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AZZ의 역사

한국재즈는 친일파에 의해 시작됐다?

2023.04.17 | 조회 4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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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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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주간 잘 지내셨나요? 지난 주 편지를 보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무법자처럼 제주여행을 다녀왔어요. 돌아오는 비행기 표도 없이 가서 이리저리 허우적대다가 편지를 써야 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제주의 기운을 가득 머금고 건강해진 마음으로 더 열심히 적어 볼게요. 

오늘 편지하려는 주제는 한국재즈입니다. 이제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흥선대원군이 맞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의 역사도 궁금하지만요. 특히 한국에 그래서 그게 언제 들어왔는데? 하는 것들이 늘 더욱 궁금하더라고요. 팔이 너무도 안으로 굽는 것 같긴 하지만 이런 편지도 한 장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저기 재즈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모두 한결 고급스러워지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인데요. 한국재즈 하니까 한국의 아우라가 재즈의 고급을 모두 집어 삼킨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렇다면, 뉴올리언즈에서 시작된 진짜 재즈 말고 한국에 불어온 재즈 바람은 언제부터였을지 본격적으로 한번 따라가보겠습니다. 

재즈의 시작은 친일파로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재즈를 시작했던 사람은 엄청난 부자였던 백명곤이었습니다. 얼마나 부자였던 건지 초록창에 백명곤을 검색하면 원조 만수르 같은 수식어가 그를 꾸미고 있어요. 단순히 돈만 많다고 만수르라고 부르는 건 아니고요. 구단주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백명곤은 할아버지가 쌓은 막대한 부를 가지고 탕진하고 다니는 막돼먹은 재벌 3세쯤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서울을 연고로 하는 축구팀이 창설되었는데 운영이 어렵다는 얘기가 백명곤 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본래 축구 좋아했다는 이유로 이 축구팀을 인수한 백명곤은 자신의 집 주변에 축구선수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합숙소를 만들고 중국인 요리사를 언제나 대기시켜 선수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했답니다. 

그래서 이게 재즈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백명곤이 축구팀과 함께 상하이로 원정경기를 나가서 신비로운 악기들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에요. 돌아오는 백명곤은 몸만 오지 않았습니다. 그 진귀한 악기들을 구매해서 모두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악단을 구성하여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데요. 이것이 우리나라의 첫번째 재즈밴드인 <코리안 재즈밴드>의 탄생이었습니다. 1926 2, 종로회관에서 진행했던 연주가 우리나라에 재즈음악이 퍼진 첫번째 역사라고 하니, 축구팀의 나비효과 대단합니다. 아쉽게도 당시 음원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알 수 있어요.

코리아재즈밴드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젊은 피에 끓는 남녀들에게 큰 환호를 받았다. 

한 가지 즐김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도록 뛰고 놀아버릴 뿐

-잡지 <개벽> 1929 9월호 

어떤 문화든 청년들이 반응하면 그 뒤로는 불타오르기 마련인데요. 30년대 불타오르던 재즈의 흐름은 조선에서 잠시 자취를 감춥니다. 이유는 자의적이지 않았습니다. 태평양전쟁으로 미국을 적국으로 삼고 있던 일본 입장에선, 미국에서 시작된 재즈가 조선땅에 뿌리내리는 게 꼴보기 싫었겠죠. 대대적으로 재즈음악이 퍼져나가는 것에 검열을 하기 시작합니다. 재즈의 선율이 얼어붙었던 시절이지요. 

8군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한 재즈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지나며 미군의 문화는 한국에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8군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음악의 여파도 엄청났어요. 루이 암스트롱과 냇킹콜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재즈 아티스트들이 한국에 내한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이때 한국에 내한한 루이암스트롱 앞에서 호기롭게 그의 흉내를 내어 재능을 인정 받았던 꼬맹이가 있었는데요. 아버지가 미8군 악단장으로 있던 이 소녀는 훗날 미니스커트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고 명곡 <여러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스타, 윤복희입니다. 

재즈클럽의 탄생과 재즈+a 시대

정통재즈가 인기를 끌던 60년대를 지나 70년대부터는 청년들의 가슴에 락이 불을 지핍니다. 그러면서 재즈를 향한 관심도 수그러들게 되었는데요. 이 시기를 지나면서 재즈를 즐기는 형태가 좀 달라집니다. 우선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부터 재즈클럽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재즈클럽인 <올댓재즈> 역시, 이 시기 중국인 사장에 의해 문을 열게 됩니다.

새로운 공간이 생겼고 재즈는 한 물 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뮤지션들이 더 다양한 시도를 해야 될 겁니다. 이때부터 재즈는 퓨전재즈, 프리재즈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존 한국에 전해진 재즈와 다른 지점을 만들어 냅니다. 80년대엔 그룹 .여름.가을.겨울이 퓨전재즈로 큰 사랑을 받았었고요. 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김현철에 의해 다시 한번 재즈가 큰 사랑을 받게 되지요. 

이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재즈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들에 의해 메인으로, msg로 자리 잡은 것이 한국재즈일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온 올댓재즈

재즈 이야기를 적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8할입니다. 앞서 소개했던 우리나라 첫번째 재즈클럽, 올댓재즈가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2021년 코로나로 올댓재즈가 폐업 선언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금치 못했는데요. 2022년 말, 새로운 공간에 다시 문을 열면서 여전히 세대를 초월하여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어요. 움츠림을 딛고 다시 일어날 정도로 강력한 재즈의 힘이 궁금하시다면, 새로 찾아온 올댓재즈에 방문해 보세요!

주소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16 2

입장료 15,000

오늘은 우리나라에 뿌리 내린 재즈 이야기를 담아 드렸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 음악 이야기를 했으니 마지막엔 엔딩곡을 한 곡 띄워야겠습니다. 요즘 푹- 빠져있는 노래인데요. <유복성과 신호등  혼자 걷는 명동길>입니다. 

유복성과 신호등 - 혼자 걷는 명동길

특색있는 오프닝송으로 잘 알려진 드라마 <수사반장>의 귀를 때리는 퍼커션 소리 역시 유복성의 연주라는 걸 알고 더욱 재밌게 듣고 있답니다. 

한국재즈를 담아 보내는 오늘의 낭만장아찌, 이만 줄이겠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시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나요 !

한 입 먹으면 머나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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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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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레네

    0
    about 1 year 전

    와.... 너무 유익한 편지이자 흥미로운 편지네요. 마지막 덧붙이신 음악도 짱 좋아요..... 감사합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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