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brý den !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구독자님이 있는 곳은 날씨가 좋은가요? 해는 많이 길어졌나요? 프라하는 저녁 8시 20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해가 떠있습니다.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해는 정도를 모르고 길어지고 7월-8월 쯤이 되면 10시가 지나도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해요. 밤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밤을 살아야 하는 무더운 여름이 걱정스럽기도,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사실 해가 늦게 지는 건 그래도 괜찮은데요. 일찍 뜨는 건 좀 곤란해요. 아직 방에 커튼을 못 달았거든요. 요즘은 새벽 4시 30분쯤이면 방 안이 파래져 꼭 한번은 깼다가 잠들게 되더라고요. 썸머타임이 끝날 때까진 계속 이렇게 지내게 되겠죠?
아쉬운 대로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발열안대를 끼고 잠을 자는데요. 1회용이긴 하지만 눈만 가리면 될 것 같아서 이미 뜯은 거 몇 번 더 썼는데 몇 주 전부터 한 집에 살게된 한국인 플랫메이트 동생이 안대 하나 사줄테니까 좀 버리래요. 고급지진 않지만 라벤더 비슷한 향도 나고 캐릭터도 그려져 있어서 귀여운데...
인연은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어떻게 프라하, 수많은 집 중에 이 집에, 그것도 내 방 바로 옆 방에 한국인이 이사를 올 수 있을까요. 누가 이사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양치하고 돌아서서 방에 들어가는데 등 뒤에 '안녕하세요'가 들리던 순간을 잊지 못해요. 너무 놀라서 혹시 이거 몰래카메라인가요? 하고 물었답니다. 우크라이나인과 슬로바키아인이 사는 집에서 들려온 안녕하세요. 타국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 덕분에 어딘가 바람이 통하는 것 같던 프라하라이프가 꽉 채워져서 기뻐요.
며칠 전, 와일드 플랫의 두 한국인의 휴일이 겹쳤던 날이 있어요. 도어락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열쇠의 나라, 체코에서 엄청나게 많은 열쇠를 갖게된 동생이 귀여운 키링을 사고 싶다고 해서 장난감 가게를 쏘다녔는데요. 귀여운 키링들 중 선별된 친구들은 묵직한 패트와 매트 열쇠고리였어요. 처음 체코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것 중 하나예요. 말없이 몸으로 웃기던 패트와 매트가 체코 출신 덤앤더머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76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패트와 매트
<패트와 매트>는 1976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하나의 나라였던 시절에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웃기는 두 친구가 세상에 태어난 해는 냉전이 지속되던 시절이었고 체코슬로바키아는 사회주의 공화국이었습니다. <패트와 매트>의 원작자인 루보미르 베네슈는 웃기는 두 친구를 통해 세계평화라는 주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마냥 바보 같았던 이 친구들은 사실 엄청난 상징을 담고 있어요! 먼저, 노란 옷을 입고 있는 패트는 북미, 유럽 등 서방국가의 군사동맹인 'NATO'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패트와 항상 함께하는, 빨간 옷을 입고 있는 매트는 동구권 국가들들의 조약 기구인 바르샤바조약기구 'WTO'를 의미하고 있고요. 이 둘이 함께 사는 공간은 지구를 상징하고 이념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화롭기를 바라는 취지로 패트와 매트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죄다 때려 부시며 즐거워하는 패트와 매트에게 이런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셨죠?
어떤 분께는 패트와 매트가 각각 NATO와 WTO를 상징한다는 사실보다 빨간 옷 입은 친구가 패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일 것 같아요. 좀 더 비중있고 책임감 있는 빨간옷을 입은 친구가 제목에서 먼저 언급되는 패트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패트는 노란 옷을 입은 친구라는 거, 기억해 주세요!
패트와 매트 의혹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 패트와 매트는 언제나 노란 옷과 빨간 옷을 입고 있나요? 놀랍게도 빨간 옷의 매트는 자신의 시그니처인 빨간 옷을 못 입고 회색 옷을 입어야 했던 전적이 있습니다. 이 역시 이념과 관련된 문제였는데요. 빨간 옷을 입은 매트가 소련을, 노란 옷을 입은 패트가 중국을 상징한다고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서 검열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매트의 시그니처인 빨간 옷은 무정부를 상징하는 회색 옷으로 바뀌었고 이는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패트와 매트>하면 이들이 작당모의를 할 때마다 나누는 특별한 제스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텐데요. 이는 1928년부터 1939년까지 아주 짧은 시간동안 존재했던 알바니아 조그 왕조의 경례법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조그 1세의 경호경찰들끼리 사용하던 것이 알바니아 군에게 퍼져나가며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공산 정권에 있을 때는 조그식 경례가 체제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답니다. 웃음을 자아내던 두 콤비의 트레이드 마크 자세 역시도 이념과 관계 되어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퍼핏 애니메이션 강국, 체코
<패트와 매트>는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퍼핏 애니메이션에 속합니다. 퍼핏 애니메이션은 나무, 철사,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인형을 조금씩 변형시켜서 이를 한 장면씩 끊어서 촬영한 애니메이션 기법인데요. 체코에서 인형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이 발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체코를 여행하다 보면 길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기념품 중 마리오네트 인형이 있습니다. 관절에 줄을 매달아 움직일 수 있게 만든 인형인데요. 이 마리오네트를 이용한 인형극은 체코가 자랑하는 우수한 문화 중 하나입니다.
체코에서 마리오네트 인형극이 성행했던 이유는 민족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체코는 자신들의 언어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인형극을 고안했습니다. 이 인형극에는 체코어에 사용 되는 모든 발음이 다 들어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들은 마치 우리나라의 남사당패처럼 지방 곳곳을 돌며 인형극을 통해 체코의 언어를 기억할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어려운 시대에 체코인들의 심지가 되었던 마리오네트 인형극은 시간이 흘러 세계적으로 그 우수함을 인정받았고 그 결과, 세계인형극협회가 프라하에 자리를 잡는 결실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추신 : 체코의 명물, 두더지 크르텍
이제 구독자님은 체코에서 마리오네트 인형을 보시게 되더라도 왜 이런 인형들이 이렇게 많은건지 궁금하지 않으시겠지요? 그런데 다른 게 궁금해지실 거예요. 마리오네트는 그렇다 치고 <패트와 매트>보다 지분이 훠얼씬 많은, 이 쥐도 아닌 것이 햄스터도 아닌 것이... 얘들은 다 뭔가 생각하실텐데요. 체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두더지 캐릭터 크르텍입니다. 두더지 이름이 크르텍인 게 아니고요. 체코어로 두더지가 크르텍(krtek)이에요. 이름 정말 성의없게 지었죠?
초동안(?) 외모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패트와 매트>보다 20년 전인 1956년에 태어난 캐릭터랍니다. 처음엔 되게 못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볼수록 귀여워요. 아직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는 체코는 장난감 가게가 거리마다 있거든요. 나중에 체코에 오신다면 꼭 마이클잭슨보다 2살 많은 크르텍과 눈맞춤하는 거 잊지 마세요...!
오늘은 가벼운 에피소드들 사이에 묵직한 주제를 품은 유명 체코인, 패트와 매트의 이야기를 담아 보내드렸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조만간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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