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로의 연못에서 시작된 낭만

밥먹듯 찾는 낭만의 근원을 찾아 도쿄로

2026.07.06 | 조회 100 |
1
|

문장을 따라 여행하는 낭만

첨부 이미지

어떤 사람은 맛집을 따라 여행하고, 어떤 사람은 풍경을 따라 여행합니다. 저는 오래된 문장을 따라 여행합니다. 문장이 데려다주는 장소에 도착하면, 잠시 현실에서 비껴나 다른 시간에 닿는 기분이 들거든요. 어쩌면 요즘 우리가 영양제나 모닝커피 마시듯 낭만을 복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첨부 이미지

낭만은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영어 로망(roman)을 낭만으로 번역하면서 오늘날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해요. 그전에도 낭만이라는 명사가 없던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쓰는 의미로 굳어진 데에는 소세키의 영향이 무척 컸다고 합니다. 도쿄까지 와서 낭만의 근원을 찾는 낭만적인 여행을 하지 않을 재간이 없잖아요. 향한 곳은 도쿄대학교입니다.

첨부 이미지

비 내리는 도쿄대학교는 무척 운치 있었어요. 아름드리나무 아래서 이파리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 갈증이 씻기는 듯했습니다. 

첨부 이미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설 산시로에 등장하는 연못입니다. 주인공 산시로는 이곳에서 미네코라는 여성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지요.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덩달아 명소가 된 연못입니다. 

첨부 이미지

비가 내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연못을 둘러싼 나뭇잎 끝에 매달린 물방울, 회색 하늘과 옅은 안개. 어딘가에서 미네코와 산시로가 튀어 나와도 그러려니 할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입니다. 꼭 이 연못에서 다시 읽고 싶어서 부랴부랴 책을 꺼냈습니다. 빗물이 떨어져서 몇몇 페이지는 부풀어 올랐어요. 이 부분을 펼칠 때마다 산시로의 연못을 떠올리겠지요. 

첨부 이미지

산시로의 연못을 따라 빙빙 돌며 시간을 보내다가 진보초로 걸음을 옮깁니다.

케케묵은 고서점 거리에서

첨부 이미지

대학가가 밀집되어 있던 진보초에는 책을 찾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서점 거리가 생겼습니다. 웹사이트에서 서점 거리를 검색해 봤을 땐 오래된 책이 안팎의 경계 없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빗물에 약한 책을 위해 둘러놓은 비닐 커버로 상상한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요. 비가 오니 한층 짙어진 헌책방 냄새를 수집하러 이곳저곳 쏘다닙니다. 

첨부 이미지

말을 못 알아들어도 재밌는 장소를 찾았어요. 잡지와 옛날 영화 포스터를 판매하는 매장입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가는 좁은 틈에서 열심히 보물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니다.

첨부 이미지

저도 500엔을 주고 오래된 잡지를 하나 구매했어요. 이번엔 100년 전 동경유학 중인 조선인의 흔적을 따라가 봅니다. 

프랑스 어학원 아테네 프랑세와 시인 이상화

첨부 이미지

항구가 열리고 서양과 교류를 하려면 말이 통해야겠죠. 아테네 프랑스는 대표적인 프랑스어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한국의 시인 중에도 이곳에서 수업을 듣던 인물이 있어요. 그는 바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입니다.

첨부 이미지

1923년 관동 대지진이 터지는 바람에 꿈꾸던 프랑스 유학길엔 오르지 못했다고 해요. 그러나 아테네 프랑세에서 유럽의 낭만적인 시를 경험한 시인은 지금껏 쓰던 시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작품들을 써냅니다. 그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 <나의 침실로>라는 작품입니다. 

 

나의 침실로, 이상화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만 있어라」

「마돈나」지금은 밤도 모든 모꼬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마돈나」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마리아」–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뒹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

<나의 침실로>에는 '부활의 동굴'이라는 시어가 등장하는데요.

첨부 이미지

몇몇 학자들은 이 동굴이 바로 1918년 이상화 시인의 고향 대구에 조성된 성모당이라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제가 대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예요. 성모당에 다녀가면 마음속 소음이 잠잠해지거든요. 100년 전, 소년 이상화가 성모당을 보며 감탄했을 생각을 하고 있자면 더욱 감격스러운 장소예요. 

1919년 2월 8일, 동경 YMCA

첨부 이미지

아테네 프랑세에서 다시 걷습니다. 비 오는 주말 아침, 거리는 한산합니다. 이제 막 운영 준비를 마친 잡화점을 지나 YMCA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1919년 2월 8일 동경에 유학중인 조선인 학생이 주축이 되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외친 독립선언이 신호탄이 되어 이로부터 약 한달 뒤인 3월 1일 탑골공원을 비롯한 한반도 전국 각지에서 뜨거운 만세운동이 일어나지요. 

첨부 이미지

막연히 책으로만 봤을 땐, YMCA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는데요. 직접 와보니 왜 이 장소인지 알겠습니다. 2.8 독립선언서와 3.1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이광수와 최남선은 도쿄 와세다 대학 출신입니다. 당시 도쿄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모이던 진보초 책방 거리 근처에 선 YMCA건물을 보고 있자니 새 세상을 꿈꾸던 젊은이들의 패기가 느껴졌습니다.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작품이 있다는 축복!

첨부 이미지

한발자국 떼기가 무섭게 새로운 이야기가 들려오는 도쿄에서 한참을 쏘다니다가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는 스카이라이너에 탔습니다. 좌석에 앉아 한숨 돌리면서 편의점에서 사온 하이볼을 땄어요. 캔 뚜껑 열리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속이 시원합니다. 뭘 더 찾지 않아도 공항까지 가는 열차에 타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문득 지난 시간이 다 생생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하루키와 이상, 소세키와 이상화, 1919년 2월의 열정까지 그득그득 이야기를 퍼먹었더니 거나한 만찬을 즐긴 것처럼 든든합니다. 곳곳에 따라나설 문장이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지요.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주인공을 꿈꿔봐야겠습니다. 무대를 찾아 헤맬 경험이 그만큼 늘어날 테니 말이에요. 

 

다음 편지는 대학로 이야기를 적어 올게요. 연극이 끝난 후에도 아름다운 미라보 다리와 센강을 함께 걸어요.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한 입 먹으면 머나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낭만 장아찌를 당신의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케케묵은 장아찌의 비법이 알고 싶다면 혹은

함께 시간 여행 콘텐츠를 만들고 싶으시다면 

아래 주소로 편지 보내주세요! 

🪐bomi19940928@gmail.com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쿨한생각의 프로필 이미지

    쿨한생각

    0
    약 1시간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다른 뉴스레터

© 2026 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직접 공수한 케케묵은 낭만 장아찌를 잔-뜩 퍼서 댁의 편지함에 보내드려요.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