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속 이데올로기, 코카콜라와 환타 그리고 코폴라

히틀러도 좋아했다는 코카콜라의 대항마들

2024.12.12 | 조회 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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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직접 공수한 케케묵은 낭만 장아찌를 잔-뜩 퍼서 댁의 편지함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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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지난 편지를 보낸 것이 5월 30일이었는데 어느덧 올해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해가지지 않는 밤을 우려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요. 오늘 프라하의 일몰 시간은 오후 4시였습니다. 해가 떠있는 때가 몇 시간 안 돼요. 시간 자체도 짧은데 날씨도 궂은 편이라 구름 낀 날은 흑백필터를 끼고 하루를 사는 기분이에요. 

요즘 들려오는 한국 소식엔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시대를 종횡무진 하는 대중가요가 [붙임]으로 첨부되어 있네요. 함께할 수 없음에 큰 부채감을 느낍니다. 타격 없는 일상을 사는 게 죄스러운 요즘, 빼앗긴 일상을 되찾고 싶다는 이야기가 잦은 나날. 아이러니한 것은 동시대의 누군가는 바뀌지도 않을 정치판에 관심 없다며 자신의 일상에 몰두할 것을 선언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집중하겠다고 말하는 일상.

우리의 일상이 정말 정치와 따로 떼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걸까요?

제목을 보아하니 탄산음료 얘기를 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힘을 주냐고요? 제가 체코에 와서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정치적인 것인지 처음 느꼈던 게 바로 이 음료들 덕분이거든요.

체코/슬로바키아에만 있는 콜라, 코폴라(Kofola)

체코 마트의 음료 코너에 가면 코카콜라 만큼, 어쩌면 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음료가 있습니다. 체코의 콜라인 코폴라인데요. 콜라랑 비슷한가 싶지만 살짝 시큼하기도 하고 은은하게 허브향도 느껴져요(당신이 계신 그곳까지 이 맛을 보내보려 방금 한 모금 마시고 적었습니다) 호불호가 갈릴만한 맛인데요. 체코엔 오리지날/제로/수박/복숭아 등 다양한 맛의 코폴라가 출시되고 있습니다. 체코사람들은 이 음료를 참 즐겨 마십니다. 어느 정도냐면 몇몇 레스토랑에서는 맥주처럼 탭으로 생(生)코폴라를 판매할 정도예요. 

코폴라 [출처 : wikimedia commons]
코폴라 [출처 : wikimedia commons]

이 코폴라의 별명을 붙이자면 공산주의 콜라쯤 될 거예요. 1948년부터 1989년말까지 동구권 국가였던 체코는 미국의 코카콜라 맛에 깊게 빠졌지만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였다고 합니다. 1957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콜라 대체품을 개발하는 일을 체코의학연구소 직원들에게 맡기게 되는데요. 무려 2년간 고군분투한 결과, 의약품 제조회사인 ‘갈레나’에서 카페인과 14가지의 허브, 과일 성분을 가미한 탄산음료 <코폴라>를 내놓습니다. 

의학연구소의 모습 [출처 : 코폴라 공식 홈페이지]
의학연구소의 모습 [출처 : 코폴라 공식 홈페이지]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은 이 <코폴라>에 열광했습니다. 출시된 코폴라가 너무 빠르게 동나, 속도에 맞춰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료를 다른 나라에 수입해야 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어느 정도의 인기였는지 가늠이 되시나요? 

코폴라를 즐기는 사람들 [출처 : 코폴라 공식 홈페이지]
코폴라를 즐기는 사람들 [출처 : 코폴라 공식 홈페이지]

벨벳혁명으로 코카콜라를 비롯한 서구의 음료가 체코슬로바키아에 들어오기 전까지 코폴라는 체코 사람들에게 세대를 넘나들며 어디서든 사랑받는 국민 음료였습니다. 시대를 반영한 대중음악 가사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로 말이죠. 

출처 : 코폴라 홈페이지
출처 : 코폴라 홈페이지

쏟아지는 코카콜라와 펩시 틈에서 주춤하는가 싶던 코폴라는 다양한 맛,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으로 과거의 입지를 서서히 되찾았고요. 2024년인 현재까지도 체코사람들에겐 콜라와 비슷한 위치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음료로 남아있어요. 우리나라에 비슷한 음료를 찾자면 칠성사이다쯤 될까요? 체코의 짙은 역사를 기억하는 특별한 음료 코폴라, 다음에 체코에 오시면 꼭 드셔 보세요.(맛있다고는 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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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쓴다고 테스코 가서 코폴라 사왔는데... 작은 거 안 팔아서 왕 큰 거 샀거든요....? 

다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우울해졌어요...

공산주의가 낳은 판타지, 환타

지금 당장 코폴라를 맛보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아쉽네요. 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번엔 집 근처 편의점 어디에서든 맛보실 수 있는 환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보겠습니다.

경례하는 히틀러 [출처 : wikimedia commons]
경례하는 히틀러 [출처 : wikimedia commons]

공산주의와 독일하면 나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을 강조했던 나치는 독일 곳곳에 다양한 공장을 세웁니다. 그리고 이때 세워진 공장이 코카콜라 공장이었습니다. 코카콜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브랜드였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음료였습니다. 나치를 이끌던 히틀러마저도 콜라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 wikimedia commons
출처 : wikimedia commons

그런데 2차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독일에 들어선 코카콜라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코카콜라 공정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코카콜라는 전세계 공장에 콜라 원액과 레시피를 전달합니다. 그럼 보틀러라 불리는 각 지역의 공장은 원액을 이용해 콜라를 만들어 병에 담은 뒤 각 지역 매장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이 되는 거죠. 그런데 미국 본사에서 독일로 보내던 콜라 원액 지급을 끊어버린 겁니다. 원액 보급이 끊기자 독일의 코카콜라는 운영이 불가했습니다.

출처 : PHVP
출처 : PHVP

음료 좀 안 먹으면 어떠나 싶지만 당시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콜라에 들어있는 당분 덕분에 굶주린 사람과 전쟁터의 군인들은 쉽게 에너지원을 공급할 수 있었거든요. 이때 독일 코카콜라 법인장 막스 카이트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과일을 보고 힌트를 얻습니다. 그리고는 사과즙과 우유로 치즈를 만들고 난 뒤 남은 찌꺼기인 유장 등을 이용하여 콜라를 대체할 탄산음료를 만들어 내는데요. 이름을 고민하던 중 환상(fantasie)에서 착안에서 착안하여 <환타>로 공개합니다. 

환타 포스터 [출처 : 코카콜라 공식 홈페이지]
환타 포스터 [출처 : 코카콜라 공식 홈페이지]

다양한 맛의 판타지 그 끝은 스프라이트?

탄산음료 no.1 콜라와 다른 환타의 특징은 다양한 맛을 들 수 있을텐데요. 환타가 이런 특징을 갖게된 시작은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콜라처럼 일정한 원액이 정해져 있는 상태가 아니다 보니, 그때그때 얻을 수 있는 과일즙으로 음료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환타로 만든 케이크 환타쿠헨(fantajuchen) [출처 : wikimedia commons]
환타로 만든 케이크 환타쿠헨(fantajuchen) [출처 : wikimedia commons]

지금 우리가 듣기엔 이 음료가 콜라 대체품으로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싶지만요. 대중들은 환타에 열광했습니다. 이 음료는 단순히 마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요리할 때 귀한 설탕의 대체품으로 사용할 수 있었거든요. 인공적인 원료가 들어있거나 너무 달다면 어려웠을텐데 자연재료로 만든 환타는 그 자체로 귀한 감미료가 되었다고 하네요. <환타쿠헨>이라 불리는 독일의 케이크는 지금까지도 종종 독일의 식탁에 올라온답니다. 콜라 넣은 찜닭도 떠오르고 그렇죠?

스프라이트의 원조, 환타 레몬 [출처 : 코카콜라 공식 홈페이지]
스프라이트의 원조, 환타 레몬 [출처 : 코카콜라 공식 홈페이지]

환타가 남긴 것은 환타쿠헨이 끝이 아닙니다. 다양한 과일로 만들었던 환타 중 인기를 끌었던 깨끗한 레몬환타는 훗날 코카콜라가 환타를 인수해 간 뒤, 환타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출시되는데요. 이 음료가 바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스프라이트입니다.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요시이 히로아키

우리가 사소한 일상이라 부르는 것들 뒤엔, 사소하게 먹고 마시고 향유하는 것들 이면엔 언제나 이데올로기가 있습니다. 응원봉이 집회에 등장한 우리의 일상은 어떤 사건을, 또 어떤 다른 일상을 빚어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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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부채감을 느끼며 오늘의 편지를 마칩니다.

뒤숭숭한 나날이지만 그 안에서도 아름다운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들쑥날쑥한 편지의 수신인으로 아직 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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