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즈음에 : 대학 없는 대학로의 청춘

서울대 문리대가 떠난 뒤 대학로에는...

2026.07.20 | 조회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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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지난번 예고했던대로 오늘은 1975년 이후의 대학로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요. 서울대 문리대가 관악으로 이전한 뒤, 대학 없는 대학로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될 뻔한 예술가의 집

혜화역 2번 출구로 나가면 마로니에 공원이 나옵니다. 공원 구석구석을 적벽돌로 채운 건물 중 센 강과 미라보 다리를 기억하는 건물은 한 채예요. 현재 예술가의 집으로 쓰이고 있는 문화공간은 서울대 문리대의 본관 건물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덜 읊었다고 서운해하려나요.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경성제국대학교 시절부터 사용되었고요.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가로 알려진 박길룡이 만든 건물이기도 하거든요. 지성의 코어 역할을 했던 근대 건축물이 시민의 문화생활을 책임지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예술가의 집 [출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 집 [출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대 문리대가 사라진 자리에 처음 그려진 밑그림은 문화니 공연이니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1973년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이곳에 아파트를 세울 계획이었습니다. 대학본관 자리는 관리 사무소가 될 예정이었고요. 많은 사람이 정부의 선택에 반대했습니다. 아파트를 만들 수 없게 되자 주택 공사는 대학이 있던 땅을 일반에 매각했습니다. 땅을 구매한 이득 중엔 서울대 상대 출신의 출판사 사장 김재순도 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 «샘터»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행복하기를 바라고, 자기가 속한 사회의 번영과 발전을 바랍니다.우리가 국토의 통일을 그렇게 절실히 염원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우리 개인이 보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되고 나라가 더욱 번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과 번영과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 굳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평범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면서 행복에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샘터》를 내는 뜻입니다.                                                            -1970년 4월, 설립자 우암 김재순-

 

샘터 창간호 [출처 : 한겨레]
샘터 창간호 [출처 : 한겨레]

월간지 《샘터》의 여정은 1970년 시작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을 위한 교양지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상공회의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배우지 못한 게 속상하다는 기술자들의 이야기가 샘물의 근원이 되었거든요. 잡지 한 권의 값이 담배 한 갑의 가격을 넘겨선 안 된다는 원칙은 샘터의 물줄기가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가 닿기 바랐던 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샘터 사옥 [출처 : 조선일보] 
샘터 사옥 [출처 : 조선일보] 

김재순 선생은 서울대가 있던 자리 일부를 매입하여 사옥을 짓습니다. 사옥 건물을 설계한 것은 근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건축가 김수근이었습니다.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불리는 데로 쓰인다는 말은 진실이라고 믿게 합니다. 샘터 사옥은 단순히 회사를 위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혜화역 2번 출구 앞, 담쟁이 덩굴로 둘러싸인 샘터 사옥은 많은 이들의 쉼터이자 만남의 광장이었습니다. 필로티 구조로 비워진 건물 1층은 한낮의 태양과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하기 참 좋은 장소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임대했다면 아마 많은 돈을 벌었을 겁니다. 1층은 누구든 선호하잖아요. 게다가 샘터사옥 화장실은 직원들이 떠난 뒤에도 24시간 열려있었습니다. 관련자만 들어올 수 있는 여타 사옥과 비교해 본다면 과감한 결단입니다.

1985년 샘터 사옥 1층에 핀 들국화

첨부 이미지

 [출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학로에 가면 아르코(arko)로 운을 떼는 기관이 참 많습니다. arko는 (art council Korea)의 약자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대학로에 arko라는 글자가 많이 보인다는 건,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문화예술공간임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그중 하나인 아르코예술극장은 1981년 문예회관 극장으로 개관했습니다. 역시 설계는 김수근이 맡았습니다.

샘터 파랑새극장 [출처 : 맘스쿨한마당]
샘터 파랑새극장 [출처 : 맘스쿨한마당]

그로부터 3년 뒤, 1984년 샘터 사옥 지하 1층에 샘터파랑새극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대학로에 최초로 개관한 민간 소극장이었습니다. 연극은 물론 전설이 된 뮤지션의 숱한 공연이 열리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중 많은 사람의 추억 속에 남은 공연은 1985년 열린 들국화 공연입니다. 

들국화 1집
들국화 1집

언젠가 봤던 인터뷰에서 가수 이상은 님이 들국화를 보려고 대학로에 자주 갔었다고 회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어요.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최고의 앨범을 꼽았다 하면 빠지지 않고 상위에 오르는 이 앨범을 가장 절절하게 부를 수 있던 때에 라이브로 만끽하셨다니...!

첨부 이미지

작년 들국화 40주년 공연을 보며, 1985년 샘터 지하를 가득 메웠던 젊음이 아직도 노래 속에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교양지 «샘터»가 대중들의 예술적 갈증을 채워주던 그 무렵, 무대에서 한판 즐기고 싶은 예술인들의 못자리를 표방하며 소극장 학전이 문을 엽니다. 

1991년 학전과 김민기

학전 소극장 [출처 : 한국연극]
학전 소극장 [출처 : 한국연극]

1991년 3월 15일 대학로에 학전소극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만든 사람은 '아침이슬'을 비롯한 아름다운 노래를 만든 가수 김민기입니다.

김민기 [출처 : 중앙일보]
김민기 [출처 : 중앙일보]

소극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콘서트,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는 무대였습니다. 학전의 품은 관객은 물론 스태프와 공연자들까지 끌어안을 정도로 넉넉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악명 높은 연극판에서 '우리 때는...' 하고 운을 뗄 수 있는 까닭은 30여 년 전엔 더 참혹했다는 걸 의미하겠지요.

<지하철 1호선> 공연중인 황정민 [출처 : 학전]
<지하철 1호선> 공연중인 황정민 [출처 : 학전]

제대로 된 처우를 기대할 수 없던 때에 배우들의 4대 보험을 들어주었던 양질의 토양이 학전이었습니다. 좋은 예술가를 키워내겠다는 김민기 선생의 취지에 걸맞게 설경구, 이정은, 장현성, 황정민 등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자들이 학전에서 자랐습니다. 한편, 이곳 학전소극장에서 1000번째 라이브 공연을 마친 가객도 있었습니다.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김광석 1000회 공연 콘서트 [출처 : 김광석닷컴] 
김광석 1000회 공연 콘서트 [출처 : 김광석닷컴] 

1995년 8월 11일 김광석은 학전에서 1000번째 라이브 공연을 마쳤습니다. 재밌는 건, 김광석의 첫 라이브 공연이 샘터파랑새소극장이라는 점입니다.

김광석 [출처 : 중앙일보]
김광석 [출처 : 중앙일보]

1988년 김광석은 동물원 멤버로 샘터파랑새소극장 무대에 올랐습니다. 김광석을 기억하는 이들이 여전히 사랑하는 <거리에서>, <변해가네>는 사실 동물원 1집 수록곡을 김광석이 리메이크한 버전입니다. 이듬해 김광석은 동물원을 나와 김광석 1집을 발표합니다. 놀랍게도 그 당시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1991년 김광석 2집 <사랑했지만>이 인기를 끌면서 주목받습니다.

김광석 학전 공연 모습
김광석 학전 공연 모습

1993년, 대중에 이름을 알린 지는 2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10년 차 뮤지션이었던 김광석은 한 달간 학전 소극장에서 라이브 공연을 진행합니다. 11년 차, 12년 차가 되었을 때도 라이브 공연을 그칠 줄 몰라 '또 해'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객석과 호흡하는 공연을 한 달에 한 번 이상 꾸준히 하더니 마침내 1995년 8월 1000번째 라이브 공연 가수라는 타이틀을 갖게 됩니다. 1000번째 공연을 보기 위해 객석을 메운 관객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를 이토록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이 6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김광석 학전 공연 영상

떠나간 것들은 다 그립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대 문리대학도, 샘터 창업주 김재순도, 들국화의 허성욱과 조덕환도, 학전의 김민기도, 가객 김광석도 모두 가고 없네요. 예술은 현실을 담아냄과 동시에 현실을 살아내게 하는 까닭일까요. 유독 대학로에 족적을 남긴 이들은 2026년 대학로를 지나는 사람의 일상에도 유효한 문장과 공간, 선율과 가사를 남긴 것 같습니다. 현실이 동화가 되는 일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와장창 깨뜨렸다간 무정하다는 이유로든 멍청하다는 이유로든 혀를 찰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가 쌓인 동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강의실이 공연장이 되고, 전공 서적이 교양 잡지로 바뀐 이 거리를 다시 걷게 만들 이야기가 기대 됩니다.

 

이로써 대학로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는 한국 대중음악의 발상지, 동두천과 신중현의 이야기로 편지할게요. 시작된 한 주도 싱그러운 여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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