에서 도피처로 떠났을 때에 정말 달콤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거더라.

그런 생활을 꾸준히 하다 보면 새로운 경험과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감사함이 희석되어버려.

그래서 최근의 나는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었어.

무언가 열정 있는 태도로 잠도 줄여가면서 몰두했던 일이 있었던 그때가 너무 그립게 느껴지더라고.

 

 

그런데 기나긴 고민 끝에, 결국 나는 다시 한번 더 도전을 해보기로 했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도전을 앞두고 나는 다시 초심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야.

이번엔 지난 경험을 발판 삼아 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보려고.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꿈' 이야기를 할 다음 호에서 알려줄게.

 

 

요즘 비가 참 자주 오는 것 같아. 날씨도 꿀꿀하고.

아마 다음 주가 되면 한층 따뜻해진 날씨와 더불어 예쁘게 만개한 꽃들이 지천에 가득하지 않을까?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듯이,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듯이, 

지금의 일련의 사건들도 지나고 보면 좋은 일들을 불러주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나, 다시 열심히 달려보려고.

그럼 다음 편지까지 잘 지내고 또 보자. 안녕.

 

 

나에게 인도는 ‘비워내는 시간’이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나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바닥밖에 남지 않은 날 것의 본질 그 자체를 오롯이 감당해 내는 시간. 여행이 길어지자 나는 점점 의욕을 잃었다. 매일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구태여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둘러 볼만한 것들을 굳이 찾지 않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여행이 주는 감상, 교훈 따위는 뒤로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그래도 처음 왔으니 유명한 곳들은 다 가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억지로 끌고 오던 내 의지도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이 나버렸다. 거기서 거기인 사람 사는 모습들 속에 나는 더 이상 아무런 흥미도,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눈만 끔뻑이며 독실에 갇혀 시간을 축내는 사형수처럼 나는 나를 스스로 숙소에 가둬놓고 귀국할 날만 세면서 시간을 축내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이 너무나도 한심해서 끔찍이도 싫었다. 오랜 여행의 좋은 명분이 되어준 유튜브를 위해 콘텐츠를 구상하고 편집이라도 해야 함을 알면서도 거지 같은 몸뚱이는 내 머리가 내린 이성적인 판단을 따르지 않았다. 말하자면 내 몸이 내 머릴 상대로 보이콧을 선언한 셈이었다. 그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한심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디 가서 아는 척, 잘하는 척, 완벽한 척 가증을 떠는 내가 고작 이 정도뿐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한심함 속에서 또 하나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나의 ‘나약함’이었다. 약 일주일간의 긴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새로운 도시로의 탐험을 중지하고 내가 편안함을 느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항상 독립적이고 용감하다는 소릴 듣는 내가 정녕 이렇게나 나약한 사람이었던가. 맞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던 거다. 때로는 한없이 게으르고 한없이 의존적이며 한없이 나약한 존재. 그것 또한 나의 본질인 것이다. 깊은 바닥, 내면의 나를 마주한 나는 이제 나에게 측은함의 감정밖에 남지 않는다. 그것은 온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와 평생을 함께할 또 다른 ‘나’라는 동반자에게 바치는 가장 긍정적인 평가임에 의심이 없다. 나는 발가벗은 나의 본질을 오롯이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것조차 내가 사랑해야 하는 ‘나’ 임을 알기에, 나는 숙명처럼 그것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2023.04.11 기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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