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혜화에 자주 갑니다. 숨은 대학로 이야기를 따라 산책하는 코스를 만들고 있거든요. 대학로에 처음 갔던 건, 중학생 때였어요. 그러고 보니 그때는 마로니에 공원을 걸으면 각종 연극 포스터가 손에 한 움큼 쥐어졌던 거 같은데요. 요즘은 홍보 채널이 온라인에 집중되어 있어서인지 거리가 한산하더라고요. 처음 대학로에 왔을 때 황당했던 건, 대학이 없는데 동네 이름이 대학로라는 점이었어요. 시간이 좀 더 지나서, 관악에 있는 서울대학교가 원래 혜화동에 있어 대학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한 점이라도 생생히 살아있던 시절이 있던 공간은요. 먼지를 살짝 걷어내면 반짝이는 눈으로 호시절을 뱉어내는 것 같아요.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1960년 진짜 대학로 이야기입니다.
동숭동 센강과 미라보 다리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시절 전경 [출처: 경향신문]](https://cdn.maily.so/du/zizikzizik/202607/1783850912801082.webp)
60년대 동숭동에는 센강과 미라보 다리가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문 앞에 흐르던 흥덕동천과 그 위로 조성된 다리를 부르는 이름이었다고 해요. 섬유 공장에서 흘러온 오염된 물이 즐비했던 흥덕동천이 이토록 낭만적인 별명을 갖게 된 데에는 프랑스가 고향인 마로니에 나무가 한몫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은 일제강점기 지어진 경성제국대학교의 후신입니다. 마로니에 나무의 역사는 경성제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1929년 4월 5일 일본인 이노우에 교수가 프랑스에서 가져온 묘목 세 그루를 심은 것이 시작이라고 합니다. 경성제국대학과 서울대학교 문리대학교가 혜화동에서 자취를 감추고 난 뒤에도 대학로의 명물로 남은 마로니에 나무. 생명력이 대단하네요.
![숙명여고 시절 박완서 작가 [출처:SBS NEWS]](https://cdn.maily.so/du/zizikzizik/202607/1783852888475178.jpg)
이 아름다운 교정을 꼭 나흘쯤 거닐고는 끝내 더할 수 없던 것이 내내 서글펐던 새내기 대학생이 있습니다. 서울대 문리대 50학번으로 입학했던 소설가 박완서입니다. 박완서 작가는 8.15 광복 이후 수년간 8월을 학년말로 삼던 학사과정을 기존 3월 말로 환원하기 위해 전례 없는 6월 개강을 맞이한 세대였습니다. 개강일이 1950년 6월 20일 쯤이었고 5일 뒤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시대의 고통 앞에 마음대로 발산할 수 없던 싱그러움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두고두고 쌉쌀한 여운을 남기는 향신료처럼 쓰였습니다.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불문과 거지 떼 일원
전쟁은 어떤 청춘에겐 대학을 빼앗았고 또 어떤 청춘들에겐 가난을 남겼습니다. 당시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던 타지 출신 학생 중엔 곤궁한 형편에 학교에서 노숙하는 학생도 왕왕 있었다고 하는데요. 검게 물들인 군복, 뒷굽이 닳아버린 군화를 신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벤치에서 잠을 청하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도 꾀죄죄하게 다녀 문리대 거지떼 중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고 하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문단에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약 스타가 됩니다.

오늘날까지 박찬욱 감독, 공지영 작가 등 다수의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소설가 김승옥의 이야기입니다. 김승옥이 등단을 하게 된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당신들의 천국», «병신과 머저리»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청준은 김승옥과 서울대 불문과 60학번 동기입니다. 1961년, 두 사람은 어려운 집안 형편에 등록금도 마련할 겸, 글솜씨가 어느 정도 되는지 테스트도 해볼 겸 신춘문예에 작품을 투고하는데요. 별 기대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 군대 가기 전까지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시다가 12월 30일, '급 상경요망' 이라는 전보를 받고 급히 서울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1962년 새해, 김승옥은 단편 소설<생명연습>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 한편, 이청준은 고배를 들고 홀로 입대했다고 하네요. 이청준을 작가로 만든 건 3년 뒤, 월간 잡지 <사상계> 신인상 수상이었습니다.
문리대 제 25 강의실, 학림
센 강과 미라보 다리 맞은편엔 당시 학생들이 자주 찾던 술집이었던 쌍과부집, 배때기집, 연건식당과 중식당 진아춘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죽 많은 학생이 모여 대화를 나누었던지 문리대 제 25강의실이라 불리던 학림다방도 있었고요.
1956년 시작된 학림의 역사는 주인장이 여러 번 바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게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에 역사를 머금은 고마운 장소예요. 학림다방과 서울대 문리대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는 이름의 유래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축제 이름인 학림제에서부터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설과, 반대로 학림다방의 이름에서 서울대 축제인 학림제라는 이름이 지어졌다는 상충하는 설이 같이 전해지거든요.
이번 편지를 쓰기 위해 나란히 두고 읽은 책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송철원 작가의 «아, 문리대! (1)»인데요. 책에 따르면 기존 학림다방의 상호는 鶴林(새들이 노니는 숲)이었다고 하는데요. 서울대학교에서 발음을 차용하되 한자를 바꾸어 學林(배움이 있는 숲) 축제를 개최하자, 다방 역시 배울 학으로 한자를 고쳐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학교와 다방이 젠가라도 하는 것처럼 차례로 영향받는 것이 과연 25강의실이라고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난한 주머니의 학생들은 엽차를 주로 마셨다고 하는데요. 60~70년대에 엽차는 보리차를 의미했다고 합니다. 돈이 없으니 가장 저렴한 보리차를 마셨던 모양이에요. 여유가 있을 땐 달걀을 띄운 모닝커피를 마시는 학생도 있었다고 하고요. 위티(위스키+티)라고 불리는 차에 위스키 몇 방울을 가미한 메뉴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학생들이 한데 모여 젊은 혈기로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들끓는 열기와 점잖은 교양은 아무래도 거리가 좀 있었던 모양이에요. 1964년 4월 1일 자 문리대 신문 «새세대»에는 창업자 이양숙 씨의 재미있는 호소가 실려 있습니다.
대학가의 낭만이라면 언뜻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지 않습니까? 바로 학림싸롱말입니다. 이렇게 학들만 모이는 학림(鶴林)에 최근 술주정뱅이 까마귀들이 몰려 자주 난동을 일으키는 모양. 아줌마 부탁이니 부디 오림(烏林)으로 변모시키지 않기를 거듭 부탁합니다.
1965년 학림, "세코날 마흔 알을 구했어. 하얀색으로"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의 쉼터였던 학림을 즐겨 다니던 여학생이 있습니다. 1965년 1월 10일, 그녀는 학림다방에서 만난 친구에게 수면제인 세코날 마흔 알을 구했다는 이야기했습니다. 다음날 그녀는 31살의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합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숱한 세계 명작을 우리말로 다시 써준 번역 문학가, 전혜린입니다.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했지만 독일 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전혜린은 독문과 수업을 틈틈이 들으면서 작가의 꿈을 키웁니다. 1955년 끝내 전공을 독문학으로 변경한 머나먼 독일로 유학을 감행하는데요. 독일 땅에서 그녀가 번역한 작품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루이제 린저의 «생애 한가운데»,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이 있습니다.

2026년 여름날에도 학림은 젊음으로 가득합니다. 개인의 취향이 파편처럼 세밀해진 요즘 굳이 학림을 찾는 이들에겐 그만큼의 취향과 개성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테이블에선 스트레스 해소용 슬라임을 주물럭거리고요.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한자가 병기된 누런 책을 하염없이 읽습니다. 맞은편 테이블에선 플래쉬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다가 주의받기도 합니다. 노트북을 펼치고 작업에 열중하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50년 전, 검은 스카프를 두른 채 나타난 전혜린은 학림에서 담배를 연거푸 태웠다고 하는데요. 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어디쯤 앉아 담배를 태웠을지 눈알을 굴려 살피게 됩니다.

학림에 나오는 클래식은 특별해요. 다른 곳에서 들었을 땐 당최 느낄 수 없었던 노스탤지어가 느껴지거든요. 언젠가 무심코 돌린 텔레비전에서 교향악단도 연주했던 곡이었는데 그땐 느낄 수 없던 다락방 먼지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정감 어린 풍경이 자아내는 정취일까요. 역사가 묻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내음이 있기 때문일까요. 공감각적 심상이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이 있네요.
오늘의 편지는 학림에서 마무리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대학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다음 주에는 문리대가 자취를 감춘 뒤, 이곳을 예술의 거리로 남겨둔 이들의 이야기를 적어 올게요. 다음 주의 암호는 샘터 사옥과 건축가 김수근, 그리고 학전 김민기와 김광석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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