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예또

너와 나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된 걸까.

[순간예또] 여섯 번째 편지. ‘인연’에 대한 이야기.

2024.03.01 | 조회 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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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예또

꿈과 사랑, 희망을 노래하는 행운의 편지.

안녕! 어김없이 늦어버린 예또야.

시간이 늦어도 편지를 보내기로 약속한 날 안에는 꼭 보내고 싶었는데 여섯 번째 편지만에 그 규칙을 어겨 버렸네...

하지만...

내가 있는 태국은 한국과 두 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아직 열두 시가 지나지 않았거든...

구차하지만 이렇게 변명하는 날 용서해 주겠어...?

 

우선 태국에서의 나는 어떻게 지냈는지부터 말해줄게.

오랜만에 찾은 방콕은 여전했어. 날씨는 푹푹 쪘고, 알게 모르게 습한 공기는 자꾸 기분을 찝찝하게 만들었고, 도로엔 차와 오토바이가 엉겨서 북새통이었고, 어딜 가든 사람이 너무 많았어.

그래 맞아. 이게 바로 내가 태국에 올 때마다 방콕에서 길게 머무르지 않는 이유들이야.

아, 그곳에서 딱 하나 좋은 게 있었다면 2년 전과 같은 가격으로 팔고 있던 족발덮밥정도?

 

약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언니, 오빠는 여전히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해줬어.

오랜만에 다시 보는 반가운 얼굴들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라에서 만났으니 나도 얼마나 신났겠어.

그래, 나도 내가 신날 줄 알았었어. 

비록 출국 전까진 기분이 우울했지만 그래도 태국에 가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라. 

그냥 지금 내가 그래야 하는때인가 봐.

뭔지 알지, 인생 노잼 시기.

혹은 이별 후유증?

 

맥주를 진탕 마시고 기억하지도 못할 여러 취중진담들을 털어놓았던 밤이 지나고 그 다음날 아침.

호스텔 침대에 누워있는데 기분이 너무 좋지가 않았어.

바깥은 해가 쨍쨍하고, 내 옆엔 마음 잘 통하는 내 일행들도 있었고, 잠도 푹 자고 일어났는데 말이야.

누워서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축내는데 그렇게 기분이 우울할 수가 없더라.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 바보 같은 네모난 액정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의미 없이 손가락만 놀리고 싶었어.

그게 나를 더 좀먹는 일임을 알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가 없었어.

 

머지않아 난 곧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고 그제야 나는 일어나서 세수를 했어.

그리고 밖으로 나가 밥을 먹었지.

밥을 먹으면서 나는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언니에게 솔직히 털어놨어.

“언니, 나 오늘 아침에 너무 우울했어. 요즘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거 같아.

그러자 언니가 덤덤히 말하더라.

“원래 다 그럴 때가 있지 않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항상 행복할 수는 없겠지.

행복한 순간만큼 힘든 순간도 있을 테고, 열심히 하던 때만큼 지치는 때도 있을 거니까.

그런데 나는 지금 이런 여유로운 시간과 일상들을 보내면서 이런 감정을 느꼈다는 데에서 스스로 실망이 컸던 것 같아.

게다가 한 달 전 이집트에서 보냈던 시간과는 스스로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가 느껴지다 보니 더더욱.

 

다음 편지는 더욱 밝아진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했던 약속, 결국 지키지 못했네.

그런데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어쩌겠어. 겉으로는 마냥 밝아 보여도 속으로는 어두운 사람인 걸.

그렇다고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애써 밝은 척을하고 싶진 않아.

간혹 돈을 벌기 위해 그랬던 적은 있었지만, 적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난 그러고 싶지 않아.

최소한 나는 글을 쓰는 내 모습은 항상 좋아할 수 있길 바라거든.

 

같이 있던 오빠도 그런 소릴 하더라고.

한 달 전에 다합에서 봤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밝고 걱정 없어 보였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거 속은 거야. 지금 이게 원래 내 모습이야.”

 

누군가는 내 밝은 모습이 좋아서 내게 다가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내가 무뚝뚝해 보여서 나와 친해지고 싶단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밝은 사람도, 그렇다고 무뚝뚝한 사람도 아니거든.

그렇지만 어떤 모습의 나를 봤는지에 따라서 나에 대한 평가는 무수히 갈릴 수 있겠지.

 

옛날에는 그런 게 많이 신경 쓰여서 슬퍼도 아닌 척, 싫어도 아닌 척 항상 밝아 보이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일이 부질없는 일이라고 느껴지더라.

내가 밝은 모습이든 아니든, 내 곁에 남을 사람은 남고 아닌 사람은 아니더라고.

그런 깨달음들이 점점 나를 더 솔직한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

가식적이고 포장된 모습은 나를 점점 더 수렁에 빠지게만 할 뿐, 

나의 행복을 보장해 주진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부터 배웠었거든.

 

구독자의 관점에서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이야?

구독자의 기억 속 나는 밝은 모습이야 혹은 어두운 모습이야?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어.

구독자가 내 곁에 남아주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구독자가 표현하진 않았어도 나를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그 마음이 중요한 거지.

서로 잘 되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게 중요한 거지.

 

나이를 먹으니까 이런 사소한 감정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좋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때마다의 걱정거리는 많지만,

그래도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릴  있는 뚝심이 생긴  마음에 들어.

물론 무수히 많은 상처들을 통해 얻은 교훈이지만 말이야.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이후에 막상 글을 쓰려니 뭐부터 써야 할지 몰라서 ‘일단 아무거나 써보자!‘의 일환으로 시작한 게 바로 이 [순간예또]인데,

끈기 약하고 변덕 심한 내가 과연 언제까지 버텨줄지 의문이야.

그래도 계속 쓰다 보면 내가 쓰고 싶은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으로 오늘도 꾸역꾸역 이렇게 마감을 하고 있어.

 

편지를 읽고 보내주는 답장, 댓글, 또는 다양한 피드백들 정말 고맙게 생각하면서 몇 번씩 읽곤 해.

그런 작거나 큰 피드백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어주거든.

꼭 편지를 읽고 난 소감이 아니더라도, 그냥 고민이나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언제든 연락 줘.

나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너의 이야길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어.

때론 그게 또 나에게 중요한 [순간예또]의소재가 되어줄 테고.

그러니 언제든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주저 말고 연락해 줘.

 

오늘 2시간 보트 타고, 6시간 차로 이동하느라 틈틈이 쪽잠을 많이 잤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벌써부터 잠이 오네.

편지 마치고 나는 일찍 잠에  준비를 해야겠어.

지각하게 되어서 다시한 번 정말 미안하고,

다음 편지는 밝게 돌아온단 말은 못 해도 지각은 하지 않을게. .

이제  봄기운 완연할 3월도 좋은  가득하길 바라. 안녕.

 

 

[부록] 인연에 대한 에세이 가끔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방금처럼 공항에서 내 물건을 빼앗겼을 때 그렇다. 여권에 도장 찍을 빈틈이 없을 정도로 뻔질나게 해외를 다녀본 내가 이렇게 멍청한 실수를 할 리가 없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위탁 수화물에 보조배터리를 넣어도 될 것 같았다. 벽에 붙은 주의사항을 보고서도 그림처럼 생긴 배터리가 아니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결정은 그렇게 아주 거침없고 멍청했다. 배터리는 위탁으로 보낼 수 없으니 체크인 카운터로 다시 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이미 기내 안전검사의 문턱에 와 있었다. 대기 인원을 보니 이 줄을 다시 서면 꼼짝없이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아서 나는 내 배터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까지 빵빵하게 밥을 줬던 녀석이라 더 안타까웠다. 가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실수로 무언가를 떠나보내거나 놓치고 나면 그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물론 돈이든, 시간이든, 마음이든 투자했던 나의 것들이 아깝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냥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는 부분이 있다. 말하자면 내가 무언가를 놓친 게 아니라, 무언가가 나를 떠났다는 깨달음이다. 공항에 네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체크인 카운터가 미리 열리지 않았고, 하필 책임감 없는 공항 직원의 응대로 더 오래 대기를 해야 했고, 어쩜 평범한 평일 오후에 불과했던 오늘따라 공항이 너무 붐볐고, 그냥 이 모든 우연을 다 무시해도 애초에 내가 그런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부터가 말도 안 되게 이상했다. 내 손을 떠난 배터리가 내게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던 것. 사실은 이것이 배터리 스스로의 의지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쉽게 모든 만남과 이별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떠날 리 없고, 내가 아끼는 내 반려동물은 필히 오래 살 것이고, 내가 소중히 다루는 내 물건은 내가 버리기 전까지 그의 주어진 몫을 다 해낼 거라는 믿음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들은 착각에 가깝다. 하물며 그 대상이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무생물일지라도, 우리는 그것과의 이별이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과신에 빠져선 안 된다. 모든 것과의 이별은 우연 같은 만남처럼 언제든 순식간에 갑자기 닥쳐올 수 있는 것이다. 기억을 다시 되돌려본다. 나는 밤을 새우며 오늘 가지고 갈 짐가방을 싸고 있다. 옷을 찾느라 서랍장을 열어 이리저리 뒤져보니 내 기억에도 한동안 잊혀있던 오래된 옷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보자마자 각각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나와 연이 닿은 옷 들인 지가 떠올랐다. 내가 신경을 쓰고 있지 못할 때도 옷장 가장 구석의 컴컴한 곳에서 다시 부름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그 녀석들. 그저 ‘옷’ 이상의 가치와 서사를 담고 있는 그 친구들. 진심 어린 마음을 주고 보살펴줘도 일방적으로 나를 떠나는 누군가가 있으면, 제대로 연락조차 하지 못하고 지내도 끝까지 내 곁에 남아있는 누군가도 있는 법이다. 굳이 내 정신을 홀려가면서까지 나를 떠나버린 무언가를 나는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본인 의지대로 선택한 새로운 환경에서는 차라리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배터리의 새로운 여정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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